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amazon.com/Untitled-World-Warcraft-Novel-Ballantine/dp/0399594213/

요약 - 먼 과거에 비라노스는 알렉스트라자의 초대를 받아 갓 지어진 발드라켄을 방문하게 됩니다. 비라노스는 그 특이한 건축물과 이상하게 변형된 용들의 모습에 기괴함을 느낍니다. 어째서 용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버리고 질서 마력을 받아들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 하기도 합니다. 잠시 후 비라노스는 아제로스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통해 서약의 돌을 강화하는 위상들의 의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비라노스는 어째서 이런 의식이 필요한 것인지, 수호자 티르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만 결국 의식을 방해하지 않은 채 얌전히 물러납니다. 곧 알렉스트라자가 비라노스를 따로 찾아와 반갑게 맞아주지만, 비라노스는 결국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알렉스트라자는 이 모든 일은 순수히 자기들이 선택한 일이었으며, 그 어떤 용에게도 질서의 힘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프리뷰 부분이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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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알렉스트라자? 비라노스는 높아 솟아난 발드라켄의 첨탑 위로 날아오르며 생각했다. 대체 이 장소는 뭐지?

오랜 삶을 살아온 비라노스도 용족이 이토록 이상한 둥지를 짓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알렉스트라자, 비라노스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새롭게 즉위한 용의 여왕은, 발드라켄을 '도시'라고 불렀다. 비라노스는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 단어 자체에서 티탄 마법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도시. 그토록 낯선 장소에 어울리는 낯선 단어였다.

비라노스는 아래에 있는 광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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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드라켄. 도시. 평화를 뿜어내는 듯한 장소이면서도... 비라노스의 마음속으로는 어두운 의심이 파고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용들이 수호자들의 질서 마력의 징표를 담고 있었다. 그들의 정신을, 육체를, 영혼을, 그들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은 바로 그 힘을. 그들은 분명 용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긴 했으나, 비라노스는 이 정돈된 자들(the ordered)을 용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땅 위에서 정돈된 자들은 새들처럼 날개를 등 뒤로 접고 있었다. 비라노스와 같은 자연적인, 원시의 용들이 날개를 땅과 공중 모두에 걸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돈된 자들은 제대로 된 용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 이상한 힘을 받아들임으로써, 알렉스트라자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에게 생명을 선사해 준 행성 그 자체에 등을 돌려 버린 것이었다.

발드라켄에 있는 원시 용으로서, 비라노스는 동족 사이에 낀 이방인이었다.

너희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동족이 아닌 수호자를 선택했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날개를 크게 한 번 펄럭인 비라노스는 도시의 봉우리 중 한 곳으로 올랐다. 도시의 변두리를 돌아다닐 때조차도 그녀는 수백 명의 정돈된 용들을 보게 되었다. 보석 같은 색감을 한 그들의 비늘은 푸른색, 검은색, 청동색, 녹색,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각각의 색상은 개별적인 용의 위상의 지도를 받는 다섯 용군단의 색상들을 상징했다.

다섯 위상은 수호자의 질서 마력을 처음으로 주입받은 자들이었다. 위험한 길에 오른, 만물의 자연 질서에 등을 돌린 자들. 이제 그들은 다른 수많은 이들이 자기들을 따라 이 어리석은 행위에 동참하도록 설득하기까지 했다.


~~

오늘, 용의 여왕과 붉은용군단은 세계를 수호하겠다는 서약에 맹세하게 된다. 아제로스, 알렉스트라자는 세계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그 또한 또 다른 티탄의 단어처럼 들렸다. 알렉스타라자는 개인적으로 비라노스를 이 의식에 초대해 주었다. 어쩌면 비라노스가 위상들의 대의가 정당하다고 납득해 주길 바란 것일지도 몰랐다. 비라노스는 옛 친구가 명예롭고 진실된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렉스트라자가 타당한 이유 없이 이 길을 선택했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비라노스의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째서 수호자의 소망을 채워주기 위해 용들이 스스로 변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그녀가 생각하기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

"비라노스님! 저의 친구여!" 한 붉은용이 비라노스의 기류 안으로 활공해 들어왔다. 다른 정돈된 용들처럼, 그 붉은용 또한 구불구불하게 늘어난 목과 긴 앞다리를 하고 있었다. 땅 위에 두 발이 아닌 네발로 설 수 있게 해 줄 그런 다리를. 정돈된 자들의 가는 머리는 원시 용의 두개골과 척추에 붙은 뚫을 수 없을 만큼 두꺼운 방어가 결여되어 있었다. 특히나 이 붉은용은 두 개의 무겁고 휘어진 뿔이 머리 위에 달려 양쪽 눈 위로 드리워져 있기도 했다.

