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배에 부딛힌 것

 

해가 높이 뜬 한낮, 나는 한가로이 이물에 앉아 지나가는 배들을 구경했다.

 

그중에서 제일 압권은 클리퍼였는데,

 

마스트가 4개나 달린 유선형의 배는 무척이나 거대하고 위풍당당해서,

 

내가 탄 바사는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에이미, 저런배는 누가탈까."

 

"아무래도 거상(巨商)이나 일국의 실력자 들이겠죠."

 

각 마스트의 끝에는 길다란 상징기가 바람에 나부끼며 선수에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잘도 나아간다.

 

길다란 클리퍼가 바사옆을 지나가자, 파도와함께 바람이 일었다.

 

"굉장해."

 

"그러게요."

 

 

 

...

 

사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따끔씩 파도가 배에 부딛히며 내는 자잘한 소리나, 선원들이 돌아다니는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이물 너머의 바다는 얼마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게 시커멓다.

 

그 위로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를 기른 17세의 여자애 하나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이 가문도 예전엔 명망있는 가문 중에 하나였답니다.'

 

이마와 볼에 주름살이 가득한 늙은 집사는 저택에 물이스며 갈라지는 박공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일일 뿐이었다.

 

지금 남은 거라고는 비가 많이 오면 새곤 하는 낡은 저택과, 그 앞에 조금 딸린

 

잡초가 자라는 정원뿐이었다.

 

-턱

 

"아."

 

조용해지니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그 많은 생각들을 깨고, 무언가가 큰 물체가 해류에 떠다니다가

 

이물에 부딛혔다.

 

그것은 이리저리 얽힌 해초 다발이었다.

 

그 위에는 작은 게 몇마리가 타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타고있던 해초더미가 배에 닿자

 

재빠르게 배로 옮겨 탔다.

 

"이런, 잘됐다."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어느세 키를 묶어두고 제논이 와 있었다.

 

그는 난간까지 올라온 작은 게 한마리를 칼로 집게발을 떼어내고 입에다가 넣었다.

 

그리고는 연신 우지직 소리를 내며 갈고리가 달린 장대로 해초다발을 건져다가

 

갑판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갑판에는 곧 수십여마리나 되는 생물의 유생들이 생겨났다.

 

파도에 떠밀려온 검고 푸른 해초들은 많은 생물을 같이 데려왔는데,

 

작고 붉은 게에서 부터 푸른 새우, 따개비들이 그것이었다.

 

새우 몇마리가 햇빛에 빛나는 무지갯빛 포말을 터뜨리며 팔짝팔짝 뛰었다.

 

"이게 다 뭐야."

 

에이미는 멋모르고 뛰어오다가 운 없는 작은 생물들을 몇 밟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도 아랑곳 하지않고 통통하게 살이오른 새우 몇마리를 집어들었다.

 

"저녁 스프에 넣어야겠다."

 

항해사 겸 갑판장 제논은 그 중에서도 호두알만한 물고기의 알집을 찾아냈다.

 

"선장, 이거 한번 맛을 봐요. 이게 바다의 별미중에 하나지."

 

그는 반을 떼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넣고는, 나머지 반을 나에게 내밀었다.

 

하도 그가 태연하게 먹기로, 나도 멋모르고 입에다가 집어넣고 천천히 씹어봤다.

 

"어떻습니까, 선장."

 

"별 맛은..."

 

사실 별 맛은 없었다.

 

간간한 소금기가 배인 물고기의 알집은 다시마의 냄새가 강하게 났다.

 

조금 씹다보니 희미하게 고소한 맛도 나는것 같았다.

 

그러나 점액질의 알껍질은 비린내가 조금 났다.

 

"하하, 선장은 아직 뱃사람이 되려면 멀은것 같소."

 

 

...

 

 

 

"도버가 다 와갑니다."

 

제논이 땡땡 종을치며 크게 외쳤다.

 

우리가 줄곧 해안선을 따라 왔기로 도버가 어딘지 눈에 띄게 차이가 없었지만,

 

예전부터 도버는 가까운곳이라 항해학교에서도 자주가본 나는

 

미묘한 해안선의 차이와 느낌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항구가 가까워 짐에 따라 갈매기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갈매기들은 끝이 검은 날렵한 날개로 배들 주위를 선회하곤 했다.

 

"이제 소금만 갖다주면 되는건가."

 

나는 앉아있던 나무 상자에서 일어났다.

 

낮은 돛줄에는 바람에 정어리의 저민 살코기가 빙글빙글 돌며 마르고 있었고,

 

햇빛에 뜨거워진, 실에 꿴 새우들이 벌겋게 되여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얘들아, 나와라. 돛줄 정리하고 하역할 준비해!"

제논이 항구가 보이자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하나둘씩 점으로 보이는 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땡땡땡

 

근처를 지나가는 배들에선 종소리가 들리고,

 

여러마리의 갈매기들이 높은 소리로 울며 배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내 근처 구석에 놓인 나무 물통 옆에서는

 

운좋게 살아남은 붉은 게 한마리가 거품을 복작복작 내고 있었다.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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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추천박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