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색 쫄쫄이를 입은 주인공. 생김새부터 범상치 않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다지 크게 체감되는 부분이 아니겠지만, 생존(서바이벌)이라는 건 원래 고독하면서도 힘든 법이다. 아무것도 없는 야생에 맨몸으로 떨어졌다고 해보자. 살아남기 위해선 그야말로 발버둥을 쳐야 한다. 움막 같은 간단한 거처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을 짓고 여기에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식량을 채집해야 한다. 좀 더 심화 과정으로 나아가면 할 것들이 그야말로 넘쳐난다. 야생 동물의 습격을 막기 위해 목책을 세우거나 반대로 사냥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생존이라는 게 원래 이렇다 보니 이를 표방한 게임들 역시 대체로 할 게 많으면서 고독한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생존 게임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진입장벽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즐겁자고 하는 게임인데 할 게 산더미 같으니 남들이 그 귀찮은 부분만 넘으면 대유쾌 마운틴이 펼쳐진다고 해도 선뜻 계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생존 게임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건 이 장르가 가진 재미가 쉽게 대체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 그런 유저들을 위해 추천하는 게임이 있다.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문턱이 너무도 높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그런 유저들을 위한 게임. 바로 '크래시랜드2'가 그 주인공이다. 귀찮지 않은, 그리고 유쾌한 생존 게임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입문작도 없을 것이다.
캐주얼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면서 생존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게임마다 다르겠지만, 생존 게임의 시작은 대체로 비슷한 면이 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처럼 주인공이 모종의 사건-태풍이든 차원 포탈이 열리든 비행기가 추락하든-에 휘말리고 무일푼으로 외딴곳에 불시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크래시랜드2' 역시 비슷하다.
대충 전작에서 영웅이 된 플럭스가 동료들이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에너지 광선을 맞고 낯선 외계 행성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된다. 얼핏 무거워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게임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주인공 플럭스의 외모부터 보라색 쫄쫄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과정은 즐겁고 유쾌하게 흘러간다.
▲ 채집 - 제작 메커니즘 자체는 기존의 생존 게임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일단 기본적으로 플럭스는 혼자가 아니다. 전작부터 함께한 동료 쥬스박스(쥬크박스가 아니다)가 어디든 함께 따라다니면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들이 불시착한 행성에도 나름의 지적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물론 가장 먼저 만나는 NPC의 경우 그 집을 플럭스가 불시착하면서 부숴놓았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그를 도와주고 다른 NPC들을 도와주고 교류하면서 새로운 제작 레시피를 배우고 능력을 해제하고 장비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여느 생존 게임과 큰 차이가 없다. 연구, 탐험, 제작이라는 생존 게임의 정석과도 같은 성장 사이클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모습이다. 캐주얼하다지만 생존 장르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는 다 있는 셈이다. 특히 장르의 정석과도 같은 이러한 성장 사이클을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요소가 바로 퀘스트 기반의 풍성한 콘텐츠다.
▲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퀘스트를 따라가 보자. A to Z까지 착실하게 알려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생존 게임은 대체로 고독한 법이라 유저에게 가장 기본적인 생존법만 알려주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크래시랜드2'는 다르다. 다양한 NPC와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구체적인 부탁(퀘스트)을 받게 함으로써 유저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단순히 심부름을 반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NPC 각각에 뚜렷한 캐릭터성을 부여하여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유저가 모험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한다. 덕분에 유저는 퀘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해가는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고독한 생존이 아닌 살아있는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집이 한층 북적북적해짐은 말할 것도 없다. 단순히 NPC를 만나러 매번 마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NPC는 집으로 초대하거나 그들을 위한 전용 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정착한 NPC들은 집에 함께 머물며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도움을 준다. 혼자서 고독한 생존 투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적 생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 역시 '크래시랜드2'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좀 좁은 것 같지만, 동료와 함께인데 그게 대수랴 여기에 한 가지 더,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맵이 아니라는 점 역시 나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절차적 생성 구조의 경우 전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메리트를 지닌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단점 역시 존재하는데 '크래시랜드2'는 그렇지 않기에 초심자라도 헤맬 걱정이 적다. 여기에 더해 지역 구성 역시 오밀조밀하게 꾸며놓아서 부드럽게 탐험이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생존 게임에서 초심자가 초반에 자주 겪는 문제이기도 한 '그래서 이제 뭐 함?' 이라는 진입장벽에 걸릴 리스크가 적다는 의미다.
물론 캐주얼하다고 했지만, 전부 자동으로 한다든가 하는 정도로 캐주얼한 건 또 아니다. '크래시랜드2'가 추구하는 캐주얼은 어디까지나 분위기 상의 캐주얼, 그리고 귀찮음의 절감에 있다.
