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쓰고 법정물에 전념해야겠다.

+ 제발  피드백좀... 

 

 

 

 

 

[시작]

 

 

 

=유의사항(2)=

 

 

Pick a Card(카드 뽑기)

 

 

기록담당이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글이라고 뭔가 극적 반전이나 재미요소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추적=

 

Audacious Charge(대담한 돌격)

 

 

기억과 자아, 이 두가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아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철학자가 되거나 SF영화감독이 된다. 이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자운의 한 의학박사는 항상 말을 하기전에 자기이름을 외친다. 안 그러면 까먹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학설이 데마시아에서도 통용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짜오는 비록 사건의 목격자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상황을 잘못 알았거나 의외로 대담한 사기꾼이고 짜오 자신이 사실은 그냥 술버릇이 엄청나게 고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괴상한 도시에서 뭘 잘못먹고 일어난, 그냥 헤프닝. 머릿속에서 온갖 잡념들이 무지개색 총 공격을 한다. 하마터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하루종일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뻔 했다. 짜오를 구한것은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룸 서비스. 작은 비스킷만 두어개 집어먹고 팁을 건넬까 하는 차에 직원이 쪽지를 건넨다. 발신인 - 경관. 호텔 건물의 커피숍에서 봅시다. 시간은... 앞으로 십 분. 채비를 하고 내려가니 그 여자가 있다.

 

"왔구나."

"무슨일이지?"

"그냥, 신 짜오의 탐문수사는 잘 되가나 해서."

 

가볍게 웃고있다.

 

"대충은 알아냈지만 정보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누군가 나를 노리고 계획한 모양인데 자세한건 조사를 더 해야할것 같다."

"힘들겠네. 인적 정보망도 없고 본국의 첩보지원을 받기도 곤란한 지역이니까. 그런데 공무때문에 온거면 자운 당국의 도움을 요청하는게 어때?"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선 별도의 조치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여자를 찾는것 까진 내가 알아서 하고 자운 당국의 양해를 구하던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자. 란 말이지."

 

자세를 고치며 창 밖을 바라보는 케이틀린, 짜오의 시선도 창 밖으로 따라 나서다 경관의 얼굴선에서 멈춘다. 가만보니 꽤...

 

"부탁이 있어."

"말 해봐라."

"공조수사 하자."

"뭐?

"같이 찾자고. 네가 찾는다는 여자, 그리고 내가찾는 지명수배자. 코드 'N' "

"특별한 이유라도?"

 

경관은 대답대신 권총을 꺼내놓는다. 명쾌하고 단순한 구조의 리볼버. 6발중 4발은 장전 해 두었고 총구에서 약간의 화약냄새가 난다.

 

"나머지는?"

"날 공격한놈 허벅지에 박혀있겠지. N 하고 관계있는 놈은 아니지만."

"신변의 위협 때문에 내 도움을 받겠다는것 같은데."

"나도 내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지만 나보다는 데마시아 최고의 호위무사가 상대를 더 깨끗하게 제압할 수 있을테고 그러면 정보를 캐기도 수월할테니까. 너도 혼자 조사하는거 보단 나랑 같이 다니는게 더 좋을텐데? 얼른 찾고 본국에 귀환해야 할거아냐."

 

일리있는 말이다. 이 여자와 함께 행동하는 것은 여러모로 합당하고 경제적이다. 짜오는 그런의미에서 술병을 꺼내놓는다.

 

"뭐야 이게."

"그 여자가 나한테 먹인걸로 추정되는 음료다."

"현장에서 건진거야?"

"그렇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 추적해야할지는 모르겠다."

"너 혹시 잘 아는 화학자나 성분분석을 의뢰할 연구소 같은거 아는데 있어?"

"하나 있긴 하다만..."

"짚이는게 있어. 가보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 다시 연구단지로 향한다. 정확한 위치는 신지드의 개인 사무실 겸 연구실. 조용히 동행하는 가운데 데마시아의 무사가 먼저 말을 건넨다.

 

"케이틀린. 네가 추적하는 사람은 어떤 혐의를 받고 있지?"

"연쇄살인."

 

스쳐지나가는 화학물질 생산, 재처리 시설들 만큼이나 스산한 대답니다.

 

"필트오버에서만 여섯. 자운이나 녹서스, 데마시아의 미결 사건 가운데에도 그놈 작품이 있을거야."

"지독하군."

