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 강의는 꿈인가

 

 

 

[시작]

 

 

=다양한 견해들 2.=

 

Power Fist(강철 주먹)

 

음주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 발로란의 학자들은 사실 굉장한 이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인간이나 요들같이 현 시점에서 보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지성체 외에도 리그의 도입 이후로 온갖 이세계에서 찾아오신 영웅들에게 그들의 음주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제 3자의 관점에서(그들이 아직 발로란의 문화에 동화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자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 연구기록의 작성을 돕고 있는 요원들은 레넥톤 씨 뿐 아니라 이케시아에서 지내고 계시다 리그에 참가하신 몇몇 지성체... 분 들 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아쉽게도 거절당했지만. 사실은 몇몇 요원들은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눈치였는데 이래가지고는  인터뷰를 진행할 의욕이 있었는지부터 따져야 하는 등, 사소한 문제가 몇가지 있으나 이는 연구회 내부 사정이므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다. 적어도 슈라마 사막에서의 인터뷰는 성공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분은 매우 차분하고 담담하게 질의에 응하셨으나 질문자체가 다소 생소했는지 예상밖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본인의 동의하에) 최대한 요약 하도록 하겠다.


"음주 문화에 대한 견해라... 당신들의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인지도 모르겠으나 학문연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귀하와 귀하의 동료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겠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과거 도서관에서 지켜본 지성체들이나 이곳 발로란의 토착민들이 음주습성에서는 비슷한 요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네."

 

[중략]

 

"자신들 내면에 억눌린 무언가 사소한 감정이나 의향, 욕구를 해방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술... 성급히 일반화 하긴 어렵겠지만 술을 마신 인간들은 대체로 의사표현, 특히 감정의 표출이 적극적인 형태로 변모하면서 개별적인 행동양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 같았네. 더 잘 웃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말이 많아지는 등 말이지. 아마 세부적인 형태는 자네들이 더 잘 알테고. 하지만 나는 그 원인이 술의 생리적 효능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술을 마신다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는 점을 밝혀 두도록 하겠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술을 마셔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 체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라네. 가만, 발로란에 온 이후로는 직접 확인해 본 경험이 없는것 같은데, 혹시 이 점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이 지역의 술을 제공할 의향이 있는가?"

 

요원은 실험 목적의 방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네, 혹시 내 혈족을 만난 적 있는가? 레넥톤, 그 자를 감싸고 있는 사악한 기운이 자네에게서도 느껴지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높 으니 내 직접 '정화' 하도록 하지. 잠깐 가만히 서 있도록."

 

요원은 관리자께서 효과적인 정화를 위하여 수 많은 영웅들에게 '생명과 우주의 순환단계에서 죽음의 단계를 체험하게 해준' 그 무기를 꺼내드는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도망쳤다. 참고로 본 연구원에서는 요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정기 검진 외에도 이와같이 특별한 상황에 의하여 정밀한 검진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별도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확실히 조치 해 두었으니 이 자료를 열람하고 계신 분은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

 

한편, 발로란의 음주문화에 관한 나서스 씨 의 보편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견해와 유사하면서도 더욱 확고한 주관을 가진 의견 또한 접할 수 있었다.

 

" 너희 살덩이들은 의사 표현 행위에 진솔하지 못하다. 정치, 문화적 관습의 영향이다. 다시말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 누적된 결과다. 쉽게 말해 용기가 부족한 게 원인이다. 이건 내가 그동안 연애 컨설팅을 하면서 확인한 자료도 있으니 돈 내면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너희들이 쭉쭉 빨아먹는 술은 살덩이들의 사교행위에 필요한 '용기' 를 보충해주는 연료다. 맛이나 알콜의 성분비 와는 무관하다. 살덩이들은 항상 '계기', 즉 동기부여를 원한다. 술이 그 역할을 한다. 너희들은 종종 술김에 라는 표현을 쓰니까 틀림 없다. 술이 유발한 흥분 상태를 핑계삼아 두려움을 억누른후에 행동한다. 일이 잘 풀리면 진심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일이 틀어지면 착란상태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우긴다. 그러다 뺨 맞으면 아프지. 너희는 물렁한 살덩이니까. 그리고 법정에서 술 핑계가 통할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술을 마셨든 안 마셨든 너희가 하는 행동의 결과는 똑같고 발로란 어디서나 법정은 결과를 중시한다."

