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때리기’가 점점 진화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중반부터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싸잡아 공격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발목을 잡고 민생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는 논리입니다. 발언이 직설적이고 수위도 높은 편이어서 매번 회의를 앞두고 기자들은 “오늘은 어떤 발언이 나오나”라며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박 대통령의 국회 때리기 변천사는 ‘심판→총선 물갈이→국민이 나서달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4월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강도를 높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국회 때리기 말·말·말의 ‘변천사’를 정리해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5년 6월 25일 | 국무회의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여당 원내사령탑도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갑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이처럼 강도높게 비난한 것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회법 통과에 합의해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결국 13일 만에 사퇴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0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5년 11월 10일 | 국무회의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총선에서)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새누리당 친박계를 중심으로 대구 물갈이론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공천 물갈이론에 힘을 싣는 발언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을 거론하면서 ‘진박’(진실한 친박)과 ‘가박’(가짜 친박)’ 논란도 생겼습니다. 총선을 2개월여 앞둔 현재는 박 대통령 복심이라는 최경환 의원이 ‘진박’ 주도 물갈이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3일 박근혜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5년 핵심개혁과제 성과점검회의가 열렸다. 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5년 12월 23일 | 핵심개혁 과제 점검회의

“만약 국회의 비협조로 노동개혁이 좌초된다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로 일을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정신이 번쩍 들 것인데 정말 모두가 역사를 대하는 마음으로 노동개혁이나 이런 과제들을 대해 줬으면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노동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강력하게 당부했습니다. 이전까지 제기했던 ‘국회 심판론’을 넘어 ‘역사 심판론’으로 수위를 높인 것입니다. 노동법에 반대하는 야당은 역사의 죄인이라는 논리가 깔려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4일 5부 요인과 함께 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6년 신년인사회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6년 1월 4일 | 신년인사회

“정치가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하고, 국민의 민생에 모든 것을 걸어줘야 합니다.”

“(국회가) 새해 국민의 삶을 돌보는 참된 정치를 실천에 옮겨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길 기대합니다.”

박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불참하면서 반쪽행사로 전락한 신년인사회 때도 야당을 공격했습니다. 박 대통령 발언은 특히 야당이 당리당략을 앞세워 민생을 외면했고, 그 결과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잃은 만큼 쟁접법안 처리에 협조해야 한다는 비판으로 해석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6년 1월 13일 | 대국민 담화·기자회견

“이런 위기상황의 돌파구를 찾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국민 여러분들입니다.”

“우리 가족과 자식들과 미래후손들을 위해 여러분께서 앞장서서 나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13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 용산 전자랜드 용산점에 전시된 TV에 방송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 대통령은 담화 이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나서달라는 것은 물갈이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질문을 받고 “적어도 20대 국회는 최소한도 19대 국회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월남 패망론’도 40여년 만에 다시 나왔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6년 1월 18일 | 미래창조과학부 등 6개 부처 업무보고

“오죽하면 국민들이 나서겠습니까. 이것은 국회가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나서서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역시 국민들과 함께 서명운동에 동참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경기 성남 판교역 앞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주관하는 경제활성화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현장을 찾아 직접 서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나서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담화 이후 실제 국민들이 나서고 있다면서 경제활성화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을 지목했고, 업무보고 이후 이어 판교역 앞 광장에 설치된 서명부스를 방문해 서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가 주도하는 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운동으로 언급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정 파트너인 국회를 건너뛰려 한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시사 2판4판]응답하라, 불쌍 배틀 주간경향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현장방문을 했다. 빨간색 동그라미 안은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왼쪽)과 함진규 의원(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 2016년 2월 3일 |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 현장방문

“수출에도 기여하고 애국하는 분들을 이렇게 피눈물 나게 해서 되느냐. 열변을 토하셔 갖고 19대 국회 끝나기 전에 법통과를 시키세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두 분이 가셔서 오늘 얘기를 열심히 보고 (국회에) 전달하시고 피를 토하면서 연설을 하세요.”

박 대통령은 설연휴를 앞둔 지난 3일 반월·시화단지 내 시흥비즈니스센터에서 입주기업 대표 및 근로자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해당 지역구 의원인 새누리당 함진규(시흥 갑)·김명연 의원(안산 단원갑)이 동행했습니다. 대통령은 “피를 토하면서 (법을 통과해달라고) 연설을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두 의원은 다음날인 4일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을 신청, 피를 토할듯 강한 어조로 법안 통과를 요청했습니다.


http://h2.khan.co.kr/201602060459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