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케이블 프로그램 하나에 이렇게 인터넷 공간이 달아오른 것은. '숲들숲들'과 '만취였니?' 등 주요 대사가 유행어로 자리잡고, 좋은 양념이 된 BGM들도 널리 퍼지고 있다. 국내 비주류 일렉트로닉 밴드였던 이디오테잎의 인지도는 아마 수십 배가 뛰었을 것이다. 시청률은 2%를 넘나드는 수준이지만, '더 지니어스'가 가져온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게임이 커다란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시대다. '더 지니어스'는 이런 게임의 법칙을 방송에 가져다 놓았다. 배경이 되는 세트장이 있고, 플레이어가 있다. 정해진 룰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승리 조건을 충족하거나 패배하지 않아야 한다. 일본 드라마 '라이어게임'의 소재와 미국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의 포맷을 차용해 표절 논란이 일어난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시즌2 '룰 브레이커'는 유독 시끄러웠다. 하지만 제작진의 바람대로 룰이 파괴되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룰로 인해 파괴된 것이 많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친 관심이 조금씩 사그라져 갈 때, 시즌2의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시청자는 왜 이 게임에 집중했을까 - 집단과 개인, 그 속에서의 '갈등'

'더 지니어스'가 큰 반응을 얻은 이유는 머리 싸움에만 있지 않다. 영화 '쏘우'의 "게임을 시작하지"라는 명대사가 많은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게임을 위해 마련된 공간 속에서 출연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게 되고,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느 공간에나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 앞에 다가온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이 대결에서, 미리 정해져 있는 스토리란 존재할 수 없다. 예능과 e스포츠가 결합된 모습이다.

출연자가 방송이 아닌 '게임'에 몰입하면서, 시청자들 역시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강렬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다음 게임 룰이 공개되면 먼저 필승법을 살펴보고, 게임이 어떤 구도로 흘러갈지 스토리를 짜본다. 방송이 끝난 뒤 각 출연자의 입장에서 플레이를 평가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스포일러 중 참과 거짓을 추리하면서 또 하나의 지니어스 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제13의 참가자인 셈이다.

소위 밉상 짓을 저지른 출연자 이름에 '혐'이라는 접두사가 붙고, 배신으로 탈락한 이두희를 보며 실제 자신이 당한 것처럼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현상 역시 이런 동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현상이 처음은 아니다. 한때 신드롬이었던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은 특정 응원 대상을 정하고 그들의 행보에 일희일비하곤 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더 지니어스' 속에서 몰입은 더욱 강해진다. 직접 겪어본 일상의 사건들과 밀접하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엮여 공동의 혹은 상반된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게임은 사회와 공통점을 갖는다. 대학 조별과제에서 팀원들이 말을 듣지 않아 혼자 모든 준비를 했으면서도 '독박'을 쓰거나, 열심히 일하고도 직장 내 권모술수에 당해 억울한 모함을 쓰는 사례는 흔하다. 게이머들은 말할 것도 없다. 'LoL' 유저라면 혼자 게임에 들어갔다가 트롤러 4인큐를 만나 갖은 수모를 당한 경험을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더 지니어스'의 메인 테마는 '과정과 결과, 집단과 개인, 아름다운 패배와 추악한 승리'. 요약하자면 '가치관의 충돌'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택지는 드물다. 생존에 성공하면서 신의까지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플레이어는 내적, 외적 갈등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반면 밖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는 '아름다운 승리'를 원하게 된다. 현실의 벽이나 억울함, 그리고 냉정함이 게임에서까지 결과로 드러나는 것을 바라진 않기 마련이다.

'보드게임'이라는 소재 속에서 플레이어의 목표와 시청자의 욕구가 상반되는 이 모순은 '더 지니어스'가 가진 가장 큰 재미 요소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불안 요소이기도 했다.

▲ 무릎을 꿇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더 지니어스'의 세계



■ 시청자는 왜 시즌2에 분노했을까 - 게임 속과 바깥, 그리고 홍진호

라이벌 팀에 속한 야구 선수들이 술자리에서 어깨동무하고 놀다가도 그라운드에 서면 서로를 잡아죽일 듯 승부하는 것 역시 스포츠 정신의 기본이다. 게임 밖과 안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게임의 세계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던 룰을 게임 바깥의 관계가 침범하는 순간, 균열은 발생한다.

시즌1 8회 메인매치 '콩의 딜레마'에서 성규가 팀원과의 약속을 배신하고 콩 하나를 남겨 단독 우승을 차지한 모습을 보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를 보냈다. 오직 '게임의 세계' 내에서 묘수를 발견해 이득과 방송 재미를 동시에 챙기는 멋진 플레이였기 때문이다. 홍진호가 말했듯, 이 프로그램 안에서 "배신은 통용되는" 것이다.

시즌2의 '방송인 연합'이 시청자에게 비난받는 것은 근본적인 성질이 달라서이다. 실제 상황이 어떻듯, 방송에서 보이기로는 게임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인맥이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다. 이것은 시즌1 이상민-성규의 관계와 대비된다. 그 둘 역시 초반부터 가수 선후배 관계를 강조하면서 오랫동안 둘만의 공작을 벌였지만, 순수하게 게임 속 손익관계에 따라 연합과 배신을 반복했다. '더 지니어스'가 요구하는 플레이를 가장 잘 구현한 듀오라고 할 수 있다.

