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저를 극성 부모에 빗댄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애가 잘하면 실력이고 못하면 환경 탓이다
남의 애가 못하면 노력 부족이고 남들도 쉽게 따라오면 변별력이 없다며 화를 낸다


지금의 로스트아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레이드를 못 깨면 본인 손을 탓하고 스펙이 부족하면 돈을 더 쓰라 한다
직업이 불리하면 선택한 사람의 잘못이고 불만이 있으면 접으란다


선발대를 완자라 멸칭하고 운영을 비판하면 겜안분 망겜충이요
경제를 이야기하면 쌀숭이 게임사를 옹호하면 갓겜충이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그 선택까지 조롱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먼저 도전하는 재미로 누군가는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는 즐거움으로 게임을 해왔다
RPG란 본래 저마다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키우고 그 과정에 의미를 쌓아가는 장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즐겨온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의 선택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이 게임사의 모든 결정을 감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바뀌는 모습도 안타깝다


운영을 비판하면 그래도 다른 게임보다 낫다고 하고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면 개인의 노력부터 의심한다
그렇게 서로를 헐뜯는 사이 정작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는다


밸런스도 성장 구조도 보상 체계도 유저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결과를 두고 서로를 탓하고 있을까?


로스트아크의 운영을 보고 있으면 가끔 소위 말하는 ㅈ소기업이 떠오른다

새로운 성과는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정작 오래된 문제는 구성원의 인내와 노력으로 버티게 하는 회사


게임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새로운 성장 시스템과 BM은 계속 등장하지만
밸런스와 피로도 그리고 편의성과 소통에 대한 불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여름 로아온에서 품었던 기대와 지금의 업데이트 사이에도 간극이 있다


해외 서버에서 먼저 선보인 아바타와 기존 레이드를 활용한 익스트림 콘텐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을 다시 마주하는 동안 앞으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한동안 기다리다가 겨울 로아온이 되면 고봉밥처럼 쏟아질 업데이트도 마찬가지다

기다릴 때는 기다리느라 지치고 몰려올 때는 따라가느라 지친다


물론 경쟁과 도전 그리고 성장의 성취감은 RPG의 큰 재미다


하지만 즐거워서 시작한 모험이 또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면

잠시 쉬어가는 사람에게 근성이 부족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은 내려놓는 것조차 마음이 편하지 않다


시즌3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언젠가 시즌4가 온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노력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하드 리셋이 확정됐다는 이야기도 재화의 가치를 영원히 보장해 달라는 말도 아니다


다음 성장을 기대해야 할 시기에 지금의 성장이 언제 무의미해질지부터 걱정한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게임사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고 개선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설명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리고 이제 곧 로스트아크의 8주년 


그토록 좋아했던 게임의 생일을 앞두고 축하보다 걱정이 먼저든다는게 못내 아쉽다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의 답답함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로스트아크라는 이름처럼 우리가 타고 있는 방주도 어딘가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


누군가는 배가 기울고 있다며 떠나고 누군가는 고쳐 보자며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는 여전히 괜찮을 거라 믿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며 바라만 본다


입장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같은 배에 올랐다고 모두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를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배의 항로를 정하고 방향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는 로스트아크가 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가 걸어온 성장의 길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그리고 이 방주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이고
게임사에 요구해야 할 것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책임 있는 답변이다


8년이라는 긴 항해 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냈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환호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도 많다

그렇게 쌓아 온 추억이 서로를 향한 원망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지 함께 즐기던 모험보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더 크게 들린다


그저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게임이었는데 어느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