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딩 때 아주 남다른 크기로 소문난 친구가 한 명 있었음
그 친구랑 반도 다르고 겹치는 친구도 없고 접점이 딱히 없었는데
그저 같은 방향 지하철을 탄다는 이유로 몇 번 말 섞고 친해졌음
난 당연히 모쏠 아다였고 걔는 지 말로 대학생 남친이 있다고 들었음
여튼 어느 날 귀가를 하는데 딱히 할 거 없으면 집에 좀 같이 가자고 하는 거임
자기는 씻고 옷만 갈아입고 바로 외출을 할 건데 뭔가 심심하다는 게 이유였음
그래서 여사친 방 구경도 하고 간식거리 털어먹을 생각에 따라갔음
집에 아무도 없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일단 1차 당황
그리고 그 씻는다는 게 샤워를 한다는 뜻이었다는 걸 알고 2차 당황
근데 내가 음탕한 생각을 품고 놀러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태연한 척했음
잠깐 방에 들어가더니 샤워하고 입을 옷들을 한 손에 쥐고 나와서 또 당황
나머지 한 손으로 찬장에서 꺼내준 게 바로 길리안 초콜릿이었음
금방 씻고 나올테니까 초콜릿 먹으면서 집 구경도 하고 놀고 있어~
그렇게 문을 잠그고 샤워기 물 소리가 들리는데 진짜 이게 뭔가 싶더라
괜히 긴장한 나머지 자지들 집에 놀러갔을 때처럼 휘젓고 깽판은 못 쳤고
그냥 그 친구 방 책상에 앉아서 성균관대 홍보책자를 열심히 읽었음
사실 내가 글을 읽었는지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조용히 했는지는 잘 모르겠음 
여튼 시간이 멈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시점에 친구가 다 씻고 나왔음
뭔가 어색한 리액션을 하는 나한테 이상한 짓 안 했냐며 오묘한 표정으로 추궁하더니
머리 말리고 화장하는 거 보여주겠다고 내 팔을 붙잡고 거실로 끌고 나왔음
화장대 옆에서 꽃단장을 직관하는 대가로 길리안 초콜릿을 입에 넣어줬음
사실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알 수 없는 감사함에 알아서 손이 움직인 거 같음
친구들 사이에서 그 여사친이 좋지 않은 쪽으로 소모되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날의 요상한 기억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음
근데 왜 너네한테 말하냐고? 너네 어차피 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