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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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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와 마녀와 눈물 9
메리엘이 말을 꺼낼 틈도 없이 엘론은 곧바로 사라졌다. 하셀이 뒤를 쫓으려 했지만 엘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죄송해요. 메리엘 씨.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돌아온 하셀은 엘론의 행태에 분노하며 연신 사과했다. 자연스럽게 자리는 파하게 되었다. 소동이 끝난 뒤에 남은 것은 엉망이 된 여관과, 울상을 짓고 있는 여관 주인뿐이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하... 됐네. 자네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날이 밝는 대로 항의하러 가야겠군.”
여관 주인은 피곤하니 이만 쉬어야겠다며 터덜터덜 멀어져갔다. 메리엘은 하셀도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방으로 올라와 심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메리엘은 이미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엘론은 언데드가 된 것이 분명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또 다른 징조가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이글루에서 벨에게 힐을 사용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같은 일이 두 번 반복되니 우연으로 치부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설산의 마녀와 싸울 때는 사슬을 정통으로 맞고도 버텨내기도 했다.
치유 마법에 피해를 받는 것, 비정상적인 체력 모두 언데드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러면 실종되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가족들에게 언데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대충 얼버무린 것이다. 급하게 자리를 뜬 것도 언데드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흑마법사라도 마주친 걸까.’
죽은 자가 자연적으로 언데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흑마법에 의해 언데드가 된다. 엘론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으음...”
문득 기절했을 때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얼음에 묶여 있던 여인을 향해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던 프리스트.
그자의 마법도 흑마법이었다. 공통점은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밖에 없지만, 메리엘은 이상하게도 그 프리스트와 지금 나타난 흑마법사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삐익!”
메리엘은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서 벨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왔구나?”
하셀을 돌려보내기 전, 메리엘은 벨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메리엘은 창문을 여는 대신 여관을 나섰다. 벨은 천천히 메리엘 앞에 내려앉았다.
“벨. 엘론 씨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아.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삑...”
벨은 하품을 하며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적거렸다. 오밤중에 자다가 불려 나와서 그런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메리엘은 벨을 살살 달랬다.
“그러지 말고, 나중에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응?”
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날아 올랐다. 메리엘은 벨의 뒤를 쫓았다.
엘론은 아마 모르겠지만, 정말로 죽었다 되살아나지 않아도 언데드의 특징을 보이게 되는 경우가 한 가지 더 있다.
언데드화 저주. 이 저주에 걸리면 언데드의 특징을 지니게 되지만, 실제로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메리엘이 예상하기에 엘론은 이 저주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체가 되살아난 것이라고 하기에는 엘론은 겉모습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그렇다면 저주만 없애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엘론을 찾아내어 저주를 없애고, 흑마법사를 찾아서 대처해야 한다.
하셀만 따돌리는 것 같아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다. 비밀을 원하는 엘론의 뜻을 존중하기 위함도 있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염두에 둬야 했다.
만약 엘론이 정말로 죽었다가 되살아난 것이라면, 그때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메리엘은 가능한 한 하셀의 눈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메리엘은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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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이 안내한 곳은 마을 외곽의 낡은 창고였다. 사냥꾼이 사용하는 곳인지, 흩뿌려진 피가 곳곳에 있었고, 한쪽에 짐승을 해체하고 남은 부산물들이 모여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가까운 곳이었기에 메리엘은 의아해했다.
‘적어도 마을을 벗어났을 줄 알았는데.’
한밤중에 벌벌 떨면서 뛰어다닐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좋았다. 메리엘은 창고에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엘론 씨, 계신가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한 번 더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메리엘은 창고 뒤편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창고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리엘은 깜짝 놀라서는 고개를 돌렸다.
“결국 왔구나.”
엘론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른데. 어디서 추적술이라도 배웠어? 아, 혹시 벨을 시켜서 온 거야?”
“네. 맞아요.”
“이런... 벨 그 녀석. 벌써 나를 주인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건가. 허술해 보여도 참 무섭게 냉정한 녀석이란 말이지.”
메리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역시 눈치챘구나? 이렇게 급히 쫓아온 걸 보니.”
“...네. 고의는 아니었어요.”
“설마 하셀을 데려온 건 아니겠지?”
“하셀은 여기 없어요. 집으로 돌려보냈거든요.”
“그나마 다행이네. 하아... 이렇게 빨리 들통날 줄이야. 재수 한번 더럽게 없네. 언데드가 되자마자 클레릭을 마주치다니.”
엘론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날 없애려고?”
메리엘은 단호히 말했다.
“아뇨. 그럴 생각은 없어요.”
“이상하네. 신성 마법사가 언데드를 놔두겠다니. 그러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엘론 씨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걸 말씀드리러 왔어요.”
메리엘은 차분히 설명했다.
