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이 글은 미드 게시판의, 5명중에 못하는 라인이 어디일때 노답인가?(http://www.inven.co.kr/board/lol/3370/505918)

라는 글에 대한 답글겸, 롤유저 여러분들의 답답한 마음과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소해 드리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바꿔말하자면, 어느 라인이 가장 영향력이 큰가? 라는, 10년째 이어져 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수도 있겠네요.

위 링크 글의 댓글에서도 보면 알수 있듯이, 탑이 가장 노답이다, 정글이다, 아니다 미드다, 봇이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습니다. 

저런 질문이 나오면, 메타에 따라서 어느 한 라인으로 어느정도 의견이 몰려야 정상인데,

항상 저런 글들은 통일된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어렵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제 그 의문을 시원하게 뚫어보겠습니다.


2. 힘의 균형과 티어

롤에 있는 5가지의 포지션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어딜까요?

왜 그렇게 의견이 분분하게 갈릴까요?

물론 개별적인 논쟁에서의 의견집합들은 개인이 느끼는점에 대한 피상적인 의견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의견이 갈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콕찝어 대답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챔피언 조합별로, 시간별로, 상황별로 그 양상이 매번 다르게 마련이고

그것이 바로 롤의 참재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을 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게임으로 시야를 넓힌다면

어느정도의 규칙성이 보이게 됩니다.

다만, 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싶이 매우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게임입니다.

저는

못하는 라인이 어디일때 가장 노답인가여?

롤에서 젤 영향력이 큰 라인인가여?

라는 식의 단편적인 의문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 보단, '힘의 중심','영향력'에 대한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문제해결을 위해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을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힘의 중심(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티어가 오를수록,

위(상체)에서 아래(하체)로 내려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부터 예를 들어가며 왜 그런 것인지 천천히 알아봅시다.



1) 도파는 왜 브실골에서 부캐를 돌릴때, 항상 탑을 할까요? 그리고 왜 챔피언은 피오라, 잭스만 할까요?

 - 그가 했던 언급중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피오라는 사이드에서 게임을 끝낼 수 있고...'

 '잭스 저거만 해서 점수올리는 애들, 완전 거품이라니까?'

심해 게임은 대개 게임의 양상이 난전으로 흘러갑니다. 세번 게임을 돌리면 두판은 팀원간에 욕설이 오고가고,

40분이 넘도록 지리멸렬하게 늘어지는 게임이 매우 많죠. 정글로 전라이너를 키워줘도, 미드로 바텀을 키워줘도, 게임은 

질질 늘어지다가 승패를 알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도 합니다. 

정글은 동선이라는게 뭔지도 모르고 갱만 가거나 정글만 돌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미드는 자기가 뭘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가야할 때 안가거나, 가면 안 될때 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원딜은 CS를 질질 놓치고, 막상 힘들게 키워놔도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터져버립니다.

우리 서포터는 라인전이 끝나고 나면 졔가 뭔챔을 골랐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존재감이 없네요.

하지만, 탑라이너간에 실력격차가 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탑은 브론즈부터 챌린저까지 한가지의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 라이너와의 라인전을 이기고, 사이드를 민다는 목표.

특히, 이구간에서 피오라, 잭스를 잘하는 사람은 사실상 사이드를 주구장창 미는것 만으로도 게임을

혼자서 끝낼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주먹구구식으로 사이드만 주구장창 미는 탑라이너라도,

일단 탑간의 실력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난다면 사이드운영에 대한 개념이 없는 브실골에서는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실골게임의 승패는 탑라이너의 역량차이에 따라서 크게 달라집니다.

그 대단한 도파도, 브실골에서는 미드나 정글 잡고 종종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탑은 패배하는걸 본 적이 없을정도죠.

싸움은 잦고, 한타가 좋은 탑챔이 잘 큰다면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도 많습니다.

역설적으로 스플릿이 좋은 탑챔이 잘 큰다면 싸움한번 열릴때마다 타워를 두개, 세개씩 철거할 수 있습니다.

즉, 티어가 낮을수록, 탑에 힘의 균형이 몰리게 됩니다.

