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아......"

"뭐..뭐라고?"

그리고 그 병사는 무슨 결심을 한 듯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마지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군바리 들...다 죽여버리겠어..."

"안돼!!!!!!!!!!!"

"탕!! 탕!!"

두 발의 총성과 함께 그 병사를 바라보고 있던 세 사람이 뒤엉켰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어둠과 폭우와 소름끼치는 공포속에 우리는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 병사가 흥건한 흙바닥에 넘어진 것을 확인 한 군단 수사관이, 그에게 달려들어 총을 뺏고 무자비한 주먹질을 얼굴에 퍼부었다.

"이 개! 미친 !!"

몇 차례의 주먹을 허용한 후 그 병사가 실신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병사의 움직임이 없자 군단 수사관은 헉헉대면서 오른 주먹을 높이 쳐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넘어진 자세로 그 병사의 다리를 잡고 있던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앞에 넘어져 있던 수사관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껄떡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미친 병사를 향해 수사관이 소리치며 달려든 것이다.

손전등에 비추자 그의 주변으로 원형의 피바다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수사관님!!!!!!"

"야!! 최상사!!!!!!!!"

군단 수사관과 나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의를 벗겨내자 그의 왼쪽 복부 아래에서 피가 토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발사된 총탄 두 발 중에 한 발을 맞은 것이다.

"뭐해!! 새끼들아!! 의무대 연락해!!!!!!!!!"

군단 수사관의 외침에 무슨 해괴한 상황이 벌어진 건지 감도 못 잡고 안절부절 하던 남은 두 병사가 대문밖으로 뛰었다.

"야!! 최상사!!!!!!! 정신차려!!!!!!!!!"

"지혈시켜야 돼요!!"

이 말과 함께 나는 우의를 벗어제끼고 이빨로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건서류가 바닥에 떨어져 물속에 잠겨 젖어가고 있었다.

서류는 흙탕물 속에 파묻혀 훼손되어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의 피가 새어나는 왼쪽 하복부에 찢긴 우의를 접어서 덧대고 그 위에 길게 찢긴 우의로 하복부를 감아 돌렸다.

그 순간 부릅 뜬 눈을 유지한 채, 숨을 껄떡이던 수사관이 천천히 오른팔을 움직여 뭔가를 들어올렸다.

소나타 차량 열쇠였다.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나는 금방 알수 있었다.

나는 그의 손과 열쇠를 동시에 움켜쥐고 조용히 열쇠를 뺏아 들었다.

"죽지마요...꼭 다시 만납시다."

이에 옆에 있던 군단 수사관이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거요?"

이에 나는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닥치고 있어요."

나는 천천히 일어서 아기 시체가 있는 작은 방으로 뛰었다.

나의 무서운 기세에 주눅이 들었는지 군단 수사관이 더 이상 나를 제지하지 못했다.

작은 방 구석에 놓인 아기 시체를 싸고 있는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 시체가 담긴 담요를 들고 빗속을 뛰었다.

그리고 노인이 그려 준 약도를 따라 나는 차를 몰고 미친 듯이 달렸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가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내가 먼저 저 세상 사람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10분 여를 미친 듯이 달려 나는 아기 엄마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야산 입구에 도착했다.

간혹 내려치는 번갯불에 조명탄이 터진 듯 야산 전체가 환하게 밝혀졌다.

우의도 없는 상태로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야전삽 하나를 든 채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구까지는 오기에는 수월했지만, 산 속 100여미터를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거의 물반 흙반이라고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땅이 질퍽거렸다.

몇 차례 미끄러짐을 반복하며, 나는 아기 엄마가 있는 무덤으로 거의 기듯이 올라갔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맞추어 빗물이 내 입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침인지 빗물인지 입 속에서 쏟아지는 분비물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드디어 노인이 말 한 그 곳에 도착했다.

정말로 비석 하나 없이 동그란 낮은 봉분 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관리가 있었는지 주변엔 잡초나 나무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아기가 담긴 담요를 오른팔로 감아 안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 무덤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깊은 밤, 산속에 비까지 내리고, 어느 이름 모를 여자의 무덤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

그 무엇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끌고 왔는지 기억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를 이 자리에 세우기 위해 그 수많은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어느 정도 잡스러운 생각들이 정리되자,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20년 넘게 내려 온 이 피비린내나는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아이요...."

그녀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눈물을 거두고 이 아이를 데려가시오."

나는 아기를 조용히 내려놓고 봉분 옆을 야전삽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빗물을 먹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흙이 쉽게 파헤쳐졌다.

어느 정도 적당한 깊이가 되었다고 판단이 서자, 나는 아기가 든 담요를 들고 와 그 구덩이 속으로 가만히 내려놓았다.

물끄러미 몇 초간, 검은 미이라가 되서 어미 품으로 돌아온 아기를 쳐다 보았다.

"이젠 엄마하고 편히 잠들거라."

야전삽이 아닌 두 손으로 정성스레 흙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내 주변을 너무나도 작은 아기 울음 소리가 맴돌았다.

"응애...응애....응애..."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흙을 채워나갔다.

이젠 이 소름끼치도록 지겨운 환청과 이별하고 싶다.

두려움 때문인지, 서러움 때문인지, 이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이유 모를 눈물이 내 두눈에서 쏟아졌다.

흙을 다 채운 나는 천천히 일어서 그녀의 무덤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조용히 흙으로 범벅이 된 오른손을 들어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마음이 정리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기엄마의 배려인가......이젠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야전삽과 손전등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미끄러운 산을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기보다 더 힘들었다.

수없이 넘어짐을 반복한 후 나는 산을 내려왔다.

온 몸에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차를 다시 사건현장으로 몰았다.

멀리서 의무대 응급차량이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 집 대문앞에 도착하자 군단 수사관과 남은 병사 두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없이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최상사..어떻게 되었소?"

나는 마지막 퀴즈 문제의 정답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괜찮소..."

그제서야 내 온 몸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면서 너무나도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서시오. 이제 갑시다."

군단 수사관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를 잠시 올려다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흥....이제 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군 수사관이 총에 맞았소...큰 바람이 불거요. 그런데 아까 대위님이 들고 뛴 것이 뭐요?"

"20여년 전에....이 곳에서 죽은 아기라오..."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