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에 사는 새끼곰이 뒹굴어도 좋을 따뜻한 햇볓이 드는 어느 늦 겨울 일요일오전. 

내가 19년째 운영중인 경기도 변두리 14평 남짓 휴대폰 대리점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생각한다.

‘내가 결혼만 안했다면… 일요일은 쉬면서 게임이나 했을텐데..’

부질 없는 생각을 하며 이제는 푸르른 봄도 미끄러져 빗겨갈 매끄러운 머리를 잠시 쳐다본다.

괜히 한쪽으로 모아서 이마를 가려보다 포기한 후,

붉은색과 푸른색 별모양이 그려진 스냅백을 쓰며 애마 스타렉스키를 한손에 쥔다.

침대에 퍼질러져 자는 와이프를 잠시 바라본 뒤 Z폴드를 열어

오늘의 날씨나 볼 요량으로 화면잠금을 해제하는데,

부자집에 시집간 전여친 영숙이의 카카오톡이 와있다.

혹여나 부인이 볼까 급하게 화면을 툭 튀어나온 배에 문지르며 화면 닦는 척을 하며 부인 눈치를 보는데,

침을 흘리며 자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못생기게만 보일 뿐이었다.

괜시리 화가 났지만,

 그시절 영숙이의 얼굴이 떠 오르자 괜시리 귓볼부터 벗겨진 머리까지 붉어지는 까닭에

급하게 흰색 페인트 칠이 벗겨진 오래된 빌라의 안방 문을 급히 열며 나온다.

황급히 본 넓지만 가운데에 접힌부분이 유달리 도드라져 보이는 낡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자

‘즐거움의 시작! 팡팡3….’

역시나….

 예상은 했지만 괜히 전과는 달라진 영숙이의 프로필 사진이나 클릭해본다.

화면에는 20여년 전 보다는 확연히 나이 들어 보이지만,

부자 남편 덕에 확실히 얼굴에 돈을 많이 쓴 모양인지

피부가 희고 깨끗한, 얼핏본다면 30대 중반으로 보일법한 여성이

벤틀리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다.

 어제 저녁, 열심히 키우던 하드코어 캐릭터가

목소리는 크지만 키가 작은 할머니에게 유료서비스 가입 유도 도중에 죽어버린 탓인지,

덕분에 밤에 와이프 몰래 먹은 소주가 문제인지….

 쓰린 속을 집앞 예쁜 사장님이 타준 카페라떼로 달래며

스냅백을 고쳐 쓰며 매장으로 향한다.

 이제는 낡아버린 가게 셔터를 올리고, 매장 앞 통유리를 대충 닦고 바닥 걸레질을 한다.

입간판을 가게 앞에 내놓으며 흑우들을 꼬실 포스터들이 잘 붙어있나 확인을 한 뒤,

매장 컴퓨터 앞에 앉으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앉아서 휴대폰으로 주식도 보고, 툭 튀어나온 배위에 폰을 걸쳐두고

요즘 핫한 아이돌 직캠 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와중,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 손님이 들어올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10년 전만 해도 입학생,졸업생들이 북적이며 부모님 손을 붙잡고 최신 휴대폰을 사러 올 시즌이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자급제니,알뜰폰이니 매장을 잘 찾지 않고 오는 손님들은 잘 모르는 어르신들이나

매장에서 공짜폰이나 사간 거지놈들이 소리가 안 난다는둥, 휴대폰이 느리다는둥,

지들이 모르는걸 내가 불량을 팔았다며 따지러 오는 블랙 컨슈머들 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게, 목이 좋은 자리에서 장사할때는 직원도 두고 나름 사장님 소리도 꽤나 들었지만,

그것도 다 옛 이야기. 

 등쳐먹을 손놈들이 잘 오지 않는다.

요즘것들은 공시지원금이 어쩌니, 할부원금이 어쩌니 내가 20년째 이짓을 하고있는데

나보다 더 아는체를 하는 꼴들이 보기 싫지만 별수있나. 싸게라도 팔아야 벌지.

 늙고 잘 모르는 손놈들에게 크게 한탕씩 해먹는 수 밖에 없었다.

‘쯧… 오늘도 장사는 글렀군.'

 마음 속으로 혀를 차며 매장컴퓨터로 와우를 켠다.

그러나 접속 할 수 없는 어제 죽어버린 42레벨 사냥꾼 ‘데스아트’.

속이 쓰렸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본섭이나 해야지.... 어차피 클래식은 오래 할 생각 없었어’

라고 생각하며 얼마 전 새 시즌이 열린 후 열심히 쐐기에서 파밍해둔 본섭의 야수 사냥꾼

‘데스아트’의 발 밑의 붉은색 ‘지금 접속’ 버튼을 눌렀다.

