이전부터 엘리니아의 요정들 중 가장 친절한 요정이라 하면, 역시 로웬이었다.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엘리넬의 명예교수가 된 후 엘리니아를 떠나던 날까지,


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과 정보와 친절을 준 요정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라니아라는 소녀와도 안면이 있을 터였다.


나는 곧바로 엘리니아 아래쪽에 사는 로웬의 집을 찾아갔다.


"로웬, 안에 있나요?"


이윽고 문을 열고 나타난 로웬은 역시 특유의 친화력 좋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어머, 명예교수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검은 마법사를 물리치고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을 텐데.."


"저야 뭐.. 다들 로웬처럼 저를 반겨주시고 잘 대해주시니까 요즘 피곤한 줄도 모르고 사네요."


"호호! 그거 참 다행이네요. 그런데.. 카오 씨 검을 보니.. 안부만 물어보러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검에서 나오는 어두운 기운을 느꼈는지 로웬이 약간 위축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안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이 검에 담긴 어둠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루미너스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하인즈 님께서는 그와 함께 사는 라니아라는 여자아이를 혹시 요정들이 알 지도 모른다고.."


"아, 라니아 말씀이시군요. 그애는 항상 싹싹하게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고 다녀요. 저희 요정들이 카오 씨가 오기 전 인간들을 배척하는 분위기일때도 라니아는 몇 안되는 예외 중 하나였죠."


"그렇군요. 그럼 혹시 최근에 그 라니아라는 소녀를 보신 적이 있나요?"


"라니아는 아까 헤네시스 시장에 간다며 저에게 인사를 하고 갔어요. 제가 이슬 따러 갔을 때 봤고, 아직 돌아오는 건 못봤으니 아마 시장에 있을 거에요."


"헤네시스라..  아무래도 바로 찾아가 봐야겠군요. 로웬,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자마자 물어볼 것 만 물어보고 가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하지만 다음 번에는 꼭 사적으로 들러주셔야 해요? 검은 마법사와의 이야기를 우리 요정들에게도 들려주셔야지요."


"좋습니다. 그러면 다음 번엔 로웬이 좋아하는 오르비스산 꽃꿀술을 가져와서 이야기 해드릴게요. 꼭이요!"


"정말이지요? 정말 저 기대하고 있을 거에요."


로웬은 문을 열고 나를 처음 봤을 때보다 세배는 반가운 얼굴로 되물으며 나를 보냈다.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하고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헤네시스로 출발했다.









헤네시스는, 많이 파괴되었던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에 비해 상당히 많이 복구되어 마을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 있었고,  주민들은 마무리 복구에 한창인 모습이었다.


헤네시스에도 반가운 얼굴들은 꽤 많이 보였지만, 로웬처럼 인사를 다 하고 다녔다간 라니아라는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잠잘 시간까지 인사를 나눠야 할 것 같아, 나는 애써 반가운 얼굴들을 지나쳐 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장에 있던 비셔스 앞에서 로웬이 말한 인상착의의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고마워요 비셔스 아저씨. 아저씨가 고치는 물건은 언제나 다 새것 같다니까요!"


"그러니까 아저씨 아니라니까.."


그런 둘 사이에서 나는 소녀를 불러세웠다.


"저기요, 혹씨 라니아 씨인가요?"


"네..? 누구시죠?"


대답을 하려는 찰나에 옆에 있던 비셔스가 날 알아보고 대신 답해주겠다는 듯 말했다.


"아니.. 이거 이게 누구야! 카오 아니야! 이야! 검은 마법사를 물리친 우리의 영웅! 하하! 이게 얼마만이야"


" 아.. 비셔스!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물건 고치고 만드는 솜씨는 제법이신 모양이네요."


겉으로는 반가운 척 했지만, 이렇게 되면 라니아를 놓치게 될게 뻔했기에 어떻게든 빠져나갈 오만가지 생각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비셔스는 피식 웃더니 작은 소리로


"그래, 보아하니 저 아가씨한테 볼 일이 있는 모양인데, 어서 가봐. 난 할일도 많고 하니까. 그리고 꼭 아저씨 아니고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하라고. 나 아직 아저씨 나이는 아니잖아?"


"네.. 비셔스 지금은 바빠서.. 다음번에 올때는 정말 반갑게 식사나 한 번 하자구요. 그 땐 헤네시스 주민들과 함꼐 모여서 말이에요!"


"물론이지. 빨리 그 파티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네!"









엘리니아 때부터 뭔가 일을 크게 벌리고 다닌 다는 생각을 뒤로 한채 나는 다시 소녀에게 다가갔는데,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먼저 말을 건넸다.


"검은 마법사를 쓰러뜨린 용사시라구요..? 그러면 혹시 루미너스를 아시나요?"


"물론이죠. 그리고 제가 라니아를 찾아온 이유도 루미너스를 찾아가야만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초면에 부탁을 드리게 됐어요."


"루미너스는 지금 집에 돌아와 여독을 풀고 있어요. 좀 까다로운 사람이라 원래 외부인을 잘 안만나주지만.. 용사님이라면 얘기가 다르겠군요. 좋아요. 다만 조건이 있어요."


"그게 뭐죠?"


"제게 루미너스와 함께 검은마법사와 싸웠던 이야기를 해주세요. 루미너스의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흥미 없어진 티가 나면 금방 이야기를 그만둬서.. "


"하하.. 그정도야 뭐.. 제 이야기는 루미너스님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재미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검은마법사 정도 되는 상대와 전쟁을 벌인 이야기를 재미없게 하기도 쉽지는 않은데, 왠지 함께 싸웠던 루미너스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재미없다는 라니아의 이야기에 꽤 신빙성이 느껴졌다.


시장에서 볼일을 마치고 엘리니아로 돌아가면서 라니아에게 검은마법사와의 결전에 있었던 루미너스와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검은 마법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그에게서 결정적인 단서를 많이 얻었고,

특히 친위대장 듄켈과의 전투에서 그가 무력감에서 나를 일으켜 그의 심장에 검을 꽂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라니아는

루미너스는 역시 재미없는 것 빼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며 넋을 놓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라니아의 안내를 받으며 엘리니아 숲 깊이 라니아와 루미너스가 사는 집으로 가고 있던 도중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작스레 강렬한 적의를 느낀 나는 이야기를 멈추고 경계 태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라니아 역시 심각해진 내 표정에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하고 물었다.


"용사님..? 무슨 일이에요..?"


"...적의가 느껴집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요. 이런 적막한 숲에서 적의가 느껴진다면, 그 적의가 향하는 곳은 저희일 확률이 높습니다."


"루미너스.. 루미너스에게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그분은 스스로 지킬 힘이 있는분입니다. 저 또한 이정도 위협에 쓰러질 사람은 아니니,  제가 루미너스님의 집까지

라니아씨를 안전하게 데려다 드려야겠군요."


이야기를 하며 화목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나는 라니아를 최대한 보호하는 위치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

검은 사슬 수 개가 전방에서부터 나를 덮쳐왔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