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특히나 MMORPG 라는 장르는 '경쟁'을 그 바탕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캐릭터보다 더 빨리 레벨업을 하고 싶고, 더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싶고
관련된 각종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싶고, 그래서 다른 캐릭터보다 더 강해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MMORPG 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것중 하나가
'버그를 이용하여 누군가가 불합리한 이득을 취하는 것', 즉 기회의 평등이 상실되었을 때입니다.


더 게임을 잘 알거나, 컨트롤이 더 좋거나, 플레이타임이 길어서 우위에 선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버그' 등의 불합리한 방식으로 이득을 본 것에 대해서는 바로 이 '기회의 평등, 공정한 경쟁'이라는
기본 룰 자체가 파괴된 것으로 인식하여 대단히 예민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오픈베타 열흘째를 맞은 테라가 바로 이 암초에 걸려버렸습니다.
PC 방 순위에서 아이온과 1, 2위를 하루마다 바꿀 정도로 잘 나가던,
동시접속자 20만명을 꾸준히 넘기고 있던 테라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 사건의 개요, 보스의 무한 리젠


    테라는 현재 38 레벨까지만 캐릭터를 키울 수 있으며,
    1월 25일 상용화 돌입과 동시 50 레벨로 레벨 제한이 확장될 예정입니다.




    [ 사건의 발단이 된 보스 몬스터 아카 칼라쉬 ]



    현재 테라의 최고 레벨 던전은 '사교도의 은신처'라는 곳인데
    38 만레벨 직전이나 만레벨을 달성한 게이머들이 주로 사냥하는 곳중 하나로,
    특히나 이 은신처의 보스 몬스터가 최고 등급의 무기와 방어구를 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습니다.


    보스까지 가기 위해서는 중간의 몬스터들을 뚫고 지나야 하기 때문에,
    또 인스턴스 던전에는 귀속 시간까지 걸려 있어 마음대로 보스를 사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특정 조건에서 이 보스 몬스터가 계속해서 다시 나타나는 버그가 발생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특정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인던 안에서 계속해서 보스만 반복해서 잡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최고 등급의 무기와 방어구를 소수의 몇몇이 계속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미 이와 관련한 패치가 진행되었고 관련 계정들은 압류되었지만,
    각종 게시판은 여전히 게임사에 대한 항의를 표출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 테라 인벤 내 각 게시판에서는 아직도 버그 관련 글이 끊이지 않는 중 ]




  • 한게임 관계자가 밝힌 사건의 전말 및 처리 과정

    현재 이슈가 되는, 게이머들이 요구하는 내용은 대략 다음의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1. 버그 악용자들의 계정 압류 여부,
    2. 버그 악용자들이 불합리하게 취득한 이득에 대한 처리
    3. 버그 악용으로 인해 게임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1. 버그 악용자들의 계정 압류 여부

    현재 관련된 계정들은 일시적으로 압류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는 압류자 명단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금의 진행단계는
    '관련된 계정들을 선압류한 뒤, 로그 조사를 통해 획득 과정을 일일이 추적, 확인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인던 플레이를 통한 습득, 경매장 및 거래를 통한 습득인 경우에는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그때그때 압류를 해제하고 있는 중이고,
    버그를 이용한 아이템 획득으로 확인될 경우, 일시 압류에서 완전 압류로 조치가 강화됩니다.


    조사 완료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잡아 3~5일 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며,
    조사가 완료되어야만 (압류를 해제할) 선의의 피해자와 (압류를 유지할) 악용자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 완료 이후 홈페이지에 악용으로 인한 압류자 명단을 공지로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자도 과거에 계정도용 사태가 일어난 게임사를 방문해 GM 들이 로그조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거의 대다수의 MMORPG 게임들은 게임 내 모든 재화의 발생 및 획득 과정을
    운영툴이라 부르는 관리자용 툴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며, 모든 아이템에는 고유의 넘버가 붙어 있어
    게임내에서의 생성, 유통, 소멸 과정을 일일이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버그 악용자들이 불합리하게 취득한 이득에 대한 처리

    버그로 획득한 아이템들의 대다수는 아직 압류된 계정에 포함되어 묶여 있으며,
    이로 인해 얻은 골드의 대다수도 여전히 압류된 계정에 잔류한 상태이기에,
    로그조사 완료 이후 버그로 획득한 아이템 및 골드는 모두 삭제한다고 합니다.


    이중 일부가 경매장 등을 통해 팔려나갔지만, 경매장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입한 게이머의
    아이템을 회수/삭제하는 것은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시킬 수 있기에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때도 판매자의 계정에 들어간 골드는 불합리한 이득이기에 역시 삭제된다고 합니다.


    3. 버그 악용으로 인해 게임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게임 내 재화의 생성, 이동, 소멸을 모두 추적 확인할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게임 내 재화의 총량 역시 파악이 가능합니다.
    이런 기능은 근래의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들인데,
    그것도 수십분 단위로,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집계되고 있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특정 아이템이나 골드의 수량이 급작스럽게 증가하는 현상은
    일이십분 이내에 바로바로 체크가 가능하지만,
    미지 셋트로 인한 게임내 골드량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미 묶인 계정에 있는 대다수 아이템과 골드를 삭제할 것이고,
    시중에 풀린 골드량이나 아이템량 역시 정상적인 증가량 수준이라
    게임내 경제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다른 버그였던 발키온 훈장 관련 문제 역시 모두 회수되어 조치 완료된 상태라고 합니다.




