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언제부터인가 '선명성'이란 말이 정치권에서 사라져 버렸다.

양김이라 불리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박통시절, 너구리 같은 선배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사십대의 나이에 에헴~하며 기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선명성 때문이었고
87년, 92년, 97년의 대선, 모두 치열하게 상호간 맞붙었던
주요 테마 역시 '선명성'이었다.

누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의 테제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냐...
누가 군사문화를 진정으로 끝내고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냐...
누가 폐허가 된 한국의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냐...

이를 두고 싸웠더랬지.

그리고 2002년.
노무현이 당선되었던 해.

돌이켜 보건대 노무현이 당선이 되었던 것은
여러가지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도 앞뒤 재지 않았던
선명성을 드러냈기 대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정치는 더 이상 선명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면, 악마라도 뽑을 수 있다는 논리가
어느 새인가 뇌리 속에 박혔던 것 같았다.
올곧은 얘기, 심각한 얘기를 하면 재수없어 보이고, 불손해 보이고,
뒤가 구려 보이고, 한 꺼플 걷어 봐야 한다 믿었던 것 같다.

생업을 정치로 삼은 정치인들 역시,
이런 분위기에 젖어들 수 밖에 없었고,

목숨 걸고 온 힘을 다해 정권을 쥐어야 마.땅.한. 정당정치는
정권을 못 쥐더라도 자기 나와바리는 지키는 쪽으로,
내 뜻하는 바를 전하지 못 하더라도 보신 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현직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핀치에 몰리는 상황이 올지 아무도 몰랐던 게지.

이재명의 지지율이 갑자기 오르는 이유는 니들도 아다시피
이 사람은 예전부터 '선명'했거든.
남들 다 두리뭉실 클로킹 하고 있을 때 배를 째 왔던 전력이 있고,
남들이 다 포퓰리즘이라 욕함에도 불구하고 
성남시를 실험실 삼아 확실한 포트폴리오를 제출 할 수 있으니 말이야.

내가 봐도 현 시점에서는 이재명 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아.

돌이켜 보면 '선명성'을 잃어버린, 
'내 행동 하나하나가 어떻게 씹힐지 모르고 어떻게 평가받을지 몰라서 장고하던'...
그런 정치인들이 소위 말하는 '잠룡'으로 불렸던 게 사실이잖아.

보통의 경우 라면, 그러니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필드에 자신의 모든 진영을 불러들여 정면승부하는 시합을 하게 되지.
그리고 마지막 깃발을 꺽는 쪽이 승리할 테고.

그런데... 싸움터가 탁트인 필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언가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밀림이 되어 버린 상황이라면...

곱게 자란 지휘관이 불리할 밖에...
결국 싸움은 '어디에서 싸우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

이 지난한 상황이 지나고 나면 분명히 드러나겠지.

난 그 어디냐에 따라서,
탁 트인 필드에서 싸우게 된다면 문재인을,
혼란스러운 밀림에서라면 이재명을 지지할 것 같다.

아...
물론, 싸움을 한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개헌이니 뭐니 해서 싸움판이 없어진다면 그 때가서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