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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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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원폭의 현장지난 여름 나가사키에 방문했을 때, 평소와는 달리 정말 느긋하고 한적하게 다녔습니다. 그래도 첫번째로 가야 할 곳은 바로 원폭에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우연찮게도 2025년에 핵폭탄이 떨어진 두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모두 다녀온 셈이 되었습니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을 들렀다가, 바로 앞에 있는 여러 추모비들을 보고 (이중 한국인들을 위한 추모비는 2개였습니다) 그 위에 있는 원폭 폭심지 공원을 들른 뒤, 다시 그 위에 있는 평화공원까지 이어지는 순서입니다. 먼저 나카사키 원폭 자료관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히로시마에서 본 것처럼 역시나 종이학이 반겨줍니다. ![]() 2024년 노벨 평화상은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수상했는데, 관련된 코너도 있었습니다. 핵무기 반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긴 하는데, 히로시마든 나가사키든 핵폭탄으로 인한 피해와 참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는 본인들의 가해에 대한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라 뭔가 좀 씁쓸하긴 했습니다. ![]() 초등학교의 급수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다 날아가고 벽만 남았던 우라카미 성당입니다. ![]() 핵폭탄이 떨어진 곳과 나가사키의 지형도입니다. 사실 나가사키는 운이 없었습니다. 원래 여기가 주요 목표가 아니라 두번째나 세번째인 일종의 스페어였는데, 그날 구름으로 인해 투하하지 못하고 돌아오던 찰나, 마침 잠시 구름이 걷혀 하늘이 열렸던 곳이 바로 나가사키였습니다. ![]() 히로시마는 리틀보이였고 나가사키는 팻맨입니다. ![]() 핵폭탄의 높은 열로 인해 이렇게들 변했다고 합니다. ![]() ![]() ![]() ![]() 그래도 히로시마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 강제 창씨개명, 조선어 교육 폐지, 조선인 징병제 실시 등이 연대표에 적혀 있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나 1945년의 8월은 항복이 아니라 종전으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기습, 사후 선전포고에 핵폭탄으로 인한 항복 엔딩인데 굳이 '종전'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는 광복절인데, 일본은 종전기념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 ![]() ![]() 자료관을 나와 추모비들을 둘러보러 갔습니다. 추모비 하나는 1979년에 나가사키의 한국인들이, 그리고 또 하나는 2021년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래서 당시 국무총리 이름이 추모비 옆에 적혀 있습니다) 세운 것입니다. 추모비(1979): https://maps.app.goo.gl/ow4CyuBgf2uCZw3g8 초미비(2021): https://maps.app.goo.gl/4UE3DkATx99wkWhr9 ![]() ![]() ![]() ![]() ![]() 작은 하천을 건너 폭심지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 ![]() ![]() 이 기다란 비석이 있는 곳이 폭심지입니다. 앞의 검은색이 아닌 뒤쪽의 회색 돌을 보면, '원자폭탄낙하중심지'라고 쓰여 있습니다. ![]() 당시의 지층이라고 합니다. 원폭으로 인해 무너지고 뭉쳐친 현장입니다. ![]() 평화공원입니다. 아무래도 1차 투하지가 히로시마였기 때문인지 히로시마에 비해 전체적으로 자료관과 공원의 규모, 관람객 등 모두 나가사키의 규모가 작긴 했습니다. ![]() ![]() ![]() ![]() ![]() 평화공원 내에 천주당이 보이는 언덕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이는 성당이 우라카미 성당으로, 자료관에 벽만 남아있던 그 성당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