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적 감각과 친화력,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해 정치권과의 소통 등 대통령을 정무적으로 보좌할 적임자.” 박근혜 대통령이 현기환 정무수석을 임명했을 때 민경욱 대변인이 밝힌 인선 배경이다. 7개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니 황당하다. 현 수석의 잇단 돌출행동 탓이다. 현 수석은 지난 2일 국무회의가 끝난 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왜 국무회의를 국회 상임위처럼 활용하려 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박 시장이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박 대통령과 의견 대립을 보인 뒤 벌어진 일이다. 앞서 현 수석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보낸 대통령 생일 축하 난을 세 번이나 거부했다. 지난해 말엔 정의화 국회의장을 찾아가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하라고 압박했다. 국회도, 야당도, 지방자치단체장도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행태이다.

박 시장은 현 수석 발언과 관련해 “1000만 서울시민의 대표로, 법적 자격으로 참석한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대통령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박 시장 말이 타당하다. 정무수석의 직분은 청와대와 국회, 혹은 청와대와 지방정부 사이에서 소통을 돕는 일이다. 지방정부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도리다. 그런데 경청하기는커녕 모욕하다니 상식 밖이다. 현 수석이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국회의장에게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요구하며 한 발언이 실마리다. 당시 그는 “대통령 말씀을 들으면 답답함과 절박함이 묻어 있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대통령 심기를 살피는 ‘호위무사’를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것이다.

현 수석의 행태는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드러낸다. 그동안 국무회의에서 격의 없는 토론이 이뤄져 왔다면 야당 출신 서울시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해도 정무수석이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다. 대통령은 지시하고, 국무위원은 받아쓰고, 토론은 실종된 회의 관행이 이번 사태를 낳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효율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오고 가고 부딪치고 섞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현 수석이 고위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현 수석을 교체한다 해도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2의 현기환이 뒤를 이을 것이란 점이다. 그게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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