이 붉은용은 소규모의 다른 붉은용 무리와 동행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넷이었다. 용의 야생(Dragonwilds)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이토록 가벼운 태도로 비라노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나 무리를 이뤘을 땐 더더욱. 수호자의 마력은 그들이 동족의 관습조차도 잊게 만들어 버린 것인가?

"전 사리스트라즈라고 합니다." 첫 번째 붉은용이 인사라도 하려는 듯 공중에서 우아하게 회전하며 말했다. "용의 여왕님의 청지기죠. 알렉스트라자님께서 당신이 탈드라서스에 머무시는 동안 제게 안내를 맡기셨습니다."

"고맙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비라노스는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길 바라며 말했다. "난 발드라켄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다."

"알렉스트라자님께선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죠." 사리스트라즈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으셨군요. 당신은 정말로 당신의 동족들처럼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동족? 비라노스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저곳이 위상들의 권좌입니다." 사리스트라즈의 목소리는 자부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저 탑은 발드라켄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의 영광스러운 위상들께서 다섯 용군단을 대신해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희의 목적지는 권좌가 아닙니다. 따라오시죠, 비라노스님. 당신께 보여드릴 이곳은 바로 티르홀드입니다!"

"티르홀드?" 비라노스는 격해지려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물었다. 그녀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렉스트라자는 그녀에게 수호자 티르에 대해, 그가 용족의 일에 개입해 온 일들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위상들이 정돈되도록 제안한 자가 바로 그 티르였다.

"네, 동쪽에 있는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사리스트라즈는 돌밭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명을 주는 물의 수원지이기도 하죠.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송수로로 운반되는 그 물 말입니다."

"송수로..." 비라노스는 아래에서 반짝이는 물을 바라보며 주의 깊게 말을 골랐다. "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것인지 말해줄 수 있나? 왜 물을 그 수원지에서 벗어나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혈족의 땅 도처에는 이미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는데 말이지."

"물은 발드라켄에서 다양한 목적을 수행합니다." 그들이 언덕에 올랐을 때 청기기가 말했다. "다른 수단보다는 송수로를 이용해 물을 옮기는 것이 더 편하기도 하죠."

비라노스는 사리스트라즈를 힐긋거리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리스트라즈는 키득거렸다. "인정합니다, 발드라켄을 처음 보면 놀랄 수밖에 없죠. 건물, 송수로, 사원과 정원. 하지만 약속드리죠. 때가 지나면 점점 이해가 되실 겁니다."

건물? 비라노스는 생각했다. 사원? 대체 용족에게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하단 것이지?

"그럴지도 모르지." 비라노스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대답했다. 발드라켄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비라노스에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상황이 바뀌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

사리스트라즈를 따라 도시를 둘러보는 과정에서는, 아치 아래로 급강하하고 구름 위로 질주하고, 의식의 장소로 향하는 용들이 외치는 즐거운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분명 어떤 즐거움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비라노스는 어디를 둘러봐도 단 하나의 생각만을 느낄 수 있었다. 티탄의 영향이 없었다면 발드라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를. 티탄벼림들에 의해 "건물"로 깎여나가기 전 이 산은 얼마나 높이 솟아있었을까? 어째서 이 정원들은 완벽하게 정돈되도록 가위질을 당한 것일까? 그저 자연의 고유한 설계대로 피어나고 자라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었거늘? 그리고 그녀의 형제자매들이 한때 띠고 있던 그 고귀하고도 원시적인 형상은, 그 강인한 자태와 위엄 있는 태도는 어찌 된 건가? 어째서 그 또한 질서의 이름 아래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인가?

티탄이 결함이라 여긴 것들로부터, 비라노스는 망가지지 않은 아름다움을 보았다. 이 세계에는 개선도, 티탄도, 질서 마력도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도시건축물이, 그리고 위상조차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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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단상 위로 모여들었다. 비라노스는 그들 중 일부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커다란 고대의 붉은용은 필시 알렉스트라자의 배우자이자 친우인 티라나스트라즈였다. 그의 갈색 비늘은 이제 심장의 피처럼 따뜻하게 빛나는 색깔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라노스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리고는, 그녀를 향해 인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라노스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주의하며 그 동작에 응답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그처럼 기품 있는 용이 티탄의 족쇄를 받아들였다니! 어쩌면 짝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의 모든 지혜를 끌어모은 티라나스타라즈가 비라노스는 볼 수 없었던 무언가를 질서 마력 안에서 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어둠이 비라노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대체 어떤 지혜가 자신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할 힘을 받아들이게 만든단 것인가? 용들은 수호자의 마법 없이도 충분히 고귀하고, 충분히 용감하고, 충분히 강인하지 않았던가?

