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억을 왜곡한다. 망각하지 못한 기억은 감정에 따른 주관적 주석을 덧붙여 말과 기억을 만들어 내곤 한다. 이 같은 메커니즘은 때로는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망각과 더불어 인간 기억의 축복이라 불릴 만큼 상황을 재구성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가지고 있다.

'창세기전4'는 몇 개의 패키지로 담아냈을 만큼 규모 있는 세계관을 MMORPG로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메커니즘을 끌어왔다. 아마 MMORPG에서 서사에 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창세기전4'의 모든 고민의 시작이자 가장 원초적인 숙제였으리라.

'창세기전4'는 일종의 역사 변형 -왜곡-을 통해 평생 세계를 만들었다. 없는 말, 없는 기억이 구체화되어 또 다른 현실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전에는 수많은 캐릭터와 설정들이 있었다. 시리즈 창조의 주역 중 하나인 최연규 이사도 말했듯, 개중에는 그대로 사장되기 아까운 것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패키지 게임의 특성상,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조연'이었으니까.

스토리를 풀어나감에 있어 스포트라이트는 주연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연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조연들이 있기에 주연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법. 노래를 부를 때도 도입부가 없다면 후렴이나 클라이맥스 부분이 돋보일 수 없는 법이다.

창세기전4는 그 '조연'들의 재조명에 비중을 뒀다. 개발자, 혹은 시나리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의해 강제로 조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들. 그들은 새로운 시리즈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MMORPG라는 옷을 입었고, 수많은 유저들의 입맛에 따라 재구성될 기회.

[관련기사] 최연규 이사의 선언 "4월 16일, '창세기전4' 첫 CBT 합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번 인터뷰에는 의미 있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소프트맥스의 모험심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일리 있는 도전이다. 콘셉트가 명확해졌으니, 이젠 그 구체적인 방안을 논할 차례다. 역사의 단편 곳곳에 존재하던 수많은 캐릭터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킬 것인가. 창세기전4 장경주 기획팀장과 함께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소프트맥스 장경주 기획팀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작품 '꽃'의 한 대목이다. 창세기전4의 시작점은 어쩌면 이 대목과 닮았다는 느낌이다. 이름없는 실험체에 지나지 않았던 플레이어는 파트너(이안&노엘)의 손에 구출되면서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받게 되고, 거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출발하게 된다. CBT에서 선보일 빌드의 시작 부분이다.

실험체 XX번. 시간여행자들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저런 식으로 불렸을 것이다. 즉, 역사 속 그 누구와 비교해도 별 의미 없는 존재였던 셈. 하지만 어느 순간, 파트너의 개입으로 이 실험체는 '가장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날 기회를 얻었다. 시간여행, 역사 속 사건들의 재구성, 시리즈에 등장했던 영웅들과의 만남.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창세기전4'에서 유저의 아바타는 그 누구보다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 '주인공'으로 완성되어 간다.

이러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의 하나가 '군진 시스템'이다. 게임 콘셉트 상 멀티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군진 시스템의 중요도는 매우 높다.

"창세기전4는 '월간 창세기전'을 기반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군진'을 이용해 돌파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아르카나 저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아르카나(캐릭터)를 수집하며 성장해가는 게임입니다.

군진 시스템은 수집한 아르카나들을 전투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입니다. 또한, 기존 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도 '최강의 조합'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견을 고려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군진에는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포함해 최대 5인까지 배치할 수 있습니다. 연환기(군진 스킬), 군진 효과, 군진 내 포지션 효과 등이 존재하며, 전투 상황과 유저 플레이 패턴에 따라 전략적인 구성이 필요합니다. 군진 종류만 50여 가지가 있으며, 저마다 다른 효과와 전투 메커니즘을 갖게 됩니다. 각각의 군진 효과를 보기 위해 필요한 아르카나 조합도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르카나에 관해서는 지난주 최연규 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한 바 있다. 한 번 더 요약해서 풀어놓자면, 창세기전 시리즈에 등장한 적이 있는 캐릭터들의 '복제체'인 셈이다. 즉, 실존 인물들과 무척 흡사하지만, 본인은 아니라는 설정이며, 이로써 그들은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보조하기 위한 종속적 존재가 된다.

