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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에서 추가가 언급된 HMS 캠벨타운(Campbeltown)은 영국에 공여된 미국의 Wickes급 구축함입니다.

 

이 거래는 Destroyers for Bases Agreement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요약하자면 영국의 8곳에 미국은 99년동안 군사기지를 지을 권리을 얻고

 

대신 구축함 50대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죠.

 

공여된 구축함들은 Wickes나 Clemson 등 대부분 1차세계대전부터 써오던 구닥다리 구축함들이었으나

 

관리해야될 집안이 워낙 넓었던 영국은 이들을 에스코트 함대로써 나름 잘 써먹습니다.

 

데일리미러의 Destroyers for Bases Agreement 기사

 

 

 

그런데 이 HMS 캠벨타운이 그 50대 중에 유명한건 그 흔한 에스코트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죠.

 

단연 빛난던 이유는 특수작전사에 길이 남는 채리엇작전(Operation Chariot)의 1등 공신이기 때문입니다.

 

작전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먼저 영국의 브리튼섬이 북동유럽을 압박하는 지형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합니다.

 

북동유럽에서 대서양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영국의 앞마당 도버해협을 지나야 하는데 이곳이 봉쇄된다면?

 

브리튼 섬을 멀리 돌아 거친 북해쪽으로 나가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17세기부터 영국과 대양을 두고 자웅을 겨뤘던 네덜란드 역시 같은 문제에 봉착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크롬웰경의 항해법(Navigation Acts) 이후로 영국과의 적대상황이 가속되자

 

이 때문에 세계를 누비던 네덜란드의 무역선들의 활동은 눈에 띄게 위축되었고

 

북해로 돌아나가는 엄청난 비효율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군함을 끌어모아 일대결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물론 이긴 경우에 일시적으로 재해권을 돌려받았지만

 

그마저도 브리튼섬까지 점령하지 않는다음에야 몇년 후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죠.

 

▲ 미국의 Wickes Class 구축함. 1917–21년 사이 111대가 건조되어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의 나치독일은 17세기의 네덜란드와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개전 초기에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노르망디 드라이독을 고스란히 접수했기 때문이죠.

 

이 드라이독은 초대형 호화유람선을 건조하기 위하여 프랑스가 1930년대에 건조한 시설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 틸피츠를 비롯한 대형함선들을 무리없이 수용하고 수리가 가능했으므로

 

만약 훗날 독일의 해상함대가 완성된다면 브리튼섬의 방해 없이 대서양에서 활동할 근거지가 될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노르망디라고 해서 에이~ 도버랑 별 차이도 없네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노르망디 드라이독이 있는 생 나제르 항구의 위치. 영국 해협이 아닌 비스케이만에 접해있어 대서양의 창구 역할을 한다.

 

 

실제로 독일의 해상함대의 규모는 기대에 못미쳤으나 비스마르크 한 척에 된통 혼쭐이 났던

 

처칠과 영국은 트라우마가 너무 깊었습니다.(특히 비스마르크의 자매함 틸피츠에 대한)

 

그들은 결국 노르망디 드라이독을 파괴하는 작전을 결심합니다.

 

작전의 주체는 지금에는 워낙 유명해졌으나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코만도(Commandos)로 

 

구축함을 개조해 독일의 Raubvogel-class 어뢰정으로 위장시키고 같은편인척 빨빨빨 들어가서

 

자폭용 폭약을 가득실어 드라이독 수문에 들이받아 자폭시킨다는 대담함을 넘어선 계획이었는데

 

여기에 차출된 구축함이 바로 구닥다리 구축함 HMS 캠밸타운이었습니다.

 

작전을 위해 캠밸타운은 한 달간 대대적인 개조를 받았는데 굴뚝도 두개 없애고 대포나 어뢰도 대부분 치워버렸습니다.

 

때문에 이 형태로 워쉽에서 등장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박으면 한방! 자폭기능을 준다면 모를까..ㅋ)

 

개조 후의 캠벨타운의 모습. 12파운더 한문만이 남아있다.

 

▲ 오늘날 특수부대의 대명사로 군림하는 코만도스

 

 

체리엇작전의 자세한 경과가 궁금하면 링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네이버에 자세히 있어서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37821&cid=42161&categoryId=42161

 

결과만 간추리면 특수부대는 그들도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수문에 4.25톤의 아마톨로 대폭발을 일으키는데 성공하고

 

이 타격으로 노르망디 드라이독은 전쟁이 끝난지 한참 뒤인 1950년이 되어서야 재가동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워쉽 관점에서도 잠깐 살펴보자면 개조 전의 캠벨타운은 Wickes와 대동소이한 차이를 가집니다.

 

차이 몇가지만 들자면 어뢰는 3x4에 비해 3x2로 줄어들고 엔진은 2만 6천에서 3만 마력으로 오릅니다.

 

엔진도 그렇고 실제로 39.7knot을 기록하기도 했다니 기동력에서는 단연 우위겠지요.

 

다만 그래봐야 주류라고 말하기 어려운 3티어내지 4티어까지가 한계일 것이고

 

진정한 가치는 그 어느 배보다 극적인 최후를 맞은 기념비적인 배를 실제로 몰아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여담으로 HMS 캠벨타운의 시종(ship's bell)은 미국 펜실베니아의 캠벨타운에 미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보냈다가

 

캠벨타운의 이름을 물려받은 Type 22 frigate이 잠시 빌려갔다가 퇴역하며 다시 돌려주고 뭐 이렇게 훈훈하게 놀고 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