티라나스트라즈만이 아니었다. 모임 너머로 시선을 돌린 비라노스는 자연적인 형태의 용을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리고스, 이제 푸른용의 위상이 되어 비전 불꽃으로 눈을 빛내는 그는 거의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의 날개를 따라 룬이 빛나고 있었다. 그의 짝인 신드라고사는 그의 옆에 서서 또 다른 푸른용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드라고사는 그 푸른용의 말에 고개를 들며 웃었다.

알렉스트라자의 여동생 이세라는 녹색용의 위상이 되었다. 그녀의 비늘은 봄에 피어나는 잎들의 색깔로 물들어 있었고, 머리는 네 개의 커다란 금빛 뿔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녀의 발톱 아래에선 꽃들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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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반대편에서는 노즈도르무가 날개를 흔들어 희미한 청동빛의 모래로 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알렉스트라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제 시간 그 자체를 조작할 수도 있다고 했다. 노즈도르무는 수호자의 마법을 받아들이기 전에도 강력했지만, 시간 그 자체를 조작할 수 있다니? 그녀는 그게 대체 어떤 힘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검은용의 위상, 넬타리온에게 주의를 돌렸다. 알렉스트라자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해듣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면식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는 다른 세 위상들보다도 큰 덩치를 하고 있었다. 재처럼 검은 비늘은 흑요석처럼 빛났다. 알렉스트라자의 말에 따르면 수호자들이 넬타리온에게 대지와 그 아래 깊은 곳의 지배권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스트라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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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체는 뭐지?" 비라노스가 조각품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이것은 붉은용군단의 서약의 돌입니다." 사리스트라즈가 답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강화된 후에는 아제로스와 그 주민들을 수호하겠다는 저희 약속의 상징이 되어 줄 것입니다. 붉은용군단은 이것을 루비 생명의 웅덩이에 보관할 생각입니다. 건설이 끝난 후에 말이죠."

서약의 돌? 루비 생명의 웅동이? 비라노스는 붉은용에게 시선을 맞추며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발드라켄에 머물러 있을수록, 비라노스는 점점 더 불안해져만 갔다. 여기 있는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사리스트라즈는 위상들을 그토록 온전하게 맹목적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인가?

"말해다오, 사리스트라즈," 비라노스가 타는 목으로 물었다. "어째서 그대는 질서 마력을 주입받기로 선택한 것인가?"

사리스트라즈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갈라크론드가 저희 종족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죠. 그가, 아니, 위상들께서 저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용들은 함께할 때 더 강하다는 것을요."

"있는 그대로 알렉스트라자를 도울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녀가 물었다. "그대의 진정한 형상을 유지한 채로."

"그럴지도 모르죠." 그는 미소와 함께 날개를 펴며 주위를 채운 용들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전 붉은용군단의 일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가 되고 싶었죠. 저희가 닿을 수 있도록 위상들께서 이끌어주신 바로 그 높이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높은 사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라노스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또 다른 무언가를 질문하기도 전에 군중 사이에 포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시선은 탑의 아래로 이끌렸다.

티르홀드의 문이 열렸고, 알렉스트라자가 머리를 높이 들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른 위상들처럼 그녀 또한 완전히 변해 있었다. 끝이 금빛으로 빛나는 뿔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내려 앉았다. 그녀의 비늘은 주홍색으로 빛났다. 알렉스트라자는 이제 날개를 등 뒤로 접은 채 네발로 걷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빠르고도 확신에 차 있었다.

비라노스는 그 정돈된 외관 아래에서도 여전히 옛 친구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알렉스트라자는 언제나 상냥함과 친절함을 발했다. 많은 용들에게 있어 그녀의 우아함과 카리스마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녀의 눈은 굴하지 않는 맹렬한 지성으로 번뜩였다.

그녀는 알렉스트라자였지만... 비라노스의 알렉스트라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생명의 어머니였다. 용의 위상이었다. 붉은용군단의 지도자, 붉은용의 위상이었다.

