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나노리 문화의 영향이라는 군요.
사실인지 찾아보니... 
나무위키에 이렇게 되어 있네요.
중세 일본에서는 '나노리'가 전쟁터로 나간 무사가 전투로 돌입하기 전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상대에게 밝히는 의식을 가리키기도 했다. 이는 아군이나 적을 향해 자신의 성명, 신분, 가계 같은 인적사항과 전공, 싸움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정당성을 큰 소리로 외치며 상대방의 불의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행위였다.

이 때 아군이든 적이든 나노리 도중에 공격하는 것은 설령 어떠한 경우라도 예법에 어긋난 것으로 여겨졌으며, 상대가 자신의 명분을 모두 토해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걸 방해하면 아무리 정통성과 명분이 앞서더라도 예법을 어겼다는 이유 때문에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묵묵히 다 듣고 난 뒤에는 그제서야 싸움의 신호인 카부라야를 쏘는 것으로 싸움이 벌어진다. 반대로 먼저 카부라야를 쏜 다음, 나노리를 양쪽의 장수들이 다 하고 난 다음에야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 후자의 예법이 현대의 일본산 창작물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보이는 나노리 클리셰이자, 사실상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공식이라고 여기는 예법이다. 일본산 로봇물에서도 변신/합체 도중에 공격 안 하는 것도 나노리의 흔적이다.[2]
아무래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유명하니.. 
나노리 문화가 더 인지도가 있겠죠..

각설하고..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는지 제미나이로 찾아본 결과...
1.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테이아(Aristeia)'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 잘 나타나는 문화로, 영웅들이 전장에서 서로 맞붙기 전 하는 행동들입니다.
  • 통성명과 가문 자랑: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은 싸우기 전 서로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 가문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길게 읊었습니다.
  • 공격 유예: 상대의 족보를 듣다가 서로의 조상이 아는 사이거나 은혜를 입은 관계임이 밝혀지면, 싸움을 멈추고 선물을 교환하며 물러나기도 했습니다(예: 글라우코스와 디오메데스의 대결).
2. 아랍의 '무바리준(Mubarizun)'과 시 낭송
초기 이슬람 전쟁 시기, 아랍 전사들은 전투 직전 대열 앞으로 나와 상대를 도발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 시(詩)적 도발: 단순히 이름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자신의 용맹함과 부족의 위대함을 담은 시를 읊으며 상대방의 전사들에게 일대일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 정체성 과시: 화려한 수식어를 통해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3. 바이킹의 '홀름강가(Holmganga)'
북유럽 바이킹 사회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행해진 합법적인 결투 관습입니다.
  • 장소와 규칙 선포: 대결 전, 어떤 이유로 싸우는지와 구체적인 결투 규칙을 대중 앞에서 명확히 밝혀야 했습니다.
  • 격식 중시: 결투 중 방패가 부서지면 새 방패를 가져올 시간을 주는 등, 정해진 절차를 어기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나노리'처럼 정형화된 준비 과정이 필수적이었습니다.
4. 북미 원주민의 '카운팅 쿠(Counting Coup)'
평원의 인디언 부족들 사이에서는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용맹함을 증명하는 절차'를 더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 접촉 의식: 무기로 적을 죽이기보다 지팡이나 손으로 적을 건드리고(Coup) 살아 돌아오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쳤습니다.
  • 전투 후 보고: 전투가 끝난 후 부족원들 앞에서 자신이 행한 용맹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명성을 '나노리'처럼 계속해서 선포하는 문화였습니다.
5. 중세 기사의 '헤럴드(Herald)' 제도
기사 본인이 직접 외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령인 '헤럴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 문장(Coat of Arms) 설명: 기사가 전장에 등장할 때 헤럴드가 그 기사의 가문 문장과 작위, 업적을 대신 공표했습니다. 이는 기사가 누구인지 적군과 아군 모두에게 알려 전투의 격을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다고 하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죠...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