반갑게도 가입했던 ‘리치왕의 서포터즈 길드’의 길드원들의 초록색 채팅이 눈에 띈다.

그걸 본 나도 스냅백을 고쳐 쓰며 채팅을 한마디 쳤다.

“다들 안녕하세요ㅋ 오늘 날씨 좋네요ㅋ” 쿨하게 인사를 남겼다.

다들 자신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넉살 좋은 몇몇 길드원들의 반가운 인사가 보였다.

물론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있던 길드는 판다리아때 길마가 여왕벌에게 찝쩍거리다

길드가 폭파된 이후 아무렇게나 들어온 길드였기에 상관 없었다.

머리가 조금 컸다고 아빠랑 말도 잘 안하는 사춘기의 딸.

피부도 축축 처지고, 배도 불뚝 나온 주제에 맨날 바가지만 긁어대는 부인.

 가족들과 이렇게 살갑게 인사 나눈적이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이렇게 사람 냄새 나는 인사라니….

 반가운 마음에 “^^”표시도 채팅창에 써보았다.

그렇게 길드원들과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던 와중, 반가운 초록색 채팅이 올라온다.

“지금 일반 학원팟 짤건데, 410이상이 신청 받습니다.”

저 채팅을 보자 어차피 오늘 손님도 없을거같고,

셔터 내리고 레이드를 해볼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까지는 오래 앉아 있기에는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서 가본 적 없지만

그래도 길드원들과 함께 쐐기주차와 주간 보상으로 맞춘 486이란 아이템 레벨을 보며,

‘그래, 나도 일반에 가서 486이면 대충 쳐도 딜킹 먹겠지?ㅋ’ 라는 생각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공대장은 반색을 하며

“어이고 486이면 헬퍼시네. 여긴 학원팟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 수 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라며 질문한다.

저도 판다 이후 레이드는 처음이라서요 ㅋ” 내심 뿌듯해 하며 채팅을 치자 공대장이

“그래도 486이시면 헬퍼죠~~”라며 너스레를 떨며 공초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화면 왼쪽위 구석에 박혀있는 와우 기본 레이드 프레임을 보자,

 총각시절 전역후 똥밥겜을 하던,

예쁜 영숙이와 사귀던,

전역 후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만 같던,

젊은시절의 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

혈압약을 먹어 그래서는 안되지만

가슴이 쿵쿵대며 뛰는기분이었다.

괜시리 뛰는 가슴을 부여 잡으며 가게 셔터를 내린 후,

가방 한켠에 있는 ‘봄꽃의 영약’과 ‘토깽의 침’을 마우스로 끌어 단축키 F9,F10에 올렸다.

그렇게 시작한 레이드.

1넴 나무부터 9넴 피락까지 열심히 123을 연타했다.

마치 살아있던 모차르트가 자신의 교향곡을 칠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디스코드로 공대장이 열심히 떠들지만,

모니터 아래 붉은 슈트를 입은 아이언맨 모양의 폰 거치대 위에 흘러나오는

‘I'm a baddie, ba-ba-baddie, baddie'

흥겨운 노래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예쁜 아이돌들과 아이컨택을 했다.

스카다에 작게 써져있는‘종합피해량’창에 2등과 압도적 차이로 1등을 하고있는

녹색의 이름표를 가진 '데스아트‘

‘ㅋ 역시 본섭도 별거없네…. 내가 왕년에는 딜킹냥꾼이었지 ㅋ’

먹을 템도 없고 나온 분배금도 얼마 되진 않았지만,

오랫만에 온 레이드가 퍽 즐겁다고 생각했다.

 ‘그래 기왕 셔터 내린 김에 영웅도 가서 A급 딜러로써 C급 딜러들 헬퍼좀 해볼까?ㅋ’

평소 티비에서 나오는 아프리카 기아들에게도 느껴지지 않던 측은지심이

마음속에서 살짝씩 피어오르는 기분이랄까?

내 스냅백에 박힌 마크의 주인공처럼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쇠뿔도 단에 뺄 생각에,

i를 눌러 글로벌 영웅 선수파티에 지원해봤지만, 영 초대가 오지 않았다.

의아했지만, 예전부터 사냥꾼은 인구수가 많기로 유명했기에,

별 의심 없이 ‘냥꾼이 풀인가보다’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열심히 신청했다.


그렇게 신청 중 6번째에 지원한 파티에서 온 회신에는

‘업손으로 신청 하신건가요?’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사람은 뭐지? 딜킹인 나에게 업손이라니….

내 템레벨을 보고도 이런 소리를 하는건가?

내 캐릭터를 잘못봤나 하는 생각에

모자 속 빈 머리를 쓸어 넘기려다 손대지 말라는 아내의 말이 문득 떠올라 황급히 손을 내려 답장을 했다.

