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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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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C2018] 컨셉 아티스트, 그리고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세계

정재훈, 김수진 기자 (desk@inven.co.kr)
▲ 제이미 로(Jamie Ro) 번지 리드 컨셉 아티스트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번지'의 컨셉 아트 팀을 이끌어가는 리드 컨셉 아티스트로 18년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아레나넷' 재직 당시 '길드워2'의 아트에 참여했던 바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을 이끄는 3대 직군을 말하면 '기획', '프로그래밍', '아트'를 꼽는다. 통념적인 범위에선 그렇다. 기획자는 기획안을 넘기고, 프로그래머는 뼈대를 만들며, 아티스트는 살을 붙인다. 이 과정이 여러번 반복되면 하나의 게임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기획자 안에서도 수십갈래로 나뉜다. 프로그래머도 마찬가지. 아티스트는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컨셉 아티스트'도 이 많은 아티스트의 갈래 중 하나다. 어떻게 보면 작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다.

컨셉 아티스트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단어와 개념의 복합물을 비주얼로 빚어낸다. 컨셉 아티스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세계는 곧 작품이 된다. 배경, 인물, 게임의 구성 요소. 모든 것에 컨셉 아티스트의 손길이 묻어난다.

번지의 리드 컨셉 아티스트인 '제이미 로'는 세계 최고의 인기작중 하나인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컨셉 아트 팀을 이끌었다. 가족 이민을 따라 한국을 떠난지 정확히 22년, 뉴질랜드의 작은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한지 18년 만의 일이다. IGC 2018에서, 제이미 로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18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어떤 일을 해왔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까? 그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한 결과들은, 어떻게 게임 안에 녹아들었을까?

관련 기사: [인터뷰] "창작도 기술이다" 번지 '제이미 로' 리드 컨셉 아티스트



■ 강연주제: '데스티니' 개발에 컨셉 아트는 어떤 기여를 했는가?

⊙ '컨셉 아트'란 무엇인가?

연단에 선 '제이미 로'는 먼저 오늘 강연을 관통할 '컨셉 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제이미 로는 컨셉 아트의 역할을 하나의 구절로 설명했다. '방향의 제시'. 컨셉 아트는 개발팀이 게임을 개발할 방향, 나아가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방향을 제시한다. 컨셉 아트가 공간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게이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못 그린 그림을 본 개발자들이 싫증을 내는 것은 덤이다.

▲ 솔직히 그림이 별로면 개발할 맛(?)이 안 난다고 한다.

게임의 스크린은 그 자체로 매우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단순한 스크린샷에 불과한 게임 화면에서도 나타나야 할 요소가 굉장히 많다. 컨셉팀은 이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있어선 안될 소품들을 걷어내고, 설정에 어울리는 소품과 장치들을 끼워넣는다. 사실상 게임의 모든 영역에 개입한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하다 못해 작은 박스 하나의 소품을 만들 때도 컨셉 아트 팀은 다른 팀과 협의를 거쳐 디자인한다.

컨셉 아트는 몇 가지 키워드로 가닥을 잡아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데스티니 가디언즈' 내에 '꿈의 도시'로 등장하는 각성자들의 도시는 '수직', '우주 엘프', '타락'이라는 키워드를 품고 있다. 드높은 첨탑과 공중에 떠있는 부유섬들의 나열은 '수직'의 이미지를 만들며, 곡선형 건물 디자인과 미려한 테두리는 '우주 엘프' 컨셉의 각성자에 대응한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어둠의 편린과 굴복자로 인한 오염은 '타락'을 나타낸다.

▲ '수직', '우주 엘프', '타락'의 키워드가 쓰인 꿈의 도시

또 다른 예로는 기갑단의 황제가 등장하는 '리바이어던' 레이드가 있다.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탐욕'이라는 키워드로 재해석되었다. 벽들은 금박 장식으로 둘러져 있고, 모든 소품은 과할 정도로 화려하다. 과도한 배흘림기둥이 생각나는 뚱뚱한 기둥은 탐욕의 결과인 '폭식'을 이미지화한 결과물이다.