Q.
아니 선생님, 저는 그구간 현지인인데, 피오라 잭스 잘하는 사람을 못봤는데요?

A.
그런 사람은 이미 플래티넘 다이아로 올라가고 브실골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대리기사거나 부캐일 확률이 높음


2) 다이아구간 대리, 부캐들은 왜 미드정글 듀오를 할까요?

제가 전에 쓴 글 미드라이너 기본원칙(http://www.inven.co.kr/board/lol/2766/47408)에 보면 이런 말을 언급한적이

있습니다.

'롤에서 게임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생기는 현상은, 데스가 점점 줄어든다는거지.'

이 구간부터는, 게임의 수준이 어느정도 안정화된 궤도에 안착하게 됩니다(플1다4제외) 다들 티어에 대한 욕심도 있고

자기가 뭘 하고있는지, 뭘 해야하는지 정도는 늘 신경쓰고, 자기 라인에서 지켜야할 '기본원칙'들은 숙지하고 있는 상황

입니다. 피지컬도 뛰어난 편이구요. 다딱이, 다딱이 이러는데 다이아2정도부턴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라인전에서부터 찍어눌러서 킬을 쓸어담아 게임을 작살내는 방식은 정말 엄청난 실력차이가 아니면 

더이상 잘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라이너들의 기량이 성숙했기 때문에, 일단 라이너들이 잘 크기만 한다면 그만한 존재감을 뽐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다이아 게임의 미드정글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다이아 게임에서

탑이 좀 더 잘해서 딜교환 약간 우위를 가져간다고 큰 차이가 날까요?

바텀이 초반에 CS 10개 앞선다고 게임이 터질까요?

아닙니다. 아직 이정도의 격차를 굴릴만큼 다이아 게임은 타이트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미드가 라인을 먼저 밀고 시야에서 사라진다면? 정글이 갱킹에 성공해 킬을 내기 시작한다면?

미드정글이 주도권을 쥐고 탑이나 바텀 다이브를 성공한다면?

브실골과는 다르게, 미드 정글이 킬을 먹여준 라이너들은 그만큼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합니다. 디나이도 할 줄 알구요

탑라이너는 미드정글이 잘하니, 알아서 안죽는 선에서 라인전을 진행합니다. 팀이 여유가 생겨 시팅을 해줄땐

칼같은 호응으로 응답합니다. 이렇게 차이를 벌린 탑라이너는 상대 탑을 게임 내내 악마처럼 괴롭히네요

잘키운 원딜은 브실골 원딜과는 다르게, 한타 시작과 동시에 터지는게 아니라, 제법 멋들어지게 카이팅도 합니다

와우, 딜이 어마어마 하네요.

서포터는 어느새 오브젝트 근처 시야장악을 끝내고, 우리팀 물릴까봐 포지셔닝도 든든합니다

서폿 아이템도 잘 나왔고, 게임 주도권도 있겠다, 과감하게 이니시도 여네요

이렇게 다이아 게임에선 미드정글이 잘하면 오히려 게임 이기기가 브실골보다 더 쉬워집니다

다이아게임 힘의 중심은, 타 라이너들이 힘을 쓸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드와 정글입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사실은, 미드정글이 '게임을 이겨주는게 아니라' 게임을 이길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드정글이 판만 잘 깔아주면, 다이아 이상 팀원들은 그 판 위에서 춤을 출 실력은 되기 때문이죠.



3) 도파는 왜 챌린저 1위 달리기를 하는데, 게임하기 전에 바텀의 신에게 기도를 올릴까요?

슬슬 게임이 브실골과는 다른 의미로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라인전 실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수준입니다. 아다리가 맞거나, 안맞거나, 가끔 킬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다이아에서처럼 게임이 터지질 않네요. 물론 초반에 크게 터져 15GG를 할때도 있지만 드뭅니다

게임시작 24분, 킬스코어 3:1로 앞서는 상황. 상체 주도권을 바탕으로 용을 챙기고 한숨 돌리며 탭을 눌러봅니다.

아군 케이틀린 CS 150 0/0/1

적군 카이사 CS190 0/0/0

벌써부터 뭔가 느낌이 쌔-합니다. 화장실이 급해 확인 못했던 닉네임들을 급히 훑어봅니다.

