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비가 많이 내려 동네 곳곳에
피해가 이만저만 아닌 날들이 지속 되고 있습니다.

엄빠 계시는 곳은 안녕하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제는 지나가다가 엄빠를 도와 우리 동네를 화목하게 만들어 주셨던
삼촌 한 분을 우연찮게 뵈었습니다.
짙은 회색 옷, 까까머리를 하고 계시기에 자칫하면 몰라볼뻔했습니다.

소맷자락을 붙잡고 그 삼촌이 맞냐 여쭤보니
좌우를 살피시다가 작은 목소리로 맞다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그간 어디계셨는지 어찌하여 그간 뵐 수 없었는지 여쭤보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며
본인은 이제 속세가 싫어 떠나시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혹시 현재 상황을 잘 모르실까 봐
잠시 이야기 나눌 시간 있으시냐 했더니,
자세를 낮춰 제 눈높이를 맞추시며
"너도 이제 그만 기다리거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말씀하시곤 목탁을 두드리며 발 빠르게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참이나 그 삼촌..
아니 그 스님이 간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혹시 다시 돌아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그만 기다리라고 하신 그 말씀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제 자신이 그 말을 수긍하는 것처럼 느낄까 봐
발이 차마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기다리지 말라는 그 말은 저의 머릿속에서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엄빠 강녕하십니까.

며칠은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동생들이 신씨 가족들에게 맞고 와도 멍하니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동생 한 명이
동네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으니 구경 가자고 제 손을 이끌었습니다.

동생 손을 잡고 따라간 그곳에
우리 동네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크나큰 떡집이 새롭게 생겼었습니다.
오픈 한지 별로 되지 않았는지 개업 떡을 나눠주고 있었고
떡집과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잘생긴 떡집 아저씨가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동생과 그곳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떡집 아저씨가 우리에게도 손짓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가보려는데 동생이 말했습니다.
"형, 근데 신씨 아저씨가 떡집 근처에 얼씬하지 말랬어.
걸렸다간 크게 혼이 날 거야."

그래서 주춤하고 있었는데
마침 신씨 아저씨가 얼굴을 꾸깃한 채로 나타나 떡집 아저씨에게
"떡을 이렇게 나눠주니 온 동네 콩고물이 떨어져 벌레가 들끓는다"라며
큰소리를 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마져
긴장이 된 그 순간.

떡집 아저씨가 신씨 아저씨에게 절편으로 싸대기를 날렸습니다.

신씨아저씨가 당황하여 어버버하였고
떡집 아저씨는 꿀떡, 개떡 등을 양손에 쥐고 던져
신씨아저씨의 몸이 온통 떡이 되었습니다.

떡이 되어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저와 제 동생은 온동네 사람들과 같이 크게 웃었습니다.
아마 엄빠도 보셨다면 웃으셨겠지요.


엄빠 평안하십니까.

그날 이후 신씨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떡 실신하여 꽁지 빠지게 도망간듯해요.
그렇다고 신씨 일가족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동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어요.
동네 사람들은 신씨 일가족이 보이면 눈치를 좀 보긴 했지만,
떡집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그 때문인지 신씨들은 동네를 잘 배회하지 않았죠.
오랜만에 보는 동네 사람들의 웃음이었습니다..


혹자는 엄빠를 이어 떡집 아저씨가
우리 동네의 새 수호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엄빠가 새로운 곳에서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예쁜 자식들을 입양했다고도 하고요.
새로 이사 오신 분들은 우리에게 대놓고
이제 그만 엄빠를 잊으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너무 보고 싶던 큰 형은 이제 크게 성공했을거라며,
그렇다면 지난날의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모두 뼈아픈 말들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건..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을 계속 맞이하면서
다시 아플수도, 다시 좋을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이제는 받아드려야 하는 현실속에서 다시,
그리고 마지막 안부를 여쭙니다.


엄빠.. 부디 만강하십시오....




엄빠를 그리워하는 제 일기가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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