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이다! 해적의 급습이다!!!"

 화륵! 화르르륵! 
 콰앙! 쿠웅! 쾅! 쾅!
 으아아악!!! 꺄아아아!!!

 달빛이 비추는 차가운 밤. 그날의 밤은 악몽의 밤이었다.
 엘리스에겐 정말로 잊혀질 수 없는 그런 밤.
 1465년 5월 17일 새벽 3시.
 
 /

  "으..으...도, 도와줘!!!"

 엘리스는 차마 자신의 앞에 널부러져 있는 한 중년 사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처참했다. 모든 것이. 왜 자신에게 이 일이 일어났는지. 하필 시라쿠사인지.
 왜 하필 이 때 군인들이 베네치아 근해 순회를 나갔는지. 

 원망스럽고 원망스럽다. 이 모든 일들이.

 "으....살려..."

 사내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두 다리는 이미 절단되어 있었고, 상반신은 무언가에 난도질
당했는지 여기저기 핏자국이 넘쳐난다. 그리고 배에 새겨진 그 문양은 엘리스에게 참혹한
공포를 선사한다. 
 깃털모를 쓴 해골 모양. 이빨에 그려진 담배 한개피. 신기할 정도로 명확한 칼로 생살에
그린 문양. 이 특징은 그들이 왔을 때에만 적용 된다.

 "프랜시스 해적단."

 인도와 유럽 사이를 지배하는 거대한 해적단. 해양이나 도시 모두 침략을 아끼지 않는
최고로 잔인하기로 유명한 해적단.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칼로 그린 담배를 문 해적문양이
 사람들의 몸에 새겨져있다고 해서 "타투(Tattoo) 해적"이라고도 불린다. 그런 그들이 왜
여기까지 약탈을 왔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꺄아아아아아!!!!!"

 난생 처음 접하는 두려움에 엘리스는 구석에 쭈구려 앉아 연신 귀를 막고 비명을 질러댄다.
방금 전에도 자신을 매일마다 놀려먹던 아이들 중 하나인 '야르코프'가 죽었다.  통쾌하다고 
생각 할 수 없다. 해적들은 어린 그를 잡아올려 배에 시미터를 깊게 쑤셔넣고, 피를 토하자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다시 목에 검을 꼿아넣었다. 그리고는 배에 검을 들이대며 '그 문양'
을 새겨넣었다.
 '드드드드'거리며 이빨이 떨린다. 춥지 않다. 오히려 덥다. 주변에서 타오르는 여러 불길들이
엘리스의 가녀린 몸을 압박해온다. 생전 검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녀에겐 이 상황은 아주 좋지
못한 것이 확연하다.

 "크, 크크크. 이번에 수입이 짭짤하겠군. 이 곳에 금이 대량으로 밀수입 됐다고 들었는데 말야."
 "그러게. 카카카카! 말레보치 놈들이 간이 부었어! 우리 구역에서 장사를 하려고 하다니."

 그들의 말을 엿들은 엘리스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잇었다. '말레보치 해적단'이란 주로 북해
에서 활동하는 자들이었는데, 이번에 지중해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프랜시스 해적단'과 마찰
을 자주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들이 동지중해 까지 흘러들어오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대장! 이 근방에 숨겨논 곳이 있다고 하는데요?"
 "큭큭. 카악! 퉤! 이런 쓰래기같은 것들. 감히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그러게 말입니다! 캬캬캬!"

 마침 자리를 피하려던 엘리스는 다시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들이 엘리스의 집 앞을 서성이고
있던 것 때문이다. 바로 현상금 45억 두캇의 대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이다. 기사로 유명한 영국의
"칼베르만 키프스키"와 해상에서 일전을 벌여 승리한 것으로 유명한 자.
 그런 자가 집 앞에서 서성거린다니 매우 까무러칠 일이다.

 "흐, 흑. 아빠..엄마...나 무서워...도와줘...제발..."
 "쉿! 조용히 해!"
 "흡!"

 순간 엘리스의 입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깜짝놀라 심장이 멎을 뻔한 엘리스는 위를 올려다 보았고
이내 눈물이 흐를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 였던 것이다. 그들은 평소 모습과는 달
리 날카로운 롱소드와 가죽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가슴 팍에 얼핏 보이는 문양은
바로 "말레보치"의 표식이었다.
 
