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하루에 이규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노비들이 땅을 파서 움막을 만들고 있었다. 

그 모양이 무덤 같았다. 이규보는 아무것도 모른 체하고 말했다. "어인 일로 집에 무덤을 짓느냐?" 

노비들이 말했다. "이건 무덤이 아니고 토실입니다."

"토실은 무얼 하려고?"

"겨울에 화초나 채소를 갈무리하기에 좋고 또 길쌈을 하는 부녀자들이 비록 혹독하게 추운 때라도 이곳에서는 봄 날씨같이 따뜻해서 손이 얼어 터지지 않으니 참 좋습니다."


이규보가 더욱 노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은 사계절의 한결같은 이치이다. 

만일 이에 반하면 괴이한 일이 된다. 옛 성인이 만든 제도는 추우면 갖옷을 입고 더우면 베옷을 입도록 마련하였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 다시 토실을 만들어서 추위를 더위로 돌린다면 이는 하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에 엎드려 지낸다는 것은 이보다 상서롭지 않은 것이 없다. 

길쌈은 제 때가 있는데 하필 겨울에 하느냐? 

또 봄에 꽃이 피고 겨울에 시드는 것은 초목의 한결같은 성질인데 만일 이에 반한다면 또한 철을 어긴 물건이다. 

철을 어긴 물건을 길러서 때에 맞지 않게 즐긴다면 이는 하늘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다.

이는 모두 내 뜻에 맞지 않다. 

너희가 빨리 헐어버리지 않는다면 내 너희를 용서하지 않고 때리겠다."

하였더니 노비들이 두려워서 얼른 헐어버렸다. 

그 재목으로 땔감에 쓴 뒤에야 노비들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