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별이 사라지고 여명이 어슴푸레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니나는 기습대비가 잘 되어있는 밤을 피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새벽을 택했다.

미끼로 쓴 상선은 엘리자벳의 함대를 목표지점으로 잘 이끌어주고 있었다.

"후후, 엘리자벳. 상선만 보면 쥐를 쫓는 고양이처럼 덤벼드는구나."

미핏이 주인의 마음을 읽는 듯 그르렁거렸다.

"아니면, 치즈를 향해 달려드는 쥐라고 할까?" 

 

 

"이곳의 지형은 우리가 세세한 곳까지 알고 있지."
니나의 함대는 채비를 갖춘 후, 신속히 배를 움직였다.

 

'그 남자도 있을까?'
니나는 기습에 나서기 직전, 정찰을 위해 세비야에 직접 잠입했을 때를 문득 떠올렸다.
'어딘가.. 아버지와 닮았어.'

 

 

 

 

에르난은 자신의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아무리 씻어도.. 피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에스파니아 해군의 준사관인 에르난은 에스파니아군 소속에서 사략함대 대장 엘리자벳의 부관으로 배속되어 있었다.
에르난은 준사관 중에서도 뛰어나 많은 사관후보중 일순위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러나 짐작이나 했으랴.
그가 상관을 충직하게 따르면 따를수록 수많은 이들이 잔인하게 죽어나갔다.
에르난의 갑옷은 어느새 검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군인이란 존재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에스파니아의 사략용병으로서 청탁을 받아 행동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감시정의 눈을 피해 무차별로 살육과 노략질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에르난은 몇 번이나 부당함을 간했지만 묵살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을 군인정신으로 여겨 왔고,
전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적들의 포탄에 방어벽을 치고 공격을 꺾었다.


최근에는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난 이러려고 군인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곧 그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자신의 임무로 돌아가고 있었다.
최근 카나리아 제도와 베르데 사이에서 출몰한다는 해적을 토벌하는 회의의 보초를 담당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던 것이다.
해적은 에스파니아 함선만을, 그것도 군선만 골라 공격한다는 소문이었다.


에스파니아 해군은 많이 정규화되었지만, 여전히 해적 출신들을 다수 쓰고 있었다. 
'이번에 당한 배들도 주로 해적출신의 사략함대라던데..'

 


"...카탈리나!?"
보초를 서던 에르난의 눈에 갑자기 붉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서로의 눈과 눈이 잠깐 마주치고, 여자는 곧 어디론가 사라졌다.

에르난은 보초로서의 입장도 잊고 카탈리나를 닮은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자벳의 함대는 며칠 째 해적이 자주 출몰한다는 해상을 헤매고 있었다.

 

"제독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이것들 어디 있는거지.. 이곳에서 나오는 게 틀림없는 사실이냐?"

밤이 새고 새벽이 되도록 강행된 수색에 선원들은 지쳐갔고 욕구불만이 쌓여갔다.

 


그 때 마침 작은 상선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앗, 상선이다. 추격해!"
"제독님, 지금은 작전중입니다!"
"상관의 명이 들리지 않나, 에르난. 어서 추격해!"


"...."

에르난은 말없이 키를 상선쪽으로 돌렸다.

 

'상선치고는 빠르다. 혹시, 저게 상선이 아니라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수작이라면..'

 


"공격!"

 

굉음탄이 터지고, 니나의 범선이 화염탄을 쏘며 돌진해왔다.

 

"으악, 기습이다!"

"젠장, 저런 곳에서 나오다니. 완전히 사각을 찔렸다!"

"불이야, 불! 아악!"


니나는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자, 상대는 아군보다 수가 많아요. 시간을 끌면 적의 반격에 밀릴 거에요. 기함을 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