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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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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D-15 항해일지. {D-4.이기주의.}어디를 둘러보아도 망망대해. 우리에게는 육지가 보이지 않았으며,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으며, 삶의 의지가 없었다. 모두들 죽은 목숨이라는 식이다. 화약이 터지는 것임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 자식'은 뿌리를 내려 화약고를 점령했다. 불을 지피는 것은 그냥 자살행위일 뿐이다. 선장은 단지 살고 싶지만 죽는 소리만 하고 있는 모두에게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알아서 무엇하랴. 덕분에 더 암울한 것을.
새벽의 공기는 우선 차다. 상쾌하고 즐겁고의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는 놈이 생각하면 일단 차갑다. 특히나 이런 망망대해에서는 여름이라고 해도 바닷바람이 강해서인지 항상 춥다. 가끔 따뜻한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말이다. "휴우." 잠에서 깨어난다. 하나 둘 깨어나고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자신은 죽지 않았다. 일단 그것만 확인하면 된다. 그것부터 확인해둬야 남들의 죽음을 애도해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보다는 다른 인간의 죽음이 더 행복할테니까. 조금씩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어간다. 해가 조금씩 뜬다. 수평선을 딛고 일어선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야 했다. 지금 떠오르는 태양이 제발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미에 대해서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어야 된다는 강박증. 살아서 돌아가야 된다는 의무감이 불타오른다. 단지 그 뿐이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옆에서 자고 있던 놈이 죽어도 된다. 선장이 죽어도 된다. 자신만 살면 그만인 것이다. "음?" 옆자리에 있던 놈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다만 추측은 가능하다. 바다로 뛰어들던가, '그 자식'에게 죽은 것이다. 그래. 잘됐네. 나는 살았네.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돛에 매달린 문장이 우리를 비웃는 듯이 보인다.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 웃는 표정이 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 자식'의 표정이 저것과 똑같을 것이다. 만약 표정이 있었다면. 막대기에 불을 붙여 집어들었다. 돛을 확 태워버리고 싶어졌다. "그만!" 선장이 외친다. 모두가 선장을 바라보는데 선장은 무덤덤하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불을 들고 있던 놈은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숨을 몰아쉰다. 씩씩. 이물질이라도 꺼내려는 것마냥 세게 숨을 들이키고 내뱉기를 반복하다가는 결국 안정을 되찾았다. "돛이 없으면 항해는 어떻게 하나! 죽을거야!" 선장이 다시 외친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일단은 선장이 어떻게든 살게 해줄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살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든 빨리 도착해서 이 배를 버리자. 그럼 그 때에는 이 배를 불태워서 사람없이 출항시켜버리면 알아서 다 터져버리겠지." 선장이 외친다.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우리는 손을 들어 선장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낸다. 살아남자. 우리의 마지막 남은 발악이었다. 아무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생명을 담보로 우리는 '그 자식'과 경기에 참가한다. 우리는 일단 수가 많다. 한 두명이 아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그만, 그만!" '그 자식이'이 외친다. 살려달라고 비는 것만큼이나 쓸쓸한 느낌이 든다. 절대적인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일은 또 누군가 죽을테고 살아남은 자들은 인상의 하루를 보내겠지. 살아야 되는 의지는 있다. 다만 잠재된 의지가 완저히 살아나서는. 나를 위해 값비싼 희생을 치르며 보다 더 비싼 나의 인생의 남은 부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만 아니면 된다. 하루종일 살아남기 위한 것은 단지 '그 '자식' 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서, 살면 되는 것이다. 살아남자. 무조건 살아남기만 하자! |
괴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