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광장에 홀로 서있었다.
 그럭저럭 괜찮게 생긴 외모와 나이에 걸맞는 몸매는 사람에 따라 귀엽다 볼 수도 있겠지만, 살인을 각오한 듯 치켜뜨는 두 눈이 모든 인상을 덮어버린다.
 피학 취미가 있거나 눈을 가리고 하는 걸 선호하는 특수한 성벽이 있지 않는 이상 그다지 매력을 느낄 수 없을 소녀.

 소녀의 몸을 감싼 성기사복은 더 이상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데군데 찢어져있었는데, 특히 성기사단의 긍지를 상징하는 성왕국의 문양은 무참히 뜯겨져나가 아담한 가슴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곳곳이 찢어진 옷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내장이 쏟아지긴 커녕 피부가 거의 온전하단 점에서 전투가 아니라 희롱을 목적으로 찢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윗단이 망가진 바지는 이미 흘러내렸고 최후의 저지선인 속옷마저 무릎까지 내리면서, 소녀의 음부는 바깥 공기와 맞닿았다.

 참담한 꼴로 광장에 홀로 선 소녀 네이아 바라하. 그녀는 그곳에서...
 자위를 시작하였다.

 「흣, 흐으읏... 아앗...!」

 두 눈을 꼭 감고 아랫배에 위치한 밝은 갈색 수풀에 손을 뻗어 균열에 조심스레 손가락을 넣고 자극하기 시작했다.
 간간히 신음을 토해내며 음행에 몰두하는 네이아. 그런 그녀를, 뒷편에서 동료 성기사들이 엎드린 채 바라보고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나 숨소리도 죽이고 바라보는 동료들. 이를 알지 못할리 없는 네이아는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당장이라도 이런 행위를 멈추고 싶었다.

 「어째서 손이 멈춘 겁니까? 아, 혹시 뒤에 있는 자들이 신경쓰여서 멈춘 거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드릴텐데요.」
 「아, 아,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행위에 집중해주시죠. 저를 실망시키지 마시길.」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의 눈 앞에 앉아 품평하듯 바라보고있는 한 남자 때문이다.

 남방의 복식이라 알려진 '슈트'를 몸에 걸치고 가면으로 표정을 완벽하게 가린 존재.
 겉보기에는 인간과 닮은 듯 하지만 허리 뒤에 달고있는 은색 꼬리는 그가 인간이 아님을 암시한다.

 마황 얄다바오트. 이 도시를 지배하는 악마.
 아인 연합을 이끌고 이 나라를 침공해 유린하며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갔고, 지금은 자신을 가지고 놀고있는 괴물.

 「심심하니 숫자라도 세면서 기다리기로 하죠. 100부터 셀텐데 그 전까지 끝마치지 못하면... 뭐, 그건 그 때의 즐거움이란 걸로.」

 그가 가볍게 내뱉은 제안에 네이아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악마의 말투는 농담이라도 하듯 가벼웠지만 그 가벼운 마음만으로도 생사를 여탈할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99, 98, 97, 96...」

 패닉에 빠진 네이아는 균열 속으로 손가락을 더욱 깊숙히 들이밀며 필사적으로 휘저었지만 격통이 늘어날뿐 쾌락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만 갈 뿐이었다.
 그 사이에도 악마의 숫자는 점점 줄어만 가 리미트 타임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아, 아앗, 제발, 제발....」

 궁지에 몰린 네이아는 찢어진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드러눕고 완전히 두 다리를 벌려 음부를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수치심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지는 없었다.
 필사적이었다. 손가락을 한계까지 집어넣고 가슴을 꼬집듯 주무르며, 거칠게 휘두른 손톱이 질벽을 할퀴며 생기는 격통을 무시하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쌓였지만 그 이상으로 쾌락을 쌓아 한시라도 빨리 절정을 맞이해야 한다.

 「하으읏!!」

 힘겨운 노력 끝에 절정에 달했다. 순간 느껴지는 해방감은 일시적으로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해줬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사그라지며 찾아온 정막감은 소녀의 정신을 더욱 옮맬 뿐이었다.
 공포와 수치로 마비된 신체에 억지로 힘을 주어 일어나 얄다바오트에게 자신의 상태를 보고하였다.

 「야, 얄다바오트님. 시키시는대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예에 봤습니다. 시간은 열셋을 초과했지만 뭐 이 정도면 합격선이니 발가락으로 끝내기로 하죠.」

 『저들의 발가락을 하나씩 잘라라』
 얄다바오트가 명령조로 이야기하자 네이아의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반 나체에 가까운 몸을 숨기지도 않고 걸음을 옮겨 성기사들에게 향하더니, 성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진 검을 뽑아 그들의 발을 향해 휘두른 것이다.

 「그만둬, 그만둬!」
 「종자 주제에! 악마에게 아양 떠는 년이!」
 「미안해요, 미안해요.....!」

 당연하지만 성기사들도 몸을 비틀며 저항했는데, 몸도 마음도 한계까지 혹사당해 검을 제대로 쥐고 휘두를 수 없던 네이아의 상태까지 겹쳐지며 연이어 비극이 일어났다. 발가락에 그치지 않고 발목을 베이거나 다리를 잃는 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네이아의 손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찌르고, 찌르고, 베고, 베었다.

 하반신이 벗겨진 반나체의 여성이 동료들의 발을 벤다는 지옥도가 끝나자, 얄다바오트는 박수를 치며 네이아를 가까이 불렀다.

 「쓸데없이 반항하지 않았으면 최악이여도 발 앞부분으로 끝날 것을 어째서 저렇게들 반항하는 걸까요.」
 「...」

 네이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얄다바오트에게 반항하면 돌아올 처벌은 알고있지만, 공개자위쇼를 벌이고 동료를 베며 한계에 몰린 정신은 이미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뭐 어쨌든 당신에겐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한 포상입니다. 부디 기분 좋게 받으시길. 『절정에 달해라』」
 「아...? 아, 으, 힛, 히아아아앗!!!♥♥」

 거대한 둑이 무너졌다. 어렴풋한 정신으로 그런 걸 연상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격렬한 자위 행위로 네이아의 체내에는 막대한 쾌락이 쌓였지만, 궁지에 몰린 정신과 육체적 고통은 이것을 개운하게 방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까 닿은 절정은 비유하자면 둑의 꼭대기까지 물이 쌓이고 쌓여 넘실대다가 출렁이며 극히 일부만이 넘어온 상태. 이번의 그것은 둑 자체가 무너지며 쏟아져나오는 쾌락의 물결이었다.

 「아아아앗♥! 안돼, 멈춰♥, 그만둬엇!!♥♥」

 하반신에서 뿜어져나오는 조수와 그 못지 않게 쏟아져나오는 애액.
 눈물 흘리며 손을 뻗은 네이아는 손가락으로 억지로 틀어막으려 했지만 그런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절정에 도달하고도 아직도 손을 움직이는 치녀 같은 행동이 되어버렸다.

 몇 분에 걸친 절정이 끝난 후, 네이아는 쓰러진 채 일어날 수 없었다.
 절정에 달하는 내내 긴장상태를 유지한 전신의 근육이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쾌락이 모조리 해방되며 더이상 장애물이 없어진 격통도 쏟아져나오며 네이아는 결국 의식을 잃었다.


 개구리처럼 양다리를 벌리고 누워서 움찔움찔 떠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얄다바오트- 데미우르고스는 가면 속의 얼굴을 일그러트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는 그의 가학적인 취향도 있지만, 그보다도 지고의 주군을 위한 실험의 준비가 끝마쳐졌기 때문이다.

 몇 시간 전까지 싸우고 죽음을 위장한 그의 주군, 아인즈 울 고운.
 그는 싸움 전에 이렇게 말했다. 「굳이 살려야할 인간은 없다. 적당히 솎아내도록.」

 그것은 분명 심취된 자가 없다는 뜻이 아니리라. 전장에서 지고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세로 싸운 이 소녀가 무엇보다 명백한 증거이고, 또 아인즈님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죽음을 위장할 때 이용하셨다.
 그것은 심취시킨 자들에게서 굳이 살릴 값어치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드워프 룬 장인은 이 세계 특유의 것이기에 연구가치가 있었지만 별다를 것 없는 성기사를 굳이 살려봐야 뭐하냐는, 「나에게 심취된 자들이라 해도 손대중하지 마라. 가치 없는 자들은 죽여도 상관없다.」라는 완곡한 의사표명이다.

