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13 11:31

 대한민국 육군 M48 패튼 전차의 사격 훈련 모습

한국전쟁은 그 동안 자만에 빠져있던 미국에게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다. 처음 참전하였을 당시에 북한 전차에 쫓겨 후퇴하는 국군을 보고 비웃었지만 그들도 얼마 가지 않아 같은 꼴을 당하였다. 미국은 좋은 무기를 보유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모든 무기가 최고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 만에 벌어진 한국전쟁 초반에 미군은 북한군의 T-34에 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좌)T-34 전차와 (우)M26 퍼싱 전차

부랴부랴 투입한 M26, M46 등으로 겨우 대응 할 수 있었지만 초기에는 그야말로 곤혹스러웠다.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가장 뛰어난 전차 중 하나인 T-34가 북한군의 주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였다. 그 당시에 미국은 독일 전차에게 꼼짝 못했지만 T-34같은 소련 전차들이 독일의 팬터(Panther)나 티거(Tiger)와 전사에 길이 남는 진검 승부를 펼쳤던 엄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만큼 소련의 전차는 뛰어났는데 종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T-54, T-55, T-62처럼 소련이 만든 다양한 후속 전차들은 서방 세계를 위협하는 냉전 시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압도할 수는 없어도 당장 대등한 전차를 보유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미국에게 다가 온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한 시대사상을 배경으로 탄생하여 오랫동안 국군을 포함한 서방의 주력 전차로 활약하였던 베스트셀러가 바로 M48 패튼(Patton)이다.


 

 급하게 만들어져 과도기적으로 주력전차의 역할을 담당한 M47 <출처: PD>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


곤혹을 치른 미군이 M26, M46으로 북한군의 T-34를 격파하자 소련은 개발이 막 끝난 T-54를 1951년부터 양산하여 동유럽에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실전을 통해 입증된 것은 아니었지만 100mm포를 탑재한 T-54는 알려진 전력만으로 서방의 전차를 압도하였고 당연히 이것은 미국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미국은 이에 맞설 수 있는 신형 전차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그렇게 시급히 탄생한 전차가 M47이었다.


M47이 신속히 개발을 마치고 1951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기존 M46을 개량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주포의 구경은 같지만 배연기가 바뀌고 방어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경사 장갑을 도입하는 등 외관에서부터 차이가 많아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보다 M12 ‘영상 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를 장착하여 주포의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부분이 M47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 기술이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지만 M47에 최초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자고로 처음 적용 된 신기술이라는 것은 안정성에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았다. 특히 무기는 야전에서 운용하다 보면 개발 중에는 전혀 예기치 못하였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후 개량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야심만만하게 채택한 M12 측정기가 툭하면 고장이 나고 생각보다 조작이 불편하여 일선 전차병들의 원성을 샀다.


 

 90mm 주포에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초기형인 M48A1

이미 진행되던 프로젝트


거기에다가 AVDS-1790 엔진은 휘발유 4드럼을 채워도 100km밖에 기동할 수 없었을 만큼 연비가 최악의 수준이어서 실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것은 명약관화하였다. 제작에 돌입한지 2년 만인 1953년까지 지금은 상상도 못할 9,000여대가 순식간 양산되었지만 이런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제작이 중단되었다. 그렇게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루어진 데는 이미 다른 신형 전차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이전은 소련도 마찬가지였지만 미국도 수많은 무기들을 마구 만들던 시기였다. 전차도 마찬가지여서 M47이 양산되기 전인 1950년에 T48로 명명된 새로운 전차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소련의 T-54가 개량에 들어갔다는 첩보가 입수된 상황이어서 더욱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군비 경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모습이 급박했던 냉전 당시의 자화상이었다.


불과 1년만인 1951년에 프로토타입이 등장하였을 만큼 개발 속도는 가히 경이적이었다. M47은 물론 당시 중(重)전차로 개발 중이던 M103의 기술까지 T48에 적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야심만만하게 도입하였지만 M47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사격통제장치였다. T48은 주포의 부앙각을 자동 조절해주는 T30 탄도계산기가 탑재되고 여러 개선이 이루어져 초탄 50퍼센트, 차탄 90퍼센트라는 당시로는 놀라운 명중률을 기록하였다.


 

 월남전에서의 미군 M48 전차
실전에서 얻은 경험은 꾸준한 개량으로 이어졌다.(M1에이브람스 등 최신 전차에는 에어컨이 있다.)

꾸준한 개량을 통해 강해지다


비록 주포의 구경은 M46, M47과 같지만 이처럼 사격통제장치의 개량으로 공격력은 배가 되었고 둥그런 원형에 가까운 경사장갑도 방어력을 증대시켜 주었다. 성능에 만족한 미군 당국은 이를 M48로 명명하고 1952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덕분에 미군 기준으로 M47은 단지 2년간 주력전차로 활약하다 사라지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 M48은 당시 냉전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유럽 주둔 미군을 시작으로 이후 많은 동맹국과 친미 국가에 공급되었다.