"피해자들은 20~30대 남성인걸 제외하고는 직종이나 주변인과의 관계, 사생활에서도 연관점을 전혀 못 찾겠어. 수사기관을 기만하기 위해 사건 사이에 관계없는 시체를 끼워넣은 것도 아닌듯 하고... 내 생각의 일종의 실ㅎ..."

"일종의 뭐?"

"아냐. 아무것도."

"생각을 정리하면 차차 이야기 하기로 하고 넘어가자. 다 왔다."

 

일전에 짜오는 지나쳤지만 케이틀린은 입구에 걸린 명패를 확인하고 씁쓸하게 웃는다. 과연 짜오의 표정이 나빠질만한 이름이다. 사무실 주인은 데마시아인이 세포분열에 성공하여 필트오버의 경관을 만들어왔다며 빈정거렸다. (데마시아인들이 단세포, 아주 단순한 유기물질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졌다고 조롱할때 가끔 쓰는 표현이다.)

 

"미안하지만 필트오버 당국에선 나와 관련된 혐의를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법률 절차의 진행을 종료했다."

"그 건 때문에 온거 아냐. 이 남자에게 확실한 전문가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날 여기로 모셔왔다고."

"유감스럽지만 제대로 찾았군. 상담은 안에서 하지. 차는 뭘로 하겠나? VX?(신경가스의 일종) 아니면 새로나온 아황산..."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신지드는 말한것과 달리 따듯하고, 향이 부드럽고, 짜오도 마실 수 있는 아이오니아 산 차를 내놓았다.

 

"너, 독극물의 성분분석도 할 수 있냐?"

"여기선 힘들지만 회사 연구소라면 가능하다."

 

짜오가 되묻는다.

 

"회사? 너, 독극물 장사는 개인적으로 하는거 아니었냐?"

"데마시아에서 시판되는 주류의 30%, 녹서스 60%, 자운, 필트오버, 기타 도서지역의 40%는 내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경영에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있지만 상품개발이나 여타기술분야에서는 나도 꽤 심혈을 들이붓고 있다. 몰랐나보군."

 

신 짜오는 원래 좋아하지도 않는 술이지만 이참에 아주 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신지드는 짜오가 가지고 있던 술병을 낚아 채더니.

 

"이, 이봐!"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섬세하게 혀를 움직인다.

 

"보통사람이 마셨다면 심박수가 빠르게 상승하고 전신에 통증을 느끼는 동시에 강한 환각증상에 시달리다 사망하겠군. 경관. 이걸 몇명이나 마셨지?"

"확실하게 죽은 건 여섯. 확실하게 살아있는건 여기 짜오 하나."

"너희들, 혹시 같이 수사중인가?"

"어. 짜오하고 나. 일단 두 명."

"나도 팀에 합류해야겠다."

"협조해 주겠다면 나쁠건 없지만 어째서?"

"이 술. 회사 상품의 라벨이 붙어있다. 내가 시장에 내놓는 술과 독극물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양 쪽 모두 신뢰에 타격을 입는다. 기업보호 차원에서 범인을 처리하고 싶은데. 보아하니 너희 둘 다 여기 영주권자도 아닐테고 피차 일을 확실히 마무리 지으려면 협조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일리있는 설명이므로 짜오와 케이틀린.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세 사람은 회사의 연구소. 즉 음주문화의 연구에 한창인 본 연구소를 찾아왔다. 처음에 요원들은 모회사에서 인터뷰 자료의 취득을 위해 챔프를 초빙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류 샘플의 성분분석을 의뢰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이 차마 말을 붙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다들 자기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두 시간정도가 흘렀고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반적인 주류에 기능하는 액상 독극물이다. 효과는 아까말했던 것과 동일하고."

 

상세한 구성물질과 비율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진다. 짜오는 단순히 '매우 위험한' 물질 이라는 선에서 상황을 이해했다. 케이틀린 역시 독극물이나 실용화학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짜오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가지 사실을 더 알고 있다.

 

"잠깐 신지드. 코드 'N' 이라고 했어?"

 

케이틀린이 쫓는 연쇠살인범의 코드와 동일하다.

 

"핵심원료다. 보통 이 코드로 표시하는데."

"아무래도... 짜오랑 나는 같은 사람을 쫓은 것 같다."