 「주군께서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의 충성심을 심어놓으시는 건지, 그리고 그 충성심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알아낼 기회이지요.」

 아인즈님의 위광은 그저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강렬한 충성심을 심어놓는다. 그렇지만 그 충성심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는 이후 주군의 명령을 이행할 때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사회적인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을 인간의 마음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명확하게 재어야만 기획할 수 있으니까.
 어차피 아인즈님께서 필요없다고 판단한 인간. 아인즈님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한다고 해도 불경이 되진 않을 것이다. 아니, 애시당초 아인즈님의 하해와도 같은 지성이라면 이런 자신의 행동까지 예측하고 주신 기회일 터.

 「대체 그 분의 지성은 어디까지 내다보시는 건가... 만년 후의 마도국을 보신다고 하셨지만 그건 역시 너무 스케일이 달라서 저조차 상상이 가질 않는군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데미우르고스는 허공 속으로 손을 사라지게 하더니 녹색 집 모형을 잡은 상태로 다시끔 나타나게 했다.
 크기는 10cm 정도일까. 아름다운 카티지(Cottage) 부류의 집으로 이 세계에서는 귀족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모형집이었다.
 바닥에 내려놓은 카티지는 거짓말처럼 점점 커지더니 실제 집만한 사이즈로 변해, 방해되는 건물 잔해들을 모조리 짓눌러 뭉개고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주군에게서 특별히 빌려온 매직 아이템 <그린 시크릿 하우스>이다.

 모든 것이 파괴된 풍경 속에서 홀로 우뚝 선 녹색 지붕의 별장.
 군사적인 방비가 세워진 저택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별장이 홀로 온전하게 서있다는 그 풍경은, 초현실적인 이물이 섞이지 않았기에 더욱 기괴하였다.
 거점이 완성되자 데미우르고스는 한팔로는 목을 받치고 다른 한팔로는 무릎 안을 감싸는 자세- 통칭 공주님 안기라 불리는 자세로 네이아를 안아, 그대로 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럼 아인즈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느긋하게 심문하기로 하죠. 그렇다곤 해도 당신이 아인즈님께 보여준 충성심은 진짜였으니, 나름대로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품에 안긴 소녀의 귀에 속삭인다. 기절하여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몇번이고 확인해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경의를 담아, 결의를 담아.
 육체관계를 통한 심문은 샤르티아의 전문일 터이지만, 한번쯤은 경험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끝까지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길 멈추지 않은 이 소녀의 정신을 함락시켜보자고, 데미우르고스는 생각을 품었다.


