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빗줄기 소리가 비명처럼 들리는 날선 새벽에 알 수 없는 시선이 나를 향했다.
시선이 다가온다.
서서히, 서서히.

얼마 전, 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연휴 날의 새벽이었다.
별안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트롤 흑마가 키우고 싶어져서 추방자의 해안에서부터 부서진 섬의 달라란까지 이미 수십 번을 족히 지나쳤을 구간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오래된 시체와 방부액이 즐비한 언더시티마냥 신선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반복적인 루틴에 이대로는 또 중간에 지쳐버릴 것 같았던 나는 그동안 수집했던 수집품들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전투 애완동물 탭에서 '방황하는 영혼'을 마주했다.

죽어서 원혼이 된 듯 유령처럼 변해버린 티키 가면.
언제 얻은지도 알 수 없지만, 아마 형변용 아이템을 얻기 위해 모구샨 금고를 돌다가 얻은 듯했다.
마침 종족도 트롤이니 컨셉에도 딱 맞겠다 싶어 나는 처음으로 그를 소환했다.
처음엔 만족스러웠다.
성능에 비해 왜소한 덩치를 자랑하는 공허방랑자에 구천을 떠도는 영혼의 티키 가면까지, 여러 족속을 마음껏 부리는 (마음만이라도) 유능한 흑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 시선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내 캐릭터가 아스즈나를 모험하고 있을 때였다.
탈것을 탈 수 없는 동굴을 한창 걸어가고 있을 때쯤, 문득 내 뒤를 따르던 방황하는 영혼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보통 전투 애완동물들은 소환하면 캐릭터와 함께 정면을 마주 본다던가 가만히 두고 있으면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곤 한다.
그런데 이 영혼은 어째서인지 아무런 동작 없이, 그저 한없이 내 캐릭터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착각이겠거니 싶어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고 싶었다.
가면 위에 그려진 거짓된 눈에서 광선처럼 서늘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는.

내가 이동할 때마다 그 시선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퀘스트를 위해 NPC들과 대화를 할 때도, 주변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을 때도 영혼의 시선은 오직 나를 향할 뿐이었다.

하필 밖에선 쏟아지는 빗줄기가 비명 같은 소음을 발산하고 있었고, 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전 느껴본 적 없는 오한이 내 몸을 덮쳤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참을 수 없던 나는 용기를 내어 나를 바라보는 영혼을 마주했다.
게임 인터페이스도 전부 숨기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내 캐릭터와 그것을 빤히 쳐다보는 영혼뿐이었다.

영혼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지그시.
마치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말없이 속으로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소리 없이, 지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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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인벤 기자 떨어진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한 번 써봤습니다.


바쁘신 분들을 위한 세 줄 요약

1. 이제야
2. 이쪽을
3. 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