 

경관이 상황을 정리한다. 20~3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살인에 이용된 독극물의 구성물질 가운데 비교적 유통경로가 한정적인'코드 N' 의 공급망을 추적하던 케이틀린은 자운까지 흘러들어왔다. 그 와중에 유사한 수법으로 공격당했지만 아직 살아있는 신 짜오를 만났다. 처음에는 각각의 사건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 가운데 공조수사를 요청했고, 정보를 정리하다 보니 코드 N 이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즉 짜오에게 술을 먹인 그 여자와 코드 N의 살인범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게 케이틀린의 결론. 애초에 코드 N도 발견된 독극물의 핵심원료를 따서 연쇄살인범에게 붙인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케이틀린, 그 'N' 이라는 독극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주 적은건 아닐텐데 어떻게 범위를 더 좁힐 생각이지?"

"코드 N은 자운에서도 인가를 받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한 생산, 유통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범위는 애초에 넓은 편이 아니야."

"금방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경로의 이야기고 비 합법적인 경로까지 염두하면..."

"암거래상들까지 조사해야겠군."

 

갑자기 화학자가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한다. 신 짜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웃음소리다.

 

"뭐냐."

"나는 뻔히 아는 사람을 암거래상이라고 하니 참을수가 있어야지."

 

자운에서 코드 N을 취급하는, 취급할 줄 아는 암거래상들은 신지드 본인의 하수인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신지드가 관계당국에 알리지 않고 사업을 꾸려나가고 싶을 때 동원하는 친구들이니 자기 사업을 방해하는 그 여자를 찾는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될거라며 설명을 마무리한다. 범위가 좁긴해도 인가받은 업자와 암거래상을 모두 조사해야 하니 우르르 몰려다니면 효율이 떨어지는 상황. 패를 나누기로 한다.

 

"내가 업자들을 조사하겠다. 어차피 여기 약팔이들은 다 내 손아귀의 얼간이들이다. 'N' 과 관계 있는 놈이 있다면 바로 연락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암시장은..."

"내가 처리 해 둘테니 너희들이 갔다와라. 경관, 너는 이참에 자운의 암시장을 구경하고 싶을텐데? 옆에 있는 데마시아놈을 경호원으로 데려가면 장기를 적출당할 염려도 없을테고. 잘 찾아가기나 해라."

 

신지드가 암호화된 글을 몇 자 써준다. 그리고 휴대용 통신기기도 건네준다. 패는 두 패. 케이틀린과 신 짜오는 암시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친절한 화학자가 첨부한 좌표를 참고했을 때 암시장은 시 중심가 지하의 하수도를 따라 주욱 늘어서 있다. 자운의 하수도라니. 뭐가 튀어나올지 흥미진진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다행이도 하수도는 짜오의 예상범주에 해당하는 외관이다. 안은 어둡다. 시설관리업자들이 설치한 백열등을 따라 발등에 튈까 걱정되는 물이 흐르고 있고 양 옆으로 형성된 좁은 보도. 그 사이사이 갈림길이나 통로가 비교적 넓은 구획, 도시 개발정책의 변화로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배수관에 좌판을 깔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시장이라고 해서 호객행위나 광고 같은 번거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 하수도는 아주 적극적이며 금지된 수요를 쫓아 흘러들어온, 진짜 자운의 하수도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다. 더럽다기 보단 위험한 무언가의 수요.

 

"여길 조사하면 자운, 아니 발로란 전체의 더러운 커넥션을 캘 수 있을것 같다."

"데마시아도 포함하는건가?"

"아마 이어질거야."

"그런데 신지드가 말한 가게가..."

"검게 칠한 개과동물의 머리를 걸어놓은 중심수로 열 네번째 좌판."

"저기로군."

 

늙은 남자가 졸고 있다. 툭 건드려서 깨우고 신지드가 작성한 문서를 보여준다.

 

"코드 N 을 구매한 사람들의 명단을..."

"어이구, 아무리 그분 명령이래도 옆에 박음직하니 쫄깃하게 생긴 여자를 놔두고 남자새끼랑 말을 섞..."

 

쫄깃하게 생긴 여자는 총을 꺼냈고 남자는 이미 노인의 배를 걷어찼다.

 

"농담한번 했다고 뒈질때 까지 때릴.."

"불어."

"N은 확실한 물질이지만 첨가형태에 따라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쳐야하고 관리에 조금만 소홀하면 무해화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쪽에선 실패작으로 본다구. 당연히 쓰는놈도 거의 없고. 그리고 이 미친놈들아. 누가 이런데서 물건 사가면서 영수증을 받아가겠냐."

"인상착의가 기억나는 사람은?"