무언가 포근한 것에 감싸였다.
침대인가 했지만 언제나 느끼던 감촉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부드러워서 물컹할 정도였는데, 이어서 몸에 차가운 액체가 끼얹어지는 것이 마치 슬라임계 몬스터한테 포식당하는 상황을 연상케 했다.
그런 발상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네이아 바라하는 기겁하며 몸을 일으켰다.
「꺄아악!」
「정신이 들었나보군요. 준비가 덜 마쳐졌으니 좀만 더 기다리시길.」
다행히 깨어난 곳은 슬라임 뱃속이 아니라 어떤 방의 침대 위.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려보니 한 청년이 스크롤을 펼치고 발동시키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얼굴 조형을 보아 남방 혈통인 듯 한데 엘프와의 혼혈인지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다. 피부는 바닷일을 하는 듯 구릿빛으로 그을려있지만, 그런 일에 적합할리 없는 둥근 안경을 걸친데다 무엇보다 지적인 인상은 그가 결코 어부 같은 육체 노동직이 아니란 걸 짐작케 했다.
분명 어디선가 들은 듯한 목소리인데 방금 막 일어난 탓인지 누구인지 도통 떠올릴 수가 없었다.
「<청결 Clean>. 1위계라지만 역시 효과는 확실하군요. 원리와 응용법에 대해서도 검증해보고 싶지만 일단 그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스크롤이 불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남성은 자세를 바꾸고 네이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윗옷을 벗고 있어 드러난 상반신은, 굵기로만 보면 다소 마른 체형이지만 훌륭하게 잡혀있는 잔근육들이 구릿빛 피부와 함께 매력을 자아냈다.
순간 자신의 음부에서 흘러나온 축축한 액체를 느낀 네이아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손에 잡힌 이불을 뺨까지 끌어올려 전신을 숨겼다.
여전히 찢어져있는 옷 등을 생각하면 진작에 해야 할 행동이었지만 네이아의 정신은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어째서?!'
확실히 그 남성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곧장 하반신을 적실만큼, 네이아 바라하라는 소녀는 헤프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몸에서 미열이 느껴지며 작은 자극도 곤두서게 느껴지고 하반신에서 둔탁한 쑤심이 멈추질 않는다.
이런 반응에서 도출되는 자신의 상태는...
「발정상태군요.」
「햣?!」
너무도 가까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다가온 청년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두 눈은 실눈을 뜨고 있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그나마 보이는 일단은 마치 보석처럼 빛을 내뿜어 제대로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과긴장된 근육과 피로는 포션으로 회복시켰지만 배드 스테이터스를 해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온전한 몸상태이면서 발정 상태만 유지된다니, 이런 경험은 처음일테죠.」
옆 자리에 앉더니 친절하게 웃으며 설명을 계속하는 남성.
배려 따윈 일절 없이 상황과 상태만을 설명하는 그 자세는 불쾌함을 넘어 다른 생물을 보는 공포감을 조성하였다.
그런 그의 시선을 회피해 돌린 작은 눈은 무언가를 포착해, 경악에 빠져 동공을 수축시켰다.
꼬리다.
갑주인지 외갑인지 알 수 없는 은색 물체로 둘러쌓인 가시 달린 꼬리.
얄다바오트의 상징일 터인 그것이, 이 남성에게 달려있다.
「야, 얄다바오트.......」
「이런, 이제야 알아챈 겁니까? 일어나자마자 노려보길래 당연히 알아채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확증이 없던 겁니까?」
노려본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겼다는 반박 따위 할 틈도 없고, 할 수 있을리도 없다.
가면을 벗고 복장도 가벼운 것으로 바꿨다지만, 마황 얄다바오트가 눈 앞에 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니!
그와 동시에 자신이 광장에서 벌였던 추태와 동료를 벤 행위가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라, 패닉에 빠진 네이아는 다시끔 의식을 잃으려 하고 있었다.
「기껏 깨어나길 기다렸는데 다시 의식을 잃는 건 곤란하죠. 『정신을 차려라』」
얄다바오트의 명령에 나타난 효과는 정말로 기분 나빴다.
육체를 움직여야할 정신, 그 정신을 지배하는 또다른 무언가가 생겨나 억지로 심신을 억누르는 있을 수 없는 감각.
몸도 마음도 지배당하는 그 감각에 네이아는 공포에 몸을 떨고 싶었지만, 그 '무언가'는 공포를 품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강제로 안정된 정신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성공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시작할 때 즈음, 그 마음을 간파한 것인지 얄다바오트가 다시끔 명령했다.
「이제 슬슬 받아들였을테니 해제하겠습니다. 『편하게 있어도 좋다』」
비꼬는듯한 정중한 말투와 대비되는 강압적인 명령조에 소녀의 마음은 풀려나올 수 있었다.
다시끔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감을 침과 함께 삼키고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는...?」
「제가 세운 거점입니다. 방금 전까지 당신이 있던 광장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다시끔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 풍경은 결코 단기간에 쌓는 천막 임시 거주지 따위가 아니었다.
휘영찬란하게 사치스러운 치장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네이아의 친가보다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별장 같은 방이었다.
네이아의 집안은 평민이지만 결코 가난하지는 않다.
아버지가 구색의 일원인 덕에 상당히 유복하여 친가는 수도 호반스 일등지에 위치하였고 당연히 건물의 상태 역시 평균을 넘었다.
그런 집보다도 훨씬 깨끗하고 정갈한 이 장소가, 방금 전까지 폐허뿐이던 그 광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 어째서 옷을 벗고... 계신지.......」
「어째서라고 생각합니까? 모를리가 없을텐데요.」
얄다바오트가 팔을 뻗어 어깨를 잡고 천천히 끌여당겼다.
잡는 방식도 거칠게 덥썩 잡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잡은 것이, 상대가 얄다바오트만 아니었다면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을 정도이다.
하지만 눈 앞의 존재는 마황이라 불리는 악마. 이 손가락에 힘을 조금 더하는 것만으로도 팔을 내장과 함께 뽑아버릴 수 있는 괴물.
그저 병아리를 가지고 놀 때 너무 빨리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네이아는 모르지 않았다.
「애시당초 기껏 깨끗하게 한 하반신을 다시 적셔놓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찔걱찔걱
보지도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 얄다바오트의 손이 귀신처럼 균열을 찾아내 그 속으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아랫배에서 조용히 타오르던 욕망의 불꽃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하반신을 축축하게 젹셔놓았고, 질척할 정도로 가득찬 애액은 그 역할을 다해 손가락의 침입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읏, 흣, 핫...!」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의 피스톤 운동에 반응하여 네이아의 숨소리에 교성이 섞인다.
초현실적인 요인들 덕분에 정신은 안정 상태를 유지하였지만, 정신에게 외면당했을뿐 그 시간 동안 육체는 욕망을 채워달라고 호소하길 계속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만족시켜주는 그 손에 허벅지를 비비고 허리를 살짝씩 들썩이는 네이아의 정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쾌락에 함락되어 반쯤 의식을 잃고 정을 갈구하며 상대에게 달라붙었다.
「으읏!」
가볍게 도달한 절정.
한계까지 몰아넣어진 것치고는 가벼운 절정에 아쉬움을 느끼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손의 움직임을 늦춘 쾌락의 주인에게 젖은 눈을 향했다.
어째서 채워주지 않나요.
그런 무언의 질문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것으로 화답한 악마는, 이불을 걷어내고 체위를 바꿔 소녀를 완전히 눕혔다.
평균보다 다소 큰 악마의 하물이, 충분히 젖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소녀의 음부에 삽입하기 위해 맞춰졌다.
모든 것이 끝낼 행위가 시작되기 직전.
열기에 장악되어 자신을 찾지 못하는 소녀에게, 악마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음란하군요.」
그 말을 듣고서야, 최후의 최후에야 네이아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절정하고, 악마의 말에 절정하고, 악마의 손에 절정하여, 그 몸을 악마에게 바치기 전에야.
겨우겨우 자신을 되찾아, 그 눈에 진정으로 저항의 의지를 담을 수 있었다.
「...어....」
「뭐라고요?」
「싫...어... 당신과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양 팔은 잡혀 움직일 수 없고. 다리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설령 움직인다 해도 저항할 수 없는 상대에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그 사나운 눈에 매서운 감정을 담아, 거부의 의사를 확실히 하였다.
마황 얄다바오트는 그 대답에 잠시간의 침묵을 가진 뒤 조용히 읊조렸다.
「그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아슬아슬하던 허리를 약간 뒤로 빼면서. 자세를 느슨히 하고. 붙잡았던 양 팔을 해방시키면서.
표정을 바꾸어- 이빨을 드러내는 미소를 보였다.
「역시 저항하지 않는 상대는, 재미가 없을테니까요─!」
소녀의 저항을 완전히 무시하고.
빈 양손으로 허리를 잡고 망설임 없이 허리를 내리꽂아-
염옥의 조물주는, 네이아 바라하의 처녀를 빼앗았다.
(2)
창이 박혔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의 충격이, 네이아의 몸을 뒤흔들었다.
「아......?」
팔을 내리고 충격의 근원지를 내려보자, 자신의 하반신에 박힌 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제로 벌려진 양 다리. 본래 그 사이에 감춰져야 할 균열을 여지껏 없던 수준으로 벌리고 그 이물을 한계까지 받아들인 모습.
네이아의 음부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위협하던 악마의 하물을 그 뿌리까지 받아들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간지러움 같은 쾌락이 서서히 올라왔지만, 그것이 교성으로 바뀌는 것보다 먼저 쏟아지는 또다른 감각에 밀려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애액으로 범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성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강압적으로 박아넣고도 무사하기를 기도할 수 있겠는가.
아픔이 솟구쳤다. 네이아의 질 전체가 괴로움에 비명을 지른다.
아프다. 아프다. 그저 아프고 아프다.
질 전체가 불에 달궈진 창이 꿰뚫린 것 같고, 찢어진 처녀막은 손가락이 잘릴 때의 고통을 연상케 한다.
배꼽 아래에 위치한 자궁은 그 입구를 처음으로 노크한 상대에 당황하며 구조신호를 보내 안 그래도 한계인 뇌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처는 상처일뿐 아픔으로 느끼기에 아픈 것이다. 비명을 내지르지 말고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며 재정비해라.」
종자로서 배운 성기사의 마음을 되새기며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죽였다.
이걸 가르쳐준 교관도 지난 밤에 꼴사납게 비명을 토하다가 죽긴 했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유일하게 도움이 될 동앗줄이다.
「으으으읏......!」
「이런이런, 왜 비명을 참는 거죠? 방금 전처럼 솔직하게 토해내시죠.」
「그으으...」
이런 모습을 보고 못마땅했던 걸까. 얄다바오트는 상반신을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고는 침대시트를 꾹 쥐고 있던 손가락을 풀어내고 끌어내더니 함께 배꼽 아래로 향했다.
「만져지지요? 이 안에 들어있는 저의 물건이.」
본래보다 살짝 튀어나온 네이아의 아랫배를 쓰다듬고 만지도록 시킨다.
한 장의 육벽 너머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기둥의 감각. 그리고 그걸 감싸는 질내의 맥동.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둘이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그에 더해 방금 전까지의 난폭한 행동이 거짓말인 것처럼 상냥하게 속삭이는 말은 경직된 정신을 노곤하게 녹여 몸에서 고통을 서서히 몰아내었다.
그와 교환하듯 밑바닥에서 부상하는 쾌락이 네이아를 잠식하기 시작할 때.
「합.」
「히으으읏!」
악마의 입이 네이아의 목을 물었다.
아다만타이트도 물어뜯을 이빨은 세우지 않고, 그 얇은 입술만으로 키스하듯 깨물어 남기는 흔적들.
목에서 쇄골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목으로, 뺨으로 향하며 그것을 몇번이나 반복하며 낙인을 새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이어진 현재까지, 그 허리는 움직이지 않고 처음 연결됐을 때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흐아아아....」
난폭하게 욕망만을 토해낼 기세에서 느닷없이 부드럽게 사랑을 속삭인다.
안 그래도 엉망진창이 된 정신에 반복된 가열과 냉각은 겨우 붙잡았던 반격의 마음조차 흐물흐물 녹여버렸다.
네이아 바라하는 자신이 누구와 몸을 섞고 있는지 떠올리지 못하고, 교성 섞인 한숨을 내쉬길 반복하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가슴. 검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기에는 적합하지만 남성을 매료시키기에는 빈약한 가슴.
그것을 곧장 움켜쥐지 않고 주위부터 서서히 피부 위를 미끄러트리며 쓰다듬기만 하고 있다.
발기된 유두가 어루만져달라고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주위만을 어루만져 애태운다.
'슬슬 움직여줬으면 좋겠어....'
20분 넘게 이어지는 전희에 멍한 정신이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상대는 이를 알지 못하는지 허리는 미동조차 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움직이다보면 조금씩은 움직일만도 한데 무서울 정도로 정밀한 몸놀림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전희에 익숙해져 정신이 조금씩 깨어나고 그것이 다시 잡아먹히는 일진일퇴만을 반복하는 상황.
양쪽에 추를 더해가는 저울의 균형이 어느쪽으로 기울지 결정될 때가 머지 않았을 때, 얄다바오트는 드디어 염원하던 행동에 나섰다.


'여기까지군.'
완전히 녹아내려 교성을 토하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데미우르고스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스스로의 입으로 염원할 정도로 몰린 상태. 그러나 그보다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면 반항하고 거부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곤란하다.
애시당초 이번에 맺은 관계에서 쾌락은 1차 목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충성심을 심문하고 시험하기 위해 주입하는 도구일 뿐, 데미우르고스 본인이 즐길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럼 슬슬 움직이지요.」
「...에?」
상대의 대답을 들은 생각은 없기에 곧장 허리를 튕겼다.
직전까지 연기하던 상냥한 태도는 전부 집어치우고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기대한 반응을 보여줬다.
「햐아아아앙♥!!」
진득하게 절정에 달하고 움찔거리는 인간 소녀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결국은 질 떨어지는 인간종. 육체의 쾌락 따위에 이렇게 떨어지고 만다.
그런 상대와 성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도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나자릭의 동료 중 알베도나 나베랄이라면 닿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에 죽여버리고자 하겠지만 데미우르고스가 보기에는 가치없는 것들일 뿐이니 무생물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성행위로 얻는 쾌락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20cm를 좀 넘는 신체 일부가 일으니키는 육체반응. 지고의 주군께 충성을 바치며 얻는 충실감은 물론이고 학살의 묘미에 비해서도 한없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자니 소녀쪽에서 움직임을 취했다.
스스로 몸을 일으켜 달라붙고는 양팔로 데미우르고스의 목을 감싼 것이다.
「이그으읏♥ 하아아앙...♥」
체위가 바뀌면서 닿는 위치가 달라진 덕인지 교성의 달콤함이 진해졌다.
쾌락을 줄 때 체위의 효율성에 대한 추가 정보를 머리 속에 메모하면서, 역시 실전을 겪어보니 얻는 정보도 나름 있다고 데미우르고스는 생각했다.
'이 정도 흐름이면 네 번 정도... 아니 세 번까지만 더 보내고 진행하기로 하죠.'