‘저 486인데요?ㅋ’

약 1분여 간의 정적 후 다시온 글은 단순한 텍스트지만 심장을 노리는 날이 바짝 선 단검과 같은

차가운 답장이 돌아왔다.

‘로그가 낮으시네요 ㅈㅅㅈㅅ’

머리가 띵했다.

 난 밥똥겜 하던 전역후 총각시절부터 집행검, 단풍 스토리등 pc 게임부터

검&영혼, 에잇 나이츠등 모바일 게임까지 두루 섭렵한 나에게….

게임을 못 한 적이 없는데.

 답장도 잊은채 녹색 검색창에 ‘와우로그’를 검색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즐거운 아제로스 생활 하고 계신가요?(웃는 토끼 캐릭터)

오늘은 와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 ‘로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하트)(엄지 척한 대머리 캐릭터) ’

중요한 내용은 딱히 없어서 아래로 슥슥 스크롤을 당긴 뒤, 링크를 따라 들어가봤다.

영어로 범벅된 양놈들의 너드감성 가득한 까만 사이트.

열심히 블로그와 로그사이트를 알탭질하며 내 캐릭터 검색하는 법을 찾았다.

왼쪽 위 검색창에 캐릭명을 입력하자 아래 나온

녹색으로 쓰여 애지중지 20여년간 키운 내 사냥꾼 아이디.

‘데스아트 KR - 줄진’ 을 클릭하자 잠시 후 나온 페이지에는 뜻모를 숫자가 녹색으로 적혀 있었다.

Best Perf. Avg

34.6

 당최 의미를 모르겠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녹색이면 잘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신호등도 초록불에 건너고, 남녀가 눈이 맞으면 그린라이트라 칭하지 않는가? 

혼자 고민해 봤자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이기에,

다시 녹색의 검색창에 ‘와우 로그 보는법’을 검색했다.

 아까 본 블로그엔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대머리 캐릭터 아래 적힌

‘로그 점수별 색깔’이라는 목차.

 100점 만점에 25-49점은 녹색이라는 통탄할만한 내용이 적혀있다.

스카다에선 1등이었던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시 매장 셔터를 열고 한푼이라도 벌려고 일을 하는 수밖에.

매장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찬바람이라도 맞으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따뜻한 햇빛은 괜히 모자 속 정수리만 따뜻하게 덥히는 기분이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이건 뭔가 잘못된거야. 딜킹인 내가 30점이라니 말도안되지 ㅋ’

라며 자위했지만, 근20여년간 게임 종류들을 가리지 않고 플레이해온

게이머의 타이틀이 부정 당하는 기분이었다.

화를 삭히며 i를 눌러 보이는 모든 영웅 파티에 지원했다.

하지만 지원할때 입력할 수 있는 텍스트박스는 비워두었다.

하드레이드나 도전모드도 곧 잘 해내던 ‘데스아트’에게 이런 입력란은 필요 없을것만 같았다.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약 10여분….

이파티 저파티에 또 지원하고. 지원하다보니 파티모집 창에 대부분의 모집창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다 어느순간 ‘두두둥’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그리마의 허리가 굽은 오크 경비병이 불법한 나팔 소리와 함께

화면 중앙에 상자 하나가 떴다. 그 상자 안에는 이런 글이 써있다.

‘영웅 학원팟 465+ 일반 경험자 이상. 원딜 전클/힐스왑딜 모셔요.근딜은 고술만 (판금신청X) 공장N+1….’

‘그래 내가 거절 당할리 없지 ㅋ’

기쁜 마음에 뒤뚱뒤뚱 걸어가 다시 매장 셔터를 내렸다.

그러나 왼쪽 위 기본 레이드프레임엔 온통 갈색,분홍색,녹색만 가득하다.

그때 아까 살갑게 말 붙이던 길드의 노움 흑마법사 ‘늑음’ 이 길드채팅으로 다시 말을 걸어왔다.

“데스아트님 학원팟 가셨네요? 저도 같이가야겠다”

라며 같은 공대에 들어왔다.

참 성격 좋은 친구 같은데 말이 너무 많았다.

귓속말로 조잘조잘 딜사이클이 어쩌네, 날사가 이러쿵저러쿵….

듣는둥 마는둥 ㅎㅎ나 ^^로 대답하며 휴대폰을 들여다 볼때,

“데스아트님 아까보니 옛날 도핑 드시던데 ….”

라며 온갖 도핑거리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ㅋ”

필요는 없었지만, 거절하면 분위기가 이상해 질테니 일단 가방에 챙겼다.

그렇게 약 30여분을 걸그룹 직캠을 보며 기다리자 디스코드에서는 유난히 얇고 높은 하이톤의 공장이

“네 다 모였네요. 출발하시죠”

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발드라켄 분수대 앞에 우두커니 선 채 보고있던 걸그룹 영상을 마저 시청했다.

