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아아아아암~”
 제임스는 길게 하품을 했다. 갑판 위로 바닷물이 들어올 정도로 파도가 높았지만 제임스에게는 흔들의자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나?”
 “네.”
 “좋아.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간다.”

 코펜하겐 서쪽 해상은 배를 보기가 힘들었다. 대부분이 오슬로와 코펜하겐, 뤼베크를 잇는 해상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쓸만한 항구가 없는 서쪽으로는 오지 않았다. 
 제임스가 착안한 것은 그거였다. 코펜하겐까지 간 상선이 북상하는 중 폭풍을 맞아 남서쪽으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유틀란드 반도와 스칸디나비아반도 사이는 비교적 좁았고, 잉글랜드 해군과 상단 전체가 혈안이 되었는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아직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부턴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선회를 마친 배가 쏜살같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역시 이슬람 애들이 배를 잘 만들긴 해.”
 제임스는 거대한 돛대를 보았다. 이 작은 배에 그렇게 큰 돛을 다는 건 보통 기술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걸 북해까지 가지고 온 사람도 대단하고 말이야.”
 제임스가 타고 있는 배는 다우라고 불리는 배였다. 북해의 파도에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상하기 힘든 고속을 낼 수 있는 배였다. 이런 배를 무상으로 대여할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대여라... 준 거나 다름없지. 해적에 한 번 구해줬다고 이런 귀한 걸 주다니... 그나저나 언제 돌려주지?”
 제임스의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검은 머리의 여자가 떠올랐다. 아테네 출신이라고 했던가. 돛대에 아테나를 상징하는 투구를 그려넣은 여자. 도와줬다는 것만으로 이 귀한 배를 공짜로 준 여자.
 선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 배가 있습니다! 같은 자리를 계속 돌고 있습니다!”

 제임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키가 고장났나보군. 측량사! 지금 좌표 확실히 재고 배에 접근한다! 구호품을 전달한 후 곧바로 알펜으로 돌아간다!”
 “네!”
 선원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제임스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성공이었다.


 “이게... 뭐죠?”
 프레드릭이 교역을 끝낸 에이레네를 끌고 온 곳은 오슬로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항구였다. 그 곳에는 다섯 척의 군함이 있었다. 세 척은 보통 크기의 카락이었지만 나머지 두 척은 갤리온과도 견줄만큼의 큰 카락이었다. 멀리서 경비병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프레드릭이 손을 내젓자 곧 경계를 풀었다.
 “에그먼트 정무관의 비리죠.”
 “그렇다면?”
 “네. 스페인으로 빠져나가는 세금의 일부를 빼돌려서 군함을 몇 척 만든 겁니다. 의장 각하께서도 알면서도 용인해주시지요.”
 “노르웨이 정부에서 허락해 주었나요?”
 “덴마크 왕국이 결코 약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노르웨이도 빠른 속도고 신교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까요. 지들도 스페인을 견제하고 싶을 겁니다.”
 “그렇군요.” 
 “에그먼트가 네덜란드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다만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문제는 호른이... 두 세력을 합칠 수만 있다면...

 프레드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스페인이 육군으로 확실히 장악한 곳은 남쪽 10개 주 뿐이었다.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홀란드 등 7주는 독립군의 기세 때문에 치고 빠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나마 그걸 가능하게 해 준 게 아르마다의 힘이었고, 그것을 바다에서 끊을 수만 있다면 육지의 독립전쟁도 더 쉽게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호른과 에그먼트가 협력하지 않는 이상 그건 꿈일 뿐이었다.
 “돌아갑시다. 너무 오래 있으면 좋지 않을 테니.”
 프레드릭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레네와 프레드릭, 알카디우스가 항구로 돌아갔을 땐 항구엔 이미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해져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건물 위에서 떨어뜨리는 꽃이 사방을 뒤덮었다. 마치 개선식을 떠올릴만한 풍경이었다.
 “무슨 일일까요?”
 “아무래도 상선을 구한 것 같군요.”
 “누가?”
 그 때 알카디우스가 항구를 가리켰다.
 “역시 그들밖에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에이레네가 고개를 들었지만 인파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알카디우스가 익숙한 듯 에이레네의 허리를 잡고 위로 올려주었고, 그제서야 항구에 있는 배들이 보였다. 거대한 바다뱀과, 그 옆에 있는 가분수인 배가 보였다. 
 “그래. 그들은 노르만(Norman)이니까.”
에이레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