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경매장에 올린다.


대박을 노렸지만 망해버린 사연,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실패한 사연.
개중에는 아크라시아를 떠나 버리려던 사연도 있겠지.




"근데 시발 나는 아닐 줄 알았지."




아이템 창에 덩그러니 남은, '나의 사연'에 눈 앞이 깜깜해졌다.
alt F4를 누르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담고,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나의 사연을 경매장에 올리려고 했다.


문득, 나는 이걸 끼고 싶어졌다.


내 등골을 휘게 하는 기상이를 위한 도박이었지만,
이제 와서 10홍을 팔아 다시 10멸을 위해 골드를 모으자니 게임을 접을 것만 같았다.


효율이 안 좋은 것도, 과투자라고 말리는 사람이 생길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어쩌겠는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음... 마음에 드네."




해그리기 10홍을 보석 정중앙에 끼워놓고 나니 이상하게도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서포터에게 10홍은 가성비 나쁜 스펙업 수단에 지나지 않을텐데,
어찌 이렇게 뿌듯한 기분이 들 수 있을까?


마치 예쁜 아바타를 사서, 원하는 염색 코드를 받았을 때의 기분.


그래.
이건 아바타와 같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그러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겐 아바타와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자 기상이가 떠올랐다.
고레벨 멸화를 맞추고, 치열한 딜 싸움 끝에 오히려 나보다 낮은 스펙의 상대에게 져버리면?
그건 내게 즉시 스트레스가 되었다.



기상이를 본격적으로 키우면서부터 그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2악4지에도 손을 대고,
어떻게든 고레벨 멸화를 얻기 위해 회랑을 셀 수 없이 돌았다.


하지만 도화가에게 준 10홍을 보고 깨달았다.
딜러에게 보석은 스펙업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서포터에게는 그 만큼의 중요도는 없다.
딜러에게 보석은 공대 면접을 위한 정장이지만, 서포터에게는 내 취향의 옷과 가깝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노선을 바꿨다.


서포터에게 10홍을 전부 사주기로.
10멸의 가격은 턱없이 높아 목표로 잡기 부담스러웠지만,
10홍은 그나마 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도화가는 세 개의 10홍을 착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연이 두 번 더 시발 생겼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