"딱 두명이다. 여기서 코드 N 을 산 새끼는. 한놈은 N을 손에쥐자 마자 자기가 먹길래 그냥 수로에 던져버렸고... 그 다음은... 모레쯤 오라고 했다. 후드를 눌러써서 얼굴은 모르겠고, 그래. 목소리는 여자 같더라."

"그 여자... 언제 온다고?"

"모레."

 

화학자, 경관, 무사는 다시 모였다. 화학자는 취급인가를 받은 업체나 학자들은 N을 빼돌린 기미가 없다고 한다. 암거래상쪽은 수요가 있었다. 날짜에 맞춰 잠복을 시작하기로 하고 공조수사팀은 임시 해산한다. 일종의 휴식기간. 신지드는 연구소로, 케이틀린은 다른 볼일이 있다며 작별인사를 남겼다. 다시 혼자남은 짜오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선의 부조화를 느꼈다. 어색하다. 원인은 하늘. 하늘이 파랗다. 데마시아나 발로란 여느 지역에서 그러하듯 높고 깔끔하고 파란 하늘. 비가오는 날 과 각 공장의 가동 대기시간이 맞물려야 잠깐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다. 짜오의 눈에도 이 일반적인 하늘이 신기하다. 앉아서 지켜본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지난일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지나가는 구름처럼, 그냥 지나갈 사건처럼 다가오고 사라진다. 사실 짜오가 살아오면서 겪어온 일들은 가볍게 흘려보내기 뭣한 일들도 있다. 녹서스에서 '수용' 당했던 시기부터 시작해서 데마시아인 자격으로 참여한 크고 작은 분쟁 등등. 마음속의 무언가를 희생하기도 했고 희생 당하기도 했다. 흘려보낼 수 없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실 이번 'N' 의 문제는 그냥 흘려보냈어도 될법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N' 이 연쇄살인범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걸 알고 있으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짜오 자신이 나서지 않았더라고 유능한 경관이나 교활한 화학자가 사건을 매듭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데마시아의 적이나 하등 다를게 없는, 이 기묘하고 괴상한 도시에서 짜오 자신은 어떤 여자를 쫓고 있는건가. 막연한 의문. 그 이외의 이유는 잘 모른다. 그러니 N에게 뭔가 사정... 아니다. 그는 연쇄살인범. 기정 사실로 봤을때 불필요한 관계에 얽혀 자기자신, 나아가 데마시아의 명예에 누를 끼쳐선 안된다.

 

이런식으로 머릿속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화학자는 자기 회사의 요원들을 잠복시키겠다고 했으나 경관과 무사는 한사코 직접 'N'을 붙잡겠다고 나섰다. 신지드는 그런 두사람에게 냄새입자도 상당량 걸러내는 방독면을 건넸다. 홍보용 시제품.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변장효과도 있고. 바로 그날 오후부터 자운의 하수도 암시장에는 장사꾼 두 명이 더 자리를 잡았다. 물건을 파는 일 보다는 반대쪽 가게에 손님이 오나, 안오나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두 사람. 방독면 음성진동판 너머로 대화가 오고간다.

 

"괜히 나섰나봐. 여기 정말 기분나쁘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N'을 생포하는것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나도 명색인 경관인데 그럴수야..."

 

눅눅하게 스며드는 공기는 두 사람에게서 대화할 의욕마저 앗아간다. 방독면이 상당히 걸러주고 있긴 하지만 자극적인 주변공기의 영향으로 다소 몽롱하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지가 둔감해지기 시작하고 앉은자세로 졸다 깨기를 반복할 무렵 송수신기를 통해 화학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내 부하가 장사를 시작했다. 'N' 이다."

 

정말로 누군가 건너편의 암거래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머릿속으로 공격신호가 울리고 심신이 가벼워진다.

 

"짜오 혹시 모르니 은거지를 추적..."

 

데마시아의 무사는 이미 건너편으로 도약하여 상대를, 여자일 확률이 매우 높은 용의자 코드 'N'을 기절시켰다. 그리고 송 수신기의 통신채널을 열었다.

 

"목표를 제압했다. 어디로 이송할지 결정해라."