▲ 리바이어던 레이드는 '탐욕'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중요한건, 컨셉 아티스트가 그냥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이미 로는 이 점을 확실시했다. 컨셉 아트는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림을 대중에게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결과물은 '게임'이며, 이 게임은 결국 일정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소프트웨어다.

때문에 컨셉 아티스트는 늘 게임의 개발 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혹여나 수정이 필요할 경우 어디까지가 수정 가능한 부분이고 그렇지 않은지 파악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아트워크가 아닌 러프한 스케치로도 필요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 러프하게 디자인된 아함카라 '리븐'

제이미 로는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최신 콘텐츠인 '마지막 소원' 레이드의 마지막 보스인 '리븐'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예로 들었다. 그간 설정으로만 등장했던 '아함카라'인 리븐은 한국에서도 널리 볼 수 있는 종이접기인 '동서남북'에서 힌트를 얻었다. 네 개로 이루어진 머리판이 모두 닫혀 있으면 타격 면역 상태, 두 개가 열려 있으면 약점 노출 상태, 네 개가 모두 열리면 전멸기를 사용한다는 사인이다.

▲ 종이접기를 힌트로 디자인되었다.

▲ 최종 아트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렇듯, 컨셉 아티스트는 단순히 세계관을 구상하고,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게임 개발의 핵심적인 부분까지 꿰고 있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스케치만으로도 개발 방향을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제이미 로는 컨셉 아트를 설명하는 막바지에, 한 문장으로 컨셉 아트의 역할을 정의했다.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서적 교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 깊이 몰두하도록 만들고, 개발팀의 업무에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 '엑소'라는 종족을 설명하는 컨셉 아트. 그들도 내면은 인간이기에 지치고 피로를 느낀다.


⊙ 모든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컨셉 아트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설명한 제이미 로는 컨셉 아티스트가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제이미 로는 픽사의 공동 창립자인 '에드 캣멀'의 말을 인용했다. '배고픈 괴물과 못생긴 아기'라는 이 개념은 기업 내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직군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난이다. 컨셉 아티스트는 굉장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군이고, 때에 따라서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질 경우나 콘텐츠가 라이브된 이후라면 그 이유만으로 주기적인 콘텐츠 공급이 필요해진다. 컨셉 아트가 완성되지 않으면 다른 팀의 업무가 지연되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배고픈 괴물'이다. 먹이를 주어도 주어도 꾸준히 더 먹을 것을 요구하는 창작 직군의 공포다. '못생긴 아기'는 그와중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다. 개념 덩어리에 불과하니 못생길 수밖에 없다. 이쁘게 만드려면 시간을 들여 다듬어야 하는데, 배고픈 괴물이 뒤에서 쫓아오니 아기를 이쁘게 꾸며줄 시간이 부족하다.

▲ 배고픈 괴물은 쫓아오고, 못생긴 아기는 단장해줘야 한다.

또다른 문제는 '장르의 피로도(Genre Fatigue)'다. 시각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콘텐츠 속에 머무르는 잠재력이자 가능성인 '텐션'을 보게 된다. 일정 장르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텐션과 기존의 방향을 유지하려는 텐션은 시종일관 서로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는 컨셉 아트를 이끌어가는 팀장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새로운 방향을 고집하면서 긴장을 올리면 팀원들이 너무 지치게 되고, 반대로 느슨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기존의 흐름만을 유지하면 팀원들이 본인의 일에 만족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동력을 잃는다.

세번째 문제는 IP가 만들어지면서 겪는 오염이다. 어떤 IP든지, 처음 기획안이 만들어질때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들어맞고, 주제 의식이 확실하며, 디자인도 깔끔하다. 하지만 수년간 해당 IP를 기반으로 제작하다 보면 IP가 조금씩 오염된다. 다른 작품을 의식하면서 점점 닮아가게 된다던지, 새로운 요소를 넣으면서 기존 요소가 탈락되거나 재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방향성을 상실하거나 모순되는 경우가 숱하게 일어난다. 컨셉 아티스트로서는 갈피를 잡을수 없는 순간이다.

