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 말을 받아치곤 했지만
오늘따라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말을 미리
준비라도 해온 건지 무슨 자신감에서 넘쳐나오는 말일
까 했다.

"어, 여기. 돼지갈비 3인분 주시오."

"예, 손님"

손을 들고 점원을 쳐다보면서 말을 하니 식당안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 큰 소리도 아니었는데
신기한 듯 쳐다보는 것이었다. 

"당신은 벨을 눌러서 말하면 되지 왜 큰 소리로 주문을 
 하고 그래요?"

"큰 식당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뭐 있나?"

"참......"

"주문했으면 된거 아닌가, 너무 신경쓰지 말어."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잠시 후에 점원이 불판과 숯불을 들고 왔다. 그리 뜨거워
보이지도 않는 숯불을 넣더니 불판을 올리고 되돌아갔다.
손을 불판 위로 뻗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처럼 열기가 
미지근 했다. 

"여보, 불이 조금 약한 것 같지 않아?"

"왜요,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아냐, 너무 약한 거 같아. 이래가지고 고기가 익겠어?"

"참, 당신도. 배에서 굽는 숯불이랑 다르잖아요."

"그런가?"

"당신은 여기 몇번을 오면서 불 세기를 기억을
 못해요."

"뭐 배에서는 드럼통을 잘라서 숯을 한가득 넣어서
 구워 먹으니 그렇지."

"아 그럼. 그 배에서 굽는 숯을 직접 들고오시던가요."

"거 참 말하는거하고는. 불이 약하다고 하면 손도
 갖다 데어보고 점원한테 한번이라도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오늘따라 왜 이래 당신."

"참나, 식사 왔으니 얼른 드세요."


"돼지갈비 3인분 나왔습니다. 밥은 따로 주문하시겠어요?"

"아니 됐소."

"네, 맛있게 드세요."


3인분 상이 차려지고 점원이 다른 곳으로 가자 
아내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보니
예전 처럼 다소곳하게 굽고 있었다. 

"쳇, 거 고기 굽는거는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만."

"고기 굽는 모습이 뭐가 중요해요. 얼른 드세요."


고기가 익자 밑반찬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열차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처럼 젓가락을 바쁘게 움
직였다. 아내에게는 먹는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웬지 아내가 구워준 고기라는 생각에 마음이야 어쨌든 젓가락
을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천천히 드세요. 고기 더 시킬까요?"

"괜찮아. 당신도 조금 들지."

"저는 조금만 먹으면 되요."

"당신도 들어. 저녁에 배고플꺼야."

"괜찮아요. 그나저나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뭐에요?"

"음음. 이번 배 타기 전에 당신이 했던 얘기 말야."

"아이들 이야기요?"

"아이들 문제도 그렇고 우리 문제도 그렇고."

"아이들은 아직 집에 있어요. 어머님 댁으로 조만간
 보내야죠."

"꼭 그렇게 해야 되나?"

"아이들도 이제 중학생이고 다 컸는데 엄마 없다고
 징징대지는 않겠죠."

"중학생이면 무슨 다 큰 어른인가? 엄마가 옆에서 
 돌봐주고 뒷바라지 하고 해야지. 돈이 모자라는 건
 아니잖소."

"당신 없는 사이에 친정 좀 도와줬다고 제가 돈이
 모자라다고 하던가요?"

"어디 돈이 모자라다고 했나, 당신이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하다고 하니 내가 무슨 방법을 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제가 통장 몇개 깬거 가지고 지금 뭐 
 어떻게 하겠다는거에요?"

"허허, 이 사람. 내가 아무리 배를 탄다고 나를 없는
 사람 셈 치면 되는가 말야. 당신도 이메일 쓸 줄 알면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이야기 하면 되지. 꼭
 한국에 도착해서 집에 전화하면 그 때서야 말하는거야."

"그야 급한일이니 먼저 돈을 쓴거죠."

"그래 돈을 쓴건 내가 이해할 수 있어. 근데 갑자기
 왜 아이들을 놔두고 친정에 간다는거야?"

"친정에 다른 사람들이 바쁘다고 하니 저라도 가서
 무슨 일을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꼭 가야만 되는 이유라도 있는거야? 친정에 무슨
 큰 일이 있어서 그런 큰 돈이 빠져 나가는거야?"

"제가 돈을 들고 도망간 것도 아닌데 왜 이렇ㄱ
 꼬치꼬치 캐물으세요? 고기 식겠어요. 일단 
 식사부터 다 하세요."

