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쾅쾅. T1 신사옥에 가끔 정체 모를 특이한 소리가 울려 펴진다. 또 쾅쾅쾅.

소리의 근원지는 9층이다. T1 카페테리아가 있는 곳. '알렉스' 김재형 총괄 쉐프는 동료 쉐프들과 함께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돈까스 돼지고기를 직접 두드리는 것이다.

T1 선수단을 포함한 전체 90~100인분의 식사를 점심, 저녁으로 매일 제공한다. 선수들에게는 야식도 챙겨준다. 쉬는 날은 일요일 하루뿐. 인원이 적지 않고, 챙겨야 할 끼니도 많아, 돈까스 같은 종류는 완성 제품을 납품받아 사용할 만도 한데 손수 재료 구매부터 손질과 요리까지 해낸다.

'알렉스' 김재형 쉐프는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선수들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하고 가줘요. 그럴 때면 이렇게 신경 써서 요리하는 보람을 느껴요. 인사 한마디 때문에 저희는 퀄리티를 포기할 수 없죠. 최고 품질의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항상 발품 팔고, 조금이라도 품질이 안 좋은 것 같으면 바로 반품해요. 제 가족이 먹을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웃었다.

쉐프가 요리에 열정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김 쉐프가 그 이상의 애정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 쉐프는 "워낙 예전부터 팬이었어요. 스타크래프트 시절에 임요환 선수를 보면서 T1을 좋아했거든요. 제가 프랜차이즈 업체서 일하던 시절 우연히 SKT 임원분과 인연이 생겼는데, 신사옥에 와주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주셨어요. 믿기지 않았어요"라고 설명했다.


마냥 기뻐서 승낙을 하진 않았다. 워낙 세계적인 팀이기에 혹시나 자신이 누가 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며 함께 호흡하고, 또 응원하고 싶었다. '프랜차이즈 업체 메뉴 개발, 패밀리 레스토랑, 단체 급식 회사, 재활 치료 병원, 일반 레스토랑, 군대 취사병'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았기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근거는 충분했다.

결심이 서고, 두 명의 동료에게 연락했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세 명의 쉐프가 9층 T1 카페테리아를 책임지고 있다.



쉐프가 관찰한 선수들의 식사

'효율과 고기'

e스포츠 선수들은 효율의 화신들이다. 게임이라는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자의 부팀장이 스타2 프로 선수 출신인데, 일상 생활에서도 스케쥴과 동선 빌드 짜기에 매몰돼서 살아가는 특성을 보였다.

김재형 쉐프는 "식사 패턴을 보면 두 부류로 나뉘기는 하는데, 한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요. 초스피드죠. 거의 5분~10분 안에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더군요. 남기지도 않아요. 워낙 빨리 먹을 수 있는 걸 좋아해서, 덮밥처럼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 같은 종류의 반찬을 자주 해요(웃음)"라고 설명했다.

한 번은 선수들의 요청도 있었다고 한다. 닭볶음탕에 들어가는 닭이 순살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순살이 편의와 시간상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김 쉐프는 "생선도 뼈가 거의 없거나, 제거된 재료를 사용해요. 생선 바르는 건 일단 저부터도 귀찮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쉐프는 효율의 굴레에서 벗어난 선수로 한 명, '페이커' 이상혁을 말했다. "'페이커' 선수는 확실히 여유가 있어요. 천천히 먹어요. 30분 이상은 식당에 앉아서 먹고 가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은 느리게 먹는다고 해도 일반인의 평균 정도인데, '페이커' 선수는 이런 점에서도 독보적이네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선호하는 반찬은 무엇이든 고기가 들어간 반찬이었다. 그래도 특정 음식 몇 가지를 뽑아줬다. "갈비찜이 가장 기억에 남고, 불고기 종류 또한 정말 좋아해요"라고 말한 뒤 "봉골레를 최근에 해준 적이 있는데 그것도 정말 좋아했어요. 선수들이 투정하거나 그런 게 없어서 고마워요"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선수들이 좋아해서도 있지만, 빡빡한 스케쥴을 소화해야 하는 직업이라 스태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육류를 많이 사용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야채를 먹을 수 있게 구성하려고 노력도 하죠. 균형 잡힌 영양 섭취가 가장 걱정이에요. 선수들은 건강이 최고니까요" 조금의 고민거리도 꺼내놓았다.



카페테리아 운영 이모저모

'발품과 미리 만들지 않기'

처음 T1 식단을 보고 팬들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워낙 진수성찬이라서. 예산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김재형 쉐프는 금액을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다른 구내식당의 예산과 비교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 예산에 다양하고 질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발품이다. T1 쉐프들은 시가에 따라 유동적으로 재료들을 선정하고, 식단을 짠다고 밝혔다. 간단하게 말하면 배추가 좋은 철에는 배추 위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절약해서 랍스타를 제공하는 등 특식에 힘을 쏟기도 했다.


식단 선정은 김재형 쉐프의 몫이다. 특식의 경우에는 인스타그램을 포함해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연구하고 트렌드를 읽는다. 일반식으로는 한식, 중식, 일식을 고루 이용해 만족도를 높인다고 한다. 김 쉐프는 "오고 가는 선수들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서 참고하고 적용 역시 많이 해왔죠"라는 말을 덧붙였다.

김재형 쉐프가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미리 만들지 않기'다. 김 쉐프는 "미리 만들면 남고, 식으면 맛이 떨어지잖아요. 저희는 조금씩 소분해서 즉석에서 요리를 제공하려고 해요. 재료도 먼저 썰어놓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물기가 생겨서 맛이 떨어지거든요. 쉐프 한 명은 요리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선수들이 얼마나 왔는지 항상 체크해요. 그래야 속도를 맞추거든요"라고 말했다.

또한, 김 쉐프는 "순차 조리의 더 큰 장점은 음식물 폐기율이 엄청 적다는 거예요. 덕분에 아껴서 품질 좋은 재료와 특식에 예산을 보탤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

애로 사항은 선수들의 취향을 모두 맞출 수는 없다는 점이라며 아쉬워했다. "선수들의 기호를 다 알아서 신경 써주고 싶어요. 메인 요리를 두 개로 나눠놓긴 하지만 그래도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메인 요리 선정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 인사


"저희가 인스타그램에 'T1 밥(instagram.com/t1_bap)' 계정을 운영하는데요. 요리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쉐프들이 먼저 찍어서 보내고, 직원분들께서는 선수들 코멘트를 넣어주세요. 반응이 좋아서 뿌듯하고 늘 신기합니다. 저희가 내놓은 음식을 보고 바로 응답해주시니까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7시 퇴근하는 일정이고, 야식 담당 인원은 오후 3시에 출근해서 12시 퇴근해요. 힘들기도 하지만 여기는 근무 여건이나 환경이 아주 쾌적한 편이에요. 쉴 때도 어두침침한 지하에서 쉬는 게 아니고 루프탑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계속 힘내보겠습니다"

"끝으로 다른 게임단 쉐프님들께 고생하신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나름대로 저희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게임단에서는 콘셉트를 어떻게 잡으시는지 궁금하네요. 기회가 되면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어떨지 싶네요. 레시피도 공유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