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2화까지 ! 총 15화 완결












 『계약신부, 그런데 여긴 이세계?』


1화. 웨딩드레스와 차원의 문
“이아린 씨 대신 오늘 드레스를 입어주실 수 있을까요?”

조이란은 미간을 찌푸렸다. 드레스를 한 손에 든 웨딩샵 직원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식 전날, 언니 이아린은 “잠깐만 웨딩홀에 가서 드레스 핏 좀 봐줘. 내 대신.”이라며 부탁했고, 조이란은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결혼하는 건 언니인데, 왜 내가 드레스를 입고 있어야 하는 거야…”

중얼거리며 드레스를 갈아입은 조이란은 웨딩홀 하객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스팟 조명 아래, 푸른빛이 도는 대형 거울이 정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드레스를 정돈하려 거울 앞에 섰을 때였다.

“어… 뭐지 이 빛?”

거울이, 숨 쉬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푸른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이 조이란의 몸을 감쌌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순간—

바닥이 사라졌다.

“…!”

의식이 돌아왔을 때, 조이란은 부드러운 비단 위에 누워 있었다. 사방은 장식이 화려한 천장이었고, 공기에는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일어났군.”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 선 이는 은빛 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차가운 청회색 눈동자와 곧게 뻗은 콧대, 단정한 군복처럼 보이는 제복. 조이란은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여긴 어디예요? 그리고 당신은 누구—”

“예언된 계약신부. 드디어 오셨군요.”

“……네?”

조이란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분명 언니 장난일 거라 생각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진지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 조이란은 두 손으로 드레스를 움켜쥐며 뒷걸음쳤다.

“혹시 몰래카메라…? 그런 거죠? 지금 장난 그만하고—”

“당신의 손등을 보시오.”

그의 말에 시선을 내리자, 조이란의 손등에 붉은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불꽃처럼 얽힌 문양은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이건… 언제…”

“이세계 아르세나의 예언서에 기록된 계약신부의 증표요. 당신이 맞습니다.”

조이란은 믿을 수 없었다. 드레스를 입은 채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왔고, 눈 떠보니 낯선 나라에서, 낯선 남자가 자신을 ‘신부’라 부르고 있다니. 이것이 꿈이라면 너무도 생생한 악몽이었다.

“혹시… 돌아갈 방법은 없나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차원의 문은 스스로 열린 것이 아니오. 계약이 완성되기 전까지, 문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겁니다.”

조이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언니는 어디에 있고, 여긴 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모든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남자의 차분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루시우스. 아르세나 제국의 황태자이자… 당신의 계약 상대입니다.”

조이란의 눈동자가 떨렸다. 지금 이 상황은—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2화. 손등의 붉은 인장
“이건… 문신 같은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조이란은 손등 위 붉은 인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치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문양은 움직이고 있었다. 만져봐도 열은 없지만, 묘한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그때, 루시우스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 인장은 당신과 나 사이의 계약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신탁에 따라 당신이 나타날 때, 이 인장이 발현될 것이라 했죠.”

“신탁…요?”

“백 년 전, 고대 마녀 ‘이라나’가 남긴 예언입니다. ‘붉은 인장을 지닌 자, 차원을 넘어 계약의 신부로 나타나리라.’”

조이란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아니, 저 그런 거 몰라요. 저는 그냥… 언니 부탁 받고 드레스를 입었을 뿐인데요. 이건 완전 사고예요. 이세계? 예언? 그딴 거 저랑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루시우스의 태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걸어갔다.

“예언의 신부가 원치 않으면, 계약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강요할 생각은 없소.”

“…그럼 저,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

“당장은 어렵습니다. 차원의 문은 강력한 마법으로 열리는 문. 계약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문이 다시 열리지 않아요.”

조이란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언니는 어디 가고, 왜 자신이 이런 상황에 휘말려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계약이라는 거, 대체 뭔데요?”

“결혼입니다.”

“…네?”

“명목상으로는요. 하지만 단순한 혼인이 아닌, 마법적 계약. 당신의 존재는 아르세나 제국의 중심 마력과 연결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제국의 생명줄이 당신과 얽히기 시작한 거죠.”

조이란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루시우스를 바라봤다. 이 잘생기고 무심한 남자는, 너무도 덤덤하게 어마어마한 말을 뱉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아니요. 선택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루시우스는 조이란 앞에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열자, 그 안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금빛 반지가 들어 있었다. 반지 안쪽에는 조이란의 인장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받을 경우, 일시적으로 제국 내 신분이 부여됩니다. 거처, 경호, 식사, 필요한 모든 것은 제공되죠. 하지만 원치 않으면—”

“전 돌아가고 싶어요.”

조이란은 단호히 말했다. “계약이고 뭐고, 전 이 세계랑 아무 관련 없어요.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요. 친구들도 있고, 가족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고…”

“당신의 언니, 이아린. 그녀가 대신 결혼하려 했다 들었습니다.”

“그건… 그냥 대리 확인이었어요.”

루시우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이상하군요. 신탁의 대상은 단 한 사람뿐입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인장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조이란은 말문이 막혔다. 거울 앞에 선 건 자신이었다. 그리고, 푸른 빛이 자신을 삼킨 것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했다.

“당신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이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터질 듯한 머리, 달아오른 뺨. 이제 현실 세계가 얼마나 멀리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신 말대로, 당장 돌아갈 수 없다면. 최소한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겠죠.”

“좋습니다. 계약 기간은 당분간 3개월. 그동안 계약 신부로서 제 곁에 머무르며 진실을 확인하시오. 돌아갈 수 있는 방법 또한,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조이란은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집어 들었다.

마법 같은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다면, 그 끝이 어디일지—직접 확인해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