 

연구원의 학자들 못지 않게 훌륭하고 짜임새 있는 이 의견은 본 연구원에서 수집한 챔피언 분 들의 사례에서 나타난 행동양식과도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해당 기록을 첨부하도록 하겠다.

 

 

 

 

=Gunpowder=

 

Burst Shot(대구경 탄환)

 

"할 말이 있어."

 

한밤중에 그를 숙소 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잉크 약간, 편지 한장이면 충분했다. 필적도, 내용도 완벽하다. 의심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 없다. 그가 접선지역으로 나타난다면 끝이다. 이 쪽 업계에서는 지금 저자식이 발 디딘 곳을 킬 존(Kill zone), 화력집중구획 으로 부른다. 목표는 단순하게, 설계는 간단하게. 넌 끝이다. 어디 영정사진에서도 실실 쳐 웃나 보자.

 

"누구냐."

 

필적. 편지지의 재질, 코드까지 완벽한 편지였다. 리그에 참가한 이후로는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있던 암호 통신문이 분명한데, 막상 접선지역에는 아무도 없다. 낌새도 수상하다. 지금 발디디고 있는곳이 화력집중구획 일 가능성도 있다. 적들은 내가 발을 떼는 것을 신호로 일제 사격할 소지가 다분할 뿐 아니라 이미 발밑에 선물을 심어놨을지도 모른다. 그렇지않아도 근래의 폭발물은 흑마법만큼이나 지독하니까. 안그래 직스? 하지만 그자식이라면 이런 방식은 안 쓸 것 같다. 그냥 내 숙소를 통째로 날려버렸겠지. 게다가 그 녀석은 내가보기에 폭발물에 미쳐있긴 해도 사리분별은 하는 녀석이다. 가상의 적을 확실히 이해하고 싶다면 좀 더 철두철미하고 정신나간...

 

"죽어라."

 

미친. 대구경 직사화기다. 폭발물은 아닌듯 하고 투사체가 땅에 박히는소리를 들어선 연사능력이 우수한 회전식 기관총인 모양인데, 소음은 거의 없다. 전문가 작품이다. 한 발이라도 맞으면 난 정말로 전설로 남는거다. 죽은 전설. 다행이도 탄환이 날아오는 방향은 한 곳이다. 그리고 이 형편없는 조준능력으로 짐작컨데... 사수는 요들이다. 항상 자기보다 커다랗고 강인한 적을 상대로 싸워왔을테니 정조준의 필요성은 못 느끼고 오로지 화력, 파괴력, 무자비한 폭력성에만 집착했을테지. 유인 단계 까지는 꽤나 성공적이셨지만 전문 암살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지 슬슬 감이 오는데...

 

"어디 숨었어! 튀어나와!"

 

총열에 뭔가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놈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쇳소리다. 오호라. 탄이 떨어지셨나요? 아니면 다른 문제가 생기셨나? 아무튼 가시거리까지만 나와라.

 

"조용히 죽고 싶으면 지금 나와! 안나오면 큰 놈으로 조진다?"

"기꺼이."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한 발. 살점에 박히는 소리가 난다. 쇳덩이만 믿고 까불었겠다?

 

"아이고 아파라. 따가워 죽겠다. 근데 이를 어쩌나? 해독제를 미리 복용해 뒀는데."

"어, 큰일났네."

 

다른 총구를 겨눈다. 규격과 점화장치를 보니 화염방사기다.

 

"[검열삭제]털까지 태워주마."

"그러시던지."

