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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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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네덜란드의 경제에스파니아에 의해 포르투갈이 합병당한 1580년 시점에서 보면 왕실이 직접 경영하는 고아-모잠비크,고아-콜롬보,고아-몰루카 제도가 있었고,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사개인 업자에게 운영을 맡기는 이권 양도 방식을 위주였습니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은 고아-말라카-마카오-일본 항로였는데 그 가운데 특히 마카오-일본 항로가 가장 수익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항로들은 수익성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고요.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라는 막강한 적들이 진입해 들어왔었는데, 17세기 네덜란드에 의해서 혹은 지방 세력에 의해서 이전에 얻었던 많은 거점들을 하나하나씩 상실해 가는 쇠락의 세기가 되었습니다. 1612년 시리암 항구의 상실로 버마와 인도 사이의 교역 및 관세 통제가 불가능해졌고, 1622년에는 잉글랜드와 이란 연합 함대에게 호르무즈를 빼앗겼는데, 흔히 거론되듯이 이 사건이 포르투갈 교역의 끝은 아니지만 포르투갈 해외 사업의 전체 구조를 크게 교란시킨 것은 분명합니다. 결정적인 쇠퇴의 전환점은 1630년대였습니다. 1632년 갑자기 후글리를 상실해서 벵골과 교역이 쇠퇴한 것은 포르투갈의 아시아 내 교역에 심대한 타격을 가해서 살론의 칸디도 상실했는데 이곳은 곧 네덜란드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에 의해 고아가 포위되는가 하면 가장 수익성이 높았던 중의 하나인 일본에서 포르투갈 상인들이 완전히 축출당하고 말았죠. 최종적인 결정타는 1641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점령이었습니다. 이제 네덜란드는 마음 놓고 아무 곳이나 공격하는 지경이었고,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현지 세력들도 포르투갈을 버리고 네덜란드와 손을 잡았습니다. 콜롬보1656년,자프냐,나가파티남,투티코린1658년,코친1663년,콜람,카나노어1660년대 초 등이 네덜란드 편으로 넘어갔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거점들을 모두 상실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에스타토는 비록 아프리카로부터 마카오까지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기는 하지만 중간에 텅비게 되어,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영향으로 포르투갈의 영향력은 크게 상실하였고 끝내는 쇠퇴을 하지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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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