▲ 맵을 열면 퀘스트 지역이 어디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등 전체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배고픔이나 갈증 등의 요소가 없는 점 역시 나름 중요한 요소다. 하드코어한 생존 게임을 표방할지 라이트한 생존 게임을 표방할지 가르는 요소로서 분명 핵심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드코어한 생존 게임으로서 이를 잘 살린다면 완벽한 요리에 화룡점정이 될 조미료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되려 요리 본연의 맛을 해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크래시랜드2'는 캐주얼한 생존 게임을 표방한 만큼, 이를 배제하는 선택을 취했는데 게임의 분위기도 그렇고 번거롭지 않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주인공 플럭스는 마냥 해맑다. 12세 이용가의 데드풀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생존 게임을 하다 보면 으레 느끼고는 하는 압박감이나 고독함이 덜하다. 이는 '크래시랜드2'의 특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 바로 근처에는 우호적인 마을이 있어서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덜하다
안락한 집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싸워야 할 시간
생존 게임이라고 했지만, 오롯이 100% 생존에만 집중하는 게임은 거의 없다. 그쯤 되면 사실상 '생존 시뮬레이터'라고 해야 한다. 당연히 대부분의 생존 게임들 역시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오락으로서 강력한 몬스터와의 사투 역시 대부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사냥하고 재료를 채집하도록 하는 동시에 '게임'으로서의 재미 역시 충족시키고자 하는 부분이다.
'크래시랜드2' 역시 마찬가지다. 초반에 생존을 위해 집을 짓고 제작대를 비롯해 각종 가구나 도구 등을 만들었다면 본격적으로 전투, 사냥에 나서면 된다. 게임 내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존재하는데 이 몬스터들을 잡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렇다고 마냥 잡기 쉽다거나 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생존 게임답게 제법 공을 들여야 한다.
초반에는 한 대라도 맞으면 체력이 절반 넘게 깎이기에 공격 전 범위가 보이면 즉각적으로 피하면서 빈틈을 노려서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재료를 파밍하고 더 좋은 무기나 도구를 만들어서 점진적으로 더 강력한 몬스터나 위험한 지역을 탐험할 수 있다.
성장은 기본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장비다. 주변의 각종 재료를 채집하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은 재료로 장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장비로 더 강한 지역에 가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크래시랜드2'는 장비를 제작할 때 랜덤으로 등급이 결정되게 하는 동시에 세트 옵션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빌드를 만들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운이 좋다면 한 번에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고, 일부 몬스터의 경우 특정 속성이 잘 먹히는 것도 있어서 다양한 장비를 만들고 상황에 따라 바꿔가면서 대처하면 된다. 검부터 너클, 창, 짧은 거리를 투척하는 무기까지 다양하기에 저마다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세트 옵션은 기본적으로 속성에 대한 부분이다. 냉각, 정전기, 출혈, 독 등 다양한 속성이 존재하는데 무기나 액세서리에 달린 속성을 2개, 4개로 맞추면 세트 효과가 활성화된다. 일부 몬스터의 경우 무기의 기본 공격력과는 별개로 특정 속성이 거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만큼, 다양한 속성의 장비를 만들고 상황에 따라, 그리고 무기 취향에 따라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저점을 높이는 패시브 스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다른 성장 요소로는 쥬스 젬을 들 수 있다. 쥬스 젬은 맵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는 요소로 직접 발로 뛰면서 찾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패시브 스킬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인피니티슈트 주입이라고 해서 기본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다만 패시브 스킬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쥬스 젬이 1개부터 5개까지 다양한 만큼, 초반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게임은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성장시킬지 무기 및 세트 효과와 더불어 빌드의 재미를 선사한다.
정리하자면 '크래시랜드2'는 캐주얼한 생존 게임으로서 여러 생존 게임을 섭렵한 찐팬은 물론이고 생존 게임에 친숙하지 않은 신규 유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픈월드를 기반으로 탐험하는 맛은 물론이고 준수한 제작과 생존 요소, 여기에 간과하기 쉬운 전투의 재미까지 알차게 보장한다. 다양한 캐릭터들과 주고받는 다소 엉뚱한 만담과 같은 대화와 스토리 역시 긍정적이다. 진지한 생존 게임을 찾는 유저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 엉뚱함마저도 게임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묘한 줄타기에 성공한 모습이다.
▲ 싸움을 붙여서 이이제이를 노릴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결국 이 게임이 생존 게임이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재료를 채집하고 뭔가를 만들고 하는 생존과 제작 요소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재미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 아니라면 분명 '크래시랜드2'는 긴 호흡으로 즐기든 짧은 호흡으로 즐기든 대체로 만족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원체 진지한 생존 게임은 많지 않던가. 유쾌한 생존 게임을 찾는가. 그렇다면 '크래시랜드2'가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 스토브에 출시되면서 정식 한국어 자막까지 지원하게 됐으니, 언어 압박으로 인해 관심은 갔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