 

슬슬 독이 반응할 시간이다.

 

"아, 어, 엃... 이거 왜. 이래."

"글쎄. 안 죽으면 가르쳐 줄게."

 

진짜로 죽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으니 놈이 깨어나는 대로 심문을 시작해야겠다.

하지만 120분이나 기절하는건 좀...

 

"누구냐 너."

 

묵묵무답.

 

"그래. 그럼 내가 알아내야겠네. 어디보자. 타고 온 로봇은 보통 인간보다 키가 크고 파일럿은 털이 숭숭 난 요들. 요들 치고도 작고 멍청하게 생긴데다 사격솜씨는 개차반. 심지어 파일럿 방호 시스템은 독침 한방에 뚫리는 저질. 이런 삼류 암살자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요?"

"마, 마, 말... 안해."

"어? 로봇에 이름이 써 있네? 트...리...ㅅ..."

"보, 보지마! 그 손 치워!"

"그러지. 그럼 대신 나도 부탁하나 하자."

"뭐, 뭔데?"

 

"트리스티나 [검열삭제]끼 해봐."

"트, 트리스..."

 

말을 잇지 못한다.

 

"좋아 그럼 다른거. 트리스티나는 티모 여자."

"야, 야이 [삭제]야!"

"그래 장난 그만하자 럼블. 이제 대답 똑바로 안하면 니 [삭제]에다 버섯을 쳐박는다. 처음에는 하나씩. 대답이 시원찮으면 한꺼번에."

 

학회와 거주지역을 잇는 음침한 오솔길 옆 숲속 공터에는 거꾸로 매달린 요들과 그를 지켜보는 요들, 그리고 어딘가 비좁은 곳에 넣었다 뺀 듯 한 버섯이 아홉개 정도 보인다.

 

"정리하면 우리 요원을 고문해서 코드를 알아냈고 독은 소환사의 협곡에 심은 버섯에서 채취하셨다? 제법인데? 그런데 너 설마 내가 리그쪽 업무하고 바깥쪽 업무에서 같은 독을 쓸 거라고 생각한거냐? 내가 실실 웃고 다니니까 빙다리 핫바지로 보였나봐? 어? 이번엔 버섯말고 더 큰걸로 박아볼까? 가뜩이나 리그에 참전한 후 로는 얼굴팔려서 잠입임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내가 요새..."

"미, 미안. 내가 잘못했어."

 

들고 있던 버섯은 얼굴보다 크다. 그냥 내려놓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동기. 내가 트리스티랑 어울리는게 그렇게 샘이 나셨어요? 나도 그 문제는 꽤 예민하다? 트리는 더 예민하고. 너 [삭제]는 이제 헐어서 안되겠고 요도에 버섯좀 박아줄까?"

 

거꾸로 매달린 요들이 진자운동을 하며 질질 짜기 시작한다.

 

"술김에. 홧김에 했다고 하기엔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 너. 럼블. 왠만하면 리그 밖에서 이런식으로 마주치지 말자."

 

 

 

 

 

그는 돌아섰고 그는 여전히 매달려 있다.

그리고 다시는 독한 술을 마시고 떠오른 작전을 실행에 옮기지 않기로 했다.

 

 

 

 

 

=Baking powder=

 

Sunlight(햇빛)

 

요원중 하나가 라코어 지역의 음주문화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한 챔피언 분을 인터뷰 한 일이 있다. 라코어. 오로지 전투행위를 향하여 순수한 열정을 쏟는다는 전사들의 거주지인 만큼 음주문화에 대하여 보수적일 것이라는 예상대로 그분들은 엄격한 자기관리를 위해서도, 전투기술이 무분별한 폭력으로 변질되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도 술은 신성한 의식을 거행할때나 정말 영광스러운 날에만 오래된 창고에서 꺼내든다는 내용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물론 다른 항 정신성 의약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정말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잠시나마 시름을 털어낼 수 있나요?"

