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아씨..물...물 좀 주세요!”

“레니아씨 팔이 아파요! 이쪽도..!”

 항해 5일 째 저녁. 날씨 맑음. 배는 막 랜드 앤드 곶을 벗어나 비스케이만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회계나 군용을 제외한 기타 서류작성 업무는 혼자 해야 했기에 굉장히 피곤하지만...의외로 뛰어난 솜씨의 길리엄과 신참 알프레드의 도움으로 조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던 중 2일 전, 선원들이 잡은 해파리를 요리하려고 알프레드에게 세척을 부탁했는데, 그만 알프레드가 해파리의 촉수에 찔려 오른팔을 크게 다쳤었다. 나름대로 이미지도 있고, 나이도 어린데다-이 녀석, 고작 15살이었다.-  첫 항해인게 불쌍하기도 해서 밤을 새워 정성껏 간호해 줬었는데..

“네..자..잠깐만요”

쾅.

의무실 문을 거칠게 닫고 밖으로 나선 나.

“......”

설마 난 이 멍청이들이 간호를 받으려고 일부러 해파리에게 단체로 쏘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뭐 사실 녀석들이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수술이나 치료는 클라비스와 베르츠가 처리했지만... -놀랍게도 베르츠가 군의관! 이딴 녀석들에게는 마취약이 아깝다고 무마취로 수술을 했는데 비명이 끊이질 않았었다. - 결국 자잘한 간병은 내가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뭐 사실 의학지식은 별로 없어서 알프레드에게 해줬던 것도 약간 식사에 신경쓰거나 곁에서 간호해준 것 뿐이지만..

“힘드시겠군요.”

막 복도를 돌아 나오는 클라비스와 베르츠가 보인다. 아마도 오늘도 간단한 치료를 하기 위함인 것 같다.

“계속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것도 다 레니아씨의 매력때문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듣기는 좋은 소리지만...역시 힘들다. 이런 일.

덜컥. 쾅.

클라비스와 베르츠가 문을 닫고 들어간 수초 뒤. 의무실 안에서는 알 수없는 금속성의 소리와 병사들의 비명, 그리고 날 애타게 찾는 목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어, 레니아씨. 수고하십니다.”

역시 복도를 돌아 나오는 터번을 쓴 어색한 영어발음의 사내가 보인다. 그는 이 배의 포술담당인 이타크 이븐 알 아르 준위(특무상사)로 이슬람에서 귀순했다 한다. 그의 손에는 지금 대걸레가 들려있다. 원래 포를 관리해야 하기에 특별히 배의 청소를 면제받은 사람이지만.. 50이 좀 넘는 선원 중 십수명이 병상에 있기 때문에 그까지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과묵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으로서, 이 배의 여느 선원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타크씨도 고생 많으세요”

난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줬다. 짤막한 미소로 답례하고 다시 묵묵히 청소에 임하는 그.

“휘유우우.”

난 나 자신도 왜 쉬었는지 모를 한숨을 쉬며 갑판으로 올라갔다. 열심히 배를 손질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낭트에 기항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느새 왔는지 모를 길리엄이 뒤에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에? 가급적 보급은 안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식량도 충분한데...”

“음..그게 말입니다..사실 물이 부족해서요. 저 멍청이들 수술할 때 많이 썼기도 하고... 또..”

길리엄을 말을 마치며 날 힐끗 쳐다봤다. 저 쪼잔한 녀석! 숙녀가 하루에 3번 샤워하는데 물이 그렇게 아깝냐!

“흠흠, 그나저나 곧 저녁식사를 준비해야겠군요. 같이 갤리(galley - 배, 항공기의 조리실.)로 내려가실까요? 알프레드 녀석에게는 이미 준비를 시켜놓았습니다만...”

“아? 네. 곧 내려갈게요. 먼저 내려가 계세요.”

우우. 배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비좁고 더운 갤리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니. 사실 말이 조리실이지, 벽돌로 된 화덕 몇 개 깔아놓은 것에 불과한 걸..

사실 내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선내의 식사의 질이 상당히 높아지긴 했지만...썩은 소고기와 생선, 그리고 그냥 씹으면 이빨이 부러져버리는 딱딱한 빵으로 수준 이상의 식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일주일마다 7파운드의 비스킷, 7갤런의 맥주, 소금에 절인 고기 8파운드, 저장된 생선 3/4파운드, 3/8파운드의 버터, 3/5파운드의 치즈를 제공해야 된다는 복잡한 규칙에....아아, 쉬울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잉글랜드의 군대는.. 맥주가 떨어지면 동맹파업을 한 전례도 있기 때문에..술의 관리나 양조에도 굉장한 신경을 써줘야 했다.

이글이글.

중얼거리는 세에 갤리에 도착해버렸다.

“음...그러니까..오늘은...”

“생선을 지급해야 됩니다. 레니아씨”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길리엄.

“아..그러면...어육 중 건대구가 몇 마리 남지 않았나요?”

“그러실 줄 알고 알프레드에게 미리 준비시켜 놨습니다. 이봐 알프레드! 준비는 다 됐겠지?”

“무..무..무....물론이죠”

식량창고의 문을 힘겹게 열고 나오는 알프레드의 등에는 건대구가 다량 매여 있었다. 사실 대구 자체의 무게가 무거운 건 아니지만.. 이 건대구란 놈이 하도 단단해서, 나무봉으로 적어도 한 시간 반정도는 두들겨줘야 먹을 수 있는 육질로 변하기 때문이다. 불쌍한 알프레드...족히 20마리는 되어보이는 건대구를 하루 종일 때리고 있었을 것이다.

“좋아. 그럼 화덕에 넣고 끓이도록 해. 조금 쉬어도 좋아.”

길리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실행에 옮기는 알프레드.

“그나저나 레니아씨는 참 대단합니다. 이런 열악한 재료를 그런 요리로 승화시키시다니.”

“그..그야 길리엄씨와 알프레드의 도움이 컸으니까...”
 
전부 내 실력이지. 암.

“그럼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포타즈(pottage - 야채와 고기를 넣어 끓인 수프)로?”

길리엄이 나무 꼬챙이로 화덕안의 대구를 쿡쿡 찔러보며 말한다.

“아뇨..저..매일 포타즈를 드리기도 뭐해서.. 오늘은 그라탕이라도 해보려구요..”

“오오...그런데, 저런 재료로 가능할까요?”

나라면 가능하지. 당연히.

“음.. 돼지고기도 좀 있고, 치즈나 우유는 많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여느 때 처럼 레니아씨의 지시대로 하면 멋진 음식이 나오는 거겠지요.”

음, 사실 저 말을 듣고 생각해 본건데... 내가 조리를 했다고 해도, 결국 난 지시 하거나 맛을 본 것 외에 실제로 손을 대서 요리를 한건 별로 없다. 사실 나같이 연약한 소녀에게는 저 거대한 화덕의 국자를 휘젓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까 잘못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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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는 도중, 소설을 쓴지 1주일이 넘어버렸다는 생각에 급조해서 썼습니다. 아아, 좀 생각해서 써야 할텐데 계속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늦어도 1주일에 한편은 쓰도록 일생현명 해보겠습니다.


P.S ...소설이 재미없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정말..(미안해요 레니아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