    [ 버그 악용에 대한 후속 조치 공지 전문 ]




  • 순간의 선택, 그리고 세심한 배려


    WoW 도 특정 인던의 보스몬스터로 직행하는 버그가 있었고 고쳐지기까지 꽤 시일이 걸렸습니다.
    그때 블리자드가 했던 대처는, '현재 이런 버그가 있는데 이 버그를 이용하는 사람은
    악용자로 압류할 것이니 사용하지 말아달라. 추후 패치하겠다'라는 공지를 띄운 것입니다.


    그 이후 압류를 감수하고 보스를 잡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게이머들은 정상적으로 플레이했고
    따라서 이 버그는 게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패치 이후 버그 사용자들은 압류가 되었습니다.


    사실 한게임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게시판을 통해 '칼리쉬 무한 리젠 버그'가 알려지기 전부터
    게임사가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패치를 준비중이었다는 점입니다.
    버그를 악용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획득, 사용, 유통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블리자드처럼) 공지를 통해 악용에 대한 방지를 안내할 경우,
    아직 상용화에 들어가지 않은 오픈베타라, 오히려 의도적인 악용이 우려되었고,
    또 획득한 수량이 염려할만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모니터링을 하면서 패치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패치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파장을 불러온 셈입니다.
    순간의 선택 하나가, 그리고 하루이틀의 작은 시간이 이렇듯 큰 결과의 차이를 불러온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블리자드의 사례처럼 미리 공지를 하거나 관련 퀘스트나 인던의 일시 폐쇄,
    혹은 패치전이라도 GM 이 게임내에서 직접 버그 사용자들에게 경고, 선 압류, 아이템 회수를 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 판단이 어려운 이유, 그리고 과거의 기억


    거의 모든 게임들이 오픈 베타 시기 한번씩 이런 일을 겪곤 하는데, 테라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있을 때마다 관련 기사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은,
    또 일방적인 게임사 옹호로 비추어질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가끔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은,
    기자의 기억에 리니지2, R2, 라그2와 같은 몇몇 게임의 사례가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리니지2 가 막 오픈했을 당시, 리니지2에 잔상버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거래를 했음에도 판매자의 인벤토리에 그대로 아이템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던 버그였죠.
    하지만 실제 데이터상 아이템은 넘어갔고 버그로 인해 이미지만 보였던 것이고,
    재접속을 하면 해당 아이템이 더 이상 인벤토리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버그로 인해 리니지2 게시판과 커뮤니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그당시 리니지2 최고의 커뮤니티였던 P 사이트에 있었기에 사건의 전말은 꽤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밝히는 이야기지만, 당시 P 사이트의 게시판에 소수의 몇몇 IP 가
    다양한 닉네임을 돌려가면서 대량의 게시물을 올렸던 것도 이미 확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는 자신있게 잔상버그 별거 아니라는 내용의 기사를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랬다가 몇백건의 항의메일과 하루 6천건의 항의성 게시물을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비운의 라그나로크2 역시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초* 길드의 버그 이용 레벨업이었는데,
    나중에 명예훼손으로 경찰서에서 관련 게시물 등록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문서가 왔습니다.
    그때 경찰서에 보내는 공문을 작성하기 위해 게시물 등록자들의 개인정보 및 IP 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버그 이용의 증거였던 채팅방 스크린샷이 조작이라는 정황을 확보하게 되어
    경찰서에 관련 내용을 기재하여 보내준 적도 있었습니다.





    R2 에서는 대형으로 한번 낚인 적이 있었습니다.
    OTP 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계정이 털려 아이템이 날아갔다는 제보메일을 받고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이 인챈트하다 아이템이 날아가 복구를 위해 허위 사실을 제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보 내용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후속 기사를 다시 써서 게재했습니다.


    그 이후 두어달 있다가 경찰서에서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제보 내용이 허위임을 밝히기 위해 게임사에서 인벤에게 증거 자료를 일부 보여줬는데,
    게임사가 인벤에 그 내용을 알려준 것에 대해 당사자가 개인정보침해로 고발했으니
    게임사로부터 어떤 정보를 받았고 왜 받았는지를 소명하라는 내용의 공문이었습니다.
    결국 사건의 전말부터 해서 상세한 내용의 공문을 작성하느라 몇시간을 써야만 했었습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치명적인 버그로 인해 몰락했던 게임들도 여럿 있었으나,
    이런 기억들이 뇌리에 박혀 있다보니, 유사한 버그가 발생할 때마다 판단이 조심스러워지고,
    게시글만을 보고 실제 피해 규모나 영향력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자의 경우,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보다는
    이런 사건에 대해 얼마나 신속히 처리했고 사후 처리가 얼마나 깔끔했냐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칼리쉬 무한 리젠 버그를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조심스러워했던건지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게임사측의 대처 방식이 매우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후처리가 얼마나 깔끔하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 뿐입니다.


    조사 완료 이후에는 버그를 악용한 계정 압류자의 명단 공개는 물론이고,
    게이머들이 신뢰할 수 있을만한 내용들까지 좀 더 세세히 공개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번 사건에 대해 좀 더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테라의 성공과 한게임의 서비스 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 여부는 25일 상용화가 아니라
    금번 사건에 대한 사후처리가 하나의 기회가 될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게임의 운영에 대한 그동안의 이미지를 테라를 통해 상쇄할수 있길 바라며
    버그 악용자에 처벌은 확실하게 뿌리까지 뽑을수 있도록 처벌되어야 할 것입니다.

    Inven LuPin - 서명종 기자
    (lupin@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