그런데 M48도 처음에 해결하지 못한 난제가 있었는데 바로 엔진이었다. 초도형인 M48A1은 M47 못지않게 기름 먹는 하마여서 800리터의 만재 연료로 고작 130km 내외 항속 거리를 보였다. 당시까지 디젤 엔진에 대한 미국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였고 이 때문에 연비 개선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전차 후위에 보조 연료탱크를 장착하는 시도까지 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너무 위험하였다. 인화력이 강한 휘발유를 담은 드럼을 전차 외부에 부착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살 행위와 같았다. 시쳇말로 권총 한방으로 전차를 불구덩이로 만들 수도 있었다. 결국 1963년 500여km를 주행할 수 있는 AVDS-1790-2 디젤 엔진이 탑재되면서 고질적인 저 연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것이 M48A3인데 105mm 주포를 장착하여 화력을 강화한 M48A5와 더불어 가장 많이 보급되었다.


 

 브리티시 105mm L7포로 화력을 강화한 개량형으로 마가크(Magach)3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M48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라이벌을 제압하다


M48은 제2차 대전 후 등장한 서방 전차 중에서 실전 투입 경험이 가장 많은 전차이기도 하다. 미군은 물론 이를 사용하던 여러 나라들이 M48로 실전을 벌였는데 주적은 개발 당시부터 라이벌로 여겨지던 소련의 T-54, T-55였다. 애초에 소련의 T계열 전차에 비하여 열세라고 평가되었지만 정작 수많은 실전에서 뛰어난 전과를 보여 주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방적으로 압도하기도 하였다.


 

 현재 최대 운용국인 터키의 M48

M48의 주요 사용국이자 실전 경험이 가장 많았던 이스라엘은 수 차례의 중동전에서 아랍 국가들의 소련제 전차를 제압하였다. 하지만 당시 전황을 분석하면 훈련과 작전에서 이스라엘이 앞섰던 것이지 전차의 성능 차이로 인하여 발생한 결과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엄청난 성능 차이가 아닌 이상 겉으로 드러난 미세한 스펙 차이는 단지 참고자료일 뿐이지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는 없음을 알려주었다.


이처럼 중동전은 물론 월남전, 인도-파키스탄 분쟁, 이란-이라크 전쟁처럼 수많은 국지전과 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최초의 MBT인 M60이 등장하면서 12,000대의 생산이 이루어진 후 1959년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수많은 실전을 통해 꾸준히 성능이 개량되면서 아직도 여러 나라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그 중 우리나라는 현재 터키 다음으로 가장 많은 M48을 운용하는 나라다.


 

 기동 훈련을 하는 육군 M48 전차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다


1978년 4월 7일 우리나라에서 고성능 국산 전차 개발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신문 1면 기사로 보도되었다. 미군의 주력인 M60전차와 동일한 기동력과 화력을 보유한 최신 전차라고 소개되었는데, 사실 자력으로 신형 전차를 개발한 것이 아니라 기술 지도를 받아 기존에 보유하거나 추가 도입한 M48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여 전력화하였던 것이었다. 국군은 월남전 파병 대가로 이미 1966년부터 M48을 도입하여 사용 중이었다.


1970년대 들어 북한의 전력 증강이 두드러지고 특히 기갑 전력에서 격차가 많이 벌어진 것으로 분석되면서 시급히 대응책이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신형 전차의 개발과는 별개로 기존에 보유하고 있고 추가로 미군의 재고물량 중 싸게 도입할 수 있는 M48전차를 개량하는 사업이 실시된 것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형 M48이 현재도 국군의 기갑 전력 중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M48A3K와 M48A5K다.


 

 전차를 움직이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무거운 전차 포탄을 나르는 늠름한 병사의 모습.

특히 105mm 구경의 KM68 주포를 장착하여 화력을 강화한 M48A5K는 그 동안 벌어진 북한과의 기갑 전력 격차를 빠르게 메웠다. 1987년 K1전차가 실전 배치 된 후부터 M48은 주력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았고 추후 K2전차가 배치되면서 전량 퇴역할 예정이지만 아직도 국군 기갑 전력에서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덧 시대에 뒤진 구형 전차로 취급 받지만 M48은 지난 수 십 년간 우리의 안보를 지켜 준 고마운 존재라 할 수 있다.


 

제원
중량 49.6톤 / 전장 9.3m / 전폭 3.65m / 전고 3.1 m / 승무원 4명 / M68 105mm 전차포 (적재탄수 50여발) / 12.7mm 중기관총 1정, 7.62mm 기관총 2정 / 항속거리 460km / 최대속도 48km/h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