 "아, 아빠가..해, 해적...?"
 "엘리스...미안하다..모든 것은 여길 빠져나간 후에 알려주마.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

 그리곤 엘리스의 아버지는 그녀의 주머니에 작은 쪽지를 집어넣었다. 멍하니 아버지를 올려다보던 엘리스
는 해명해달라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역시 그녀또한 슬픈 표정으로 엘리스를 위로했다.
 그래도 엘리스는 그들이 감싸주자 한결 편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죽지않아"라고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외쳤다.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엘리스. 잘들어라. 곧 아빠의 동료가 와서 신호를 보낼거야. 그러면 저기 있는 나쁜 아저씨들이 동료들
이 있는 곳으로 달려갈꺼야. 그 순간 재빠르게 뛰어서 곧장 숲을 통해 뒷마당 항구로 가라. 알았지?"
 "흐. 흐아앙...아빠는? 엄마는? 난, 난 무서워...서.. 못할 거 같아..흑흑"
 "엘리스! 엄마가 뭐라고 했어. 넌 강하니까 모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했잖아!"
 "흑. 끄흑. 그, 그래도.."
 
 엘리스의 녹색 눈망울이 물의진동처럼 흔들린다. 그에 부모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지만 굳게 결심하고
엘리스에게 말했다.

 "들어라. 엘리스. 엄마와 이 아빠를 실망시키면 안돼잖니? 항구로 가면 작은 바사 한척이 있을거야. 그
것을 타고 곧장 피사로 향해라. 알았지? 먹을 것은 충분해. 엄마 아빠는 여기 숨어있다가 바로 피사로 향하마."

 애써 재미있는 표정으로 콧수염을 만지는 아버지를 보며 엘리스는 자신이 어리광을 부릴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
았다. 자신은 이래선 안돼는 것이다. 매일 마다 엘리스를 위해 일을 해오는 부모님들을 보며 또래보다 성숙한 엘리
스다. 그에 엘리스는 굳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엘리스만 믿는다!"
 "응! 피사에서 꼭...볼 수 있지?"
 "그럼! 엄마가 엘리스를 어떻게 놓고가?"

 하지만 엘리스는 알고있다. 그들이... 돌아 오기 힘들다는 것을.

 타앙! 타앙!

 "말레보치 해적이다!"
 "죽여라! 건방진 찌그래기들!"

 순간 말레보치 해적단이 출몰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리고 엘리스의 부모들은 집 앞의 해적들에게서
시선을 끌기 위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엘리스는 잠시 눈물을 흘리다 이내 더러워진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뒷골목을 통해 부모님이 말한 곳으로 향했다.
카르도와 언제나 숨박꼭질을 하던 그 곳이다. 빠르게 이 곳을 벗어났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 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죽을 것 같아서. 돌아 볼 수 없었다.

 /

 "하아. 하아. 하아."

 정신 없이 달리는 엘리스의 입에서 고인 침이 흘러내린다. 사정없이 여기저기 찢긴 옷 사이로 흰 생살이 보이고
작은 신발은 이미 신발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마치 거지를 연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엘리스는 눈
물을 머금고 숲을 통과해 항구에 다달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대략 20분.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치 1년을 보내는 듯 한 그런 기분을 받은 엘리스다.

 "잘도 오셨군. 큭큭. 코니프의 딸아."
 "허, 허억."

 순간 엘리스는 까무러칠뻔했다. 심장이 동시에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짙은 검은색의 윤기나는 해적모를 쓰고, 마치 산도적처럼 구렛나루부터 턱까지 길게 이어진 수염. 또한 집사를
연상시크는 긴 반달형 콧수염. 거기에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 눈썹부터 눈밑까지 길게 찢어진 칼집.

 "프, 프, 프, 프랜시스 드레이크..."
 "크, 크하하하! 꼬맹아! 날 아는구나? 캬캬캬 반반한 년이. 제법이로다!"

 무엇이 즐거운지 프랜시스는 호탕하게 웃음지었다. 그리고는 금방 싸늘한 표정으로 칼집에서 날카로운 검을 꺼냈다.
보라색의 아름다운 자수정이 박혀있고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보검. 기사 칼베르만 경의 검이다. 보검으로 유명한 검.
프랜시스임을 의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스르릉.

 "히, 히익!"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열리지 않는 입술 안에서 '살려주세요.'란 외침이 떠돌 뿐이다.
그리고 그의 검이 목에 닿았다. 차갑다. 두려울 정도로 차갑다. 이 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었을까.

 "재미있지 않는가? 코니프. 10년 전의 일이 반복되는 게야. 푸하하하하! 정말 재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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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오스섭인데 키뮤식님과 아이들이 절 털려고 할지도 모르므로 오늘은 이만. 릿본 복귀 왠지 불안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