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연합함대는 라스팔마스 제도의 중앙부까지 진출하였다. 나는 핀타 호의 선실에서 펠릭스 장군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게는 되었지만, 과연 잘 해낼지는 의문이 큽니다.”

 “에아네스 장군, 나는 자네의 능력을 믿네. 타라고나 백작 각하역시 자네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임무를 맡긴 것이 아니겠나.“

 그 때, 척후선에서 적 함대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모든 전함에서 일제히 전투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사들은 일제히 전투준비를 끝마쳤다. 연합함대는 전투대열을 갖추라는 신호에 일제히 진형을 쳤다. 풍향은 우리에게 불리하였다. 펠릭스 장군은 엔리케 호로 돌아가지 못하고 핀타 호에 남아야만 했다.

 이윽고, 적함대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100척이 약간 안 되는 함대였다. 베네치안 갤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포문을 열어라!”

 일제히 포문이 열렸다. 나는 장전을 명하였다. 우현의 모든 대포들은 포문앞으로 내밀어졌다.

 “발포!”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을 하며 대포 구경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포탄을 사정거리 안에 있는 갤리들을 명중시켰다. 다시 장전을 하는 동안 함대는 선수가 앞으로 오도록 선회를 하였고, 수병들은 화승총으로 엄호를 하였다. 
 
 장전이 완료되자 다시 우현이 앞으로 오도록 선회하였다. 나의 발포명령과 함께 대포가 발사되었다. 다른 전함에서도 대포가 발사되어 적들을 명중시켰다. 벌써 적 함대 중 세 네 척은 침몰되었으나, 우리 함대에서도 역시 여러 척이 침몰되었다.

 “에아네스 장군, 나는 병사들을 직접 치료하러 가겠네”

 펠릭스 장군은 이 말을 남기고 급히 우현으로 내려갔다.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포성에 천지가 진동하는 듯 했다. 승세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갤리 한 척이 핀타호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였다. 필사적으로 대포를 발사하고 화승총을 쏴대었으나 순풍을 타고 접근하는 갤리는 시시각각 다가왔다. 이제 갤리와의 간격이 거의 가까워졌다. 우리 쪽에도 사상자들이 많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고물에서 우현으로 내려갔다. 갑판은 이미 피로 물들여진지 오래였다. 이제 간격이 너무 좁아져서 대포를 발포하기에는 글러먹었다. 모든 수병들은 필사적으로 화승총을 쏴대었다. 나 역시 현측에 기대서 화승총을 발사하였다. 총상을 입고 쓰러지는 적들이 보였다.  

 나는 잠시 후아니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화승총을 장전 중이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후아니타가 쓰러졌다. 내가 급히 달려가보니, 그녀는 왼쪽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이봐, 정신차려!”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급히 내 옷자락을 찢어서 그녀의 왼쪽 복부를 지혈 하였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위생병! 위생병!”

 나는 위생병들을 불러댔으나 그들은 다른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군...”

 후아니타가 나를 불렀다. 

 “사실은... 저도... 장군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한 그녀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위생병들을 계속 불러댔다. 다시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였다. 머릿속에서 전투현황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 장군께 폐를 끼칠수는...”
 
 “말을 하면 안된다니까!”

 이런 제길.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지?

 “래드니, 부탁이네. 제발 말을 하지 말게... 위생병이 곧 올거야...”
                         
 그 때, 펠릭스 장군이 우리에게 왔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펠릭스 장군에게 말하였다.

 “이 병사는 왼쪽 복부에 총상을 입었소.”

 “일단 장군께서 지혈을 하셨군요. 탄환을 꺼내야 되겠습니다.”

 펠릭스 장군은 총상 주변의 옷자락을 째고 칼로 총상을 입은 피부를 갈라냈다. 후아니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마음이 심란해 졌다. 만약 탄환이 깊게 박혀있다면 가망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탄환은 깊게 박혀있지 않았다. 펠릭스 장군은 조심스럽게 탄환을 꺼내고 상처부위를 실로 꿰맸다.

 “이제 다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투가 끝난 뒤, 장군의 선실에서 얘기를 좀 나누고 싶소.”

 그 말을 끝낸 펠릭스 장군은 다른 부상자들을 찾으러 갔다. 그제야 후아니타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나와 후아니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별안간 그녀가 뺨을 붉혔다. 그녀가 뺨을 붉히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감사합니다, 장군.”

 그녀의 말에 나 역시 뺨을 붉혔다. 나는 현측을 향해 고개를 들어보였다. 다행히 갤리는 핀타 호에 도선하기 직전에 다른 전함의 포격해 의하여 격침되고 있었다.
  승세가 우리에게 기울여졌다. 적선 중 50여 척이 남쪽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피해도 만만찮아 뒤쫓기에는 무리였다. 치열한 전투가 끝났다.

 내 선실로 가보니, 펠릭스장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군, 무슨 일로 부른 것입니까?”

 “에아네스 장군, 솔직히 말해보게.”

 그 말에 나는 당황하였다.

 “무엇을 솔직히 말해보라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내가 치료해준 바로 그 병사 말 일세. 남장을 한 것이 아닌가.”
 
 “어떻게 아신 것 입니까?”

 “의사에겐 직관이 강하네.”

 “...”

 “그건 그렇고, 여자가 남장을 하고 전함의 병사가 된 것도 매우 위험하지만...”

 “장군, 부탁드립니다. 부디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자네와 그 병사의 관계가...”

 “장군께서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부디 발설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건 염려 말게. 나는 자네의 숙부님이 아니니 상관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조심하도록 하게.”

 “...”

 “명심하게나. 쓴 맛 뒤엔 단 맛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단 맛 뒤엔 쓴 맛도 있는    법이네.“

 그 말을 마친 펠릭스 장군은 선실 밖으로 나서서 엔리케 호로 건너갔다. 나도 선실 밖으로 나와 보니, 어느 덧 해가 지고 있었다. 나와 후아니타는 좌현에서 마주쳤다. 말을 먼저 건 쪽은 나였다.

 “총상은 괜찮느냐?”

 “장군 덕분에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다른 병사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선실 뒤로 데려갔다. 나는 그녀의 투구를 벗겼다. 투구에 가려졌던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칼이 드러났다. 나 역시 내 투구를 벗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키스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선실에서 남은 군량의 집계를 마치고 난 뒤 나는 갑판으로 나왔다. 후아니타는 우현에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자 어제 낮에 처럼 볼을 붉혔다. 그녀는 조개의 껍질 같은 강인함 속에 진주알 같은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래드니.”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단둘이 있을 때는, 질이라고 불러줘.”

 그 말에 그녀의 홍조는 귀 밑을 뒤덮다시피했다.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병사들의 눈이 있어서 그럴수는 없었다. 어찌하였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