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크 영지의 농노들이 사는 곳. 루이스와 폴이 그곳을 지나가자 그 근처의 농노들이 모두 고개를 숙인다.루이스는 농노들이 그럴 때마다 웃으며 마저 하던 것을 하라고는 하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다.

"폴. 영주란 무엇입니까."

루이스가 산책을 하듯 걸으며 폴에게 물었다. 폴이 당황한 기색없이 대답했다.

"영주란 영지의 주인을 말하지요."

"그렇다면 영주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부귀영화에 대한 탐욕을 억제하고 영지 내의 사람들을 살피며 자신의 소득을 불려나가야지요."

"저는 어떻습니까."

에반이 걸음을 멈추고 폴을 바라보았다. 폴이 에반을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영주님은 제 주관적으로 생각할 때, 그 해야할 일을 마땅히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까."

루이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폴은 루이스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지만 결코 물어보지는 않았다. 조용히 걷기를 몇 분. 루이스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폴."

"네, 영주님."

루이스가 잠시 말을 멈춘다. 생각에 빠진 듯 바닥을 쳐다보며 걷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고 걷는다.

"내 영지. 아니 우리 영지의 인구가 얼마나 됩니까."

"기사가 30명에 농노와 상공업자가 6000명이나 됩니다."

"그렇군요. 제가 그들을 다 통치 가능할 만한 그릇이 될까요."

폴이 침을 삼킨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다만, 노력하신다면 그릇이 되시든 안되시든 충분히 가능 해 내실거라는 것을 믿습니다."

루이스가 입고리를 살짝 올리고 폴에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목재 수급. 하지만 목표가 바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신지요."

"플랑크 본국에서 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폴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쟁의 앞에 '대'를 붙였기 때문이었을까. 플랑크 왕국은 북쪽의 노르크탄 왕국과 항상 대치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 왕국 내에 사는 왠만한 귀족들에게 '전쟁'이란 단어는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제대로 충돌이 발생해, 영주들에게 지원요청을 하고 교황조차 둘에게 화친을 권할 수 없는 상황 '대전'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전'은 영주들의 경제적, 군사적 모든 힘을 앗아갈 뿐 아니라 거부할 경우에도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아직 에반 루이스는 그러한 대전을 겪어본 적이 없는 영주였다. 대전은 루이스의 아버지께서도 겪어보신 적이 없을 정도로 가끔씩만 일어나는 대 재앙이기 때문이었다.

'대전이라...'

폴은 아까의 루이스와 같이 땅바닥을 보며 생각에 빠진 채 앞으로 걸어갔다.

"생각에 빠진 모양이군요. 폴."

폴은 놀라 고개를 들고 말하였다.

"아, 아닙니다. 놀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폴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느 새 둘은 성의 입구에 다달았다. 폴은 문지기들에게 성문을 열 것을 지시하며 대답했다.

"대전은 교황의 힘조차 미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렇기에 왕들의 권력이 그를 압도하게 되지요. 적국이든 본국이든간에 왕에게 붙고 교황청에서의 명에 사용될 모든 자본을 전쟁자본으로 쏟아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나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문지기들이 성문을 열자, 루이스와 폴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갑작스러운 이 전개가 계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디에고 가르시아(Diego Garcia).' 귀족에게 부탁을 하고 어느 정도 망신을 준 남자의 이름이다. 귀족의 이름은 '크라잉 데크리토(criying dechrito)'로 오스카 영지의 혼란을 조장하는 귀족 중 하나이다. 디에고와 데크리토가 영주의 성 문 앞에 도착했다.

"영주님께 볼일이 있으신 것 맞으시지요?"

귀족이 소리를 깔아 빌빌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디에고는 그대로 영주의 방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매우 사치스럽게 보였는데, 크리스탈과 루비 등으로 장식된 샹들리에들이 눈에 띄었고 책상은 왕가의 문양을 새겨놓은 상태였다. 그 이외에도 사치스러운 점은 벽지, 카펫 등에서 발견되었으나 디에고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스카 경이 맞으십니까."

오스카는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는데 노크도 없이 들어온 사람에 당황했는지 책상에서 단번에 일어나 말했다.

"누구신데 노크 한번 없이 들어오십니까."