소녀가 절정에 달해도 악마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아, 뇌내에서 분비되는 마약물질은 멈출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번째인가 절정에 이르러 녹초가 되어 쓰러질 수준에 이르렀을 때, 마치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악마도 하얀 정액을 토해내 자궁벽을 덧칠했다.
인간의 그것과 겉보기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들인 시간에 비례하듯 너무도 압도적인 양이 나와 자궁을 거의 한계까지 가득 채웠다.
「하아, 하아, 하아...」
악마가 여전히 꼿꼿이 서있는 물건을 빼낸 후.
조금만 움직이자 흘러나오는 정액을 바라보며, 겨우 정신을 차린 네이아는 창피함에 팔로 눈가를 가렸다.
하지만 현실도피는 너무 오래했고, 또 그걸로는 상황이 악화될 뿐이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만 한다.
「당신도 슬슬 한계일테니 이쯤에서 제안입니다.」
그보다 먼저 얄다바오트가 선수를 쳤다.
이전까지는 나름의 배려였는지 숨기고있던 흉악한 사기(邪氣)를 감추지 않고 흩뿌리며, 그야말로 마황에 걸맞는 본능적 공포감을 품게 만들며.
이 저택을 꺼낼 때와 마찬가지로 한 손을 어디론가 사라지게 하더니 자그마한 크기의 무언가를 손에 쥐고 말했다.
「희망도 없는 인간으로 살지 말고 악마가 되어 제 쪽에 붙는 게 어떻습니까.」
내민 손을 피자 악의 기운을 내뿜는 씨앗이 모습을 드러냈다.
(3)
「이 아이템은 '타락의 종자'라고 해서 말이죠.」

 얄다바오트의 손에서 어떤 물체가 꿈틀대고 있다.
 크기는 2cm 정도 될까. 뿌리가 약간 돋아났을 뿐 평범한 외형이지만, 보통 뿌리가 촉수마냥 흐느적거리며 파고들 대상을 찾는 씨앗을 평범하다고는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뿜어져나오는 악기惡氣는 -물론 격이 다르긴 하지만- 얄다바오트가 뿜어내는 그것과 동종의 것.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곤 하나 얄다바오트 본인과도 몸을 겹친 직후이기에, 네이아는 강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수준에 그쳤다.
 그런 반항적인 모습에도 별 감흥을 보이지 않고, 얄다바오트는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인간이 이것을 몸에 받아들이면 저와 같은 -아 물론 저보다는 훨씬 하등합니다만- 악마종인 '임프'가 될 수 있는 물건입니다.」
 「......?」

 그 말을 듣고 눈 앞에 들이밀어진 씨앗을 바라보았다.
 윤리적인 면이나 그런 것은 둘째치더라도 인간을 그만두고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어째서 이런 형편좋은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얄다바오트는 씨앗을 소녀의 손 위에 건내주고 침대 가장자리 풀썩 주저앉았다.

 「슬슬 이 나라를 정복하는 것도 궤도에 올랐으니 본격적으로 '사육장'을 만드려는데, 원래 인간이였던 자를 관리인으로 맡기는 편이 더 재밌을 거 같단 말이지요. 그것도 원래 성기사였던 자를.」

 그렇다곤 해도 빈약한 인간의 몸뚱아리로 일하다가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말이죠, 라고 하며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얄다바오트는 웃음을 유지하며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네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걸 받아들이면 악마가 되어 인간들을 학살하고 잔학하게 다루는 자가 된다.
 반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렇게 학살당하고 고통받는 측이 된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난다. 그렇다면......

 「대답은?」
 「...」
 「하아, 뭘 그렇게 망설이는 겁니까? 이제와서 남부나 타국의 지원군에 기대하는 것도 아닐테고, 무언가 다른 기대하는 거라도 있는 겁니까?」
 「...」

 네이아는 고개 숙이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것은 악마의 선택지다. 어느쪽을 고르든 네이아에게 찾아오는 것은 고통이며 악마가 얻는 것은 유열.
 그렇다면 최소한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다는 실망감을 선사해줘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반격수단이니까.
 그런 생각을 품은 소녀는, 이불자락을 끌어올려 나신을 숨기는데에 집중해 현실에서 도피하였다.

 「굳이 꼽으면 역시 모몬은 무섭습니다만... 글쎄요, 지금쯤 마도왕께서 쓰러진 영향으로 폭주하는 언데드들 때문에 정신이 없을테니... 3년 후? 무리해도 2년 후에나 오려나요? 후후.」
 「......」
 「정말로 대답하지 않는군요. 시시하게 하지말고 『대답해라』.」

 또다시 느껴지는 기분나쁜 '지배당하는 감각'.
 거스르려 해야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명령의 물줄기에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네이아는 자의로 대답하기를 선택했다.

 「......마도왕 폐하.」
 「흐음?」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걸 부숴주겠다는 오만함을 내세우던 얄다바오트의 기색이 변화했다.
 아마도 당혹감일까. 희미하게 희열감을 느끼며, 그러나 정작 말에는 자신을 깃들이지 못한 상태로 네이아는 말을 이었다.

 「마도왕 폐하가 부활하시면 널 쓰러트리실텐데....」

 그런, 웃기지도 않는 망상을 입에 담았다.
 그 대답에 묘한 표정 -입꼬리를 올린 게 기쁨을 감추는 듯한 표정이였지만 착각이리라- 을 지은 얄다바오트는 가벼운 헛기침을 해 가다듬으며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크, 크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옆에서 지켜본, 아니 그 원인을 제공한 당신이라면 기억할텐데요?」

 그녀도 떠올리지 못할 리 없다. 마도왕과 얄다바오트가 나눈 신화의 전투를.
 들어본 적도 없는 마법들을 휘두르고, 때로는 믿을 수 없게도 전설 속 전사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얄다바오트와 맞선 마도왕.
 그의 힘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지만 얄다바오트의 그것 또한 만만치 않았고, 그에 더해 악마는 비열하기 그지 없는 책략을 서슴치 않았다.
 끝내 왕의 투지는 악마의 두뇌를 이겼지만 악마가 최후의 최후에 자신을 인질로 잡았고──

 '폐하께서는, 나를 살리려고......'

 그 전까지 인질을 냉정하게 잘라냈던 그가. 산 자의 죽음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언데드인 그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냉정하게 잘라내야 한다고 단정하던 그가.
 고작 몇일 동안 곁에서 미흡하게 호위했을 뿐인 자신을 위해.

 죽었다.
 어쩌면 <전이 Teleportation> 마법으로 사라진 게 아니였을까 싶을 정도로,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불타 사라졌다.

 마도왕도 성왕녀의 부활과 관련해 말하길 시체가 없으면 부활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마 마도왕도...

 '아니야... 그렇더라도...'
 지금은, 그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으니까.

 「...설령 그 분이 돌아온다 해도 당신을 구할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몇번이고 '써먹을' 수 있단 건, 알고 있지요?」

 목에 서늘한 무언가가 들이밀어지고, 약간의 텀을 둔 후 순간 마비된 피부가 깨어나며 통증과 함께 피 흘리는 감각을 전한다.
 어느새 다가온 얄다바오트가, 마찬가지로 어느새 꺼낸 살가죽을 벗기는데 쓰던 얇고 예리한 칼(메스라고 부른다고 한다)을 목에 가볍게 들이밀어, 더없이 날카로운 그 날로 일절의 저항없이 피부를 가른 것이다.

