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네를 맞이한 건 세찬 바람이었다. 내려가는 속도만큼 바람은 따갑게 그녀의 얼굴을 찔러댔다. 장갑을 꼈음에도 줄을 잡은 손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웃음이었다.
 막 밧줄을 잡고 오르려던 해적의 얼굴이 크게 확대되는 순간, 차가운 빛이 허공을 갈랐다.
 “으악!”
 어깨를 베인 해적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에이레네는 갑판에 안착했다. 다른 한 명은 에이레네와 부딪혀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난데없이 사람이 위에서 떨어지자 해적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키 작은 여자뿐이라는 걸 알자 마구 웃어대더니 무기들을 꺼내서 에이레네를 겨누었다.
 “더러운 것들...”
 에이레네의 입에서 이탈리아어가 나왔다. 해적들이 듣든 안 듣든 상관없는 듯 했다. 
 “나는 미네르바... 아테나 여신께서 수호해 주신다. 너희 같은 더러운 놈들이 건드릴 사람이 아니야.”
 마치 주문을 외우듯, 에이레네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레이피어가 앞으로 들렸다. 도끼를 든 해적이 그녀의 앞으로 오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포격이 들렸다. 해적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에이레네 역시 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카락 한 척이 그들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돛대에는 잉글랜드의 성 조지기가 휘날렸고, 바람을 듬뿍 받은 돛에는 거대한 뱀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저건...?”
 에이레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해적들의 시선은 온통 그 쪽으로 쏠려 있었다. 다른 한 척은 카락을 막기 위해 선회를 하기 시작했다. 
 “흡!”
 심호흡을 한 에이레네는 해적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캘버린 10문의 일제사격은 굉장했다. 명중탄은 얼마 없었지만 거대한 물보라가 해적선 주위에서 치솟았다.
 “좋아좋아. 재장전! 2탄 발사하고 접현한다! 화승총은 준비됐겠지?”
 “네!”
 “감히 요르문간드가 있는 곳에서 해적질을 할려고 하다니. 불쌍하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빠르게 장전을 했다. 화승총의 심지가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선장님! 상선에서 백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뭐야! 벌써 시작인가? 젠장. 모든 대포는 왼쪽의 배를 조준해라!”

 왼쪽에 있는 해적선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대포를 피하기 위해서는 도망가거나 접근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곧 대포가 다시 불을 뿜었고, 아까보다 많은 대포가 해적선을 관통했다. 그에 대응하기라도 하듯 화살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웃으면서 화승총을 들었다.
 “화살이라... 언제까지 그런 구시대의 유물을 쓸 참이지? 전원 조준!”
 10여정에 달하는 화승총이 해적선을 향해 겨누어졌다.
 “미안하지만, 호드는 장님임에도 싸움의 신이거든?”
 해적선은 계속 다가왔다. 갑판에서 갈고리를 준비하는 해적들의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잘 가라.”
 그의 얼굴에서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형도 갈려구?”
 요르문간드를 정비하고 있는 제임스에게 필립이 다가왔다.
 “너만 보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그나저나 또 그 생각하냐?”
 필립이 제임스를 툭 치며 물었다. 제임스의 손에는 신형 머스켓 총이 들려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솔직히 난 그 때 장사한다는 핑계로 해적들 때려잡은 게 더 재밌었는걸.”
 “그야 그렇지. 뭐 좋아. 그런데 넌 그것보단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거 같은데?”
 “형!”
 제임스가 험악한 기세로 필립을 쫓아갔지만 필립은 유유히 부두로 나가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슬라이프니르 조심해서 다뤄. 상선을 찾는 건 너에게 일임하겠다. 좌표 보는 법쯤은 숙달돼 있겠지?”
 “옛 써! 걱정하지 마십쇼!”
 얼마 후, 세 척이 선단이 런던을 출항했다. 배와 대비되는 큰 돛을 가진 작은 배는 알펜의 뒤에서 예인되었다. 그리고 그 선두함의 돛에는 거대한 바다뱀이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