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하얀 눈송이들은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내려갔다. 사뿐사뿐, 마치 깃털처럼. 그렇게 천천히 떨어져 내린 눈들은 일렁이는 푸르른 바다의 물결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 바다의 한 부분이 되어갔다.

그런 바닷물을 가르며 거대한 돛을 펼치고, 수많은 짐들을 싣고 온 수십 척의 배들은 드디어 뭍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기뻐하며 흥분하기 시작하는 선원들의 목소리와 갈매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항구로 하나 둘 들어갔다.

한산하던 항구는 무역을 위해 멀리 라우 대륙에서 건너온 배들이 도착하자 웅성이기 시작하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을 던지고 받으며 배들을 항구의 안쪽으로 끌어가기도 하고, 도크에 계류시키기도 하며 짐과 선원들을 내리는 항구의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는 말을 탄 한 소년이 있었다. 흰 말에 고급스러운 하얀 옷.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하얀 눈들의 사이로 숨어버린 그 소년의 옷과 말 덕에 보이는 것은 소년의 가지런히 정돈된 긴 흑발의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말의 눈동자뿐이었다.

소년은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멀찌감치서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았다. 소년은 뱃사람들의 생활과 낭만을 동경하고 있었다. 마치 한 곳에 안주하는 꽃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들을 동경하듯.

항구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소년을 보고는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철부지 도련님께서 오늘도 나오셨구나.’ 하고. 소년은 동방의 거대한 에우와 라우 대륙에서 출발한 배가 도착할 때마다 말을 타고 나와 구경하곤 했었다. 

항상 구경을 나왔다고 해 보아야 다섯 번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이제 막 앳된 티를 벗으며 청년이 되어가는 그 소년은 세상물정을 조금씩 알기 시작하며 항상 나왔으니 ‘언제나’ 라고 말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항구에 들어온 배에서 선원들이 짐을 들고 한명씩 나오기 시작하자 소년은 두 눈을 반짝이며 배들의 근처로 다가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겉모습은 귀족 가문의 공자가 내려다보는 오만한 모습이었지만, 속마음은 그들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적당한 근육의 몸과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피부. 하지만 이들은 에우 대륙이 아닌 라우 대륙에서 건너온 이들인지 피부는 특출하게 검었다. 마치 어두운 곳에 몰아둔다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년은 그들의 뽀글뽀글한 머리카락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비교적 자주 오는 에우 대륙의 상선들 덕에 익숙한 그들의 모습과는 달리 라우 대륙에서 오는 상선들은 바람을 안고 항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기후가 달라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외모가 소년에겐 더욱 더 신기하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아아, 샤라인 공자님. 오늘도 나오셨군요.”

샤라인이 신기한 듯 선원들을 보고 있는 것을 본 한 젊은 남자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샤라인은 그를 보더니 작게 웃으며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곤 말머리를 돌려 그에게 다가갔다.

“머츠 경.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이들은 라우에서 온 상선대인가요?”

“그렇습니다. 라우에서 에우까지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까지 왔다고 하더군요. 꽤나 오랫동안 항해를 해서 다들 지쳐있을 법도 한데 쌩쌩하니 이거 부럽기만 합니다. 허허.”

머츠가 넉살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그가 방긋 웃었다. 그리곤 선원들과 항구의 사람들이 배에서 짊어지고 내리는 궤짝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머츠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고는 말했다.

“공자님의 호기심은 여전하시군요. 이리로 오세요, 이번에 라우에서 건너온 물품들을 보여드리지요. 뭐 제가 구경시켜드리지 않아도 며칠 후면 보시겠지만, 지금 당장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머츠 경. 다른 대륙에서 오는 무역품들은 항상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오는 물품들도 같은 물품은 거의 없으니 굳이 사지 않아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네요.”

샤라인이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머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항구의 뒤편에 세워진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항구 쪽에서 여자들의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머츠와 그의 귀를 파고들었지만 그들은 그 소리를 무시했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에게 돈을 받고 그들에게 안기는 여자들이란, 그다지 유쾌한 광경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머츠와 소년은 그런 일들을 공유하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공자님 오늘도 뵙는군요. 결근도 없이 성실히 출근하십니다. 마스터, 물건들은 3층에 올려두었습니다.”

건물의 앞에서 출입을 관리하던 노인이 말했다. 소년과 머츠는 그에게 작게 고개 숙여 인사하곤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이 건물은 샤라인의 아버지인 제로스 드 엠펠 백작이 영지의 상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

처음 지을 때에는 에우와 라우와의 무역에서 극심한 적자를 보고 있는 터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가신들의 사이에서는 말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 때에 그의 결정이 현명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는 머츠의 뒤를 따라 익숙한 길을 지나서 3층까지 올라갔다. 3층은 마치 무도회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넓게 펼쳐진 고급스러운 카펫과 벽에 걸려있는 양피지에 그린 예술 작품들. 

