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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09:50
조회: 437
추천: 1
[소설] 향신료전쟁의 베니스 (4)귀족들이 올 리 없는 서민들의 시장에 도시 아가씨들이나 입을법한 옷을 파는 가게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기품있는 옷을 입고 있으니 상점 주인은 단속이라도 온 것이라 생각했는지 애써 시간을 끌어 불법으로 판매하는 옷을 숨기느냐 바빠보였다. 그래봤자 유행이 지난 매물 따위이다.
몇 분간의 설명 끝에 간신히 그가 우리를 평범한 상인형 귀족이란 걸 믿게 만들었고 그제서야 가게 안에 들어가서 옷을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었다. 전부 맞춤옷이 아닌 구제 물품으로 끝이 헐거니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남아있는 옷들이었다. 아그네스는 익숙하게 자신과 내가 입을 옷을 골랐다. 사이즈를 가늠해보며 수선이 잘 되어 있는지 보는 솜씨가 옷을 사는 게 한 두번이 아닌 듯 했다. 서민들의 모임에 간혹 참석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옷을 구입하여 입고 갔나보다. 뭐 이제는 그녀가 연락도 없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성당의 신부님이랑 결혼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가게의 구석에서 그녀가 골라준 옷으로 입고 나온 뒤 거울을 본 나의 소감은… “최악이야.” 거울에서 난 영락없는 촌뜨기 행상인이 되어있었다. 어두운 색의 바지가 착 달라붙지 않고 헐렁거려서 무척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 사이 아그네스는 가게의 구석에서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어때?” 그녀가 입고 나온 것은 베니스의 시골 아가씨나 입을 법한 옷이었다. 앞치마 같은 원피스에 속바지는 내가 입은 바지처럼 헐렁거렸다. “양젖 짜다 나왔니?” 내 농담 같지도 않은 말에 정말로 재밌다는 듯 호쾌하게 웃으며 몇 벌의 옷을 더 구입한 뒤 마차로 돌아왔다. 기품있는 옷이 아닌 방금 산 옷을 입고서 말이다. 마부는 나와 아그네스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그에게 화를 냈다. “이 모습을 기억하지 마. 마르코. 명령이야.” 마부 이름도 나와 같은 마르코였기에 스스로에게 타이르는 것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차 안에서 아그네스가 골라온 옷들을 살펴보던 중에 희안한 옷을 발견했다. 선원들이 입는 헐렁한 옷이었다. 그런데 그 옷이 두 벌이나 있었다. 잘못 샀나 싶어서 아그네스에게 물었더니 자기와 내가 입을 옷이라고 했다. "선원 옷을?" "전쟁 지역에선 배가 나포됐을 때 함장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데. 함장처럼 보이고 싶으면 제독 모자를 쓰면 되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어째서 두 벌이야. 설마... 나도 가는거야?" 내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한창인 곳을…..” 투덜거렸지만 그녀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미간을 삼각형으로 만들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내가 빠지고 싶다고 그러면 화를 낼 테지?” 그녀는 아무런 대답없이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 한숨섞인 말로 투덜거렸다. “뼈대 있는 베르티 가문도 우리가 마지막이 되겠군.” 상관 내의 조선소에서 전투지역으로 가기 위한 배를 빌리기 위해, 그곳의 책임자이며 나와 친분이 있는 코시아에게 거의 소설을 쓰다시피 장황한 구실을 지어냈다. 아테네지역의 상권 입지를 두둑히 하고 오스만 투르크의 상선을 나포하여 어쩌구 저쩌구..... 진땀 빼도록 지어낸 얘기를 통해 배를 빌리는 것도 내 정도 지위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상인이 이러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결국 엄청난 설득 끝에 배를 사용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 인부들이 도크에서 배를 꺼낼 동안 코시아가 나에겐 상회에서 조건없이 배를 사용해도 좋다고 '특별히' 허가가 내려져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에게 욕을 섞어가며 화를 냈다. 욕을 들으면서도 코시아는 하하하 웃으며 무척 즐거워보였다. 그가 내어준 300톤급 갤리선은 유럽식 돛을 달아 개조한 것이었다. 예전에 급한 일이 있어서 조르지오씨와 타 본적이 있었는데 상선처럼 교역품을 싣기 위한 쓰잘데기 없는 공간이 없는 대신 노가 많아서 단거리로 이동할 땐 일품이었다. 당장 출발해야 했으므로 급하게 돈을 들여 전투 경험이 있다는 용병 선원들과 술에 절어 오늘 내일 하는 선원들을 개인당 매일 2L의 맥주와 2실링의 일당을 준다는 조건으로 무장을 시켜 배에 오르게 했다. 아그네스와 나를 제외하고 모인 선원은 총 137명이었다. 노를 젓기에 필요한 선원이 52명이었으므로 좀 더 선원을 모으고 싶었지만 아그네스는 당장에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목적지는 오스만 투르크령이 되어버린 아테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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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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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