 몇 mm도 안 되는 깊이지만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것만으로도 뇌까지 양단할 수 있는 자세. 그리고 말끔히 닦아냈음에도 피비린내가 풍겨져나오는 듯한 흉행의 메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날카롭게 찔러오는, 눈 앞의 악마가 뿜어내는 살기.
 죽음 그 자체를 들이미는 협박에도, 네이아의 정신은 오히려 맑게 다잡혔다.

 '꺾이지 않을 거야. 설령 부러진다 해도.'

 차라리 지금 살해당하는 것이 낫다, 네이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꺾이고, 믿음을 포기하여, 그저 살아가기 위해 정의를 내던지고 악마가 된다면. 신념을 잃고 육체도 정신도 변질된 상태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건 과연 네이아 바라하인가? 기억의 잔향이 남아있을 뿐 죽은 시체가 언데드가 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몸도 마음도 깔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다.

 '마도왕 폐하처럼 사후에도 올곧을 자신은 없으니까.'

 멋쩍어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은 네이아는, 시선과 함께 표정을 바꾸었다.

 굳이 눈 앞의 악마를 말로 설득할 이유가 없기에, 입을 다물고 노려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눈에 담을 힘도 용기도 부족하지만 다행히 타고난 두 눈은 이것만으로도 적의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문뜩, 이 눈매에 감사한 것은 난생 처음이란 걸 떠올렸다.

 「...좋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대답이라면.」

 이에 얄다바오트는 지루하다는 투로 메스를 내리며 어디론가로 사라지게 했다.
 몇번이나 본 모습이지만 대체 저 아이템을 넣고 꺼내는 알 수 없는 허공은 뭘까? 악마가 산다는 지옥의 통로인가?

 「종자를 심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죠. 뭐, 애시당초 이건 가짜지만요.」

 그가 살짝 힘을 주어 씨앗을 부수자 흉측한 벌레 같은 몬스터가 튀어왔다.
 어떻게 그 안에 들어있었나 싶을 정도의 기생충이 숙주를 찾아 흉하게 발버둥치는 모습은 순간 전신의 구멍에 기어들어갔을 때의 모습을 상상케 했지만, 곧이어 악마가 내뿜은 불꽃에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불타 사라졌다.

 「자, 그럼 마도왕 하나만 믿고 버티겠습니까? 살아돌아올지도 미지수인, 실낱 같은 희망 하나만을 믿고?」

 대답을 요하는 목소리.
 이에 말로 응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저, 두 눈에 담은 의지를 흐트러트리지 않을 뿐.

 그러자 얄다바오트는 숨을 내쉬었다. 한탄이나 따분함을 나타내는 한숨이 아니라 심호흡인 듯 하였다.
 그러고는 무언가 기쁨의 기색을 내보이며 허공을 향해 경애의 뜻을 담아 살짝 절하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네이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제서야 네이아는 악마의 두 눈을 처음으로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보석. 한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하게 커팅된 두 보석이, 안구를 대신해 박혀있었다.
 감정이 깃들 수 없는 두 눈을 대신해 입가를 일그러트려 드러낸 감정은, 약자를 괴롭힌다는 행위에 대한 희열.

