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몬



그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이렇게 심장이 요동치는 것이 얼마만인가.

검은 마법사와의 마지막 일전 때 인가.

강한 자와 싸우는 것이 흥분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마족의 본능인듯 했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더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

데미안.

나의 어머니.

검은 마법사는 하얀 마법사 시절의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서 텅 빈 공간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나의 군단장이여."

"집어치워."

그는 뒤돌아서더니 싱긋 웃으며 소박한 나무의자를 만들어냈다.

데몬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걸어가 의자를 손으로 쳐내어 단숨에 부수고는 날개를 펼쳐 검은 마법사에게로 날아갔다.

"이제 끝내자. 지긋지긋하다."

내려친 그의 무기를 검은 사슬로 막아낸 검은 마법사는 데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미안했네."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데몬의 얼굴에 마족의 상징이 그 어느 때 보다 짙어졌다.

"뭐?"

그는 분노 그 자체가 된 듯 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네."

검은 마법사의 얼굴에 깊은 슬픔이 어렸다.

그의 얼굴은 점점 검은 불꽃으로 타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미안해야 할 듯 싶네."



팬텀


팬텀이 세계의 끝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지고 있던 모든 카드 뭉치를 손에 꺼내든 것이였다.

그는 왜인지 하얀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검은 마법사에게 똑바로 걸어가며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결의를 다졌다.

"그래, 괴도 팬텀. 이번엔 또 무엇을 훔치러 여기까지 왔는가."

"네 놈이 가진 운명을 훔치러 왔지."

팬텀은 굉장한 분노에 휩쌓여 어둡다 못해 불길하기 까지한 마나를 뿜어댔다.

"자네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두번째로군."

검은 마법사의 옆에는 의자가 놓여있었다.

팬텀은 검은 마법사가 앉으라는 듯 손짓하는 모습을 무시한 채 그의 주변에 모든 카드를 뿌렸다.

"내 이런 모습을 또 언제 봤지?"

그는 그가 쓸 수 있는 모든 버프를 시전했다.

"아리아가 죽었을 때."

팬텀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 무언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검은 마법사!"

온 세상이 울릴 정도로 우레와 같은 고함을 지르자 검은 마법사 주변에 뿌려진 카드들이 멋대로 공중을 날아다녔다.

팬텀에게 느껴지는 흉흉한 마나는 검은 마법사의 짙은 어둠에 못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카드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날카롭게 베며 부쉈고, 검은 마법사가 앉으라며 권유했던 의자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네 놈은 오늘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팬텀이 속도를 높였다.

"그럴 수 없는 입장인지라."

검은 마법사는 까맣게 물들어 가며 본 모습으로 돌아갔다.



메르세데스


가벼운 몸놀림으로 높은 벽을 훌쩍 뛰어올라 도착한 곳은 세계의 끝이였다.

"그대는 이곳에 무엇으로 왔는가."

하얀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의 첫마디였다.

"뭐?"

메르세데스는 뜻밖의 그의 말에 황당해했다.

마주치자자 마자 전투가 시작될거라 생각했었기에, 검은 마법사를 마주치고 나서야 모든 정령을 꺼내든 임전태세를 갖추는 것이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었고 그의 무거운 일격이 날아들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였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는 반격보다는 자신의 몸이 그의 흉흉한 참격을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뿐이였었다.

"와서 앉게. 오랜만이니 이야기를 좀 하고 싶군."

그는 소박한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똑같은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잠시 정령들을 거두기로 했다.

"다시 묻지. 그대는 무엇으로 이곳에 왔는가?"

"에우렐의 왕으로써 왔다."

"어린아이 하나 지키지 못한 왕 말인가."

메르세데스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네 놈이. 네 놈의 짓이다."

"강한 왕이여. 그대는 현명한 왕이였는가."

그가 건낸 말에 그녀는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는,"

검은 마법사는 측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대적자로서 여기에 세운 것이네. 다른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였네."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곧 알게 될 걸세. 그대는 왕이였으니,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 믿네."

그는 조금씩 검은 불꽃에 타들어갔다.

"부디, 실망시키지 않기를."

그 한마디가 마지막 말임을 깨달은 그녀는 모든 정령을 꺼내들어 임전태세를 모두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