시즌2 역시 초반에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였다. 1회 메인매치 '먹이사슬'은 프로그램 사상 최고 품질의 게임으로 손꼽힌다. 2회 데스매치 '해,달,별'은 한 사람을 희생한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이고도 소름 돋는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분기점은 4회였다. '방송인 연합'이 실재화되었고, 이후 남은 멤버의 밸런스는 붕괴된다.

게임과의 개연성 없이 이루어진 연합은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비디오게임으로 따지면 핵이나 치트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단순히 승리만을 위해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구조는 그것이 정당하느냐에 관계 없이 다분히 폭력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홍진호에 열광했다. '더 지니어스' 속에서 홍진호라는 캐릭터는 '다수 권력' 구도의 안티테제로 자리잡고 있었다. 탁월한 게임 이해도를 보였고, 연합 구도에 휩쓸리지 않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줄 알았다. 6회에서 핍박당하고 배신당한 끝에 울음을 터트린 이두희는 시청자에게 동질감을 주었고, 그에 맞서 분전하는 홍진호는 영웅적 캐릭터였다. 그 반작용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플레이어가 모두 탈락하자, 관심은 급속도로 식기 시작했다.

▲ 팀을 도와준 이은결을 보호해야 한다는 홍진호, 시즌2의 가장 큰 분기점이었다



■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 재미있는 게임의 필수 요소, '밸런스'

사실, 플레이어들이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것은 억울할 만한 측면도 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을 사용하는 중이다.

게임 이해도가 가장 떨어지는 노홍철은 자신의 친화력과 방송 인맥을 적극 활용해 살아남아야 했고, 은지원은 홍진호와의 데스매치 '인디언 홀덤'에서 현저히 밀리는 게임 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초반 올인에 나서는 것이 당연했다. 3회 '왕 게임'에서 소수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 조유영은 이후 연합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유정현은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최고의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시즌1과 시즌2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좋은 게임'의 가장 큰 미덕은 '공정함'이다. 게임의 밸런스를 생각하면 비슷하게 들어맞는다. 최근 몇 에피소드에서는 그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다. 그것은 무대를 제공하는 제작진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다. '암전게임'과 '독점게임' 등 다수가 무조건 이길 수 있는(최소한 지지 않을 수 있는) 메인매치가 많았다.

데스매치에서 사용된 '해.달.별'은 불안 요소를 증폭시켰다. 처음은 좋았지만, 두 번 사용은 과했다. 데스매치 상대에 비해 정치력에서 밀릴 경우 '탈락할 수 있다'는 부담은 무조건 다수 연합을 형성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시즌1에서도 더더욱 정치력으로 갈리게 되는 데스매치 '연승 가위바위보'가 있었지만, 3회 이후에는 탈락자들이 함께 참여한 한 번을 제외하면 사용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되었다. 시즌2 참가자들은 지난 시즌을 직접 겪었거나, 방송 시청으로 숙지해왔을 사람들이다. 다수가 한 편이어야 유리한 메인매치와 데스매치가 이어진다면, 그 무엇이든 제쳐두고 거대 연합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즌2는 더더욱 개인 역량이 중요한 게임들을 배치해야 했다. 한두 명이서 판을 흔들어버린 시즌1 '오픈,패스'나 '콩의 딜레마'처럼. 연합이 고정된 시즌2 특성상 초반의 정치 구도를 빨리 풀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개인전이 기대되던 플레이어가 대부분 낙오되었으니까.

시청자들의 불만이 정점에 다다른 6회의 절도 사건은 이런 딜레마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배신이 통용되는 '더 지니어스'라지만, 게임의 필수 물품을 훔쳐가 끝까지 돌려주지 않는 행동은 시청자가 판단하기에 페어플레이의 마지노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라면 이기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종의 '심판'이었던 제작진은 그것을 제지했어야 했다.

과도한 미디어 노출도 문제였다. 작가는 펜으로 말하듯, 방송 제작진은 방송으로 말한다. 무슨 이유로 PD 및 제작진들이 수많은 매체를 통해 인터뷰를 양산해야 했을까. 이슈를 불러오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미래의 관심을 미리 가져다 쓰는 행동이다. 방송 분량만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제작진의 역량 부족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 '더 지니어스'를 계기로 활발히 방송 활동을 시작한 홍진호와 최정문



■ 게임으로 사회실험을 '의도'할 필요는 없다

결국 홍진호는 탈락했고, 논란이 일었던 방송인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생존해 있다. 임요환은 기대에 못 미치는 플레이를 보인다. 혹자는 '제갈량 사후의 삼국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개인전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게임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살아난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구도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시즌1 역시 초반은 파벌과 연합 대결이었다. 그것이 조금 더 길어져서 나타난 시행착오라고 봐야 할까. 국내에서 게임을 통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 정도로 그려내고, 그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것이 이 승부의 끝을 지켜보고 싶어지고, 다음 시즌까지 여전히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이유다.

제작진은 "일종의 실험실을 통해 '경쟁 사회'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게임'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이다. 게임이라는 요소 자체로 이미 인간의 갈등을 담을 수 있고, 사회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굳이 PD가 사회실험을 의도할 필요는 없다. 게임 속에는 이미 사회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