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앙은 사나운 표정을 한 채 칼을 내려놓았다.
후작은 가만히 그의 칼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러시는지? 범인이 분명하잖습니까?"
그러자 후작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닥쳐라! 당장 네 방으로 꺼져버려!"
단박에 욕을 들어먹은 율리안은 인상을 확 찌그리며 후작의 옆을 지나쳤다. 그리고 후작의 등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더 이상 이런 대우를 참을 수 없군요. 당신이 지어준 이름... 이제부터 잊어버리겠습니다."
후작은 놀란 얼굴로 돌아섰지만 율리안은 그대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가방에 필요한 짐을 가득 채워서는 집을 빠져나갔다. 중간에 동생이 달려와 매달렸지만 그는 그 손을 뿌리쳤다.
 '너와 나 사이는 처음부터 잘못 되있었어.'

 집을 나선 율리안은 약간 후덥찌근한 밤거리에서 잠시 방황했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이 길거리를 혼자서 걸어본 적이 있던가?
 '젠장... 아무 준비도 안했잖아..'
약간의 돈이 있었던 그는 다짜고짜 세비야의 가장 붐비는 거리로 향했다. 다름아닌 술집과 매춘굴이 즐비한 홍등가였다.
창녀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그에게 달라붙었지만 그는 간단히 뿌리치고 가장 가까운 술집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아직 그도 소년티를 갓 벗은 남자인지라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서옵쇼~!"
안에서는 바텐더가 손님을 맞으며 크게 소리쳤다. 율리안은 바텐더에게 다가가서는 술을 한 잔 주문했다.
 "레드 와인 발렌시아 산으로."
그러자 바텐더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이내 만면에 미소를 가득 채웠다.
 "쿡쿡.. 손님 저희 집에는 크흡.. 그런 비싸고 고귀한 술은 큭큭.. 흐읍~! 없는데요~"
바텐더의 조롱에 술집은 웃음소리로 더욱 시끄러워졌다.
 "푸하하하하하!!!"
 "이런 곳에서 와인을 찾으시다니~ 어디 고귀한 집 아들이신가? 큭큭큭"
순간 율리안의 얼굴은 술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욱 붉어졌다. 자신을 조롱한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율리안은 분노에 치를 떨며 검을 뽑아들었다.
 "이것들이 감히!!!"
 "어어~~ 어쭈! 감히 칼을 뽑으셨겠다?"
바텐더는 당황해서 손을 내젓다가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식사용 나이프를 집어들고는 율리안을 향해 던졌다.
율리안은 어렵지 않게 피하고는 그대로 바텐더의 목 옆에 검을 꽂아 넣었다.
 "조심해라. 언제라도 네놈 모가지는 떨어질 수 있는거니까."
다시 검을 회수해서 검집에 집어넣은 율리안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바텐더 옆에 동화 한개를 집어 던지고는 그대로 술집을 빠져나갔다. 그새 어느 정도 시원해진 밤바람이 그를 맞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