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아빠, 10년 차 직장인이 갑작스레 퇴사를 결심했다. 전 국민 스마트폰 시대. 느낌이 왔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기회다. 망할지라도 회사를 차리자. 내 게임을 만들어야겠다. 하지만, 월급쟁이 퇴직금만으로는 턱도 없다. 결국, 아파트 전세금까지 뺀다. 아내는 겨우겨우 설득했지만, 부모님은 끝까지 결사반대다.


여기서 잠깐. 만약 이 상황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닥쳐 있다면?

글쎄, 기자라면 조용히 ‘백스페이스’ 키를 눌렀을 거다.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맨땅에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을 때의 두려움은 그만큼 크니까.


하지만, 김용석 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드래곤스톤”을 창업한 지 딱 3개월. 아이폰용 게임 ‘래빗대시’를 앱스토어에 출시해 낸다. 창업하면서 내건 자신과의 약속을 결국 지킨 것이다.


기자가 무시무시한 장맛비를 뚫고 안산 기슭에 있는 중소기업연수원에 부랴부랴 출동한 것도 그 때문이다. 30대 후반 남자를 과감히 퇴사시킨 용기의 근원이 뭔지 몹시 궁금해서.



[ ▲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직접 찾았다.
창업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고 소문났다. ]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참 좋아했습니다. 오락실에 매일 다니다 아버지께 끌려가서 맞고. (웃음) 결혼하기 전인데 친구들이 ‘결혼하면 게임 못한다.’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예요. 그때가 메탈기어 솔리드 3가 갓 나왔을 땐 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이거든요. 결혼하면 정말 못하게 될까 밤새가며 했죠.”


“근데, 갑자기 집 전체가 정전되는 겁니다. 놀라 돌아보니 어둠 속에 아버지가 서 계셨어요. 아버지가 두꺼비집을 내리신 겁니다. ‘내일모레가 결혼인데 게임 그만 할래? 밤새 맞을래?’라고 말씀하셔서 ‘잠깐’ 중단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게임을 좋아해요, 제가. (웃음) “


게임마니아를 넘어 한순간이라도 게임이 없으면 살 수 없었던 김용석 씨. 93 학번인 김용석 씨는 대학 시절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시즌에 마침 IMF가 터지면서 취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임용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이 되는 것. 경쟁률과 난이도가 거의 고시를 방불케 했던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를 찾았는데 그것이 김용석 씨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줄이야.



[ ▲ 드래곤스톤 김용석 대표이사, 오늘의 주인공이다. ]




“사법고시부터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등등 고시생이 즐비한 곳인데 이상하게도 엄청난 게임 고수들은 노량진에 다 있었어요. 제가 철권 같은 격투게임 마니아거든요. 그 당시 전국 최고의 오락실이라 불리던 노량진의 ‘정인 오락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그러던 중 모 매체에서 게임전문 기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게임 좋아하니 한번 해볼까?’ 생각으로 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또 뽑혔어요. 그렇게 첫 직장으로 게임전문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열심히 타자를 받아치던 기자. 갑자기 고개를 들어 김용석 씨를 쳐다본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흥미진진하다. 거침없는 입담 속에 이야기는 이어져 ‘페이즈 2’로 진입한다.



[ ▲ 노량진 정인 오락실,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xll2000 ]




“기자 생활을 하면서 취재도 다니고 인터뷰도 다니고 했는데, 그 당시 경희대 교육심리학 권준모 교수님과 꽤 친해졌습니다. 저 인생의 멘토시죠. 전공은 심리학이셨는데 이상하게 게임 전문가셨어요. 대단하셨죠.

2001년쯤에 권준모 교수님이 경희대, 고려대 게임 창업 동아리를 주축으로 해서 벤처 회사를 설립했는데. 그게 모바일 게임 회사인 ‘엔텔리젼트’였어요. 이제는 대표이사가 된 권준모 교수님이 여기 와서 같이 일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항상 마음속에 게임 기획자의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고민 끝에 합류하게 됐죠.”



정리해보면 '게임마니아'부터 시작해 물리학 전공으로 대학 졸업, 선생님이 되려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게임 전문 기자로 입사, 그 후 모바일 게임 기획자가 된 거다. 정말 그렇다.


“2004년에 일텐리젼트가 '삼국지 무한대전'이라는 게임을 출시했는데 대박이 났죠. 회사가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제가 기획에서 손을 떼고 홍보 파트를 전담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몇 년 후 넥슨에 인수되면서 회사가 넥슨 모바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권준모 대표는 좀 있다가 넥슨 전체 대표로 가셨고, 저는 넥슨 통합 홍보실에 배정을 받아 1년 정도 근무를 했어요. 그게 시련의 시작일 줄은..”



반전은 더 남아 있었다. 게임 기획자에서 갑자기 홍보팀장이 됐다가 넥슨에 자연스럽게 입사하면서 큰 회사의 홍보팀원이 돼버렸다. 이 무슨..


“남중, 남고, 대학교 이과, IT 중소기업의 테크 트리를 타신 분은 아실 겁니다. 게다가 저는 게임도 격투게임 이런 거 좋아하는데, 여직원이 반 이상인 큰 회사 홍보팀이 적응이 안 되는 겁니다. 덕후 문화에 너무 깊게 빠져 있었나 봐요. (웃음) 그래서 다시 넥슨 모바일로 복귀했습니다.”


넥슨 모바일로 돌아왔지만, 그때 바로 넥슨 전체에 구조조정과 개편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김용석 씨는 넥슨 모바일 사내 TF팀에 배속된다. 6개월 안에 아이폰 게임을 하나 만들어내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



[ ▲ 물리학을 전공한 대학생, 게임기자, 개발자를 거쳐 넥슨 홍보팀이 됐던 이야기 ]




“어쨌거나 결국 목표는 완수했습니다. 퀄리티는 보장을 못 했지만요. 대신 직접 아이폰 게임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자심감이 생겼죠. 바로 그때부터 이렇게 현실에 안주할지 아니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위해 창업을 할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겁니다.

