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는 자유롭게 유해직업(?) 을 선택하여 플레이할 수 있다와
게임시스템이 허락하는 유해직업(?)을 욕하면 안됀다는 논리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게임은 게임일뿐이라고 하지만 게임도 엄연히 사람들이 교류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입니다.

마치 게임시스템에서 허락하고 있기때문에 욕먹을 이유가 없다던가 권장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정규교육을 받은 정신상태인지 궁금하고요.

노상강도랑 유해의 차이가 무엇인지??
지금 유해들이 무슨 로빈훗이나 홍길동 같은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그저 자신들이 게임 재미있게 하기위해서 비매너짓도 서슴치않고 다른 유저들 괴롭히는 것인데
무슨 같잖은 대의명분이 있는것인지. 몇몇 추종자분들. 유해가 멋있어요?
강호순이나 신창원이 멋있었나요? 남에게 피해주고 사는 사람들이 그리 멋있던가요?

현실에서는 그렇게 사회생활하면 구속을 해서 콩밥을 먹인다던가 사형을 시킨다던가 한다지만
대항해시대는 그런 제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해라해도 항구로 떳떳히 들어와서
교역소 주인에게 말걸면 어서오세요 라고 하겠죠.

나 유해한테 당해서 나도 유해한다라는 글이 밑에 있던데 그런 분들이 차라리 인간적이죠.
그분 얘기도 보니까 계속 쫓아오면서 털었다던데. 완전 개아들같은 짓이죠. 


가끔 보면 자기가 무슨 협객인줄 착각하는 유해.

자기가 무슨 기사라도 됀듯 착각하는 유해.


개념좀 잡으시길. 현재 유해는 단지 강도에 살인범일 뿐입니다.



 밑의 글은 사략해적에 대해서 좀 참조할만한 글입니다 ( 네이버 사전에서 발췌 )

 한편, 13∼14세기 이후 발트해(海) ·북해 ·영국해협 방면에서도 독일의 한자 제도시(諸都市) 및
이탈리아 제도시의 상인을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연안 제국(諸國)의 해적이 
출몰하였으며, 그 중에는 부(富)를 갈망하는 국왕이나 제후(諸侯) ·기사(騎士)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한자 상인은 자기방위를 위해 선대(船隊)를 조직하여 무장하거나 호위함대를
 거느렸는데, 상선의 무장화는 무력행사를 용이하게 하고 상업의 독점을 둘러싼 제국과 제도시 
간의 분쟁을 야기시켜 이 해역의 전쟁상태는 끊일 날이 없었다. 

상비군이 없는 제국은 해군력 보강을 위해 민간선에 사나포(私拿捕)를 인정하는 허가장을 부여하고,
또한 외국인으로부터 약탈이나 몰수의 손해를 입은 자에게는 정부가 보복장을 수여하여 자력으로 
상대국의 선박을 나포하여 손해를 보상케 하는 보복행위가 널리 행해졌다. 그래서 이 합법 ·반합법
(半合法)의 약탈은 해적행위를 더욱 조장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은 당시 신세계를 지배하고, 제3국의 진출을 무력으로 배제하고 있던 
에스파냐의 독점무역을 타파하기 위해 미국의 식민지 도시를 약탈하고 보물선을 나포, 약탈하였으며, 
에스파냐 측도 이에 응수함으로써 양국은 준(準)전쟁상태에 있었다. 노예상인 호킨스나 사나포 선장 
드레이크 등은 에스파냐 국왕의 재보(財寶)를 훔쳐 해적으로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으나, 영국인은
이들을 영웅으로 찬양하였다. 이를 모방하여 사나포 원정을 시도하는 자가 속출, 1588년 마침내 
무적함대의 내습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당시 가톨릭국인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혁명을 추진하고 있던 네덜란드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신교도 외에 제국의 해적들이 모여들어 바다 거지(제 고이센)를 조직하고 에스파냐의 선박을 공공연히
 나포하고 약탈하였다. 17세기 초에 평화가 회복되고 유럽 해역의 평화가 확립되자 실업군인(失業軍人) 
·선원 ·해적 등은 카리브 해역에 대거 이동하여서 인도의 작은 도서들을 점거하고 에스파냐의 무역선이나
도시를 습격하였다. 에스파냐 측은 이를 버커니어(buccaneer)라고 하여 증오했으나, 그들은 마침내
‘해안의 형제’라고 하는 반(反)에스파냐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강력해졌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본국 정부는 그들에게 사나포 특허장을 주는 등 음양으로 그들을 도와 
식민지 획득에 이용하였으나, 이에 성공하자 더욱 광포해진 버커니어를 진압하기 위해 군함을 파견하는
등의 조처를 취했다. 또한, 17세기 후반 영국 정부는 버커니어의 수령 헨리 모건을 자메이카 부총독에 
임명하여, 해적진압을 담당케 하였다. 이와 같이 일시적으로 국가권력의 지지를 받았던 버커니어는 
서인도 해역에서 추방되어 북아메리카 해역, 마다가스카르섬 주변, 인도양 ·홍해(紅海) 방면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인류의 공적’으로서 제국(諸國) 정부의 추궁을 받게 되었다.

17세기 말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남중국해 ·페르시아 해안 등에 겨우 잔당이 여명(餘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해적은 완전히 쇠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