 

신지드와 케이틀린의 한숨소리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고 'N'은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신지드의 사무실로 연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케이틀린이나 신지드는 짜오가 갑자기 공격에 돌입했을때 서툰 추적자와 시끄러운 목표물이 꼴사나운 활극을 벌이는것은 아닌가 몹시 걱정했다. 잘못해서 코드 N이 쏟아지거나 누군가 들이마시기라도 하면 처리해야할 서류업무가 무시무시하게 늘어나니까. 짜오는 생각 이상으로 깔끔하게 목표물을 제압했고 덕분에 아무 문제없이 사무실로 데려올 수 있었다. 약 한시간 정도가 더 지나 'N'은 정신을 차렸다. 낮잠이라도 자다 일어난 듯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주위를 둘러보앗다. 인상착의는 짜오가 희미하게 기억하는 부분과 동일했다. 여성.

 

"이정도 설비면 왠만한 건 다 만들 수 있겠네요."

 

건방지고, 긴장감없는 분위기.

 

"코드 N을 가지고 뭘 하려고 했냐?"

"당신, 여기 주인이죠? 그럼 코드 N의 시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비슷한 작업을 좀 했어요."

"뻔뻔한년. 내 관할구역에서 여섯이나 해치워놓고 뭐? 작업?"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코드 N. 그 여자가 짜오를 빤히 바라본다.

 

"이제 찾은것 같아요."

"짜오. 너 저여자 알아?"

 

자운의 주점. 아니 훨씬 오래되고 희미한 기억 어딘가에서 불분명한 심상이 부상한다. 짜오는 일단 침묵한다. 말은 신지드가 한다.

 

"너, 자초지종을 차분하게 설명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안 그러면 저 싸움꾼이나 필트오버의 경관이 내가 말릴틈도 없이 널 해칠 가능성이 급격히 상승했다."

"지루할텐데..."

 

뜸을 좀 들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긴 이야기.

 

"녹서스는 아주 좋은 나라에요.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이고, 용감하고 필요에 따라선 훨씬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저같은 열성인자는 수용소에 가두고 국가에 공헌하게할 방법을 연구할 만큼 대범하죠. 그런데 먹을건 잘 안챙겨줬어요. 항상 배가고파서 그런지 몸매도 다 망가지고 피부도 상해서 다른사람 눈초리가 부끄러웠는데 다행이도 수용소는 항상 어두워서 괜찮았어요. 자기 손끝이 어디있는지도 잘 안보일 만큼. 어차피 움직일 기운도 없고, 움직인다고 할 수 있는일도 없으니까 다들 그냥 누워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날인가, 간수가 간단한 사회학 실험에 필요한 지원자를 모집했어요. 보상은 식량 배급 두 배."

 

여자는 입맛을 다셨고 청중들은 순간 허기를 느꼈다.

 

"정확한 실험주제는 아마 연구중인 독극물의 식품첨가방식이나 치사량 조절을 위한 성분비 구성. 뭐 그런거였던 것 같아요. 격리시설이 부족했는지 2인 1조로 실험에 참여 했는데..."

 

갑자기 활짝 웃기 시작한다.

 

"실험은 성공했어요. 나머지 여덟명은 계획한대로 치사량의 독에 노출됬을때 모두 죽었거든요."

"잠깐, 나머지..."

"한명은 실험을 거부한 꼴이됬고, 한명은 아주 열심히 협력했죠. 녹색 소스가 들어간 음식은 모두, 자기가 먹어버렸거든요. 처음에는 그 남자가 금방 죽어버릴거라고 생각했는데... 발작을 하긴했죠. 정말 죽을것 처럼. 하지만 그러면서도 밥을 먹더라구요."

 

왜? 화학자도 경관도 무사도 모두 경청하고 있다.

 

"아마 직감적으로 알았을거에요. 이걸 먹은 사람은 죽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 이걸 옆에 있는 사람이 먹게 놔두면 죽는다. 그러니 내가 먹어야 한다."

 

여러가지 유형의 범죄자를 검거한 케이틀린. 케이틀린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소름이 끼치는 것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고 신지드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짜오는? 짜오의 뇌 의식 깊은곳 어딘가에서는 이 이야기에 대해 아주 간결한 의미가 담긴 전기신호를 보내고 있다. - 아니야.

 

"실험이 끝나고 생존자들은 원래 격리된 공동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후의 그분 소식은 모릅니다. 나중에 수용소 지상의 투기장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을때 저도 운 좋게 빠져나왔지만... 저는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안 한, 은인의 얼굴도 모르는 아주 몹쓸 여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수용소는 너무 어둡고, 그분은 말이 없었죠. 처음 'N'이 첨가된 음식이 배급됬을때 딱 한마디 하셨어요. 안된다고."