결코 쉽지 않았죠. 직장 생활 10년 차에 아기가 둘이나 있고. 퇴직금으로 모자라 전세금도 뺐습니다. 식구들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했고요. 아내는 저를 믿고 응원해줬지만 부모님 반대가 장난이 아니었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창업을 결심한 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동분서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김용석 씨. 중소기업공단에서 운영하는 창업 사관학교에 지원하게 된다. 1차 모집 경쟁률이 자그마치 4:1. 제조업 중심의 지원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안 했지만 운 좋게 합격한다. 그렇게 갑자기 올해 4월, 드래곤스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회사를 창업하게 된 것이다.



[ ▲ 지금 사무실에 붙어있는 포스터. 진흥원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살짝 옛날 Feel이 난다. ]




“저랑 프로그래머 둘이서 시작했어요. 저는 게임 기획을 맡고요. 근데 그래픽을 그려줄 사람이 없잖습니까? 그래픽 디자이너를 구하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현직 후배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막 부탁을 했죠. 시간이 날 때 잠깐잠깐 그려달라고. 대신 용돈씩으로 몇십만 원씩 줬죠.

저희 게임 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그래픽이 상당히 올드하면서도 독특합니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안 좋아요. (웃음) 게임 그래픽 경력 하나도 없는 만화 동화리 출신 여자 후배가 10만 원 받고 그려준 배경도 들어가 있습니다. (웃음)”



김용석 씨는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회사가 위치한 안산 중소기업연수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자녀는 주말에만 만난다. 내년 2월까지 총 4개의 게임을 출시하겠다는 자신만의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1차 단계로 3개월 만에 첫 번째 게임을 출시했다. 아이폰용 게임 ‘래빗대시’. 토끼를 주인공으로 한 런앤점프 게임이다.


왜 하필 토끼일까?


“제 경험상 모바일 게임은 이슈가 중요합니다. 올해가 토끼해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토끼로 결정했고, 장르는 디펜스 게임과 함께 아이폰 게임 장르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런앤점프를 택했습니다. 보통 다른 게임은 화면을 달려가는 플레이어만 있는데 저희 게임은 적으로 거북이가 등장해서 발로 차는 액션이 더해져요. 나름 계산할 게 많아집니다. 거기에 작년에 갓 졸업에 경험이 없는 프로그래머가 코딩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렉 잡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슬슬 겨우 적응돼서 최적화시킬 수 있었죠.”



[ ▲ 김용석 씨가 현재 애플이 심사 중인 '래빗대시'의 아이패드 버전을 체험시켜 줬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이폰 게임으로 얼마 벌 것 같냐고.

“생각보다 뻔합니다. 저희 게임 가격이 지금 0.99달러예요. 우리 돈으로 1,000원이라고 치고, 하나 팔릴 때마다 애플이 30%, 저희가 70% 가져갑니다. 하나에 700원 수익이죠. 한 달에 만 개 팔면 한달 수익은 7백만 원이고, 한 달에 십만 개 팔면 한 달 수익은 7천만 원이에요. 저희 직원이 총 3명이니 답이 나오죠. 말은 쉽죠. 하지만, 대부분 하루에 일,이만 원 수익도 내기 힘든 게 문제입니다.”


“첫 번째 게임으로는 대박이 나기는 어렵습니다. 3,4개는 출시해봐야 알아요. 후속작이 대박 났을 때 전작까지 같이 흥행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내년까지 4개 게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런 점 때문이고요. 그래도 한 달에 수만 개 판매하는 게임사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래빗대시가 출시한 지 지금 딱 3일 됐는데 곧 아이패드 버전도 나올 예정입니다. 계속 열심히 만들어야죠.”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용석 씨는 아직 반반이라고 답했다. 일반 직장을 다닐 때는 어영부영해도 월급은 나온다지만 자기 사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 게임이 정말 흥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압박이 항상 크게 다가온다고. 하지만, 김용석 씨는 올 9월에 나올 차기작에 상당히 공격적인 베팅을 한다.


“첫 번째 게임을 만들어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차기작에는 제작비만 3,4천만 원 투입할 계획입니다. 쿵후 액션게임인데요, 벌써 그래픽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퀄리티를 높이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정말 대작입니다. (웃음)”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용석 씨는 게임업계의 히든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 기업. 패스트(Fast), 스마트(Smart), 스트롱(Strong). 김용석 씨가 강조하는 키워드이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내지른 선배 창업가로서 조언 한 마디를 부탁했다. 이 답변이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가 그의 작은 용기를 응원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 아이폰으로 그의 첫 작품 '래빗대시'를 플레이한 것은 보너스.


“저질러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속에 있는 창업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거랑 실제 현실에서 부딪히는 거랑은 상당히 다릅니다. 무수히 많은 변수가 쏟아져 나오는데 실행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혼자보단 기획, 그래픽, 프로그래밍 담당을 구성해서 창업하는 게 최고입니다. 가족, 학연, 친구, 전 직장 동료로 좋고요. 마음에 맞는 파트너면 누구든지 좋습니다. 법인 설립 조건도 대폭 완화됐고 정부 창업 제도가 워낙에 잘 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그렇게 힘이 들지 않습니다.

저도 무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내가 나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심을 세웠습니다.

일생 중에 내가 나에게 창업하는 경험을 선물한다. 이거 좀 멋지지 않습니까?”






▶ 김용석 씨의 첫 번째 아이폰 게임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