"그 사람 참...,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무슨
 입맛이 나나. 내가 돈에 무슨 마음이 있어서 
 지금 당신한테 이러는 줄 아는감."

"돈이 아니면 아이들 때문에 그러시는거에요?"

"거 친정에 무슨 큰 일이 있든 바쁜 일이 있든
 엄마가 아이들을 제쳐두고 일을 하면 되나?"

"당신도 참, 대화가 안되네요."

"대화가 안되는 건 당신이야."

"그렇게 대화가 안되면 이혼하시던가요."

"말 한 번 잘했네. 자 여기."


짐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아내에게 주었다. 
그 서류는 이 번 배를 타기 전에 아내가 나에게 준
이혼 서류였다. 많은 서류도 아니고 몇장 들어있는
서류봉투였는데 그 몇글자 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고민하게 만드는 서류였다. 

"그래요. 도장은 찍으셨어요?"

아내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방에
작은 주머니를 열어 도장과 인주를 꺼내었다. 인주 
를 열고 도장을 세워놓았다. 

"여기 도장있어. 이 도장, 이 도장만 찍으면 당신이랑
 나랑은 끝이야."

"어머, 말 참 무섭게 하시네요. 끝이건 뭐건 찍어줄꺼면
 얼른 찍어주세요."

"당신은 이혼이 그리 쉬운 일이야?"

"뭐 어렵겠어요, 당신하고 저하고 이렇게 대화가 안되는데
 이혼해야지요."

"그럼 그 동안 아이들 키우고 살아온 건 무슨 귀신한테
 신들려서 살아온거야?"

"귀신한테 신들렸다고 생각하세요."

"허허, 이 사람 참.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아 됐어요. 당신이 안찍으면 제가 찍을께요."

"허허......"


얼굴색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화끈한 무언가가 내 얼굴
을 덮는 듯 하더니 이내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사람
머리에서 김이 피어 오른다더니 지금 내 모습이 그런 모습
이었다. 아내는 내가 잠시 탄식하는 사이 내 도장을 들어
이혼서류에 찍어버렸다. 힘도 있고, 시간도 있고 도장 찍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내 손과 마음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자,됐으니 도장하고 인주 챙겨 넣으세요."

"정말 아이들 안보고 살꺼야.당신?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아이들이 정으로 오면 되죠."

"당신 정말!....."


아내에게 힘껏 소리를 질러버렸다. 식당안에 있는
사람들이 또 나를 쳐다보았다.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마치 읽기라도 한 모양인 듯 다들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아내는 나의 이런 모습에 익숙했던지 그리 놀라지 
않은 모습이었다. 서류를 챙기고서는 아내는 계산서를
집어들었다. 

"일어 나세요. 계산을 제가 할께요. 그리고 아이들은
 옷이랑 몇가지 챙겨서 보낼테니 걱정마세요."

"걱정 말라는 이야기가 진심이오 당신?"

"걱정을 하시던 마시던 이제 부부가 아니니까 
 계산하고 서로 갈길 가요."


부부가 아니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심 회복되기를 
바라고 온 고향이었는데 아내를 잃고 아이들마저
고생스럽게 만들다니......


"예,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계산이 끝나자 아내와 나는 머뭇거리며 거리로 나섰다.
말싸움이 그렇듯이 서로가 무슨 소리를 어떻게 했는지도
까먹어 버렸다. 그저 아내는 이혼만 기억할 것이고, 나는
차가운 아내만 기억하겠지.

"언제까지 배에 돌아가세요?"

"3항사 녀석이 연락을 주겠지."

"시간 남으시면 아이들이라고 한 번 보고 가세요.
 아이들이 매일마다 아버지를 찾아요."

"그래. 내 알겠으니 당신은 그럼 어디로 갈려고?"

"당신이 서류 줬으니 법원으로 가야죠. 말나온 김에 
 빨리 일 처리를 해야 저도 홀가분 하지 않겠어요?"

"내가 이혼서류를 들고 올 줄은 알았나보네?"

"이혼 서류를 안들고 오셨더라도 저는 친정으로 
 갔을꺼에요."

"짐은 다 챙겨놓은거야?"

"짐은 예전에 다 친정으로 보내놨어요. 몸만 가면 되요."

"그래, 이렇게 끝나는구만......"

"아무튼 이혼 서류는 제가 빠르게 법원에 제출하고
 처리할테니 걱정 말고 배로 돌아가세요."

"걱정 말라는 말 정말 진심으로 하는거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내 한숨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뒤돌아 걸어가고 있었다. 달려가서 팔이라도 
붙잡고 한대 때려야지 하는 나쁜 마음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