 「그렇다면 그 마음이 어디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한번 보도록 하죠.」

 손가락이 날갯죽지 살을 파고들어 뼈에 닿을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부서지더라도 멈추지 않을테니까.」
(4)
네이아 바라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타고난 눈매 때문에 노려보는 것 같다는 오해를 받기 쉽상이고, 거기에 구색(九色)의 일각을 맡고있는 아버지 때문에 다들 거리를 두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이라고 할 정도의 일은 -레메디오스 단장이 저렇게 되기 전까지는- 당하지 않았지만, 다들 조금씩 눈치를 보고 자리를 피하는 건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십수 년간 혼자서 지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누군가 이해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을 원한다는 깊은 곳의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좋든 싫든 몸에 익은 생활은 혼자 지내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방 청소 같이 혼자서 짬짬히 하는 일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리라.
다만 그러다보니 스스로를 위로하며 보내는 시간도 점점 늘어갔다.
성기사의 길을 걷다보면 결혼이 늦춰지는 일은 흔한 편이지만 만약 농가의 딸로 태어났다면 네이아의 연령 정도면 슬슬 결혼을 준비해야 할 나이이며 충분히 아이도 가질 수도 있다.
인간관계를 통해 해소할 수 없는 갑갑함, 그리고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쌓이는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해 침대 속에서 꼼지락대는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가끔은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자제하자는 다짐은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일상처럼 매일 같이 자신을 위로하며, 미숙한 몸과 정신은 점점 그것에 의존하게 되었다.
지금와서 다시 떠올리면, 멈추질 못한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눈이 떠졌다.
잃었던 의식이 돌아와 신체 상태를 점검하고 일시적인 안도감에 빠졌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절망감이 아니었다.
뿌리부터 잘려나갔던 팔다리는 돌아와 오뚜기 신세에서 벗어났고 목에 걸려있던 밧줄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로 지옥을 눈 앞에 두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 몸이 떨리고 눈에서 액체가 새어나왔다. 온전한 안구가 흘리는 그것은 다행히 붉은 색이 아니었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를 덥히려 이불을 찾았지만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된 탓인지 어디론가 치워 없어진 상태였다.
「정신을 차렸군요. 그럼 재개하겠습니다.」
뒤에서 속삭인 목소리에,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내질러지려는 공포의 절규를 속으로 꾹 삼켰다.
얄다바오트가 조심스럽게 몸에 두른 두 팔에는 팔다리를 찢을 힘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이미 완전히 나았을 터인 절단부에서 느껴지는 환상통에, 네이아는 떨리는 몸을 웅크리며 악마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는군요.」
몇번이나 반복됐으니 싫어도 학습할 수밖에 없다.
반항하면 분노를 사기 때문이 아니다. 저항하는 모습에서 상대의 흥미가 끌리는 거다.
반대로 그 약한 반응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생각해봐야 끝이 없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단을 찾아야 한다.
「안심하시길. 이번에는 '상'을 줄테니까.」
......'벌'도 무섭지만 '상'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절벽 앞까지 떠밀었던 상대에게, 쾌락과 희락을 느끼며 매달리게 되니까.
그리고, 그 후에는 또다시 '벌'의 시간이 기다리니까.
마치 예전에 본 대장간 같다.
쇠를 달구고 두들기고 식히며 원하는 형태대로 만든다. 불순물은 모두 태우고 녹이며 없애고 남는 것은 순수한-
푸욱
그 소리와 함께, 사고가 끊어졌다.
「아아! 하으, 으응!」
깨어날 때부터 연결되어있던 악마의 하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내를 가득 채웠던 출혈은 마법으로 말끔히 치워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운 질액이 저항을 줄이고 상대의 움직임을 받아들였다.
정신이 공포와 두려움에 차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안에도 육체는 자기보호 본능으로 애액을 쏟아낸 덕분이다.
「히으으읏!♥」
아직 가벼운 움직임에 불과했음에도 네이아는 가볍게 절정에 달했다.
몸이 너무도 달아올라있고 작은 자극도 민감하게 느껴진다. 생각을 이을 수가 없고 모든 사고가 육체의 감각에만 집중된다.
아마도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는 현상황을 생각하길 포기했기 때문일까. 절정 후 찾아온 약간의 우울감에 네이아는 자신이 품은 나쁜 버릇을 책망하고자 하였지만, 상대는 이를 용납치 않았다.
「흐그으읏!」
「이렇게 달아올랐잖습니까. 빨리 해소하야겠죠...!」
오른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가슴을 우왁스럽게 잡았다.
언제나 상대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하고 섬세하게 다루던 -심지어 가학할 때에도.- 그 손이 보인 전혀 다른 움직임에, 네이아는 다시 한번 절정 문턱까지 인도당했다.
갑작스럽게 체력이 소모된 네이아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얄다바오트는 곧바로 입을 막아 그 호소를 막았다.
「읍, 읍...!」
인간보다 긴 혀는 먼저 이빨 아래를 쓰다듬고, 벌려진 틈새를 넘어 그 안쪽을, 혀 아래를, 천장을 훑었다.
이윽고 수줍게 숨은 혀가 힘이 빠져 저항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낚아채 유린하고 혀를 빨며 질식하는 동시에 주어지는 쾌락으로 인도하였다.
성교와는 또다른 격렬한 욕망의 표현 앞에서 의식을 잃기 직전, 악마는 겨우 그 입을 떼고 숨을 고를 시간을 주었다.
「파하. ...하아, 하아, 하아.....」
난생 첫키스였지만 이제와서 그런 것에 의미를 둘 신경 따위는 없다.
그저 그 육감적인 맛에, 몽롱해진 정신은 빨리 절정에 달하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하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이젠 좀 스스로 움직일 각오가 됐습니까?」
「하아, 하아, 하아....」
늘 매서워보였던 두 눈을 흥분으로 한계까지 부릅뜨고 어설픈 몸놀림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허리를 흔들기에는 적절지 못한 자세에 질압을 조절하거나 하지도 못해 그저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수준이었지만, 처음으로 보인 능동적인 태도만으로도 악마의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하였다.
얄다바오트는 소녀의 어깨를 잡아누르고 엎드리게 만들어, 체위를 바꾸고 자신의 허리를 흔들었다.
아까보다는 움직이기 쉬워진 자세였지만, 절정에 달한 네이아는 그게 교성만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
「체력은 충분할텐데 쓰러지면 곤란합니다. 좀 더 움직이시길.」
절정에 달한 소녀의 육체는 질을 수축시키며 멈추기를 호소했지만, 악마의 하물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않고 움직임을 반복하였다.
안달날 정도의 깊이를 유지하던 그 끝이 때때로 자궁의 입구를 톡톡 건드리면 네이아는 뭔지 모를 감각에 흐느낌의 질을 달리하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쾌락의 지옥에 네이아는 침대 시트에 얼굴을 숨기고 목소리를 죽이기를 택했다.
하지만 얄다바오트는 이를 용납하지 않고 물건을 빼지 않은 채 자세를 바꿔 그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온전히 누운 자세가 된 네이아는 양손을 가슴 위에 모은 채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마주하였다.
얼굴 전체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괴로워했지만, 두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얄다바오트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
대부분은 공포와 혐오였지만, 증오가 차지해야 할 부분은 있어선 안 될 호의의 감정이 차지해 자기자신을 더욱 옮매는 듯 하였다.
드디어 감정의 둑에 구멍이 뚫렸다. 그 모습을 보고 달성감을 느낀 얄다바오트는 구멍을 부수기 위한 압력을 가했다.
육체에도, 그 마음에도.
「『움직여라』」
「히기이이잇!!♥♥♥」
악마의 명령에 따라 그저 떨고만 있던 허리가 격렬하게 움직였다.
지식도 없는 몸이 상대에게 만족을 가져다주기 위해 억지로 움직이면서 상당한 피로가 쌓였지만, 쾌락은 그걸 잊을 정도의 뇌내 마약을 분비시켜주었다.
얄다바오트도 그에 박자를 맞춰 움직이면서 쾌락은 극대화되었고, 네이아의 허리는 몇번이고 절정에 떨었지만 그 움직임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거스를 수 없는 명령에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더 안달난 부분을 향해 허리를 흔들었다.
즈푹즈푹 공기가 새어나오는 음란한 소리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네이아는 체념 반으로 쾌락을 쫓아 움직이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그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만약 얄다바오트가 지금 당장 저 저주의 말을 풀더라도 움직임을 멈출 수 없을 정도였다.
꿀렁
몇번이나 달한 절정 끝에 그 순간은 찾아왔다.
연결되어있는 악마의 하물에 액체가 주입되는 이 감각. 밑둥이 살짝 부풀어 오르며 자궁에 씨앗을 쏟아부을 준비를 마쳤다.
정말로 원치 않았던 순간이 찾아온 것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잠시간 기절로 얻을 수 있을 휴식시간을 기대하며 꾹 누르듯 상대를 조였다.
기절한 동안 엉망진창으로 파열된 내장들이 마법이나 포션으로 치유되면서 마찬가지로 재생된 처녀막은, 삽입된 채로 재생된 탓에 그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며 압박해 부족한 질압을 보충하였다.
「!!」
「흣, 흣, 히읏, 히, 하아아아아앙♡!!」
말없이 씨를 쏟아부은 얄다바오트와 달리 네이아는 교성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내질렀다.
자궁벽을 끝없이 두드리는 백탁액이 불러일으키는 알 수 없는 감정 · 감각, 그것을 그대로 소리로 변환시켜 토해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네이아는 무언가에 기대듯 상대를 붙잡아 껴안고 의식을 잃었다.
그 상대가 얄다바오트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으음... 음?」
정신을 차리면 또다시 도축되는 고기처럼 매달려, 살을 찢기고 뼈에 조각이 새겨지면서 신념을 시험하는 지옥이 기다릴 터였다.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반드시 거절한다. 꺾인다면 살려둘 가치를 잃고 죽음을, 혹은 죽을 가치조차 없는 '가축'이 될테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몸은 여전히 침대에 뉘어져, 가슴을 통해 자신의 것이 아닌 고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의아함에 눈을 뜨자 두 개의 보석이 빛내며 자신의 눈을 비추고 있었다.
얄다바오트의 눈이었다.
「히이이이이!!」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그런 반응이라니 슬프네요. 이젠 좀 편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했는데.」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반응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닌 마황이 어깨를 으쓱하며 불만을 보였다.
이에 네이아는 몸을 약간 움츠렸지만 다행히도 불만의 표출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째서 고문... 심문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지 의아하겠지요? 아 대답은 굳이 필요없으니.」
당연한 의문이다. 봐주는 척 하다가 이야기가 끝날 때 갑자기 다리를 부러트리며 심문으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얄다바오트는 당연한 의문이라 하며 말을 이었다.
「슬슬 그 마음... 마도왕에 대한 신념을 꺾는 건 무리인 거 같으니까요. 저의 취미에나 어울려줘야겠습니다.」
마주보는 자세 그대로 시선을 내리고 손을 움직여 가슴과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이 악마는 거짓말에 가까운 꼬아둔 말은 하더라도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어기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조차도 마지막에 희망을 꺾기 위한 안배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 지옥이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안도감을 품었다.
안도감에 휩싸인 몸은 쾌락에 쉽사리 노출되어 네이아는 다시끔 하반신을 적시고 흐느낌을 흘렸다.
몸을 겹치는 것도 싫지만 그나마 받아들일 수는 있는 행동이기에, 네이아는 스스로 얄다바오트에게 안기기를 택하였다. 설령 이후에 죽을지라도, 잠깐이라도 생을 늘리기 위해.
「하읏!」
다소 느긋해진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며, 치밀어오는 쾌락을 고통스럽게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얄다바오트도 이에 별다른 말 없이 목에 입을 맞추고 등을 훑으며 천천히 진전시켜갈 뿐이었다.
몇번인가 천천히 받아들인 절정을 몸에 받아들이며, 상대의 사정이 다가오리라고 느낄 때 즈음.
얄다바오트가 느답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로 전해지는 13영웅에 대해서 아십니까?」
「항, 하앙, 에? 읏, 예에, 그, 200년 전에 실존했다, 는...」
「그 중에서 암흑기사라는 인물에 흥미가 가던데... 알고 계시지요?」
모를 리 없다. 어렸을 때 13영웅 놀이를 하면 리더 다음으로 인기있던 캐릭터였으니까. 물론 자신은 놀이에 끼지 못했지만, 그러는 모습은 종종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네이아에게, 얄다바오트는 정답을 고했다.
「당신은 제 정액을 몸에 받아들이는 것에 그렇게 큰 거부감이 없는 거 같더군요. 어디까지나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연장선일 뿐, 일반적으로 강간당할 때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것과는 다르지요. 왜였을까요?」
「......?」
그야 인간종은 인간종끼리만 아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프나 드워프, 인간끼리라면 몰라도 아인종과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리가 없다.
그것은 네이아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형체있는 구원이었다.
「인간종과 아인종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세간의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제가 실험해본 결과로도 아이를 품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요.」
그 말에 오크들이 갇혀있던 고문실을 떠올렸다. 사랑하지도 않은, 서로가 상대로 보이지도 않는 두 종족을 억지로 접붙이는 무의미한 희롱의 현장.
대체 이 악마는 그곳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걸까...
「그런데 암흑기사와 관련해서는 다소 흥미로운 전승이 있단 말이지요. ...그가, 악마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
「후후. 그 표정, 역시 들어본 거 같군요.」
잔악한 미소를 지으며 얄다바오트는 네이아의 양 팔을 잡았다.
구속되어 움직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네이아는 어떻게든 빠져나가고자 몸을 뒤흔들었다. 상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계속할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쳤다.
성왕국을 능욕하고 자신을 능욕하는 이 악마의 씨앗이 자신의 몸에 깃들 수 없기에, 네이아는 사랑없는 쾌락의 고문에도 견딜 수 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당신의 자궁에 가득찬 그 씨앗이, 결실을 맺겠지요.」
얄다바오트는 사형선고를 내리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
「기뻐하십시오.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당신은 마황의 아이를 품게 되는 겁니다. 당신을 쏙 닮은, 그러면서 저의 이 꼬리와 이형의 피부를 타고난 후계자가, 당신의 뱃속에 깃들게 됩니다.」
절규한다.
더이상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오로지 절규만을 내지르며, 네이아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저 『저항하지 말고 씨를 받아라』라고 명하면 끝날 그 저항을 힘으로 억누르며, 얄다바오트는 또다시 사정을 준비하였다.
「그만 둬, 하지 마, 안 돼애애애애애애!!!」
꾸룩꾸룩
이미 가득 채워진 자궁에 또 한번의 사정이 가해졌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한계까지 부풀어올랐지만 역시나 무리였고, 질벽을 타고 새어나온 백탁액은 음란하게 흘러내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망가진 겁니까. 그래도 멈추지 않겠다 했습니다만.」
고장난 시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소녀를 냉소로 내려다보며 데미우르고스는 코웃음쳤다.
이형종과 인간종 간의 교배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 실험.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나자릭에 후계자가 탄생할 효시가 된다. 실마리는 옛날 이야기뿐이지만 이형종으로 실험한 적 없다는 점은 확실히 맹점이었기에, 이 기회에 스스로 실험에 나서보았다.
늘어진 소녀의 몸에 다음 씨앗을 주입할 준비를 기계적으로 행하며, 데미우르고스는 한순간도 잊지 않은 목표를 되새겼다.
이 모든 것은 아인즈 울 고운을 위하여.