“엘론 씨. 세상의 수많은 저주 중에는, 대상을 언데드화 시키는 것도 있어요.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이 저주에 걸리면 일시적으로 언데드의 특성을 지니게 되죠. 물론 저주만 없애면 원래대로 돌아가고요.”
“언데드화 저주?”
“네. 여러 정황을 따져봤을 때, 엘론 씨는 이 저주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혹시 최근에 수상한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으신가요? 예를 들면, 흑마법사나 강력한 몬스터 같은 것들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메리엘은 엘론이 지난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잠시 후, 엘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게 있구나. 아마 그게 맞는 거 같아. 그런데 내가 만난 건 흑마법사가 아니야. 음... 내가 무식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그보다 좀 더... 고등한? 그런 존재였어.”
“고등한... 존재요?”
“맞아. 그러니까 마음은 고맙지만, 날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거절할게. 그분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남았거든.”
메리엘은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할 일은 또 뭐고요?”
“그것까지 말해 줄 생각은 없는데.”
“엘론 씨!”
“조용히 좀 해! 사람들 다 깨겠어! 하아... 그래. 방해하기에는 이미 늦었기도 하니까... 보여줄게. 들어와서 직접 확인해 봐.”
덜컥거리며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나며, 단단하게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메리엘은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우선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쳤다.
믿기 힘든 광경에 메리엘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엘론의 등 뒤에는, 세 구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와 목에 화살이 관통해 있었다. 동공은 풀려 있었고, 팔다리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 채 식지도, 멎지도 않은 피가 천천히 마룻바닥 위로 흘렀다.
작은 촛불이 일렁이며 시체들을 그림자 속에 묻었다 꺼내기를 반복했다.
메리엘은 그들의 얼굴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 메리엘은 그 시체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관에서 소동을 일으켰던 사냥꾼들이 분명했다. 무례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죽을 이유는 없었다.
엘론과의 짧은 대화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상황이 이토록 심각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메리엘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살인자를 향해 말했다.
“대체... 왜 이런 거죠?”
“말했잖아. 할 일이 있다고. 죽일 사람이 좀 필요했는데, 얘들이 제일 적당했어. 마침 좋은 타이밍에 와서 시비를 걸어주잖아? 옳다구나 했지. 겸사겸사 평소에 성가시게 군 거에 복수도 하고. 음... 사실은 조금 더 좋은 때를 기다리고 싶긴 했는데, 네가 쫓아와서 날 죽일 줄 알았으니까, 그 전에 처리하려고 급하게 움직였지.”
엘론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신중했어도 될 뻔했네. 아닌가? 날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고 했었지? 맞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지금 하는 게 맞았던 거 같아. 장로도 대부분 자리를 비운 것 같고.”
“무슨…….”
“답답하긴. 아직도 눈치를 못 챈 거야?”
엘론은 시체들을 가리켰다. 메리엘의 시선이 따라서 움직였다. 곧 메리엘은 어떤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맙소사.’
사냥꾼들의 피는 평범하게 흐르고 있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듯 꿈틀거리고, 뒤틀리면서 뻗어나가며, 정교하고도 복잡한 문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이 마법진의 일종임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완성되기 직전의 상태라는 것도.
“말했지? 방해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엘론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법진은 맥동하듯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냥꾼들의 시체에서 마나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한곳으로 모였다.
마나는 허공에 불타는 듯한 타원을 만들었다. 그것은 한 공간을 단절하고, 다른 공간과 이어 붙여, 하나로 연결했다.
‘포탈?’
타원 너머로 어딘지 모를 장소가 펼쳐졌다. 메리엘은 흐릿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아주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절반만 맞는 생각이었다. 점차 포탈 너머 장소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소개할게. 우리 선배님들이야.”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때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괴물이 되어버린 존재들의 군단이었다.
언뜻 보아도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규모였다. 그것들은 하나둘씩 포탈을 넘어, 부패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안돼!”
절박한 외침과 함께, 메리엘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오오오...”
좀비들의 살갗이 타들어 갔다. 기괴한 비명을 흘리며, 선두에 있던 좀비 몇이 쓰러졌다.
온 힘을 쥐어 짜내어 시전한 힐. 언데드인 좀비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메리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좀비 하나를 쓰러트리면, 뒤에서 열 마리의 좀비가 밀려왔다.
게다가, 좀비들은 신성 마법에 직격당하고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좀비 하나하나가 메리엘이 지금껏 봐온 어떤 언데드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메리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창고는 좀비로 가득 찼다. 곧 좀비들은 창고 벽을 부수고는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메리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대로라면 아비규환이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메리엘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습격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깨어나기를 바라며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메리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제 메리엘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메리엘은 간절한 마음으로, 엘나스의 주민들에게 이 사태를 버텨낼 힘이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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