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어느 구석진 이자카야. 술기운에 부스럭거리는 저녁 공기 사이로, 바의 붉은 조명 아래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로스트아크의 디렉터로서 유저들에게는 전설 같은 존재. 그의 표정은 잔잔했지만, 눈빛은 냉정했다.

그 맞은편에는 이병탁이 앉아 있었다. 어딘가 주눅 든 듯, 그는 말없이 하이볼 잔을 굴렸다.

“병탁아,” 전재학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게임을 만든다는 건, 그냥 기능을 구현하는 게 아니야. 감정을 건드리는 거지. 유저들이 왜 화났는지, 넌 진짜 이해하고 있는 거야?”

이병탁은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업데이트,” 전재학은 하이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거 너가 책임져.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좀 보여줘.”

그때였다. 나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혼자 조용히 바에 앉아 있다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가 번쩍였다.
‘저 사람… 전재학 아니야?’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한 이후, 나에게 있어 로스트아크는 그저 게임이 아니었다. 나를 위로해주고, 친구를 만들어줬고, 어쩌면 삶의 어느 한 챕터를 함께한 동반자였다.

결심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긴장했지만, 입을 열었다.

“혹시 전재학 디렉터님 맞으시죠? 로스트아크, 정말 감사히 잘 하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전재학의 표정이 잠시 풀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우리가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 말 한마디에 있죠.”

잠시, 우리 사이에 조용한 공감이 흘렀다. 이병탁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짧게 인사를 마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잔을 들며, 방금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그 순간, 바의 조명이 조금 더 붉게 스며들고, 시간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소리는 멀어지고, 이미지도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