 

아니야.

 

"수용소를 빠져 나오고 저는 좀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그분을 다시 만나 인사를 제대로 할 요량으로 녹서스식 실용화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분에 대해 아는거라곤 목소리와 코드 'N' 에 대한 특이반응 뿐이니까요. 수용소에서 진행한 실험기록은 말소되어 남은게 없었죠.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걸렸습니다."

 

여자가 짜오를 보면서 허리굽혀 인사한다.

 

"데마시아인. 재밌는데? 저 여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이야?

 

아니야.

 

"제가 아직 무능한 탓에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목소리를 착각해서 무관계한 사람들에게 코드 'N' 을 먹였어요. 그분인지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필트오버에서 여섯. 데마시아에서 둘. 녹서스에서 셋. 자운에서는... 잘 모르겠네요. 생각나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 짜오는 밖을 보고 있다. 말소한 기억이 일부 살아난 날. 코드 'N' 첨가 독글물을 마셧던 날 그 여자를 따라간 이유는 간단하다. 낯이 익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기억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본능' 때문에 술을 마셨다. 하지만... 침묵 사이에 케이틀린이 끼어든다.

 

"더 들을것도 없네. 신지드. 이 년 입좀 닥치게 하고 나 대신 감방, 아니 처형장에 좀 보내줘라."

"기꺼이. 경쟁사 술에다 독을 탔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영업손실을 유발 할 만한 요소는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장사치에게 이런일을 떠넘기는 건 직무유기 같은데?"

"여긴 자운이라. 난 권한이 없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술을 이용해야 의심을 안 사거든요.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 독학이냐?"

"예."

"힘들었겠군. 이제 쉬어라."

 

화학자 A씨가 화학자 B씨를 모시고 나선다. 케이틀린도 따라 나선다. 신 짜오는 갈림길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등 뒤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냐고 묻는다.

 

"모른다."

 

짜오는 자기 기억에서 상처난, 망가진 부분을 봉합했다.

 

"또 실수했구나. 실례많았습니다. 또 뵙... 지는 못하겠네요. 그럼 안녕히."

 

모월 모일. 신 짜오의 몸에 생긴 수상한 상처에 연관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범인은 혐의를 인정했고 동기와 수법에 대해서도 모두 자백했으니까.

 

"아니야."

 

약간 틀린부분이 있다. 정정하겠다. 짜오가 허울좋은 검투사로서 녹서스에 수감되었던 기간동안 그는 용기, 삶을 향한 의지, 강건한 정신력 같이 무사로서의 마음가짐을 구성하는 요소를 거의 모두 잃어버렸다. 하지만 일부 본능만은 끝까지 그 '기능' 을 유지했다. 그래서 배가 고팠다. 충분한 행동력과 도구만 있었다면 투기장에서 해치운 상대방이나 다른 수감자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성적인 의미말고 정말 '섭취' 한다는 의미로. 그래서 먹었다. 코드 N이 함유된 음식은 먹고나면 고통스러워서 미쳐 날뛸 정도로 흉악했지만 배가 부르니까. 배가 고픈것 보단 참을만 하니까 먹었다. 그때 옆에 있었던 것이 사람인지, 짐승인지는 기억마저 가물가물 하다. 애초에 쏟아버린 기억. 정의로운 왕국의 무사가 품고 살기에는 한심한 과거. 그래서 봉합했는데 실밥 사이로 망령이 튀어나왔다. 거의 닳아 없어진 자비심인지, 더 비정한 이기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짜오는 그냥 돌아섰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 끝났다. 추후 케이틀린에게서 필트오버에 한 번 놀러오라는 편지를 받았을때 코드 N의 처형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훨신 나중의 일이다. 임무 수행의 남은 기간동안 짜오는 아이오니아에서 시간을 보냈고 현재 신 짜오, 케이틀린, 신지드 세 사람은 리그 안팍의 자기분야에 충실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낯선 도시 자운에서 겪은 사소한 헤프닝 따위와 관계없이.

 

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범죄수사활극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사건은 이게 전부다.

 

그리고 모회사에서는 개봉할 술을 악용하는 범죄를 예방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는 방식으로 마감 공정을 변경했다. 이처럼 어떤 정보에서도 가치를 창출하는 모회사의 정보처리능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 기록을 마치겠다.

 

 

 

 

 

[끝]

 

 

 

이런거 쓸 시간에 공부를 더했으면 학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