설정이 완성됐으니, 실질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군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플레이어는 동시에 여러 개의 캐릭터를 조작하게 된다. MMORPG에서 복수의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조작 체계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쉬운 대목이다.

"턴제 RPG나 전략 시뮬레이션 같은 게임의 느낌을 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캐릭터 하나하나의 비중이 높아야 했고요. 아르카나들이 단순히 유저를 따라다니는 펫의 개념은 아니니, 하나의 객체로서 비중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조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그 방법으로 턴 방식과 RTS 방식을 조합해보기로 했습니다.

실시간 액션을 기반으로 하고, 조작 체계는 최소화와 단순화를 지향했습니다. 군진으로 배치된 아르카나들은 일정한 포메이션을 유지하면서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따라다닙니다. 이동할 때는 자신의 아바타만 조작할 수 있고, 전투 시에는 숫자키 1~5까지를 사용해 각 아르카나들의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타 게임에서 스킬 단축키와 같은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다 디테일한 컨트롤을 원하는 상급 유저들을 위해 Alt 키를 이용하면 개별 캐릭터 조작도 가능합니다. 즉, 기본적인 설정은 단순하되, 유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심화된 조작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 기본조작 설명 영상


군진은 '창세기전4'의 핵심 시스템이자 주된 콘텐츠다. 5개 세력으로 구분되는 세력 군진, 아르카나별 클래스 특성을 강조하는 직업 군진, 특정 상황을 타개하거나 보스를 상대할 때 최적화된 특수 군진이 존재한다. 각 명칭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요소다.

이를테면 싱글 플레이에서는 전반적으로 탱커-딜러-힐러의 구성을 고루 갖춘 밸런스형 군진을 선택하는 편이 무난하다. 다양한 클래스의 아르카나들이 팀워크를 이루는 '세력 군진'이 최적이다. 멀티 플레이에서는 통상적인 MMORPG의 문법에 따라 역할이 나뉜다. '직업 군진'으로 각자의 포지션을 정하고, 그 군진들이 모여 하나의 파티를 이루는 식. 캐릭터 수로만 따지면 웬만한 레이드 인원인 셈이다. '특수 군진'은 범용성과 거리가 있는 대신, 특수한 상황에 최적의 성능을 발휘한다. 화염 속성의 기믹이 잔뜩 출현하는 시공(던전)을 공략할 때가 그 예다.

"개인 유저 한 사람이 하나의 파티를 이룰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인 '군진들의 파티'를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장소나 상황에 맞춰 전략적으로 군진과 아르카나를 사용하면서 보상과 희귀 아르카나를 획득하는 목표를 달성해가게 됩니다."



군진 시스템과 함께 주목해야 할 시스템이 바로 '연환기'다. 군진을 구성하고 있는 아바타와 아르카나들이 각각의 액티브 스킬과 필살기 등을 가지고 있다면, 연환기는 일종의 '팀 스킬'이다. 군진 시스템의 궁극적인 요소로서, 각 군진에 따라 최대 5개까지 생성된다.

특정 군진을 갖추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용 조건이며, 일부 연환기의 경우 군진 내 캐릭터들의 위치까지도 정확하게 지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캐릭터를 어떤 포메이션으로 배치했는가. 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최적의 답을 찾기 위해 유저들은 수많은 조합을 시도하며 시공 공략에 임하게 된다.

"필살기의 경우, 아르카나들의 자동기나 일반기보다 강력한 스킬입니다. 시리즈 영웅들의 특징적인 기술을 계승해 구현했죠.

연환기는 이 3개의 스킬과는 별개로 작동합니다. 강력한 필살기 중 일부가 연환기로 제공되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는 군진을 통해 아르카나들의 능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르카나를 조합하거나 특정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활성화할 수 있는 방식이죠. 연환기 종류에 따라 아르카나 단독 혹은 둘 이상이 협동해 사용하게 되며, 아르카나들 개개인의 필살기에 비해 강력하고 화려한 맛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연환기 설명 영상


군진부터 연환기까지, 게임의 중심축이 될 시스템을 기획하면서 빼놓을 수 없었던 부분은 다양성이다. '캐릭터 조합'이라는 콘텐츠가 자체적인 생명력을 지닌 채 자가순환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같은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시공 공략이든, 보스전이든, PvP든 이거 하나면 만사 오케이!' 라는 것이 생겨버리는 순간 밸런스는 무너지고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캐릭터는 존재 가치를 잃게 마련이니까.