(5)
나는 악몽 속에 갇혀있다.
현실이라면 지쳐쓰러지고 기절하는 것으로 도주할 수라도 있지만,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분명 꿈 속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라도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하반신에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에, 저항할 기력도 없는 목이 흐느낌을 토해낸다.
용량 이상의 액체가 지속적으로 주입당한 자궁은 몇번이나 파열하였지만 그 때마다 포션과 스크롤로 회복당하기를 반복하길 몇번째.
악마의 하물은 본래라면 들어갈 수 없는 자궁에 박힌 채로. 회복된 내장은 뒤틀린 위치에 비명을 지른다.
끝없이 부어지는 격통과 쾌감, 혹은 격통 수준의 쾌감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지만, 강제로 끼워진 반지에 깃든 효과는 기절과 수면을 허용치 않는다.
그럼에도 기절에서 강제로 깨어나지는 그 짧은 순간, 찰나의 이성상실만을 기다리고 의지한다.
절정에 달해 하얗게 물든 머릿속조차도 자극과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은 그것뿐이니까.
누구도 구하러올 수 없는 지옥 속에서,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쾌락에 절어 온갖 액체를 쏟아내고 받아들인다.
스스로 허리를 흔들고 혀를 빨고 몸을 문대며 용서를 구한다.
「여기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그 눈은 노려보고 있는 겁니까. 이 정도면 정말로 굉장하군요.」
실제론 노려볼 용기는 커녕 눈에 힘주어 상대를 바라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눈은 여전히 그것을 노려보는 눈초리로 바꾸었다. 마도왕에 대한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의지처럼 보이게 하였다.
반항할 마음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명령하듯 속삭인다면 지금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리라. 그저 스스로 말을 내뱉을 용기까지 꺾여버렸을뿐이다.
그것을 악마는 근저에 남은 반항심으로 받아들인 걸까. 어째서인지 약간 기쁘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바꾸었다.
꾸직
하는, 자궁의 입구가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하물이 피와 정액과 애액에 젖은 채 얼굴에 들이밀어졌다.
배에 칼이 박힌 듯한 격통에 숨쉬는 법을 잊어버렸지만, 호흡보다도 눈 앞의 물건에 봉사해야한다는 '학습된 경험'에 따랐다.
「헤에, 하응- 읍, 흡, 으읍...!」
비릿한 맛과 함께 쇠 같은 쓴맛이 느껴지는 액체를 핥아 닦으며 올려다보자, 얄다바오트는 시원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잡고 내리찍었다.
식도 -기도일 수도 있다- 에 억지로 넣어진 물건을 괴롭게 느끼며, 미미하게 남은 이성이 고하는대로 빨아들이고 혀를 움직인다.
애시당초 관련 지식 따위는 전혀 없기에, 그저 몇 시간 동안 주입당하고 훈련당한대로, 본능대로 엉망으로 움직이며 봉사하길 계속한다.
몇번이나 눈물을 흘려 얼굴을 더럽힌 두 눈이 뒤집히며, 산소 부족을 격렬하게 호소한다.
이미 악마의 손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호흡 따위를 위해 목에서 빼면 더 심한 처벌이 돌아오리란 걸 알고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상반신 전체를 움직이며 자극을 가했다.
「크흡, 읍, 으읍, 으......」
쾌락으로 인한 열기와는 다른 이유로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끼며, 정말로 호흡이 끊어질 무렵.
드디어 입 안의 육봉은 맥동하여, 점액을 쏟아내었다.
그러나 그것을 토해낼 힘도 흘러나올 때까지 견딜 산소도 남지 않아, 그대로 의식이 끊어졌다.
그래봤자 곧바로 깨어나 질식의 고통을 몇번이나 받고 기절하며 깨어나기를 반복할 것이라고, 어렴풋한 의식으로 절망에 빠지며...


「깨어났나보구나.」
얼마만에 느낀 '정상적인' 기절에서 깨운 것은,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입으로는 그렇게나 믿고 있다고 외쳤으면서, 정말로 지옥이 찾아오자 누구도 구해줄 수 없을 거라고 어처구니 없게도 믿음을 포기한 자신을 질타하듯. 일깨워주듯.
살의 부드러움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단단한 손으로 자신을 껴안고,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괜찮다. 편히 쉬어라. <수면 Sleep>.」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엉망이 된 얼굴에, 처음으로 의미가 다른 눈물을 흘리며.
네이아 바라하는, 깊은 잠에 빠졌다.

기절한 소녀의 손에서 반지를 뺀 후, 데미우르고스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연초를 꺼냈다.
위그드라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아이템. 굳이 손에 넣은 현지산 물건이다.
그 끝을 잘라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들이며, 폐를 더럽히는 감각을 즐기고 내뱉는다.
두번째 모금은 곧바로 내뱉지 않고 인간을 초월한 폐활량을 활용해 그대로 폐 속에 담아둔 상태로, 상념에 잠겼다.
〔 망할 전뇌법. 애초에 담배가 왜 그렇게 사회악 취급당하며 빡빡하게 금지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네요, 정말. 〕
〔 대기오염이 심하니까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그런 거죠. 이제와서 그러는 게 무슨 소용이냐 싶지만. 〕
〔 그 전제부터가 이상하다니까요. 대기오염이 누구 때문인데요, 복합기업들이 벌인 짓 때문이지. 그 책임을 일반 시민한테 돌리는 책임전가라고요. 〕
〔 자자 진정하시고요. 그러다가 저번처럼 채팅 정지 먹으면 어쩌려고요... 〕
과거 자신의 앞에서 한탄하던 창조주 우르베르트님과 지고의 존재들이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데미우르고스에게 담배 기호를 심어주고 쥐어줄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흘렸지만, 지금 그는 분명히 담배를 감미하고 있다.
'나자릭의 피조물들은 창조주를 닮았지요...'
어쩌면 이것은 창조주 우르베르트님의 기호를 이어받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토해낸 연기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창조주 본인조차 의도치 않았음에도 이어진 연결에 받은 흥분감을, 동시에 그분께 이어받은 흡연의 허무감으로 상쇄시키자니 묘한 감명을 느꼈다.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한 후, 의복을 갖춘 데미우르고스는 옷 매무새를 정리하기에 앞서 침대에 누운 소녀를 '정비'하였다.
쓸모가 발견된 덕에 죽이지는 않기로 하였으니 상황상 주군을 알현하게 될 터인데, 이렇게 흐트러진 불경한 모습으로 만나게 하는 건 결단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녀에게서 상처와 더러움을 없애고 침대를 정돈해 이불로 그 모습을 살짝 가린 후,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소모해 의복을 정돈한 데미우르고스는 <전언 Message>를 사용해 연락을 취했다.
주군께서 성왕국을 구원하러 부활(강림)하실 때이다.