우리 원딜은 처음듣는 닉네임이라 전적을 확인해보니, 그마원딜 로우큐가 잡혔군요.

상대 원딜은 ... 식혜충이네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전령도 먹고, 탑1차도 밀어보지만 상대의 데미지컨트롤이 만만치 않네요

바론을 내주지 않는선에서 싸움을 걸려줄듯 말듯 줄타기를 하며, 시간은 흘려갑니다.

게임시작 35분, 분명히 킬은 우리 케이틀린이 먹은것 같은데, 아이템 상태는 비슷합니다. 오히려 상대 원딜은

코어숫자도 비슷한데, 초시계까지 들고있네요.

앗! 템창을 구경하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싸움이 걸립니다. 어라? 근데 뭔가 이상하네요.

분명 상체는 앞서고, 원딜은 코어템의 갯수가 똑같은데, 우리팀은 둘이 죽고 죄다 딸피가 되서 도망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제 곧 바론이 먹히고 게임이 끝나겠죠. 더이상 볼 것도 없습니다. 서렌창이 뜨자마자 3초도 안되서 찬성5표.

왜 졌는지 답답한 마음에 리플레이를 돌려봅니다. 아, 우리 듣보잡 원딜이 브루저를 떼어내느라 진땀을 빼는 와중에

상대 식혜충은 아군을 휩쓸고 있네요. 디테일한 그의 플레이를 0.5배속으로 돌려보며, 감탄하면서 패배를 납득합니다.

게임의 수준이 어느수준 이상 오르면, 가장 큰 딜 포텐셜을 지닌 팀의 메인딜러인 바텀라인에 힘의 균형이 있습니다.



3. 정리

롤은 절대적인 게임이 아닙니다. 브실골에서도 바텀캐리가 나올 수 있는것이고

챌린저 게임에서도 (이 경우는 사실...드물지만)탑이 캐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정리한 내용은 지수적으로 딱 떨어지는 내용도 아닙니다.

다만, 아이언부터 챌린저까지 게임의 수준이 점차 올라갈수록 그 힘의 균형과 중요도, 분포의 그래프들이

어느정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위에서 아래로(탑에서 바텀으로)내려간다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통찰일 뿐입니다.

메타의 변화에 따라서 각 수준별 포지션 그래프가 지닌 탄력성이 변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롤이라는 게임의 근본적인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러한 양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4. 맺음말

이 글로 인해서, 낮은티어 바텀유저분들이나, 고티어의 탑유저분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이 글은 저의 피상적인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늘 답이 나오지 않는 논쟁에서 어느정도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한 저 나름의 정리일 뿐입니다.

제가 미드라이너 기본원칙을 쓰면서도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게임 너무 빡세게 하지 말자.

자꾸 도파를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그 사람이 늘 하는 말 중에 가슴에 와닿았던 말이 있습니다.

'롤 플레이어 중 진정한 승리자이자, 제일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티어에서, 자기가 자신있고 재미있는 챔피언으로, 즐기면서 열심히 플레이 하는 사람이다.'

저는 이제 롤을 플레이하기보단, 보는 것을 더 즐깁니다. 물론 플레이 할 땐 욕설 없이, 최선을 다해 플레이합니다.

더이상 티어는 예전만 못하지만, 게임은 더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매번 명예 5레벨이라구를 까는 것도 즐겁네요.

힘의 중심이 어떻든, 영향력이 어떻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즐겁게 플레이하는 당신이 바로 승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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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0년이네요.

그럼 여러분들도 연말을 앞둔 이때에, 이르지만 내년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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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그러면 프로게임판은? 거기는 뭔데?

프로게임에 대해 감히 제가 논하긴 어렵지만, 짧게 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게임의 수준이 극한에 다다른 팀게임에선, 솔랭과는 정 반대의 양상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빛나는 한 명의 선수보다는, 하나의 구멍, 나아가 실수 단 한번이 오히려 게임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축구에서, 한 명의 스타에게 의지하기보단, 칼같은 팀워크와 단단한 선수진의 분데스리가가 늘 선전하는 것처럼...

더이상 길게 언급했다가는 제 짧은 식견이 뽀록날테니.. 이만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