어찌나 고운지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늑음님이 당신을 소환합니다’ 라는 창이 뜨자 그제서야 휴대폰을 아이언맨의 팔 위에 올린 뒤,

‘이번에도 1등해야지 ㅋ. 내가 30점일리가 없잖아?ㅋ’

그렇게 시작된 레이드도 공대장이 뭐라고 계속 떠들긴 하지만 책상위에 세워둔 휴대폰으로 걸그룹을 보며

123을 연타했다.

“I'm a baddie, ba-ba-baddie, baddie….”

휴대폰에선 계속 듣기 좋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볼륨을작게 켜둔 디코에선 공대장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계속 노랫소리를 덮기에 소리를 좀더 줄였다.

그리고 마참내 공대는 출발을 하고, 1넴 앞까지 가는동안 다음 동영상을 봤다.

공대 진행중 작게 “2파티 냥꾼님 어쩌구저쩌구….” 라는 소리가 종종 들렸지만,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늑음’이 귓속말로 알려 주어서 대충 하는 시늉만 하며

이번에도 1등을 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를 공격하는 해커마냥 123을 연타했다.

멍청하게 딜도 못하는 놈들이 차고 넘쳤다.

미터기에서 굳건하게 1등을 지키고 있는 나는 모두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몇번 죽긴 했지만 ‘1등인데 그럴 수 있지 ㅋ’

간신히 스몰데른까지 마무리 한 뒤, 공대​는 시간이 다되어 끝이 났다.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녹색 검색창에 ‘와우로그’글 검색한뒤

써내려간 내 캐릭터 아래엔 충격적인 숫자만 보였다.

Best Perf. Avg

14.8

옛날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본 ‘사일런트 힐’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하늘에서 비 대신 재가 떨어지는 마을.

마치 내 ‘데스아트’의 로그 페이지와 오버랩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내 스카다에는 내가 압도적으로 딜량 1등인데?’

‘난 18단도 무리 없이 시클한 적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릿속엔 물음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리가없다. 이럴리가….


분배도 받지 않은채 Alt+F4를 연타했다.

그러나 듣기 싫게 앵앵거리는 공대장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채 툭 튀어나온 배를 힘겹게 접어 책상 아래 컴퓨터 전원을 눌러 껐다.

담배를 한대 피우며 진정 시켜봤지만, 도저히 화가 내려가질 않는다.

담배를 도로에 힘껏 던져버린뒤,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어차피 일하려면 컴퓨터는 있어야 했기에...

 끄응 소리와 함께 배를 힘겹게 접으며 컴퓨터를 다시킨다.

그러나 게임엔 다시 접속하고 싶지 않았다.

와우메카가 없어진 뒤 종종 가서 눈팅만 하던 와우인벤에 접속했다.

‘그래도 10여년간 사용한 아이디이니 이걸 사용하긴 좀….’

글은 많이 작성한 적은 없지만,

 나름 오래 접속했더니 레벨이 보라색인 아이디로 글을 적긴 망설여 졌다.

급하게 와이프 명의로 가입한 1렙짜리 계정으로 로그인 한 뒤,

사냥꾼 게시판에 하소연이나 할 요량으로 접속했지만

이 분노를 풀기엔 사냥꾼 게시판은 어그로가 끌릴까 싶었다.

[정보] ‘귀여운 OO테이밍 성공!’

[펫 제보] ‘XX 오늘 11:47 잡아가요~’

역시 이곳은 틀렸다.

난 예로부터 전쟁터와 다름 없는 레게로 눈을 돌렸다.

‘이녀석들은 아직도 저들끼리 치고박고 싸우고있군

마침 로그점수로 싸우고 있길래 분노 때문에 정수리에 찬 땀을 훔치며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다.

잠시 고민후 한자 한자 제목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용한 매장 안엔 타닥타닥 소리가 가득하다.

낡고 손때탄 오래된 키보드에서 나는 눅눅한 소리인지,

늙고 분노에 찬 게이머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흘러간 청춘의 끝자락 위에 떨어지는 타격음인지….

 게이머의 분노는 아랑곳 없다는 듯이

아이언맨 위 넙대대한 화면 위에선 지치지도 않는지

아직도 그녀들이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I'm a baddie, ba-ba-baddie, baddie"

예쁘고 늘씬한 그녀들을 바라보며 잠시 딴 생각에 잠겼다.

‘쟤는 영숙이 젊을때 닮았네 ㅋ. 아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ㅋ’


그렇게 분노를 삭히고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날카롭게 팩트만 작성했다.

내 누렇게 뜬 낡은 LCD모니터엔 날카로운 글이 한글자 한글자 새겨지고 있다.

로그가 왜 한와를 망하게한 주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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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실제 인물, 사건, 지역과 관련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