「이번 일, 노고가 많았다 데미우르고스.」
「과찬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북부 성왕국을 함락시킨 마황 얄다바오트가 무릎을 꿇었다.
마도왕 아인즈 울 고운은 이를 당연하다는 자세로 받아들이면서도 부담스럽다는 듯 손을 흔들어 일어나라고 종용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선 얄다바오트- 데미우르고스는 다시끔 고개를 숙이며 운을 텄다.
「먼저, 사망을 위장한다는 그 대담한 한 수에 한 없는 존경을 표하겠나이다. 아인즈님의 의향대로 움직이시라 진언드리긴 했지만, 정말 상상도 못한 책략이었기에 하마터면 따라잡지 못하고 붕괴할 뻔 했으니까요.」
그 말에 아인즈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파악하지 못해 어떻게든 애드리브로 넘어가다보니 그저 흐름을 타고 벌인 일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부하가 긴 시간 동안 기획한 프로젝트가 파탄날 뻔 했다니 현기증이 나다 못해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아니, 언데드의 몸이 아니었다면 확실히 구토했다.
토해낼 속도 없고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자신의 몸뚱아리에 감사를 표하며, 아인즈는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과언이다, 데미우르고스. 오히려 너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판단만으로 방향성을 크게 바꿔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아인즈님! 그 한 수로 몇 개나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는지, 감복할 따름입니다. 다만 그로 인해 생겨난 몇 가지 변수를 제어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부디 그 지혜를 빌리고자-」
「커흠흠. 그것은 나중에 나자릭에 귀환한 후 수호자들 전원과 머리를 맞대고 하자꾸자, 데미우르고스.」
무슨 일이 어떻게 빠르게 진행됐는지도 모르겠는데 조언이고 뭐고 해줄 도리가 없다. 다른 수호자들, 특히 샤르티아가 모인 상황이 아니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일단은 급하게 이야기를 넘겼다.
「일단은 그것보다... 그렇지, 이번 일을 성공시킨 포상을 내리고자 한다만.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은 있느냐?」
「예. 이번 일을 진행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포상이었지만, 한 가지를 더 받고자 합니다.」
호오. 아인즈는 다소 놀라움을 드러냈다.
언제나 특별히 무언가를 원하지 않고 의향만을 드러내던 데미우르고스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원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낸 건가. 무언으로 기쁨과 호기심을 담은 시선을 보내자 대답이 돌아왔다.
「네이아 바라하, 라는 소녀를 저의 것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그 종자 소녀인가. 상관없다만 특별히 원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다소 친분을 쌓은 상대인데다 큰 일에 이용해먹기까지 했기에, 본래라면 이번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런저런 보상이라도 안겨주고자 했다.
하지만 데미우르고스가 원한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언제나 블랙기업 마냥 휴가도 반납하고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어느쪽에 무게가 실릴지는 자명하니까.
설령 그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것이라 해도 거리낌없이 내줄 생각으로 던진 물음에...
「저의 아이를 낳아줬으면 합니다.」
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경악의 감정은 곧바로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정보로 혼란상태에 빠진 머릿속은 「어어, 응. 그렇구나. 알았다. 거칠게 대하지는 말아다오.」라는 어설픈 대응이 한계였다.
「그럼 급한 일은 대강 마무리가 된 것 같으니 결전의 준비를 하자꾸나. 그럼 너는 일단 나자릭으로 돌아가거라. 분노의 마장은 전투를 시작하면 따로 부를 예정이니.」
「받들겠나이다. 그럼, 나자릭과 마도국에 영광 있기를.」
전이문이 열리기로 약속된 방을 향해 나가면서 드디어 혼자가 되자, 아인즈는 혼란에 빠진 머릿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때때로 데미우르고스는 너무 함축적, 혹은 당연하다는 듯이 건너뛰어서 이야기할 때가 있기 때문이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없지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에로 최악' 같은 케이스도 아닌 이상, 데미우르고스가 네이아에게 아이를 낳아줬으면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로밖에 생각되질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한번 직접 보고 생각하고자 침실로 자리를 옮겼다.
침대 중앙에는 악몽을 꾸듯 찡그리고 웅크린 소녀가 누워있었는데, 정돈된 이부자리나 입혀놓은 복장 등에서 굉장히 소중히 다룬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로... 정식으로 마도국에 귀화시켜 결혼을 추진... 아니, 자세한 건 본인에게 듣고서야...'
「으으응...」
고뇌에 빠진 아인즈가 방 안을 돌아다니는 소리 때문인가, 잠에서 깬 네이아가 마치 짜증내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깨운 상대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 일이 복잡해지기를 거부한 아인즈는, 경악의 표정을 짓는 소녀에게 대강 얼버무리고 다시끔 잠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한 마법을 시전하였다.
「으, 으음. 깨어났나보구나. 괜찮다. 편히 쉬어라. <수면 Sleep>.」
이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숙면에 빠진 소녀를 바라보며, 아인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필로그/

흔들리는 마차 움직임에, 생각에 잠겼던 네이아의 정신이 깨어났다.
성왕국 함락 이후 요 몇달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정말로 큰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마도국의 왕을 호위한다는 영예...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일은, 역시 뱃속에 깃든 이것이리라.
아직 크게 부풀지는 않았지만 명백하게 일반적인 크기보다 커진 뱃속에는, 마황의 아이가 깃들어있다.
얄다바오트를 쓰러트린 마도왕 폐하께 구출받은 후, 마황과 몸을 섞은 자로 매도당하며 결국 성기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저 폐인처럼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나날. 그리고 밤에는 반드시, 마황과 몸을 섞는 악몽을 꾸었다.
마치 현실처럼 생생한 꿈이지만 잠에서 깨어나도 몸을 유린당한 흔적은 전혀 없었기에 그저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애시당초 얄다바오트는 아인즈님에게 쓰러졌으니까.
그러던 어느날부터 악몽이 멈추고, 그 대신 몸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얄다바오트의 아이로군. 끈질기게도 후계자가 될 힘을 심어놓았어.」
후일 성왕국에 정식으로 방문한 아인즈님께 몸을 조사받으니, 그런 이야기를 전하였다.
당연히 모두가 경악하였고 모체와 함께 지금 미리 죽이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태아가 될지 아닐지도 불안정한 상태이요. 모체를 죽이면 힘이 폭주해서 터져나갈텐데 범위가 짐작도 되지 않는군. 오히려 그렇게 인간을 학살해 그 힘으로 부활하는 게 목적일 수도 있소.」
과거 내가 사용한 흑산양의 마법이 비슷한 원리였지, 라고 덧붙였지만 나를 포함해 그걸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 후 마도왕의 은혜로 마도국으로 이주할 기회를 얻어, 이렇게 마차에 몸을 싣고 향하고 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퉁명스러운 말투로 쏘아붙이는 마부에게 조용히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황의 신부라는 소문이 퍼진 현재,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 오물을 집어던지지 않는 만큼 훨씬 나았다.
전에 왔을 때와 별반 차이는 없었지만 서리거인 인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완성된 마도왕의 석상이 드높게 솟아, 그 그림자로 임부의 몸을 차갑게 식혀줬다.
두번째 방문인데다 미리 이야기가 전해졌기에 입국관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성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었다.
예전보다도 더 활기찬 분위기의 에 란텔 도시를 걸으며,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나아갔다.
처음에는 몸을 떨며 주저했지만, 이미 온통 소문이 퍼진 성왕국과 달리 마도국의 사람들은 침을 뱉거나 하지도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이전에 보았던 에 란텔의 왕성 부근에서 마중나온 상대를 찾아 시선을 좌우로 향하며 불안해하고 있자니, 머리 위에 진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더니 인간형의 모습을 갖춰 자신의 바로 뒤에 내려앉았다.
뒤를 돌아보자 한 날개 달린 토드맨이 큰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붉은 양복...'
그 옷을 보자 떠오르려 하는 트라우마를 속으로 삼켰다.
온갖 아인종이 모여드는 마도국이라면 남방의 복식을 입은 자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 정도도 견뎌내지 못하면 마도국에서 버틸 수는 없으리라.
「마도왕께 말씀 들었습니다, 네이아 바라하님.」
토드맨은 고개 숙여 절하며 이름을 불렀다. 아인종이기에 당황했지만 이 토드맨이 마도왕께서 의지할 상대로 보낸 사람.
그는 엉거주춤 고개 숙이려는 네이아를 제지하고, 정중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였다.
「저의 이름은 데미우르고스. 부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