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다른사람을 찾아보는게 좋겠군. 난 항해든 뭐든 이것저것 가르쳐줄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러지 말고, 사정 좀 봐 주시오. 나도 절박하오."

"글쎄 죄송합니다. 이만."

페이트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세르비체는 할 수 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뭔가 시작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사라진 지금, 적잖이 취한 세르비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로 가서 잠이라도 청해볼까. 세르비체는, 이렇게 주점에서 취해있느니 차라리 배로 돌아가 한숨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술을 마셔본 것도, 이렇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기에 그는 좀더 즐기고 싶었지만, 그의 몸은 이런 마음과 무관하게 고통을 호소할 뿐이었다.




애초에 일개 선원에게 읽고쓰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발상이지. 페이트는 그렇게 자위했고, 사실 그것이 현실이었다. 

15세기 말. 귀족 계급은 점차 쇠퇴하였으며, 대신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였다. 귀족들에게만 부여되던 교육 기회는 신흥 부르주아 세력에게도 전파되었는데, 그 내용은 기존의 귀족 교육과는 사뭇 달랐다.

이들 부르주아 세력들은 자본이 곧 권력이었다. 이들은 각종 길드, 조합 등을 결성해 일궈낸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왕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조달하여, 왕권과 결탁함으로써 귀족들의 세력에 대항하려 하였다.

부르주아 시민들은, 그들의 후손들이 고상한 학문보다는 자본력을 이어가기를 바랬다. 그래서 시민들은 그들의 아들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귀족들과는 다른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라틴어와 작문, 교리, 음악 등만을 가르치던 기존 교육과는 다르게 시민들의 자제를 위한 학교에서는 라틴어와 함께 수학, 지리 등 다양한 실용 학문을 가르쳤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저울눈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나침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페이트는 그런 시민사회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페이트를 뛰어난 상업가로 성장시키길 바랬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페이트는 집에 틀어박혀서 각국의 언어와 숫자 셈하기를 배워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의 지리와 경제학, 천문학, 경영학 등도 그의 필수과목이었다.

그렇게 주로 집에서만 자라서였을까. 사실 그는 언제나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엔리케 왕자의 모험,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인도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페이트는 언젠가 자기도 그렇게 항해를 하고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세상의 동쪽과 서쪽이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그는, 책으로만 접하는 지식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인도. 신비한 동방의 문화. 책에서 이 단어를 접할 때 마다 페이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결국 에스파냐와의 토르데실랴 조약1)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페이트는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이미 스물 다섯. 피끓는 나이였다. 결국 그는 집을 뛰쳐나와 무작정 배를 끌고 나왔고, 리스본에 와서 선원을 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동방의 여러 나라- 동방에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나라들이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을 거라고 페이트는 굳게 믿었다 - 를 돌아다니며 탐험하는 것이 꿈이었기에, 그에 맞는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동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누엘이나 코엘호 같은 친구들을 어떻게 해서든 설득해서 데려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막심했다. 이 약해빠진 친구들은 페이트의 모험길에 절대 동참하려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이야기 상대가 필요했다. 그와 함께 발견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신문명에 대해 토론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세상물정 모르는 단순한 생각 덕에 아직껏 선원 한명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게다. 세상은, 달랑 꿈 하나만 가지고, 어려움을 헤치려는 의지도 없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술만 마시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젠장. 뭐하나 되는게 없어.."

홧김에 그는 술병을 집어던졌다. 지중해의 따뜻한 지방이었지만, 11월의 밤거리는 조금 쌀쌀했다. 

포르투칼의 전성기에 힘입어 성장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리스본. 
하지만 페이트는 그런 밤거리를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풍덩. 술병은 시원하게 바다에 빠져버렸다.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르고, 서서히 다리에는 힘이 풀려갔다. 털푸덕. 페이트는 그대로 주저앉아서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모험가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희안한 미끼를 쓰는 낚시꾼이었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페이트는 한동안 대꾸없이 앉아있었다.

한참 뒤에야 페이트는 그 소리가 자기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어떻게 고개를 돌렸는지도 모르게 페이트는 뒤를 쳐다봤다. 주점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끝까지 매달릴 참인가?

"아아. 남이사 미끼로 지렁이를 쓰든 돼지똥을 쓰든."

"그래. 날 거절하고 뛰쳐나와선 한다는 일이 고작 바다에 술병을 던지는거요?"

세르비체는 처음 찾아온 기회를 쉽게 놓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몰래 페이트의 뒤를 밟다가, 페이트가 쓰러지는 걸 보고 말을 걸었던 것이다.

"젠장, 되는 게 하나도 없잖수. 선원이 모이길 하나 돈이 생기길 하나. 세상이 왜이리 힘든지.. 이봐요. 나 말야. 나 이래뵈도 배울만큼 배우고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다우. 집에서 뛰쳐나올 때, 얼마나 마음졸였는지 몰라. 그런데 이 꼴이 뭐래. 하 나 참.."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세르비체는 답잖게, 갑자기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고작 이런 사람이었나?

"페이트라고 했던가."

한참 입을 다물다가, 세르비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 배울만큼 배웠다더니, 고생이 뭔지는 배운 적이 없나보지. 온몸을 발길질에 채여가며 밥을 빌어본 적 있소? 버려진 신문지 하나를 덮고 그것마저 일어나면 없어질까 걱정하며 잠을 청해본 적 있소? 쓰레기통에서 튀어나오는 쥐를 잡아먹어본 적이 있냔 말이오. 난 당신같은 샌님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세상의 고통은 모두 짊어진 듯이 말하지. 하긴, 그따위 약해빠진 모습으로는 아무데도 못가겠군."

휙 뒤돌아 가버리려는 세르비체를 불러세운건 페이트였다.

"쳇! 당신이 그렇게 잘났어? 고작 나한테 항해술이나 배우려 한 주제에.."

덥썩. 세르비체는 페이트의 멱살을 쥔 채 살기띈 눈으로 노려보았다.

"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 난 단지.. 살아있었을 뿐이다."

한참을 그렇게 쥐다, 결국 내려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힘이 풀리며 세르비체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1) 토르데실랴(Tordesilha) 조약. 1493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로 개척으로, 인도에 대한 권리를 둘러싸고 에스파냐와 포르투칼의 대립이 있었다. 이 때 교황의 개입으로 1494년 토르데실랴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카부 베르드(Cabo Verde) 제도의 서쪽 370레구아(Legua. 당시의 항해 거리 단위. 1 레구아는 3 mile. km로 환산하면 약 5.5727km 이다.)에 그어진 자오선을 통하여 서반구는 에스파냐, 동반구는 포르투갈에 권리가 인정되어 포르투갈은 동양으로 가는 아프리카 남쪽의 우회 항로를 보장받음으로써 남대서양의 절대적인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종종 상대방의 영역권을 침범하는 일이 발생하여 국제적인 마찰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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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안하게 캐릭 성격이 이상해져 버리는군요.

이래서 음주란 것은-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