그런 생각이 비라노스의 심장에 얼음 조각을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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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 알렉스트라자가 말을 이었다. "모든 붉은용에게 더욱 거대한 용기와 공감, 회복력이 부여되었노라. 위험 앞에 용감히 나서기를, 너의 적에게서 타협의 여지를 찾아내기를,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사랑하는 고향을지키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갖기를 기원하노라. 우리가 숨을 쉬는 한, 아제로스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날개와 발톱으로, 우리는 반드시 그리 하리라."

"모든 붉은용군단을 대신해, 나는 우리 서약의 돌 앞에 이를 맹세하노라." 알렉스트라자가 말을 맺었다.

그러자 수호자 티르가 앞으로 나섰다. "티탄의 사절로서 나는 이날 그대의 서약을 받아들이노라." 티르는 거대한 은빛 손을 서약의 돌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 서약을 여기 이 돌에 담아 봉인하노라. 이 서약의 돌이 붉은용군단이 맺은 서약을 상기시켜 주기를. 단지 나를 위해서가 아닌, 이 세계를 위해서. 현명하고 안전하게 비행하라. 그리고 너희의 질서를 완수할 수 있기를 기원하노라."

눈부신 붉은 빛의 폭발이 마지막으로 서약의 돌로부터 뿜어져 나왔고, 그 힘은 너무도 강력해 비라노스의 이빨이 다 떨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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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으로 돌아가기 전에 알렉스트라자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나?" 그녀가 말했다.

"물론입니다." 사리스트라즈가 말했다. 그의 비늘은 아직까지도 서약의 돌의 마법으로 빛나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용의 여왕님과 약속을 잡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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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책무를 수행하러 돌아가야 합니다만, 알렉스트라자 여왕님께선 여기 대기실로 비라노스 님을 뵈러 올 것입니다." 사리스트라즈는 사과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수호자 티르 님께서 의식이 끝난 후 위상들께 즉흥적인 접견을 요청하셨고, 위상들께선 이제 막 도착하셨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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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병들은 티탄의 얼룩을 더욱더 많이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타라세크로는 수호자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들 또한 그 마법에 더럽혀져야만 했던 것인가?

비라노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렉스트라자의 마음은 고귀하고 진실되게 남아 있으며, 용의 여왕은 그 누구에게도 질서 마력을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마음속에 파고 드는 의혹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의심은 어떤 갈망과 뒤섞이기도 했다. 그녀를 불확실한 바람에 휘날리게 만드는 그 갈망. 비라노스는 수호자의 질서 마력에 굴복한다는 발상을 거부하긴 했으나, 용족이 조화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발상은 마음에 들어 했다. 알렉스트라자처럼, 비라노스도 용족이 함께할 때 더 위대한 것들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용족에게는 서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혈족의 땅은 많은 용들의, 정돈된 자들과 원시의 용들 모두의 고향이었지만, 위상들은 그들의 말이 법이 되는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깨어나는 해안, 에메랄드 평야, 하늘빛 평원과 탈드라서스. 혈족의 땅은 더 거대한 용의 야생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원시용들 대부분은 위상들이 새로운 용들의 정돈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비라노스는 이론적으로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수호자들을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졌다. 티르는 위상들이 갈라크론드를 쓰러뜨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비라노스에게 있어 그의 동기를 믿을 만한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

비라노스는 푸른용군단이 전에 들은 마법의 균열 같은 것들을... 아마도 차원문이라고 불렸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았다. 수호자 티르가 그 빛으로부터 나타났고, 알렉스트라자가 바로 그 옆에 붙어 있었다.

비라노스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한 채로 티르가 말했다. "내 말을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라, 알렉스트라자. 난 네 용군단이 번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알렉스트라자는 뺨을 들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정중한 반대를 나타내 왔던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지금 그녀가 그런 표정을, 그 정돈된 형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자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의 조언을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스트라자가 말했다.

수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리 하거라."

알렉스트라자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고, 수호자는 몸을 돌렸다.

비라노스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보면 용의 여왕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한데, 하지만 수호자는 여전히 그녀에 대한 통제권을 모색하고 있다. 대체 티르가 알렉스트라자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이제 발드라켄을 떠나야겠구나." 티르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며 말했다. "넬타리온과 검은용군단이 서약의 돌을 강화할 준비가 되면 돌아올 것이다."

"좋습니다." 알렉스트라자가 말했다.

