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프랜시스."

 순간 프랜시스의 검이 엘리스의 목 언저리에서 멈추었다. 자칫했으면 목이 두동강나버렸을 법한 상황에
엘리스는 까무러칠거 같은 마음을 부여잡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직도 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이 전해져온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앞에 서있는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 아..빠?"
"크. 크하하하! 재밌어. 코니프!"

 프랜시스가 무엇이 웃긴지 배를 부여잡고 연신 '재밌다'라고 외쳐댔다. 그에 코니프는 차가운 표정을 하며
프랜시르를 노려보았다. 엘리스 또한 매번 다정하기만하던 아버지의 새로운 얼굴을 보자 깜짝놀라며 주춤거
렸다.

"그 칼. 치워라."
"못 하겠는데?"

 온 몸이 떨릴 듯한 한마디를 프랜시스는 스산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넘겨버린다. 그러자 코니프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숙이며 프랜시스에게 다가갔다.

 털썩.

 "아빠!"

 프랜시스의 앞에 무릎꿇은 코니프는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사정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30년 만에 낳은
딸은 애지중지한 금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에 프랜시스는 잠시 코니프를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시끄럽게
웃던 그였지만 갑자기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며 코니프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 이냐."
"내 딸. 살려다오. 대신 내 목을 주마."
"10년 전의 일을 잊은건가? 내가 과연 네 부탁을 들어줄 것 같은가?"
"할 말은 없다. 미안하다. 굳이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

 엘리스는 느낄 수 있었다. 프랜시스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가 쥔검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에 따라 엘리스의 목에서도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엘리스는 눈을 꼭 감았다.
 지금 이 상황이 모두 꿈이길 바랬다.

"날 잘 알고 있지? 코니프."
"알고 있다."
".....등가교환이다. 하지만 옛 정을 생각해주마. 그렇다하더라도 있지마라. 네 최대의 적이 나란 것을."
"고맙다. 할 말은 이것 뿐이군."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던 엘리스는 자신의 목에서 시피런 검날이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엘리스의 앞을 지나 무릎을 꿇고 있는 코니피에게 다가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아빠!!! 아빠!"

 고개를 숙인 체 앞에 있는 엘리스를 마져 보지 못한 체로 희미하게 웃는 코니프를 보며 엘리스는 눈물을 흘렸다.
프랜시스가 그에게 다가가 검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웠다. 혼자남겨진다는 것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아직은 어린 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의지할 곳 중 하나가 사라진 다는 것,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어진 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이제는 심장에 느낌이 없었다. 온 몸이 마비된 것 처럼.

"너와 나의 질긴 악연을 여기서 끝낸다. 아니, 이어지겠군."
"....."
"그럼. 지금까지 즐거웠다. 미칠정도로. 아쉽군."

그의 날카로운 롱소드가 달빛에 반사되며 화려한 검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곧 수직으로 치켜올려졌다. 그의 딴에는
굉장한 배려로 한번에 목을 베어 고통을 덜어줄 생각이었다. 

 부웅!
 스악!

"욱."
"아..아, 아빠..아.."

 아버지의 머리가 차가운 땅바닥에 뒹굴었다. 목에서는 여지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몸통은 쓰러져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 날카롭게 찔려오는
애처로움. 입 안에서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말이 맴돌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전신 마비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머리는 공허하게 비었고 몸통은 서늘한 약간의 바람에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해져 흔들린다.  슬픔을 가득담은 연녹색의 동공은 크게 글렁인다. 
 엘리스는 보았다 그가 죽기전 입모양으로 만들어낸 말을. '꼭 살아남아라'라고. 

 "......"

 피로 물든 땅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 엘리스는 외롭게 땅을 뒹구는 아버지의 목을 감싸안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기가 사라지기 전의 그 것을 느껴보기 위해 천천히 안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예전의 엘리
스에게 즐거움을 주던 그 것은 사라져있었다. 오로지 말없이 차가운 한기만 가득할 뿐이다.
 그래도 엘리스는 코니프의 머리를 꼬옥 감싸안았다.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 처럼.

"큭. 크크."

 가만히 엘리스를 지켜보던 프랜시스는 무표정하던 표정을 지우고 엘리스를 바라보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크흐흐흐. 가버렸어. 그 녀석이. 카하하하!"
"......."
 
  엘리스는 차마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죽이고 싶었다. 눈 앞의 원수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
러웠다. 

"크크. 이년아. 넌 도대체 뭐냐? 까짓거 움직이지도 않는 머리통 들고 있는다고 뭐가되냐?"
"우리 아빠 아직 안죽었어!!!"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프랜시스를 노려본 엘리스는 거의 발악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동공에서 흘러내
리는 눈물과 떨리는 온몸. 앳되보이는 얼굴에 그다지 위협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어린아이의 치기처럼 보이는 프
랜시스였다. 
 잠깐 '피식'하고 헛웃음을 뱉어낸 프랜시스는 주머니에서 작은 술통을 꺼내 한번에 마셔버렸다.

"죽은건 죽은거야. 너도 알잖아. 킥. 하여간 꼬마들은 안돼."
"아- 아냐! 아니야! 주, 죽여버릴거야! 개자식!! 난 꼬마가 아니야!"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곤 매우 쌍스러운 외침에 잠깐 귀엽다는 표정을 지은 프랜시스는 순간 코니프의 검을
쥐고 달려드는 엘리스의 검을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으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코니프의 딸이라 그런가? 입담이 수준급이군. 성깔도 꽤있구만. 하지만 어른한테 칼질하는건 좋지 못한데?"
"이, 이익! 왜 안움직여! 이...이...바보놈아!!"
"푸, 푸하하하하! 아이고! 젠장!! 하하하하!"

 역시 애는 애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프랜시스는 가볍게 엘리스의 검을 손날로 검면을 후려쳐 날려버린 뒤 엘리
스를 발로 차 넘어트렸다. 그제서야 두려움을 깨달은 엘리스는 가볍게 몸을 떨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죽이지 않는다. 옛 친우의 소원을 여기서 들어준다. 그리고 그 소원은 여기서 끝난다."
"......"
"내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난 자비란 모른다. 설사 그놈의 딸이라고 해도 말야."
"......."
"복수하고 싶으면 찾아와라. 재주껏. 대신 죽을 준비는 하고 와라."

 그리곤 프랜시스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다시 한번 '피식'웃으며 널부러진 코니프의 검을 집어들었다.

"이 검. 좋은 검이군. 이걸 차고 날 보는 날이 있길 바란다."
 
 그말을 끝으로 서럽게 울고있는 엘리스를 뒤로 한 체 프랜시스는 숲길로 사라졌다.

"...죽일거야...반드시...다..."

애꿏은 모래들을 움켜지며 엘리스는 다짐했다. 기필코 프랜시스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그리고 엘리스는 몇 시간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아버지의 머리 곁에서 지쳐 잠들었다.

미소 지은 체 죽은 코니프의 얼굴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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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기 무섭다 유해가 너무 많다
그런데 털린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