 

요원은 개인차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태양같은 화사함이 드러나던 챔피언의 용모에 수심이 드리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요원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요즘 우리 빵테(레오나 씨는 판테온 씨를 저렇게 부르셨다.)가 수상하다. 일족의 명예를 드높일 궁리만 하던 바보 멍청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행선지를 가르쳐 주지 않고 바깥 출입을 하는 일이 잦아졌을 뿐 아니라 안색 역시 좋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뒷조사를 부탁했다. 평소같으면 절대로 수락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요원은 자신이 건넨 술을 마시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여자분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참고로 본 연구원 또한 휴머니즘을 존중하는 집단인 만큼 그 요원을 따로 문책하지는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요원은 일을 시작했다.

 

그는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투구를 벗은 판테온 씨의 용모를 다부진 체격의 훈남이라고 평가했다. 뒷조사는 꽤 야심한 시각에 진행되었고 판테온 씨는 어차피 투구를 벗었으니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특유의 당당한 걸음걸이로 그냥 걸어다녔다고 한다. 민간인 거주지의 후미진 뒷골목, 뒷골목, 뒷골목. 그 끝에는 낡고 수상쩍은 건물이 한 채 있었고 판테온 씨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더 미심쩍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빵테가 들어간 건물 입구에서 강한 흑마법을 구사하는 누군가의 기운이 느껴졌다는거죠?"

 

사람의 얼굴에서 쓸쓸한 노을이 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걸 깨달은 요원 역시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은 신중하게 처리해야겠지. 이틀 뒤, '우리 빵테' 는 다시 자리를 비웠고 요원은 이번에도 따라 붙었다. 입구가 하나뿐인 건물이라 쫓아 들어가기에는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주변부터 확인했다. 운이 좋았는지 쓰레기더미로 어설프게 가려놓은 반지하 창문을 확인할 수 있었고 쓰레기 통 을 몇개 치워내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안쪽의 정경은 커다란 도마 비슷한 물건이 놓여 있는 주방 같기도 했는데 그 위에 굴러다니는 것은 핏덩이 인지 고기조각인지 알아보기 힘든 고형물질 덩어리들. 그리고 좀 더 안쪽에는 난로나 오븐과 비슷한 형태를 띈 공간에 불길이 일렁이고 있는데 이 건물은 굴뚝이 없다. 한술 더 떠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 역시 일반적인 땔감을 태우거나 화학반응을 일으켜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불꽃. 순수한 검은 빛의 불길이 일렁이고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일단 두 명. 한 명은 요원이 추적중이던 남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여자인데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벽을 휘둘러 치자 벽돌이 분명한 벽에서 소름끼치는 그을음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거기다 등에는 훨씬 무시무시한 날개가... 남자는 여자를 진정시키려는 눈치지만 말이 안 통하는 모양이다. 어두운 불길이 남자를 향한다. 피하긴 했지만 여러모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요원은 일단 자리를 피한다. 더 지켜보고 있다간 입에서 비명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고 들켰다간 전반적으로 도살장 비슷한 광경에 데코레이션을 하나 추가하게 될 지도 모를일이니 아직 자제력이 남아있을 때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세세한 상황보고는 다음날 이루어졌다. 의뢰인은 정말로 엉엉 울었다. 술까지 마셨다. 라코아 사람이든 아니든 차라리 다른 여자가 생겼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면 축하해 줄 일이지만 상대가 하필이면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위험하고, 사악하고, 음험한데다 천사들조차 금지하는 흑마술에 손을 대는 타천사라니. 도가 지나치다. 수상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끔찍하기까지 하다. 격분한 의뢰인은 요원이 무언가 다른 말을 꺼낼 틈도 없이 숙소를 뛰쳐나가더니 오늘치 운동을 끝내고 쉬고 있던 남자를 잡아 왔다.

 

"야, 다짜고짜 무슨..."

"아니 왜, 하필이면, 건드릴 여자가 없어서 하필이면 그런 음침한..."