수호자 티르는 비라노스에게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알렉스트라자는 자신의 엄숙한 태도를 벗어 던졌다.

"비라노스!" 그녀는 계단을 깡총깡총 뛰어내려 오며 외쳤다. 그녀는 자신의 뺨을 비라노스의 뺨에 꾹 눌렀다. "널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거야, 친구야. 와 줘서 고마워."

그 목소리에 담긴 기쁨이 비라노스의 심장에 꽂힌 얼음을 녹여냈다.

"그리고 난, 너는," 비라노스가 말했다. 알렉스트라자에게서는 여전히 그녀의 냄새가 났다, 일단은. 하지만 알 수 없는 새로운 냄새가 그 아래 깔려 있기도 했다. 마치 연기와 별가루의 냄새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무언가의 냄새였다.

"얘기 좀 해 봐. 여행은 괜찮았어?" 알렉스트라자가 물었다. "뭐 좀 먹은 거야?"

"바람은 고요했어. 혈족의 땅은 네 보호 아래 꽃을 피워냈지."

알렉스트라자가 활짝 웃으며 황금색 눈을 빛냈다.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더 있어. 발드라켄의 정원은 어때? 아니면 넬타리온이 흑요석 성채에 지은 새로운 건물도 있지! 너한테 알려주고 싶은 놀라운 것들이 너무 너무 많아. 다른 위상들에게 얘기할 수 있게 잠깐만 시간을 줘. 그럼 바로 날아갈 수 있을 거야."

비라노스가 대답을 꺼내기도 전에 알렉스트라자는 차원문을 향해 몸을 돌리곤 다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비라노스는 목소리에 차가운 기색이 서리지 않도록 애쓰며 말했다.

알렉스트라자는 몸을 빙글 돌려 친구를 마주봤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적어도 오후 정도는 같이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리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거 알지, 알렉스트라자. 하지만 이건..."

비라노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라면, 부디 얘기해 줘." 알렉스트라자는 수호자를 대할 때 사용했던 외교적이고도 여왕 같은 바로 그 어조를 희미하게 드러냈다. "넌 언제나 나의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친구였지, 비라노스. 나한텐 본심을 얘기해도 된다는 거 알잖아."

비라노스는 자신의 정직함과 솔직함을 자랑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어쩐지 이 문제는 너무나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질서 마력을 비판하는 것은 알렉스트라자 본인을 비판하는 것과 같았다. 비라노스는 다음 말을 주의 깊에 골라야 했다. 그녀는 수호자의 뜻을 거부하고 싶은 만큼이나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넌 미지의 바람을 따르고 있어, 나의 친구여. 그리고 난 네가 걱정스러워." 비라노스가 말했다. "넌 그 누구보다도 명예로운 용이야, 알렉스트라자. 난 예전의 네 모습을 사랑했어. 그런 네가 자신을 또 다른 존재로 바꾸기 위해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러워. 내 입장에서 보면, 그래, 밖에서 보면... 수호자들이 너와 네 용군단을 통제하려는 것 같아서 두려워."

"내 자율성은 존중받고 있어." 알렉스트라자가 말했다. "티르 님은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인도를 제공하시지만, 결정은 순전히 나의 몫이야."

"용들을 억지로라도 네 용군단에 들어가게 만들라고 그자가 요청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비라노스가 물었다. "너에게 반대하는 이들의 바람을 무시할 거야?"

"아니, 절대 그럴 일은 없어."알렉스트라자는 고개를 한 번 저으며 말했다. "질서 마법은 언제나 선택지로 남을 거라고 맹세했어."

"그러면 내게도 맹세해 줘." 비라노스가 말했다. "절대 원시 용에게 수호자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을 거라고 내게 맹세해 줘."

알렉스트라자는 비라노스를 똑바로 바라봤다. "맹세해."

우정을 쌓아온 그 오랜 시간 동안, 비라노스는 알렉스트라자가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기만은 그녀의 본성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비라노스의 앞에 서 있는 알렉스트라자는 비라노스가 오래도록 알아온 그 용이 아니었다. 수호자의 마법은 알렉스트라자의 물리적인 형상을 바꿔 놓았다. 어쩌면 그녀의 진실함마저 바꿔 놓지는 않았을까?

그녀가, 그녀의 수호자처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면... 가장 아끼는 오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라노스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오직 시간만이 답을 줄 수 있는 문제였다.

"널 믿어, 알렉스트라자." 비라노스는 자신의 이마를 친구의 이마에 꾹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너의 수호자들은 믿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