장경주 팀장은 '창세기전4'의 본질이 멀티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핍'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유저가 똑같은 군진에 똑같은 연환기를 가지고 다니면 MMORPG로서의 색깔이 희미해진다. 유저들이 자신의 조합에 대한 장단점을 알고, 끊임없이 더 효율적인 군진 조합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개발진의 공통된 목표다.

"결핍을 전제로 하고 밸런스를 조정한다 해도, 언젠가 유저들 사이에 '최선의 한 가지'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모든 게임 콘텐츠를 관통하는 오직 한 가지가 되면 안 되겠죠. 최선의 조합이 각 콘텐츠별로 따로 존재할 수 있다면, 문제를 개선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전4'의 전투 시스템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전투는 자동 진행이며, 타겟 변경과 스킬 사용이 유저 컨트롤의 영역이다. 일반적인 스킬은 캐릭터의 머리 위에 표시된 숫자 버튼을 누르면 발동되며, 캐릭터 특성에 따라 쉬프트+숫자키로 발동되는 스킬도 있다.

여기에 50여 종의 군진효과가 더해져 보다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철벽의 진형'이라는 군진 효과를 얻게 되면 생명력과 체력, 방어력 등을 % 단위로 상승시킨다. 탱커 계열의 아르카나들로 구성된 직업 군진의 한 예로, 후반으로 갈수록 높은 효율을 거둘 수 있는 파티 플레이 지향형 군진 효과라고 할 수 있다.

▲ 마장기 제노시스


원작에서 위용을 뽐냈던 마장기와 그리마는 '창세기전 시리즈'로서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는다. 통상적인 MMORPG가 아이템의 생산(제작)이나 수집(파밍)에 목표를 맞추고 있다면, '창세기전4'는 마장기 제작과 아르카나 수집에 목적을 둔다. 캐릭터성에 비중을 크게 싣는다는 이야기다. 단, 캐릭터의 고유성을 보존하기 위해 원작에 등장했던 1, 2급 마장기와 같은 것들은 접근 장벽을 높게 설정했다. 영웅 캐릭터들의 고유성을 살리기 위해 아르카나라는 개념을 채택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마장기&그리마에 관련된 일련의 활동은 플레이어의 개인 공간(아지트)에서 이루어진다. 아지트는 게임 내 주 거점이 되는 '에스카토스'에 위치하며, 유저들은 이곳에서 지령이나 임무를 받아 수행할 수 있다.

"시간여행자들의 도시 '에스카토스'는 중세 시대 디자인은 물론 스팀펑크 느낌의 오브젝트까지 고루 사용해 디자인됐습니다. 연구지구나 군사지구 등 각각의 역할에 따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시간 여행'의 핵심이 되는 시간 나침반 역시 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월간 창세기전'에 따라 월 단위로 추가되는 새로운 맵, 시나리오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그달의 목표가 되는 아르카나를 획득하기 위해 플레이하게 됩니다.

콘텐츠가 추가되면 1주차에는 우선 새로운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시나리오와 퀘스트를 즐기게 됩니다. 2주차에는 길드 임무 시공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변화점을 만들게 되죠. 역사를 바꾸게 되면 이상 시공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에 대응하는 것이 3주차의 콘텐츠입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플레이하다 보면 아르카나를 비롯한 여러 보상을 얻게 되고, 이들을 기반으로 4주차에는 랭킹 던전이나 PvP, 길드전과 같은 콘텐츠를 즐기고 다음 시공간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한 달 동안의 콘텐츠 소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전4'는 역사의 재구성을 큰 축으로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군진시스템과 연환기를 얹었다. 결국, 창세기전 시리즈가 가진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저들에게 전달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패키지 게임이 품은 이야기의 감성을 어떻게 MMORPG로 표현해냈는지는 이번 CBT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MMORPG를 보니 자유도를 보장해 주는 경우는 많은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목적의식을 심어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창세기전4'는 월별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하나하나가 완결성이 있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매달 조그만 패키지 게임을 하나씩 하는 느낌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