그리고 넓디넓은 홀의 한 가운데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교역품들은 소년과 머츠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기에 부족한 점이 없었다. 머츠는 그와 함께 교역품들의 옆으로 걸어가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머츠는 물건들이 얼마나 값을 받을 수 있을지 그 등급을 매기고 있었고 샤라인은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서 단지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라우에서 건너온 상인들은 너무도 대조적인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약간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머나먼 라우 대륙에서 고르고 골라 싣고 온 물품들이었지만 이곳 우사 대륙의 상인들이 보기에 값어치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어쩔 수 없었다. 한번에 싣고 오는 양의 교역품들이 너무 많아서 같은 물건을 갖고 온다면 돈을 많이 받기는 힘들었다. 값어치가 있는 물건들이라면 많이 갖고 왔을 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기는 하지만 말이었다.

“호오…….”

샤라인이 교역품들 가운데에 놓여진 검을 보고는 나지막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그 검을 들고는 세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비록 전쟁에서 검의 활용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검은 대표적인 무기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관심을 갖은 검은, 싸움을 위해 만들어진 검이라기 보단 실내에서 장식을 하거나 행사에 참가할 때에나 쓰일 법한 화려한 모습의 검이었다. 화려하게 수놓아진 손잡이부분과 손을 보호하기 위해 손잡이의 주변에 있는 링과 키용은 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당목향과 사탕수수, 산호, 면화라……. 총량이 어떻게 됩니까?”

머츠가 능숙한 어투로 라우 대륙의 언어를 구사하며 라우에서 온 상인에게 물었다. 그는 머츠가 의외로 자신들의 말을 잘 하는 것을 보고는 짐짓 놀라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보며 말했다.
“당목향은 30상자, 사탕수수는 280상자이고 면화와 산호는 각각 60상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는 머츠가 약간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목향은 그가 알기로 라우 대륙에서도 없어서 못 파는 인기품목들 중 하나였다. 그 자신이 젊었던 시절 라우에 갔을 때에도 당목향을 사려다가 사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허허, 라우 대륙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하늘을 찌르던 당목향의 인기가 수그러들다니.”

“뭐, 그렇게 됐습니다. 세상은 원래 어지러이 돌아가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가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머츠는 그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라우 대륙은 예부터 전쟁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문물이 라우 대륙에서 흘러나오긴 했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면 지금 그들이 있는 이 우사 대륙이라고나 할까? 거대한 대륙의 크기에 맞지 않게 단 3개만 존재하는 제국은 서로의 힘의 균형을 맞춰왔기 때문에 자그마한 국지전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귀족들도 공연하게 세금을 많이 걷어 사치와 향락을 즐길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흉년이 아니라면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흉년이 아니라면 그런 이들을 나라에서 구제해 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오늘 막 도착하셨는데 괜히 이곳에 계시도록 붙잡은 것 같군요. 흥정에 대한 것은 내일 걱정하시고 오늘은 푹 쉬십시오. 당목향이 30상자나 되는데 굳이 뭐 하러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나중에 저희 상단이 라우에 가면 값이나 후하게 쳐 주십시오.”

머츠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피곤한 기색을 짓고 있던 그는 고맙다며 머츠에게 인사하곤 다른 이들과 함께 홀에서 내려가 숙소로 향했다. 머츠는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곤 샤라인에게 걸어와 말했다.

“그 검이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 맘에 듭니다. 파티나 열병을 할 때에 차고 다니면 딱 일 듯한 검이군요.”

그의 말에 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샤라인이 들고 있는 검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보검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자, 공자님. 밥이나 먹으러 가죠. 이거 오랜만에 라우에서 온 상선대를 만나니 긴장이 되서 아까 먹은 밥이 다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머츠는 작게 웃고는 그를 안내해 2층으로 내려갔다. 2층에는 상인들을 위한 식당이 있었는데 고급스럽기로 따진다면 엠펠가문의 영지 내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샤라인은 식당으로 들어가며 입이 즐거워지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무슨 음식이 나올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설레며 주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 곳의 메뉴판에 있는 음식들 중엔 그가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에겐 먹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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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ra라는 사이트에서 연재하고 있는 항해소설입니다.

뭐.. 대항해시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것은 아니구요' ';

그저 바다에서 전투를 벌이고, 교역을 하기도 하며 역사를 발견해나가는 내용이라 한번 인벤에도 올려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구상하고 있는 대항해시대 팬픽도 한번 쏘보구욤..''~

 - 아레스 M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