오스카가 방 입구 쪽으로 걸어왔다.

"음. 책상의 왕가의 무늬라. 3년 전 모든 왕가의 표식을 치우라는 명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레옹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네,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이신.."

디에고가 레옹의 말을 끊고 말했다.

"왕명입니다. 각 영지를 돌아다니며 왕명을 어기는 자가 있을 시 규칙대로 처벌하라는."

"그게 무슨.."

"왕가의 표식을 사용 시, 영주 혹은 영지 내의 영주의 측근이 목숨으로 그 값을 대신해야 합니다. 오스카 대 영지의 영주는 죽일 수 없으므로."

디에고가 거침없이 말을 내뱉으며 오른쪽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팔을 휘둘렀다.

"영주의 방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귀족이자, 영지 내의 귀족이며 사치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귀족을 죽임으로 값을 대신합니다."

디에고의 움직임에 무언가가 쓰러졌다. 크라잉 데크리토였다. 로랑은 디에고의 갑작스럽고 황당한 행동에 당황하며 일단 디에고에게 진정하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논하자며 그에게 방 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로랑은 가장 먼저 테이블로 그를 데려가 앉혔다. 홍차를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초록빛의 맑은 차를 마셨는데, 디에고는 그 차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자. 왜 오셨는지 자초지종부터 설명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로랑이 말했다.

"이것을 받아주시지요."

디에고가 가방에서 문지기에게 보여줬었던 두루마리를 꺼내어 로랑에게 건냈다. 로랑은 말없이 그 두루마리를 받아 펼쳐보았다. 로랑이 그것을 읽는 동안 디에고가 말했다.

"제 주인이신  오드리 미셸 이사도라(audrey michel Isadora)님께서는 오스카 경도 아실법한 왕가와 혼인관계를 맺은 전형적인 세도 가의 대표자이십니다. 플랑크 왕국 내의 두 명뿐인 여성 영주 중 한분이시죠."

두루마리를 읽고 있는 로랑은 디에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안듣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표정이 굳어져갔다. 그 때 즈음 문 밖에선 하녀 등들이 귀족의 시신을 치우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랑은 데크리토의 죽는 모습을 본 것보다 한층 더 경직되어서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각 영지에 왕과 이사도라 가의 측근들이 파견되어 왕실의 권한을 침범하고자 하는 자들을 전부 처벌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불입권을 다소 침해하긴 합니다만."

디에고가 오스카의 책상을 노려보았다.

"왕실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일은 곧 반역이므로 그렇게 불입권을 운운할 사항도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로랑은 디에고의 말을 듣고 소리쳤다.

"여봐라! 하녀장을 불러와라! 이 분에게 드릴 방을 꾸며 놓을 하녀들과 이 분을 모실 계집들을 정하도록 했다고 전하거라!"

디에고는 은은하게 입고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디에고는 로랑에게 준 두루마리를 집어들며 로랑에게 말했다.

"예의 상 두루마리를 제가 한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디에고 가르시아를 비롯한 나의 측근들과 왕실 귀족들은 각각의 영지들에 흩어져 나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를 왕의 이름으로 임명받는다. 그대들은 왕을 비롯한 타지의 인물들은 영주들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다는 규칙을 다소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받으며, 다른 규칙들은 단속할 권한을 받지 않으나 왕실의 명예와 권한을 침범하는 자들의 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받게 됨으로 그들을 처벌한다. 만일 파견된 나와 왕의 측근들이 상해를 입었을 시 모든 것은 파견된 영지의 영주가 책임을 져야 함 또한 알리며 이 전언을 마친다.

오드리 미셸 이사도라.」

 

"참으로 감사하군요."

로랑이 살짝 비꼬듯이 말했다. 경직이 정도를 넘어서 반항심까지 연결된 모양이었다.

"별 말씀을."

디에고가 재치스럽게 대답하고는 방금 도착해 문을 두드리는 하녀장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하녀장을 따라 그의 방이 될 장소로 이동했다.

'디에고라 했던가. 성군이 되려 하는 내 욕망을 막으려 한다면 그 누구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로랑은 두루마리를 자신의 책상 쪽으로 던져버리고는 책상을 마구 두들기며 분을 조금이나마 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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