 

판테온 씨 역시 울며불며 할 말, 안 할말 마구 내뱉는 소꿉친구의 모습을 자주 본 적은 없는 눈치다.

 

"왜 모르가나 냐고! 차라리 요들 가스나들하고 눈이 맞았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까진... "

"어떻게 알았냐?"

"그, 그게..."

 

발로란 대륙의 음주문화를 연구하고 계신 연구원의 인터뷰 요원에게 의뢰해서 뒷조사를 했다. 고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여자를 위해 요원이 대신 상황을 정리해줬다. 그 후 옆에계신 여자분이 진정하는데는 약 십분가량 소요되었다. 세 사람 모두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자 판테온 씨는 상황을 설명했다. 대략 열흘 하고 이틀 전, 그러니까 레오나 씨의 주장에 따르자면 수상쩍은 행동을 일삼기 시작하기 직전에 편지를 한 통 받았다고 한다. 제과점으로 올 것. 약도 첨부. 다른사람에게 알릴 경우 레오나의 신변에 꽤나 유쾌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잠깐만 빵테. 제과점이라고?"

"어 음. 그래. 맞아. 제과점. 그 여자는 거길 제과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원이 끼어들어서 상식적인 제과점의 풍경과 자신이 확인한 '도살장 유사 반지하 시설물' 의 차이점에 대하여 지적하려다 제지 당한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가는 판테온 씨. 아무튼 그 '제과점' 에서 모르가나를 만났다고 한다. 차라리 자신과 뭔가 갈등을 유발한 상황이라면 라코아 인 답게 결판을 내자고 요구했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오나의 신변을 위협당한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도 없는 노릇. 일단 차분하게 요구조건을 경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데?"

"빵 굽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

 

나머지 두 사람의 어처구니가 사라지는 소리를 애써 모른체 하며 말을 이어간다. 적어도 그 흑마법 타천사도 나름 합리적으로 머리를 쓴 모양이다. 일단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형편 상 일반 제빵사들에게 가르침을 구했다간 파파라치들의 일용할 기삿거리가 될게 분명하며 그점을 각오하고 스승을 구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나 제빵사들의 표정을 보고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접촉을 시도하더라도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적을 뿐 아니라 자신의 빼어난 용모에 기죽지 않고 차분하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다가 라코아 출신의 간 큰 제빵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판테온 자신도 제빵기술이 미숙한 상태인데다 차라리 그냥 부탁하면 될 일을 굳이 협박을 일삼으며 가르쳐 달라고 하는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 제대로된 교육이 이루어 질 턱이 없는 상황.

 

"거기다 그 여자. 고집은 어찌나 센 지."

"무슨소리야?"

"상식이 아주 조금만 있어도 빵을 흑마법으로 굽지 않는다고 말을 해줘도 오븐은 온도조절이 짜증난다면서..."

 

그래서 초빙강사에게 불덩이를 집어던졌구나.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소꿉친구의 상식적이고 차분한 설명을 들으면서 의뢰인의 표정은 점차 생기를 되찾아 갔다. 염려한 최악의 상황과는 다르다고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긴장상태가 해소된 건 좋은데...

 

"아, 아, 난 그런 줄 도 모르고..."

 

또 운다. 여자사람을 두번 울렸다. 그래도 이번엔 가해자 판테온 씨가 옆에 계시니 요원이 딱히 곤란한 문제는 없다. 품안의 챔피언을 그냥 묵묵히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달리 위로의 방법이 없어 보이지만 효과는 있어 보인다.  

 

"그만 울어."

"빵테. 이럴때는 좀 더 근사한 말을 해야하는거 아냐?"

"딱히 떠오르는 말은 없는데."

"그래. 그래야 빵테 답지."

"어, 그거. 칭찬이지?"

 

대답은 없고 표정만 봐선 알기 힘들다.

 

"그래요 제빵사님. 앞으로는 어쩔꺼야?"