▲ IP가 순수를 잃을수록 컨셉 아티스트는 힘들어진다.


⊙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물론, 모든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제이미 로는 앞서 설명한 문제들을 해결, 혹은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을 설명했다. 먼저,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국이 싱거우면 소금을 치면 된다는 일반론같은 이야기지만, 제이미 로는 '그림 실력'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거듭 말했다. 같은 일도 그림을 잘 그리면 쉬워지고, 못 그리면 쉬운 일도 어려워진다. 그림으로 감성과 개념을 전달하는 컨셉 아티스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개인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단련해야 한다.

▲ 데스티니의 정체성이 정해지기 전, '탐험심'과 'Sci-Fi'라는 방향을 잡아준 아트

또한, 앞서 말했듯 게임 프로덕션 과정과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 게임의 개발 단계에는 일정한 순환의 고리가 있다. 개발 초기에는 플레이어들을 만족시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마무리 단계에서는 주어진 시간과 예산을 맞춰야 한다. 이 흐름을 잡지 못하고 쓸모없는 디테일을 고집한다던가, 정해진 시한 내에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경우 전체적인 개발 흐름이 흔들리게 된다. 컨셉 아티스트라면 늘 자신이 '게임 개발'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에 참여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이상적 투자와 현실적 투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한번에 많은 일들이 들어올 때 디자인의 우선 순위를 정할수 있어야 한다. 이는 앞서 말한 프로덕션의 흐름을 파악하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컨셉 아티스트도 게임 개발에서 어떤 것들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제이미 로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설명하면서 모든 게임의 디자인 요소는 '게임 플레이 기능', '미적인 목표', '한도 내의 예산'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고려해 만들어지며, '게임 플레이 기능'을 최우선으로, 이후 미적인 목표와 예산 조절 순서로 해결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타 부서와의 협업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한다.

▲ 작업 과정에서 협업해야 할 부분은 굉장히 많다.

또한, 디자인 과정에서 아티스트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점들이 개발팀에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메시지가 없다면, 컨셉 아트는 그냥 그림 한 장에 불과하다. 컨셉 아티스트는 그림을 통해 '감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얼마 전 업데이트된 '포세이큰' 확장팩의 신무기인 '활'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아티스트가 해야 할 일은 '총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활이 쓰일만한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과 '게임 내에 활이 녹아들도록 하는 디자인'을 목표로 했다.

담당 아티스트는 수많은 조사를 통해 '활'을 디자인했다. 직접 활을 쏘러 가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현대적인 '컴파운드 보우'를 기준으로 금속 프레임과 추후 수정이 쉽도록 부품 조립식 디자인을 사용한 활을 만들어냈다. 아티스트 본인의 창작으로 '레일 건'의 원리를 추가해 가속기까지 탑재했는데, 게임 내에서 활을 쏠 때 미묘한 전자음이 들리는 것은 이 가속기의 영향이라는 설정이다.

▲ 컨셉 아티스트가 직접 붙인 활의 자기장 가속기

함께 일하는 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개인 단위로 결과물을 내놓는 업무 성격을 가진 직군도 많지만, 컨셉 아트는 굉장히 많은 타 부서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팀이다. 팀원 간, 혹은 팀 간의 불화는 '창작'의 효율을 엄청나게 깎는다. 창의력은 따듯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싹을 틔우며, 컨셉 아트 팀은 늘 그런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타인과의 신뢰를 쌓는 일에 인색하면, 그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다.

▲ 이런 아트도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강연의 말미에서, 제이미 로는 '컨셉 아티스트의 역할'에 대해 본인만의 의견을 덧붙였다. 컨셉 아티스트는 단순히 개발팀에 과제를 만들어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문제는 늘 따라오며, 컨셉 아티스트는 본인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본인이 게임 개발팀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이에 맞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 그것이 진짜배기 컨셉 아티스트의 역할이라 말하며 제이미 로는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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