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확인 좀 하고자 합니다.

PC방 이벤트에 대하여 

'서든어택2가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오버워치와 롤때문에 넥슨 상부의 명령으로'
'디렉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의견을 여쭙고자 합니다.


PC방 이벤트를 하게 된 계기나 이벤트 기획 및 진행을 누가 담당했는지는 우리로서는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
이 글에서는 위 의견을 가지신 분들 말씀대로



 '넥슨 상부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PC방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보통 위 논리는 '그러니 DOL 디렉터를 까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어쩔 수 없었다'로 으레 이어집니다.

 제가 만약 디렉터의 위치이며 넥슨 상부에서 게임 내에 현 PC방 이벤트를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고 떠올려봤습니다. 저는 그것이 게임의 수명을 단축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거부하고 싶어도 넥슨의 직원인 이상, 또한 다른 게임 개발운영팀들도 모두 진행하고 있는 이상 못하겠다는 말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내풍습에서 설령 계획안이 아무리 쓰레기 같고 안 될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까라면 까야 하는 소위 '꼰대'같은 폐습이 남아있는 이상 이것은 어쩔 수 없어요.



 여기까지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향후에도 계속 이런 이벤트를 하라고 지시가 내려온다면 제가 담당하는 게임이 망해가는데, 제 커리어가 손상될텐데 그 지시사항에 대하여 재고를 요청한다든지 최소한 게임이 유지될 수 있도록 수정안을 제출하려고 할 거거든요. 유저들은 둘째치고 일단 제 커리어가 망하는 것은 곤란하니까요. 데브캣에서 성공적으로 서비스 진행했던 게임이 몇개 없습니다. 나머지는 중간에 다 엎어졌어요. 그 성공했던 몇 안되는 게임 중 하나가 이 마영전인데 이걸 제 임기중에 섭종하는 것은 싫거든요. 섭종될 것은 되더라도 다음 디렉터에게 넘길 때까지만 현상유지라도 하려고 할 거에요.

 그러면 저는 디렉터로서 지시를 내린 상부에 '이 지시사항을 그대로 실행하기는 곤란하다. 지금은 기다려달라'고 어필하고 싶을 거에요. 혹은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이게 우리 팀에서 낼 수 있는 한계선이다. 지시사항 그대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은 곤란하다.라면서 말이죠.


 위 주장을 하려면 '곤란하다'고 어필할 필요가 있어요. 곤란하다고 하려면 해당 이벤트를 할 경우 발생할 수익지표 악화 예상치, 이벤트에 대한 여론 등이 필요해요. 생각해보세요. PC방 이벤트같은 류의 핵심은 롤이나 오버워치에 빼앗겨서 넥슨 게임 총점유율이 떨어진 것을 회복하기 위한 대책이거든요. 그리고 그 점유율을 올리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수익을 늘리기 위함이고요.

 그런데 여론이 안 좋아져서 점유율이 추락하고(이벤트 도중은 오른다쳐도 종료 직후 폭락, 혹은 이벤트임에도 미미한 차이), 수익지표 자체가 매우 악화될 것으로 나타난다면 저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상부에 '곤란하다'고 보고할 수 있어요. 그러면 지시가 취소되든지 수정안이 채택되든지 할 수 있겠죠. 물론, 까라면 역시 까야 하는 것이 이 '꼰대사회'입니다만 어쨌든 저는 보고를 한 이상 게임이 망하게 됐을 때, 그 책임은 제가 아니에요. 상부로 책임이 넘어갔거든요.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니까요.그래서 관료주의가 스며들면 다들 보고에 열을 올리죠. 책임을 위로 넘기려고요.


 PC방 이벤트를 비롯한 각종 한전 콜라보 이벤트(접속 시간 유지 이벤트 계열)가 몇몇 분 말씀하신대로 


'넥슨 상부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PC방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였고

'디렉터의 의지와는 무관'

하였다면 디렉터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여론 악화가 됐든, 수익 악화가 됐든 둘 다든 간에 말입니다. 이 여론 악화가 설령 디렉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제가 디렉터라면 '현재 이용자들의 반응을 정리한 결과, 저를 포함한 운영진에 대한 비판 여론은 이 정도이며 이벤트 적용 전후로 이 정도의 수익 악화가 있었습니다. 향후 유사한 이벤트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됩니다'라고 보고 올리고 향후에 이런 이벤트가 지시로 내려올 때마다 이전 사례를 계속 예시로 제시하면서 '할 수는 있는데 수익이 더욱 악화되면 상부책임입니다. 구두지시 말고 문서에 서명해주십시오. 제 보고사항도 문서로 남기겠습니다.'

 이러면 함부로 서명 못해요. 걍 됐다고 하든지 어떻게든 구두지시로 까게 하려고 할 뿐이죠. 후자면 넥슨이 기업으로써는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것뿐이고요.


어차피 여태까지 데브캣의 패치가 불만이면 다들 그 시점의 디렉터 이름 대면서 비난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일부는 패치가 백지화되든지 일부나마 수정도 됐고요. 디렉터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디렉터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넥슨이 시켜서 해야 한다면 이용자들의 비판의견을 무기삼아 디렉터가 상부의 지시에 대하여 테클을 걸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면 향후 이런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을 줄이는데 디렉터에게 힘을 보탤 수 있겠죠.


 PC방 이벤트가 신규 유저 유입에 도움이 된다거나 나는 연어인데 복귀하기에 좋았다는 의견에 대한 비판글은 아닙니다. '넥슨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으니 디렉터 욕하지 말자, 접을거면 조용히 혼자 접어라'고 하면서 여론을 펴시는 분들은




넥슨이 시켰다-> 그러니 운영진을 비판하지 말자로 이어지는 경과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비판의견을 줄이는 행동 자체가 디렉터의 상부에 대한 반발력을 약화시키고 더욱 넥슨이 시키는대로 디렉터가 끌려다니게 만들 것이라고 봅니다. 넥슨이 시켜서 디렉터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디렉터를 도와야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