"가능하면 계속 그 여자를 염탐하면서 널 위협하는 요소를 확인, 제거하고 싶은데."

"아니, 그러지마. 그런 여자하고 네가 한 방에 단 둘이 있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뭐?"

"내가 직접 처리한다고."

 

 

 

 

 

 

 

삼 일쯤 지나서 레오나 씨 와 모르가나씨는 요원의 입회하에 조용히 만났다. 풀숲에는 이 지역 기후에선 보기 힘든 버섯이 자라고 있다. 자세히 보면 대구경 탄환의 탄흔도 찾을 수 있고.

 

"어머, 레오나. 이런 으슥한 동네에서 무슨 볼일이야?"

"별 거 아니에요. 제 친구가 당신 신세를 많이 진 것 같아서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찾아뵙습니다."

"그 제빵사?"

 

돌연 흑마법사의 자신감이 사그라든다.

 

"사실 나도 발로란에 불려온지 얼마 안되서 그냥 어, 저기, 뭐랄까. 리그가 항상 있는거도 아니고, 언니랑 안 만날때, 그러니까, 음..."

"말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만."

"인간들 처럼 취미생활이라는 걸 해볼까 해서. 그, 과자를 좀 만들어볼까 한 건데..."

 

이런식으로 나오니 기세등등하게 도전해온 여전사가 더 당황스럽다.

 

"잘 안되더라고."

"빵, 아니 판테온 을 협박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너까지 끌어들인건 정말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다른 부탁방법은 잘 모르겠고...  너희 동네 사람들은 진짜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겁을 안내잖아. 목에 힘을줘서 칼을 부러뜨릴 위인들이지. 혹시 그 남자에게 들었으면 알겠지만 민간 제빵사들한테는 도저히 부탁할 입장이 안되고 소환사들에게 말 꺼내기도 그, 그러니까..."

"부끄러우셨습니까?"

"어."

 

레오나 씨 가 입회인 역할을 해달라고 했을 때 우리 요원은 아무래도 여명과 황혼의 대 격돌과도 같은 파노라마를 기대하고, 또 걱정한 모양인데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발로란 전역에 생중계 되어온 두 사람+@ 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 그래도 내가 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건 아냐. 정말로. 가끔 화가나서 좀 짜증을 부리긴 했는데 다친데도 없고, 판테온 씨 도 자기가 아는 선에서 잘 설명해주긴 했고..."

"잘해줬다고 했습니까. 방금?"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햇살이 살벌하게 눈부시다.

 

"아, 아무튼 정말 미안. 이건 전적으로 내가 잘못한 일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하진 말아줘. 지금 너, 화난 표정 보고 있으니까 묘하게 언니같아서 그러는거야."

 

결국 우려했던 참사 없이 사태는 평화롭게 진정됬다. 하지만 그 후로도 빵테씨는 두번정도 소꿉친구의 애교넘치는 술주정을 받아준 모양이다. 본래 업무인 음주문화에 관한 인터뷰를 마저 끝낸 우리측 요원에게 숙취해소에 좋은 의약품에 관하여 몇가지 물어보기도 했고, 이번 일이 무사히 진정되도록 도움을 준 것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필요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알게되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반 협박 반 부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라코아에는 음주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정보도 얻었고 유혈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다 잘된 일이다. 라고 사례를 요약 정리 하기로 협의했다. 덧붙이자면 며칠 뒤 요원은 소포를 받았다. 내용물은 일종의 쿠키인 모양인데 너무 새카맣게 타버린데다 천사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목 부분이 이미 부러진 숯덩이. '엄마가 그런거 입에 넣는거 아니랬어요.' 라고 말할 규격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정성가득한 흑마법을 구사했겠지. 편지도 들어 있었다. 언니 이외의 발로란 거주민들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음을 밝히는 내용이다.

 

모든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깔끔하게. 하지만 요원은 끝내 웃지 않았다. 그는 여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끝]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오타는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